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3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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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 후 술 한잔 어떠십니까?”
팀원 중 한 명이 강민혁에게 다가와 술자리를 권했다. 그는 경제 3팀의 김재우 경사.
강민혁이 최재희 과장의 제안을 수락한 후, 발령받은 팀이 바로 여기. 경제 3팀이었다.
서울지방청이 아닌 경기지방청으로의 발령이었으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과거 경기지방청은 강민혁의 근무지였다.
건물이며 사람들, 대략적인 직원들의 관계나 대략적인 분위기 정도는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그였다.
다만, 팀이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경제 3팀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매우 딱딱한 편이었다. 특히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같은 팀원들끼리의 교류가 많지 않고 제 일에만 집중하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강민혁이 처음 이곳에 발령받았을 당시에도, 그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드러났고. 그들은 약간의 관심만 보인 채, 다들 제 일을 하기에 바빴다.
이전의 팀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와 익숙지 않은 업무, 더구나 사무업무보다는 현장을 선호하는 그였기에 적응하는데 쉽지 않았다.
그때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이 바로 김재우 경사. 계급은 강민혁에 비하면 한참이나 낮았지만, 처음 보직 이동을 한 그를 하나부터 열까지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동료였다.
그 역시 처음에는 다른 이들과 다름없는 태도를 보였으나, 친해지게 된 계기가 존재했다.
“네, 미제사건 과에 있을 때 이야기 좀 더 들려주세요. 궁금해 죽겠습니다. 하···. 오늘이 마지막 아닙니까.”
우연히 가진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
그때 나눈 일종의 무용담 덕분이었다.
강민혁과 그는 별다른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만 해도 어색한 사이였기에 딱히 대화거리가 없어 꺼낸 화두였다.
미제사건수사과에 있을 당시, 수사했던 사건들을 몇 개 이야기해준 순간 그의 눈빛이 변한 것이었다.
그는 강민혁의 이야기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고, 이내 완전히 팬이 돼버린 듯 지금과 같이 종종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졸라왔다.
“그래요. 좋습니다. 원 없이 해드리죠. 뭐.”
강민혁은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오는 그에게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지금 퇴근한다고 해도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활약상을 듣는 그의 태도가 꽤 재밌었기에 흔쾌히 허락한 것이었다.
“그럼, 퇴근 후에 바로 그 포차로 이동하시죠.”
김재우는 강민혁의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얼굴을 활짝 피며 대답했다.
겨우 이야기를 듣는 것일 뿐인데, 그것이 그리도 기쁠까.
혹여나 강민혁이 딴말 못 하도록 재빨리 약속 장소까지 잡아버리는 그였다.
“하하, 좋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강민혁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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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분 남았나?’
일을 끝내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퇴근까지 남아있는 시간은 30분 정도.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제 일에 집중하며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일을 끝냈다고 하여 혼자 일어날 수도 없고, 마침 김재우와의 약속도 있었기에 시간이 나 때울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
습관처럼 범죄에 관한 기사들을 위주로 확인했다.
해결된 사건부터, 수사 중인 사건까지. 무엇보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이건 미제사건이네···.’
미제사건이 된 사건들이었다.
‘음···. 벌써 3년째인가?’
경제3팀에 들어온 지도 벌써 3년째.
최저 연수만을 채운 뒤, 최대한 빠르게 미제사건 과로 복귀할 생각이었으나,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이 겹쳐 미뤄지긴 하였으나, 딱히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계획대로만 되어준다면 좋았겠으나. 세상살이 그게 그렇게 쉬운 것만 아니었다.
‘그래도. 뭐···.’
조금 늦어지긴 하였으나.
상황은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 다시 미제사건과로의 복귀를 남겨두고 있었기에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경과였다.
‘진호 형이랑 희재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한참 미제사건과를 떠올리고 있자, 자연스럽게 그들이 떠올랐다.
최재희 과장의 호출이 있던 그 날, 경제팀으로의 부서이동을 결정한 것 나뿐만이 아니었다.
노희재와 유진호 역시 같은 선택을 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각자 다른 청으로 배정을 받은 것이었다.
가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기는 하였으나,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빈도가 줄어든 이유였다.
미제사건수사과에서 마지막 근무하던 그 날, 모두가 다시 돌아오자고 약속을 하긴 하였으나.
복귀를 앞둔 지금.
기대하지는 않았다.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당시에는 모두 같은 생각 하고 있었으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자그마치 3년. 미제사건수사과에 있던 기간보다도 배는 많은 기간이었다.
그동안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지금의 나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또한, 혹시 모르지. 경제팀이 적성에 맞았을지도.
어찌 됐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실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은 그들의 선택이었기에,
위이잉.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다.
[주임님. 이따 약속 기억하시죠?]
도착해있는 한 통의 문자.
발신자는 저 끝에 앉아있는 김재우였다.
[네^^]
약속했던 술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에게 답장을 보내며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이 호칭도 끝이겠네.’
주임님.
보직 이동을 한 후, 계급에 맞게 새롭게 붙은 호칭이었다. 경제팀에 현장 수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무업무가 주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불려왔던 형사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는 듯하였다.
관서마다 부서마다 제각각의 호칭이 존재했다.
경기지방청의 경우는.
청장 – 1부장 – 2부장 – 과장 – 계장 – 주임 - ...
이런 식으로 내려오는 듯했다.
경사 이하의 계급에는 별다른 호칭이 있지 않은 듯했고, 경감인 나를 자연스럽게 주임이라 불렀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호칭이었으나, 아무려면 어떤가.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할 호칭이 될 것이다.
단순히 미제사건수사과로의 복귀 때문만이 아니라.
위이잉.
그때 다시 한번 주머니의 진동이 울렸다.
곧바로 확인하자 김재우의 문자가 한 통 더 와있었다.
[그리고 승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승진 때문이었다.
경감이 아닌, 경정. 무궁화의 개수가 하나 더 늘어. 어깨에 세 개의 무궁화를 짊어지게 되었다.
앞서 팀 회식을 통해, 승진 축하 자리를 가지기는 하였으나. 다시 한번 축하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술자리를 원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이미 나는 승진과 동시에 팀을 옮기기로 의사를 밝혔기에, 오늘이 경제팀에서의 마지막 근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결국, 오늘이 아니면 이러한 만남도,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기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아쉬움 때문에 그가 이토록 집착 아닌 집착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그에게 다시 한번 답장을 보내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경정이라···.’
축하 인사와 함께, 마지막 근무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경위부터 시작해 경감을 넘어, 경정까지.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준 고위급 위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사실 이번에 경정으로 승진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번만큼은 필사적으로 노력해 쟁취해낸 승진이었다.
경제팀에서의 2년 차가 지나고, 원치 않은 상황들이 겹치며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미제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꽤 고민하던 차였다.
그때 생각한 것이 바로 승진.
경정부터는 승진 성적순에 따라 본인이 지원한 경찰청으로 가서 근무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것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음과 동시에, 부단히 노력했다.
그간 쌓아온 실적이야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고, 경제팀에서 역시 놀고먹기만 한 건 아니었다.
3년 동안, 수많은 경제 사건들을 해결하고 처리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했는가.
범죄의 종류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 범죄자를 잡는 것은 전문분야였다.
그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고, 최저 연수가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승진했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부서로의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미제사건과에는 어떤 위치로 가게 되려나?’
미제사건과에는 이미 복귀 의사를 밝힌 이후였다. 최재희는 여전히 과장으로서 건대하고 버티고 있었고, 흔쾌히 그 결정을 수락했다.
다만, 어떤 위치로 가게 될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앞선 경감일 당시에는 팀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승진을 통해 경정되었고, 미제사건과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받을지 궁금했다.
경정은 경찰의 준 간부, 중간간부 정도 되는 계급이었다. 일선 경찰서에서의 과장이 이러한 계급을 달고 있었으며, 경찰청으로 가면 계장 및 팀장. 지구대에서는 지구대장, 특공대로 가면 특공대장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팀장이 되려나?’
일반적으로 경찰청의 경정은 계장 또는 팀장의 역할을 하니 그러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럴 경우 앞서 경험해보았던 위치이니, 별다른 부담감이 없음은 물론,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 가보면 알겠지.’
마침 퇴근 시간이 돌아왔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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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쉽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김재우가 울상을 지으며 강민혁에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곳은 퇴근과 동시에 이동한 포장마차.
과거 경기지방청에 근무하던 강민혁이 자주 들리던 그 포장마차였다.
“...저도 아쉽네요. 그래도 또 모르죠. 언제가 또 함께 근무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강민혁은 술잔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에게 덤덤하게 내뱉은 그 말은 단순히 위로하기 위해 건넨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미제사건과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기는 하였으나, 경제팀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누가 뭐라 해도 3년간의 근무를 했던 곳이고, 그동안 쌓인 정이라는 게 존재했다.
당연히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저는 한편으로 기쁩니다.”
“...?”
강민혁이 왠지 모를 기분에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김재우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
순간, 강민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술이라도 취한 것일까.
자신이 다른 부서로 가는 게 기쁘다는 부하직원의 고백은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제가 상관으로서 부족했나요?”
강민혁은 기억을 돌아보며 그를 서운하게 했던 상황이 있나 생각해보았지만.
별다른 상황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심 서운함을 느낄 무렵.
“아뇨. 주임님은 그 누구보다 최고의 상관이셨습니다.”
“그러면 왜···.”
김재우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지금껏 들려주신 이야기들···. 강력 범죄자를 때려잡고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던 사건들을 거침없이 해결하는 그 이야기가 앞으로 더 이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겠죠.”
“저는 그게 너무 기쁩니다. 저희 팀은 좋지만, 주임님이 있을 곳은 아닙니다. 미제과로 복귀하셔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강민혁은 그의 대답을 들으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좋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쌓아둘 테니.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