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3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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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혁도 그렇고. 오늘 다들 왜 이래?’
최재희 과장을 따라 도착한 곳은 근처의 카페. 할 말이 있다던 그는 뜬금없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오늘따라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심지혁이 따로 불러 어울리지도 않는 사과를 하질 않나. 이번에는 최재희 과장까지 이 늦은 시간에 카페까지 이동해 머뭇거리고 있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더라도 탕비실 정도에서 이야기했을 터인데.
눈앞에서 본론을 꺼내지 않은 채 커피를 홀짝이는 그를 보고 있자 불안함이 몰려온다.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참지 않고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 것은 아닌지. 아니면 심재준 청장처럼 그도 부탁할 사건이 있는 것인지.
그게 무엇이든 어서 빨리 이야기 해주기만을 바랬다.
“음···. 일은 무슨. 별건 아니고···.”
대뜸 물어오는 질문에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으나, 표정은 진지했다.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어, 마침 저기 왔구만.”
그때 마주 앉아있던 그가 카페의 입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확인한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를 확인했고,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 강 팀장도 있었네.”
“오, 사무실 밖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들 역시 내가 여기 있다는 건 몰랐다는 반응. 최재희 과장의 부름을 받고 온 모양이었다.
“희재 씨랑 진호 형?”
너무나도 익숙한 그들은 노희재와 유진호.
같은 사무실 동료이자, 경간부 동기들이었다. 이제 막 사건 현장에서 도착한 듯.
이제는 거의 가족 같은 느낌이라 낯설지는 않았으나, 예상외의 등장에 놀라기는 하였다.
최재희 과장이 구태여 우리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이 멤버라면 사무실에서 이야기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건만. 괜스레 한 번 더 걱정이 몰려왔다.
“거의 앉게. 여기, 차나 한잔 씩 하지. 우리는 마시고 있으니 한 잔씩 주문하게.”
두 사람이 테이블 가까이 다가오자, 최재희가 주섬주섬 카드를 꺼내며 건넸다.
조금 더 가까이 있던 노희재 그것을 받으며 주문을 한 후,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저희 무슨 일 있는 건가요?”
그리고 음료가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
그동안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리 봐도 최재희 과장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고.
노희재 역시 그것을 느낀 듯 눈치를 보며 물어왔다.
“허허. 아닐세. 그냥···. 음. 자네들 진로에 있어서 할 말이 있어서 불렀네.”
“...?”
이번에도 역시 최재희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으나. 순간, 그를 제외한 셋이 눈을 마주쳤다.
진로에 대한 할 말···.
모두의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으나, 굳이 누구도 먼저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기에.
위이이잉.
그때, 테이블 위의 진동벨이 음료가 나왔다는 신호를 알리며 울렸다.
“내가 가지고 올게.”
노희재가 반응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진호가 제지하며 일어났다.
그가 음료를 가지고 다시 자리에 앉자 최재희 과장이 우리의 얼굴 한 명 한 명을 쳐다보더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흠흠.”
모두 각자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으나, 모든 신경을 그를 향하고 있었고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그를 따라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가 헛기침하기 무섭게 그에 집중했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직 인사이동 기간인 거 다들 알고 있나?”
그리고 그가 화두를 던졌을 때,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최재희 과장이 말한 대로 지금은 인사이동 시즌.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부서이동을 통해 경찰 내부는 꽤 분주한 기간이었다.
못 보던 얼굴이 청 내에서 자주 보이고, 익숙한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굳이 따로 소식을 접하지 않아도 체감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정보였다.
여기 있는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가 같은 말을 던졌다면, 가벼운 화젯거리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 대상이 최재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가 속한 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는 인물이었고, 구태여 그가 여기까지 데리고 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누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 건가?’
생각의 흐름은 어렵지 않게 결과에 도착했다.
미제 사건 과에 새로운 신입들이 추가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가 이 말은 꺼냈다는 것은. 새로운 영입이 아닌 방출의 의미일 터.
그리고 그 대상이 우리 셋 중에 있는 모양이었다.
‘...’
노희재와 유진호의 표정을 힐끔거리며 살펴보았다. 그들 역시 같은 결과를 도출한 듯 불안해 보이는 눈빛.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느껴졌다.
‘설마···. 난가?’
하지만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적으로 평가했을 때, 내가 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적 좋아 팀을 떠나게 되는 상황. 그러한 상황 역시 지켜본 기억이 있었다.
탐나는 인재를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팀원으로 데려가기 원하는 경우나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재를 강제로 인사이동 시키는 경우도 더러 일어나는 상황 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러한 경우 더 좋은 조건이나 근무환경을 고려해주기는 하였으나, 강제로 이동시킨다는 점에는 다를 것이 없었다.
‘씁···.’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솔직히 다른 팀으로 이동한다고 하여 겁을 먹거나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만은 있겠으나, 그 자리에서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든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경찰의 시작. 노희재와 유진호 같은 경우에는 본격적인 경찰 생활을 시작도 전부터 같이 했던 사이였기에 가장 마음이 잘 맞고 손발이 맞는 동료들이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시너지가 일어나는 그들이었기에 서로가 다른 팀에서 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당연하게 겪어야 할 절차였으나, 생각보다 너무나도 빨랐다. 여전히 긴장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저희 중···. 부서이동이 있는 겁니까?”
최재희 과장이 망설여하는 이유가 대충 감이 왔기에 빙빙 돌릴 필요 없이 선수 쳐 물었다.
그게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더 편할 것이 분명했다.
“음···. 그런 건 아니네.”
하지만 돌아온 건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최재희 과장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의문이 들 때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제안이니 판단과 결정은 자네들이 하게.”
셋이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네들이 이번에 미제사건수사과를 떠나길 추천하네.”
“...”
“...”
순간, 이어지는 침묵.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최재희 과장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다른 이의 부탁이나 압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희망한 것도 아니었다. 차분하게 말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결국 부서를 떠나 달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유진호나 노희재만큼은 아닐지라도 최재희 과장, 그와도 꽤 오랜 기간 함께 일을 하며 정이 들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냉정한 듯하지만, 뒤에서는 누구보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은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게 했다.
“...이유가 뭡니까?”
섣불리 판단하기는 일렀고, 그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달라는 의미였다.
“말했다시피 자네들 미래를 위해서네.”
“...?”
이어지는 대답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자네들 모두 경찰대학 수료 후 미제사건수사과에 합류했지. 어디까지나 특별한 경우긴 하였으나, 자네들도 모르지 않을 거야. 경찰 간부 필수 보직에 대해서.”
“...!”
그리고 말이 이어지기 무섭게,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필수 보직의 존재.
그동안 사건 해결에 바빠 새카맣게 까먹고 있었으나, 항상 마음에 걸리는 문제 중의 하나였다.
경찰 간부과정을 통해 들어온 이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보직이 존재했다.
노희재와 유진호를 비롯한 우리는 청장의 지시로 필수 보직을 거치지 않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뒤로 미룬 것뿐.
지역 경찰 6개월과 경제팀 2년.
지역 경찰의 경우에는 경찰청에서의 근무를 인정해 충족할 수 있었지만, 경제팀만큼은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부서였다.
최재희 과장이 말하고 자 하는 것이 바로 그거였고, 우리 모두 그것을 눈치챘다.
“지금 자네들이 미제과에 남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걸세. 내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마침 경제팀에 남는 자리가 있다고 하더군. 모두 다른 관서긴 하나 기회가 있을 때 가지 않으면 앞으로 더 쉽지 않을걸세.”
다소 강하게 말하는 그였으나,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강 팀장. 자네는 지금 가지 않으면 앞으로 승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네.”
그리고 그는 눈을 마주치며 설득을 이어갔다.
“...”
과연,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듯 그의 말은 전부 옳았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걱정이었고, 그에 대한 해답을 그가 내놓은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계급에 따른 최저 근무연수가 3년 정도 남아있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수 보직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이후의 상황은 생각지 못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필수 보직인 경제팀의 근무연수는 최소 2년. 지금 팀에 남는다고 해도 1년 안에 이 팀을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다만, 그 역시 계획대로 될리는 없을 터. 보직 이동이 원한다고 전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서이동 기간에 해당 경제팀에 남는 자리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아무래도 현장직보다는 사무직이라는 매리트가 있어 인기가 있는 편이었고, 부서이동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티오가 적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 가는 게 바르다고 보네.”
최재희 과장의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기회가 온 지금이 적기인 것은 분명했다.
당장은 경제팀에 남는 자리가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꼴이었지만, 훗날 더 늦게 된다면 반대의 상황이 올지 몰랐다.
지금 계급은 경감. 애초에 낮은 계급이 아니었고 지금 경제팀으로 가지 않는다면 경위 이상의 계급으로 이동하게 될지도 모으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후 3년이 지나도 다시 미제 팀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경위 이상의 계급이 되는 경우 인원이 줄어드는 건 당연했고, 원한다고 하여 함부로 부서를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지만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계급이 높아진다는 건 결국 권한 역시 높아진다는 것. 해당 팀에서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과 같기에 부서이동에도 제약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경제팀에서 자리를 잡을 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미제사건수사과는 내 능력을 활용하기에도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니기에도 가장 적절한 부서였다.
아직 해결해야 할 사건들도 많이 남아있었기에, 반드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시기는 매우 적절했고, 기회가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 팀장. 자네 선택에 맡기겠네. 어떻게 할 텐가?”
이내, 모든 설명을 마친 최재희 과장이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경제팀에 다녀오겠습니다.”
선택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곧바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