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범죄 코디네이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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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강민혁이 오른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아시다시피 이 행위는 단순히 인사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와 손이 스치도록 유도해 기억을 읽어내려는 의도.
그간의 의문을 단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이 틀림없었다.
박동주가 손을 마주 잡는 순간, 그가 혹시 모를 갖추고 있을 능력부터 그를 검거해낼 수 있는 증거까지. 모조리 살펴볼 생각이었으나.
"네, 저는 BDJ대표 박동주라 합니다."
그는 손을 맞잡지 않았다.
그저 들고 있던 커피잔을 살짝 들어 올리며 대답할 뿐.
"..."
강민혁은 어색해진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을 도로 가져오며 눈앞의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무슨 일 있냐는 듯 싱긋 웃어 보이는 박동주.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박동주가 강민혁이 내민 손을 보지 못하고 잡을 수 없던 상황이었던 건 아니었다.
강민혁은 손을 내미는 순간부터 그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고, 그의 시선이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분명 악수를 제안하는 손을 확인했다.
박동주가 왼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일부러 오른손으로 악수를 유도한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볼 수도 없었다.
그는 고의로 악수를 거절했다.
'...'
강민혁에 대한 원한, 복수심, 원망과 같은 감정 때문이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혹여나 그가 강민혁의 능력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이 행동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능력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손길을 피했거나.
단순한 감정으로 인해 손을 맞잡는 걸 피했거나.
강민혁은 그의 표정을 읽어보려 했으나 웃고 있는 그 표정의 이면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띵.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을 알렸다.
박동주가 먼저 자연스럽게 앞장섰고, 강민혁이 그 뒤를 따라 옥상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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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죠? 제 나름 신경 쓴. 우리 회사의 자랑거리 중 하나입니다."
박동주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양손을 활짝 벌리며 이곳을 소개했다.
그가 신경 썼다는 말처럼, 꽤 그럴듯하게 꾸며진 옥상.
시선을 옮기는 장소마다 보이는 것은 푸르른 색감의 나무와 잔디였다. 옥상 자체를 마치 조그만 정원처럼 꾸며놓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조잡하냐. 그건 또 아니었다.
전문 업체를 이용해 꾸며놓은 것이 확실해 보일 정도로 꽤 퀄리티 놓은 공간이 꾸며져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작은 숲속을 이곳에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돈 좀 꽤 들었겠는데요?“
단순히 다른 건물들을 떠올리며 재떨이에 그 주위에 놓인 벤치 정도만 생각했던 터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휴식공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장소죠. 질 좋은 휴식 후, 일의 능률이 증가할 수 있다면 이 정도 투자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박동주는 제 나름의 경영철학인 듯 자부심을 느끼며 대답했다.
- 어? 대표님! 손님 오셨어요?
그때, 옥상에서 휴식 중이었던 두 사람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그들은 대표와도 불편하지 않은 가까운 사이인 듯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 대표님, 저희 잘 쉬었다 갑니다.
-그럼,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박동주 역시 그들을 마치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었고 짧은 순간이었으나, 회사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좋은 대표군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느낀 것을 말한 것이었다.
좋은 대표.
능력이 있는 대표.
친구 같은 대표.
직원들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대표.
하나 같이 전부 그와 어울리는 수식어들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그는 과연 소문대로 능력이 뛰어나며, 다른 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추고 있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전형적인 리더의 인간상을 가진 대표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강민혁 역시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박동주라는 인간 자체를 높게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세심한 배려, 사소한 매너, 경영자로의 능력까지. 과연 겉으로 보이기에는 누구든 먼저 다가가고 싶은 그런 인물이었으나.
‘그의 진짜 이면을 바라본다면 생각이 바뀔 테지.’
그의 정체는 범죄 코디네이터.
범죄를 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 방법과 준비를 도와주는 인물이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성공한 사업가, 유능한 인재였지만, 그 내면엔 사람을 죽이고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다.
“...”
“왜 그러시죠?”
전혀 반대되는 그 모습에 강민혁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인기척을 느낀 듯 물음이 돌아왔다.
“아닙니다.”
“그보다, 용건이 있어서 찾아오신 거겠죠. 여기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박동주는 싱겁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옥상 한편에 자리한 테이블을 가리켰다.
강민혁과 박동주는 그곳에 서로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사님이 저한테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신 거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박동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자신에게 경찰이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듯 물어왔다. 자신의 범죄가 들킬 리 없다는 확신에 가득 찬 행동이었으나, 강민혁은 알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있어.’
박동주 그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눈에 띄게 몸을 벌벌 떨거나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강민혁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는 꼴이었다.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그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면 강민혁이 이 자리에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강민혁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비의 전화가 왔을 때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터.
지금, 이 만남이 자신의 범죄 때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굳이 이 자리에 그가 나올 이유는 없었다.
강민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기는 할 터이나. 그는 생각보다 상상 이상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만남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도 완벽하지는 않다는 뜻이지.’
결국,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박동주 그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점.
자신이 무언가 실수하지는 않았을까. 혹여나 자신을 특정할 만 단서를 남기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이다.
강민혁은 자신만만한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
순간 파르르 떨리는 그의 눈썹.
강민혁은 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이게 뭐죠?”
하지만 그는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강민혁이 건넨 것은 검은 명함.
박동주가 자신을 범죄 코디네이터라 소개하며 범죄자들에게 나눠주었던 바로 그 명함이었다.
강민혁은 그들을 수사하고 검거하며, 당연히 그 명함을 수거했고 가지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그 명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명함입니다.”
“...”
박동주의 물음 아닌 물음에 강민혁이 대답했다. 그 어떤 이름도 번호도 적혀있지 않은 검은색으로 뒤덮인 종이 쪼가리였으나, 강민혁은 이것을 명함으로 특정했다.
명함과 이것의 공통점은 그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뿐이었지만.
그 대답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박동주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강민혁 역시 마찬가지.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는 듯.
명함만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특이한 명함이군요.”
이내 그는 다시금 모른 척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이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나, 섣불리 입을 놀리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긴장과 눈치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누구의 명함인지 궁금하진 않으십니까?”
“...”
이번에는 강민혁이 먼저 질문했다.
소위 말하는 선빵.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기대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그가 긴장했다는 것. 그리고 당황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궁금하진 않으신가 보군요.”
그를 더 몰아세울 수는 있으나, 지금은 이것으로 족했다.
이상 더 간다고 하여도 역효과만 날 뿐. 지금 그를 검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응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제가 다시 가져가죠. 아주 중~요한 증거라서요.”
“...”
“아주 악질 범죄자 놈의 명함입니다. 웃기지 않나요? 범죄자 주제에 명함이라니···.”
강민혁은 명함을 품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와중에도 그에 대한 도발을 잇지 않으며 그의 반응을 확인했다.
굳어 있는 그 표정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이후에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왠지 오늘따라 이곳에 오고 싶더라고요. 제 촉이 좋은 편인데 범죄자가 숨어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혹여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형사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대표님이 있으니 걱정은 없겠군요. 직원들은 든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손을 건네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이후, 건물을 빠져나왔다.
누군가 이 상황을 전부 지켜봤다면, 단순한 수다를 떨고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 만남은 의미가 있었다.
오늘 이곳에 찾아온 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나는 너의 범행을 알고 있다.
너를 의심하고 있으며, 지켜보고 있다.
더는 활개 치고 다니지 말라.
그가 어떻게 받아드렸을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압축적인 경고를 그에게 건넨 것이다.
‘뭔가 변화가 있겠지.’
그의 기억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그래도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검은 명함을 보여준 것은 단순히 압박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네놈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었으며, 그로 인한 그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위험할 테지.”
그의 정체는 범죄 코디네이터였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남자를 가만두지는 않을 터. 어떤 식으로든 입막음을 위해 행동할 것이고.
그것 중 가장 안전한 것은 제거하는 것. 결국, 살해시도로 이어질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위험.
“물론, 모를 리는 없지만.”
예정에 없던 위험에 처할 것은 분명하나 걱정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반드시 눈치챌 것이 확실하니까.
박동주가 나를 목표로 삼고 행동에 옮긴다면, 그것은 분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사건임일 것이 분명했다.
미래를 알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알고 있는 이상,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다.
무언가 변화가 생긴다면 그전에 눈치채고 행동할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상황을 유도한 것이기도 했다.
박동주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그 목표가 내가 된다면 쉽게 당하지는 않을 터. 더욱이 그를 검거해 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나를 처리하기 전까지 행동을 조심할 것이며, 쉽사리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하지 못할 터이니 그것만으로 오늘의 만남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