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지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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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사건에 관한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요.”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던 도중, 분위기를 조금 깨며 끼어들었다.
나에 대한 무용담이나 활약상을 듣고 흥미로워하는 지금의 상황이나, 심지혁이 언짢아하는 그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민재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지원 요청을 받고 온 것이었으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흠흠. 상황은 작전과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주목해 주시죠.”
아무래도 다른 동료들이 있기 때문일까.
심지혁이 평소와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모두를 주목시켰다.
그리고 조그만 보드판을 꺼내 들며 작전과 함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독사파와 일성파의 때문입니다.”
“독사파와 일성파?”
심지혁의 설명에 의문을 표하자 옆에 앉아있던 이가 보충설명을 이어갔다.
“독사파와 일성파 두 조직 모두,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폭력조직입니다. 근 10년간 차이나타운 내 독사파는 유일하다 싶은 조직이었으나, 최근 몇 년간 급부상한 조직이 바로 일성파입니다.”
“일성파의 성장 배경에 무언가 있는 겁니까?”
설명을 유심히 듣고는 질문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독사파는 이곳의 유일하다 싶은 최대 규모의 조직이었다는 것. 그는 간단히 일성파가 급부상했다고만 설명했지만,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폭력조직이라 하여 일반적인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독점. 일반적인 기업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기업이 시장 자체를 독점하면 다른 중, 소기업이 쉽게 성장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말 그대로 독사파라는 거대한 조직이 차이나타운 내 깊숙이 침투해, 어느 사업채를 가더라도 그들과 연관이 되어있는 상태라면, 새로운 조직이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회라면 더욱 그러했겠지. 근 10년 동안 독사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러한 이유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일성파는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성장했다는 소리였기에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일성파의 성장은 기존의 조직들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합니다.”
그는 내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고, 그에 대한 대답을 이어갔다.
“기존의 조직들이 나이트클럽이나 오락실, 불법 도박장 등의 유흥시설을 기반으로 성장해 나갔다면, 일성파는 해외 유통 쪽으로 성장해 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유통 말입니까?”
“예, 주로 마약이나 짝퉁 제품들을 밀반입해 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전혀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꽤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봐 왔다는 증거였고, 그들이 처음 우리를 마주했을 때 실망했던 반응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팀의 숙원사업과도 같은 건가.’
심지혁을 비롯한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그들을 전부 검거해내는 것일 터. 그 기회가 마침 찾아온 그때 우리가 합류한 모양이었다.
‘성격을 죽일 만하네.’
더불어 심지혁의 지금껏 보여주었던 행동과 다른 이유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의 그라면 나와 마주하기 무섭게, 돌아가라며 소리쳤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고,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도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게 조심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철이 들었다고만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한 모양이었다.
“그럼 바로 이어서 작전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두 조직이 오늘 저녁 차이나타운 내 나이트클럽 내에서 접촉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심지혁은 이어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 일성파의 사업 확장. 그에 따른 독사파와의 충돌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폭력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겠군요.”
그 설명을 들은 이민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또···.”
“두 조직을 한 번에 검거할 기회겠군.”
이어 심지혁이 말끝을 흐리자, 강민혁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며 대답했다.
그 말이 맞는다는 듯, 봉고차에 타고 있는 팀원들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은 얼마나 진행된 거지?”
이어 심지혁을 향해 물었다.
“지금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해당 나이트클럽에 투입되어있는 중입니다. 아직 만남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며, 상황이 발생하는 즉시 전 인원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여전히 심지혁의 존댓말은 익숙해지지 않았으나, 다른 팀원들의 의식한 것인지 계급에 맞는 대우를 해 주었었다.
딱히 이럴 다할 작전이랄 건 없어 보였지만, 이 정도만으로 충분했다.
결국, 두 조직이 곧 만날 것이고 협상이 결렬돼 싸움이 벌어지면, 모두가 투입해 그들을 검거해내면 된다는 의미였다.
간단하기 이를 대 없는 사건이었지만.
“예측되는 수는 얼마나 되는 거지?”
문제는 역시 그들의 숫자였다.
단순한 일반인이 아니었고, 폭력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었다. 더구나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 특성에 맞게 한두 명은 아닐 터.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은 고작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이 급하게 지원 요청을 한 이유가 있었다.
“어림잡아 최소 30명 이상으로 예측됩니다···.”
상대해야 하는 깡패가 최소 30명. 한 사람당 3명 이상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하니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상황이 벌어지면 모두 삼단봉 소지하시고, 테이저건 사용 허가합니다. 상황에 따라 실탄 사용 여부 역시 망설이지 말고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심지혁 역시 그것을 의식한 듯. 당부의 말을 건넸다. 실탄 사용을 주저하지 말라는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고, 그만큼 상황이 얼마나 위험할지 경고하는 것이었다.
-치이익. 치이익. 독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때 무전기가 울리며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심지혁이 말했던 대로 나이트클럽 내에 투입해 있는 팀원이 소식을 전해온 것이었다.
“알겠다. 상황 지켜보고, 일성파와 접촉하면 연락 바란다.”
심지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더불어 봉고차 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두 말은 하지 않았으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고, 긴장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이내 무전기를 통해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
- 상황 발생! 상황 발생! 일성파에서 만남을 거부한 채 곧바로 쳐들어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전기에서는 그의 음성뿐만이 아닌, 우당 탕탕하는 난잡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이들의 욕설이 중간중간 섞여 나왔다.
예정되어있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채, 곧바로 폭력사태로 이어진 모양이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그들을 검거할 수 있는 조건은 충족되었다. 남아 있는 과정은 하나뿐.
“모두 투입!”
심지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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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의 담당자인 심지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인원이 봉고차를 빠져나왔다.
그것은 강민혁을 비롯한 이민재 역시 마찬가지.
“이민재 경장, 나한테 붙으세요.”
강민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을 그를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봉고차 내에 구비되어있던 삼단봉을 건네주며 손짓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심지혁을 비롯한 그의 팀원들은 오랫동안 지금의 상황을 조사하고 준비하며 기다려왔겠지만, 이민재의 경우에는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강민혁이야 오랜 경험이 바탕이 되어있기에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겠지만, 그는 아니었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강민혁 그가 반강제적으로 끌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눈에 봐도 어리바리하고 있는 것이 표정에서 드러났기에 그를 챙긴 것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소대로 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예, 예!”
강민혁은 한 번 더 그의 상태를 확인한 후, 격려와 함께 팀원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봉고차는 나이트클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있었기에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 사건 현장인 나이트클럽에 도착했고, 입구에서부터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벌어진 걸 암시하듯, 그 주위에 모여있는 사람들. 웅성거리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며 기웃거리는 모양새였다.
“경찰입니다. 잠시만 비켜주십시오!”
심지혁이 가장 먼저 나서서 그들에게 소리쳤고, 하나둘 길을 열어주었다.
홍해를 가르듯 길을 터준 그사이를 지나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죽어! 이 새끼야!!”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나이트클럽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선명하게 들어오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 한눈에 보기에도 서른 명은 넘어 보이는 이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손님들 대부분은 싸움이 벌어지기 무섭게 빠져나간 것으로 보였고, 남아 있는 이들은 전부 조직과 연관된 이들일 것으로 유추했다.
그도 그럴 게 남아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흥분하며 싸우고 있었다. 절반은 빠루와 쇠파이프 같은 흉기를, 나머지 절반은 가게의 의자나 물건들을 집어 들며 휘두르고 있었다.
“팀장님, 예상보다 인원이 너무 많습니다.”
“...”
상황이 벌어진 것은 눈으로 확인했고, 출동조차 마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나 많은 인원.
서른 명 역시 적지 않은 인원이었으나, 지금 이곳에 보이는 인원은 대략 오십여 명은 넘어 보였다.
모두 검거해낸다면 그것보다 좋은 상황은 없겠으나, 문제는 검거할 수 있냐의 문제였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검거는커녕 오히려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팀장님!”
팀원들은 심지혁을 향해 재촉하듯 소리쳤다. 어서 빨리 명령을 내려달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의 초조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지금 그의 결정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
‘경험 부족인가.’
강민혁은 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심지혁의 뛰어난 능력 자체는 인정하나, 결국 그가 매번 자신에게 패배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경험의 부족.
그 경험은 연속되는 성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실패와 실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의 강민혁은 겉으로 보기에 성공의 연속을 달리는 듯싶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무수한 실패와 좌절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한 경험에 차이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강민혁과 심지혁의 격차를 벌려놓았다.
지금까지는 심지혁 그가 이 사건의 담당자이자 책임자였기에 군말 없이 따라주었지만, 이제는 손가락 빨고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피해는 가볍지 않았기에.
“모, 모두···.”
심지혁이 결정을 내린 듯 소리치려는 순간.
타아아아앙!!!!
우렁찬 총소리가 나이트클럽 내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그 근원지를 찾기 시작했고.
그 시선 끝에는 강민혁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총을 든 채, 총구는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