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지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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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가 칼을 꺼내 들기 무섭게 강민혁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차분한 모습.
일순간 주변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 강 팀장님!”
이민재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한동안 이어지는 정적.
강민혁은 자신을 향해 그가 위협하며 겨누고 있는 회칼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흥. 어이 짭새. 쫄았냐?”
독사는 뭔가 단단히 오해한 듯싶었다.
자신이 칼을 꺼내 들자 강민혁이 겁을 먹어 움직일 수 없는 거라 판단한 모양. 어찌 보면 그게 더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상황일 수 있었으나.
“...후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강민혁은 그가 칼을 꺼내 드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형사에게 칼을 꺼내 들었다.
그 단순한 행위만으로 강민혁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었다.
“이민재 경장.”
“예, 팀장님.”
강민혁은 다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독사 뒤에 서 있는 그를 부르자. 바짝 긴장한 이민재의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칼을 든 상대가 있음에도 도와달라는 요청이 아닌,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으나, 이민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강민혁과 오랜 기간 파트너로 일해온 그였기에,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분노했다는 것도.
고작 저런 칼을 들었다 하여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 상대가 한 조직의 보스일지라도 말이다.
“뭐야, 이것들이 미쳤나? 내가 우스워?”
강민혁과 이민재 사이에 자리한 그는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고,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두 사람의 언행에 자존심이 상한 듯 소리쳤다.
“나 독사야. 독사!”
그래도 엄연히 한 조직의 보스였다. 자신을 잡으러 온 경찰이 그 사실을 모를 리도 없건만.
무엇을 믿고 저리 까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가만히 지켜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 오늘 너희 둘 다 요단강 건널 줄 알아.”
짭새를 건드리지 않는 건 불문율이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최대한 빠르게 이 둘을 처리하고 다른 새끼들이 오기 전에 도망가는 게 최선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저 짭새 놈 배때기에 칼침 두어 방은 놓아줘야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건방진 새···. 뭐?”
앞뒤 젤 거 없이 오른손 쥔 칼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앞의 형사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눈치조차 챌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의 주먹은 이미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퍽-!
짧고 굵은 타격음.
강민혁의 주먹과 독사의 턱이 맞붙이 치며 듣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거대한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주먹을 뻗는 그 방향 그대로 독사는 뒤로 넘어갔다. 말 그대로 내팽개쳐지는 모양새.
“이런, 개 같은···.”
강민혁에게 속절없이 당하긴 하였으나 그 역시 깡패는 깡패. 그중에서도 보스라는 위치가 제비뽑기로 얻어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버텨?’
강민혁 역시 내심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자신의 주먹은 그의 턱에 정통으로 들어갔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깔끔하게 턱을 명중한 게 주먹에 정확하게 느껴졌건만.
일반인이었다면, 당장 기절하고 남았을 상황에도 그는 멀쩡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고통이 없는 건 아닌 듯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과연 맷집 하나는 인정해줄 만했다.
“뭐해? 그 칼은 폼이냐?”
강민혁은 죽일 듯 노려보는 그를 보며 오히려 도발했다.
독사의 손에는 여전히 칼이 쥐어져 있었고, 아무리 강민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칼은 분명히 위협이 되는 무기였다.
우선 저 칼을 제거해내는 게 우선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그가 칼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물론, 허리춤엔 테이저건과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 있었지만. 굳이 그것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의 허벅지에 총알을 갈겨주는 것보단, 제대로 된 교육을 해주겠다는 의도였다.
감히 경찰에게 칼을 꺼내 들며 위협하는 녀석이었다. 겨우 그 정도 간단하게 체포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감의 표출이었고, 그는 강민혁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감히!!”
그는 칼끝을 세우며 손목을 세워 내질렀다. 분명한 찌르는 동작이었고, 강민혁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동작부터 어깨의 돌아간 정도, 손목의 각도 그리고 그의 시선까지. 세세하게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했고, 그의 칼이 들어올 방향을 예측했다.
“이런, 씨···.”
독사가 팔을 내지르는 순간, 강민혁이 허리를 틀며 피해냈다. 그의 칼은 강민혁의 왼쪽 허리와 팔 틈 사이로 그대로 빠져나갔고.
그 역시 허공을 내지르는 그 느낌을 인지한 듯 입에 붙은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강민혁은 그대로 한 발짝 더 들어가며 자신의 왼팔을 조여 그의 팔을 감싸 안았다.
마치 아나콘다가 먹잇감을 사냥하듯 단단히 그의 팔을 고정한 것이었다.
“뭐, 뭐야?”
독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민혁이 자신의 팔을 감싸 안은 순간, 힘을 줘 빼내려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 수준이 아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 무슨 힘이···.’
나름 주먹의 세계에서 오래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이 정도 힘을 가진 괴물은 본 적이 없었다.
단연코 지금껏 상대해온 그 누구보다 강력한 괴력이었다.
“뭘 그렇게 당황해?”
그가 당황한 모습은 표정에서까지 드러날 정도였고, 강민혁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마치 당황하긴 이르다는 것처럼.
“으···. 으아아악!!!”
강민혁은 순간 겨드랑이에 힘을 주며 엄청난 완력으로 그의 팔을 조였고, 그 상태 그대로 꺾어버렸다.
그의 고통에 젖은 비명이 울려 퍼질 때쯤.
땡그르르르···.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칼이 속절없이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강민혁은 여전히 그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무릎을 꿇는 모양새가 되었고, 강민혁은 이민재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눈치만 보고 있던 그는 곧바로 그 의미를 눈치챘고, 살금살금 다가와 칼을 거둬 갔다.
이민재가 자리로 돌아간 걸 확인한 그는 이내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
평소대로라면 이쯤에서 수갑을 꺼내 그를 검거하는 것으로 끝이 났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그를 놓아준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마치 그가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느낌이었고, 이민재는 의문이 들었으나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봐, 깡패. 그게 끝이냐?”
강민혁은 이번에도 역시 그를 도발하듯 입을 열었다. 여전히 수갑을 채울 마음 따윈 없는 모양이었다.
“건방진 새끼. 가지고 노는 거냐.”
독사 역시 그러한 사실을 눈치챈 듯 있는 힘껏 인상 찌푸리며 대답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주먹 하나로 통용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었고, 이미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그가 언제든지 자신에게 수갑을 채워 검거해 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가지고 놀다니? 나는 경찰에게 칼을 휘두르는 범죄자를 검거하려는 뿐인데?”
그리고 눈앞의 경찰은 고의로 상황을 마무리 짓지 않고 있었다.
“...시발.”
그에게 당한 팔의 아픔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강자의 앞에서 자신이란 존재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무력함을 넘어 패배감이 가슴 깊이 사무쳤고,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더욱 짜증이 나는 건.
지금 그에게 다시 덤벼들어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를 명백히 무시하고 희롱하는 행동이었나, 그에게 달려들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야 너 우냐? 깡패가?”
강민혁은 황당한 듯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독사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분함을 이기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었나, 깡패 그것도 나름대로 조직의 보스라는 놈이 눈물을 흘리고 있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독사라며 독사. 독침 뺏겼다고 우는 거냐?”
“그, 그 입 안 닥쳐!!”
그 모습이 꽤 불쌍하긴 하였나,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는 깡패. 법을 무시한 채 폭력을 행사하며 사람들을 등쳐먹고 사는 사회의 악과도 같은 존재였다.
경찰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칼을 꺼내 드는 것만 보더라도 그의 행동거지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살해의 의도를 가지고 달려들던 놈이 이제 와 눈물을 훔친다고 하여 봐줄 만큼 강민혁은 마음이 여리지 않았다.
“평소에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완력을 행사하다 혼자서는 안되자 눈물을 훔치는 깡패라···. 재밌네.”
“...”
강민혁은 독사를 내려다보며 쉴 새 없이 떠들었지만, 그는 고개를 숙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정곡을 찌를 만큼 맞는 말이었다.
더구나 한번 시작된 눈물은 어째서 멈추질 않는지. 인생 최대의 치욕을 맞보는 중이었다.
“쯧. 조금 더 혼내줄 생각이었는데. 됐다. 울고 있는 놈 때려서 뭐하냐.”
강민혁은 그런 그의 모습을 한동안 인상을 찡그리며 쳐다보더니. 이내 혀를 찼다. 그리고 김이 샜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 저기 있다.”
그때 주차장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강 형사님, 이 형사님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나이트클럽 내에 있던 이들이 강민혁과 이민재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되어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클럽 내의 상황을 해결하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강민혁과 이민재가 아닌 그들의 사건이었으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은팔찌 채워줄게. 양손 뒤로 모아.”
“...”
강민혁은 다가오는 그들을 확인하며, 독사에게 명령했다. 그는 쓰러져있는 그 상태 그대로 순순히 뒷짐을 지었다.
곧바로 허리춤의 수갑을 꺼내 그를 검거했다.
“어! 독사! 검거하셨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들은 주차장 입구에 다 와 검거된 독사를 발견했고, 한걸음에 다가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 형사님, 이 형사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내 강민혁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도 그럴 게 독사가 이 사건에서 나름 핵심 인물이었기에, 그를 놓쳤다면 꽤 곤란한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이놈 이거. 하도 거친 놈이라 걱정 많이 했습니다. 혹시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물음에 강민혁이 독사를 쓱 바라보자, 그가 시선을 피했다.
본인도 쪽팔린 모양이겠지.
“거친···. 네. 보다시피.”
이내 한마디 거들까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찌 됐든 독사와 클럽 내의 두 조직 모두를 검거해 냈다. 급하게 오게 된 지원이었으나, 완벽할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나머지는 심지혁에 맡겨두면 될 터.
만족스러운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