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109화 (109/124)

109화. <자연인 살인사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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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제 명함입니다.”

강민혁이 현경아를 불러세운 후, 건넨 것은 명함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지만, 역시나 그녀와 손을 스치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

“예,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 드릴게요···.”

현경아는 발길을 멈추며 다가왔고, 명함을 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으나, 강민혁은 올지 오지 않을지 알 수 없는 그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손이 명함을 향해 다가오는 순간, 손을 스쳤고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칫 하기엔 방대할 수 있는 기억으로 원하는 장면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키워드였으나, 그보다 적절한 기억은 없었다.

‘현경아엔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많지 않을 거야.’

현경아의 아버지이자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현선우는 오랜 기간 그녀와 떨어져 산속에서 지냈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함께 시간을 없었을 터.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최근 몇 년간 그들의 교류가 존재했다.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고, 그것이 그들 가족만의 비밀이라면 기억을 읽는 것 외에 그것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강민혁의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이 걸러지며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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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미친 인간아!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어린 시절의 현경아의 모습이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기상으로 보아 15년 전 현선우가 아직 산으로 떠나기 전 당시의 모습으로 유추되었다.

-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방 안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두 사람.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인 현선우로 파악되었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욕설, 그리고 고함. 거실의 소리는 그녀의 방문을 넘어왔고, 그로 인해 그들의 싸우는 소리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어린 현경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안타까웠으나, 우선 집중해야 할 건 그녀가 아니었다.

- 사업이 망한 게 내 잘못이냐고!

- 그럼 누구 잘못인데!!

방문 너머의 소리에 집중했고, 그 원인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시기와 그들의 대화를 통해 파악한 결과, 부부싸움의 원인은 사업의 실패였다.

실제로 현선우가 산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사업의 실패로 파악되었다. 그는 과거 꽤 큰 사업체의 사장이었으나, 한순간에 무너져 수억대의 빚을 진 상태였다.

앞선 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아무래도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 것으로 파악되었다.

-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당신 딸 경아, 이대로 길바닥으로 내던질 거야?

그녀의 어머니인 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현경아의 몸이 움찔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불을 걷어낸 그녀가 방문에 다가가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내가 다 생각이 있어.

무언가 결심하기라도 한 듯,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혼하자.

- 뭐? 이런···.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에 황당한 듯 되물어오는 대답이 돌아왔고, 이어 욕설이 들려오려는 찰나.

- 진짜 이혼하자는 게 아니야. 서류상으로 이혼하자는 거지. 이대로 당신과 경아한테까지 피해를 줄 생각은 없어···. 내가, 내가 사라질게, 그리고 다 해결되면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현선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말은 결국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 채, 떠나겠다는 의미였다.

이대로 살아가기에는 모든 피해가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은 분명한 상황. 그로 인한 결정으로 보였다.

‘법적으로 이혼한 뒤, 모든 책임을 자신이 감당하며 산속으로 숨었다···.’

하지만, 그다지 놀라운 상황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몇 가지 정보만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정황이었다.

이후의 기억은 빠르게 넘어갔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 겉으로 보이기에도 성장해있는 현경아의 모습. 지금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몸이 좋지 않은 듯, 침대에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단순한 평상복이 아닌, 깔끔히 차려입은 정장에 사원증까지 목에 걸고 있는 그녀였으나 침대에 누워있는 것으로 보아 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조퇴했다던 그날인가.’

곧바로 떠오른 것은 그녀와 나눴던 대화였다. 그녀는 분명 몸이 좋지 않아 회사에서 조퇴했던 그 날, 아버지와 만남이 있었다 말했었다.

아무래도 당시의 모습인 듯하였고, 궁금증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 당신, 어떻게?

- 응···. 비밀번호는 안 바꿨네?

거실에서 들려온 목소리 덕분이었다.

시간은 꽤 흘렀으나, 여전히 그대로의 목소리였고 그것은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누워있던 그녀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뜨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하려는 모습이었으나, 그때 들려오는 소리에 자리에 멈춰서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 다, 다 해결되었어.

- 뭐?

- 빚 말이야. 이제 다 끝났다고!

현선우의 목소리는 매우 흥분한 듯하였고,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15년 동안 상속에 숨어 지내온 그였다. 당시의 현경아는 그러한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였으나. 나는 아니었다.

그가 무슨 수로 수억대의 빚을 해결했다는 말인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복권, 1등에 당첨됐다고!!!

환호에 찬 그 목소리는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순간, 멍해졌고.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 왜 그래? 복권에 당첨됐다니까? 이제 빚쟁이 생활은 끝났어! 우리도 평범하게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그의 아내 역시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때, 현경아가 자리를 박차며 문을 나섰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 따, 딸. 집에 있었구나···.

당황한 현선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복잡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 미안하다. 딸···. 이제 다 끝났어···.

- ...어떻게 된 거예요.

세 사람의 재회는 오랜 기간 이어졌다. 현경아의 질문을 시작으로 그는 지금껏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사업 실패 후, 산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던 일부터. 배고픔에 굶주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복권을 주운 이야기까지.

현선우는 모든 사실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었다.

- ...

- ...

하지만 대답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서로 눈치만 볼 뿐, 그녀들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말이 돼?’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연히 복권을 주웠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1등에 당첨된 것이었다.

차마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고, 그것은 그녀들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 당신 괜찮아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보단.

‘미쳐버린 건가?’

그의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를 생각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 괜찮냐니?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하지만 그 역시 그러한 눈치를 읽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흥분한 기색을 보인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펼쳐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 자, 확인해봐. 내 직접 수령한 거래명세야.

그가 자신 있게 꺼낸 것은 복권 당첨금을 수령한 거래 내역 확인서였다.

그녀들은 곧바로 그 종이를 세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고, 의심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나는 그 한 장의 종이가 다소 믿기 힘들었던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 이, 이 돈은 그럼···?

그녀들은 곧바로 말까지 더듬으며 돈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왔고, 그는 한껏 풀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 다 인출해서 숨겨뒀지.

현선우는 자신이 받은 당첨금을 그대로 계좌에 넣어두지 않았다.

그 역시 빚으로 인한 행동으로 유추되었다. 은행을 믿기 힘들어서라는 이유보다는, 자신의 계좌에 돈이 들어가 있으면 순식간에 빠져나갈 것을 알고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 어, 어디에 숨겨뒀는데?

현경아는 다시 한번 그를 향해 물었다.

돈을 어디에 숨겨두었다는 질문이었고,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 ...내가 알아서 숨겨두었으니 걱정하지마.

현선우는 단호한 대답과 함께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음···.’

그들의 대화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싶었고,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그럼 가볼게요.”

명함을 받은 현경아는 그대로 뒤로 돌며 걸어갔고, 한동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돈이라···.’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무언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사실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현선우가 지내던 산속 오두막 곳곳에 남아있던 파헤친 흔적들이었다.

삽으로 파헤친 그 구멍들은 분명 무언가를 찾았던 흔적이었고, 이제야 어떤 것을 찾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숨겨놓았다던 그 돈.

아마도 그 돈을 찾기 위해 파헤쳐놓은 구멍들일 것이 농후했다.

‘돈을 찾기 위해, 오두막에 찾아왔고 생각대로 되지 않자 그를 살해한 것일까?’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경아에 읽어낸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껏 알아냈던 사건을 다시 되뇌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선우는 산속 그의 집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오두막 근처엔 수많은 파헤친 흔적들이 남겨있었고, 그것은 그가 숨겨둔 돈을 찾기 위한 흔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범인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고, 그가 사는 장소를 파악하고 있는 인물일 터. 당장 그러한 인물은 두 사람. 현경아와 그녀의 어머니 둘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하지만, 그녀들이 범인이라면 이유가 무엇일까. 현선우는 분명 그들에게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희망했다.

그런데도 살해를 저지를 이유는···.

‘없다고는 못하겠어.’

현선우, 그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면 그 방법은 모든 빚을 정리한 이후일 것이다. 당연히 그 빚은 당첨금을 통해 해결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빚은 해결되겠지만, 당첨금 자체는 얼마 남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당시 현선우와 아내는 표면적으로만 이혼한 상태였으나, 그 기간만 무려 15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돈이 더 욕심났을지도 모르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뒤로 돌아섰다.

“가자, 바빠지겠다.”

그리고 저 멀리 기다리고 있는 김영웅을 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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