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톱스타 살인사건 (5)>
#
몸을 숙여 속삭인 후, 자리 자리로 돌아왔다. 복잡미묘한 표정의 그와 눈을 마주쳤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
말문이 막힌 것인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인지 김용석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범죄를 전부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건네온 한마디. 그것은 그를 당황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꺼낸 말은 고작 이 정도.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었으나 다른 선택이 없었겠지.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그러시겠죠. 하지만 이 자리가 끝날 때쯤엔 생각이 조금 바뀌실 겁니다.”
보란 듯 피식 웃으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그, 그게 무슨···.”
김용석이 당황하며 소리치려 했지만, 그의 말을 막아서며 입을 열었다.
“더는 무례한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여기 놀러 온 건 아니라서요.”
“...뭐?”
“저는 지금 사건에 관한 심문을 위해 찾아온 겁니다. 법원의 허가를 맡은 정식 절차이니 순조롭게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당해하는 그의 표정을 무시한 채, 품속에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
그는 그것을 확인하며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읽는다고 하여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그는 한결 수그러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김용석과 만남을 가지전 꽤 많은 준비를 해왔다. 준비랄 것도 없었지만, 이러한 허가증과 같은 정식 서류. 그리고 그의 성격을 파악해 온 것이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일지 모르겠으나, 겉모습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의 성격을 예측하기엔 어려웠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그였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온순하고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으나, 과연 그 실체는 달랐다. 팬들 사이에서도 그의 거만하고 오만한 성격은 유명한 편이었다.
강소희 기억을 통해서도 그의 성격을 이미 파악해본바.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심문을 순순히 따라주지 않을 것은 예측 가능한 범위였기에 처음부터 강하게 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의 범죄사실을 미리 알려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변호사를 불러드릴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원하십니까?”
연예인이기에 특별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 기본적으로 국민이라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혜택.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알렸다.
단순한 호의가 아닌, 법적으로 꼭 고지해야한 하는 사항이었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는 그 권리를 거절했다.
“알겠습니다.”
이게 바로 그에게 범죄사실을 미리 알려준 이유였다.
그는 연예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앞서 말했듯 이미지가 꽤 중요한 직업군이었다.
이미 그가 이곳에 들어와 있는 이상 마약쟁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순 없겠지만. 그보다 살인자라는 이미지는 벗어나고 싶어질 게 분명했다.
마약쟁이와 살인자.
뭐, 내가 보기엔 둘 다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처지에선 꽤 큰 차이가 있었다.
‘복귀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
두 범죄 모두 감방살이를 피할 순 없겠지만. 그 이후, 연예계 복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마약에 관한 범죄는 다른 사람 주는 피해보다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리소문없이 시간이 지난 후 연예계에 복귀하는 일이 종종 보였다.
반면, 살인자 그것도 동료 연예인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연예계 복귀는 고사하고 사회적 매장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 역시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리 없었다.
‘남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이었지.’
조사 결과, 그는 더러운 성질머리뿐만 아니라 남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이었다.
가장 가까운 매니저나 가족들조차 믿지 못한다는 정보는 굳이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지 않아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였다.
그랬기에 자신의 변호사 역시 믿지 못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작은 소문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부풀려진다는 것을 그가 더 잘 알고 있을 터. 자신이 살인죄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할 것은 당연했다.
변호사가 심문 과정에 함께 한다면 귀찮아질 것은 당연했기에 피하고 싶었고,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김용석은 변호사의 조력을 거절함과 동시에 노트북을 책상 위에 꺼내 들며 그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김용석 씨. 당신은 이신아 씨와 연인관계였죠?”
“...!”
이제 막 시작했을 뿐 이것만.
그는 첫 번째 질문부터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치켜뜨며 쳐다보았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절차이니. 빨리 인정하시고 넘어가죠.”
물론, 당연히 중요한 절차였다.
그가 피해자인 이신아와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이 사건의 판도가 바뀔 정도의 정보였지만, 아무것도 아닌 듯 귀찮은 말투로 설명했다.
변호인이 옆에 있었다면 그것을 눈치챘을 테지만. 그는 이미 한차례 당황하고 있었다.
연예 기자들조차 파악하지 못한 사실을 눈앞의 형사가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맞으시죠?”
“예···. 예.”
귀찮은 듯 재촉하는 질문에 그는 얼떨결에 대답을 내뱉었다.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재빨리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강소희 씨는 이신아 씨의 집에서 저녁 9시쯤에 떠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후 남은 사람은 누구죠?”
“...”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고, 그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강소희가 떠난 것은 저녁 9시쯤. 매니저가 집에 도착해 죽은 이신아를 발견한 건 저녁 11시쯤이었으니 그 두 시간 안에 사건이 벌어졌다.
이신아의 집엔 총 네 명의 동료들이 찾아왔었고, 이신아를 제외하면 김용석을 포함한 세 명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여기서 그의 대답에 따라 용의자의 범위를 좁힐 수 있는 것이었다.
“저희 세 명 모두 남아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땐 모두 함께였고요.”
“그게 몇 시쯤이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가 기억이 안 날 리는 없다. 분명히 대답을 피하는 것이었지만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 역시 법적으로 인정하는 기본권이었으니.
하지만, 이미 이에 대한 정보는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김용석을 만나러 오기 전 다른 이들의 심문이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그들의 기억을 대조하며 상황 파악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김용석의 대답 여부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수용소에 갇혀 있었으니 이러한 사실은 꿈에도 모를 터.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 그러니까 용의자를 좁히지 않는 선에만 대답한 후, 대답을 거부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거짓을 말한 것은 없었다.
그의 말대로 강소희가 돌아간 후, 김용석을 포함한 세 명은 자리를 함께했다.
물론,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마약에 심하게 찌들어 있었기 때문. 비교적 정신이 멀쩡했던 강소희만이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나머지 동료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마약에 취해있던 그들은 진짜로 당시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기억을 읽는 능력을 통해 당시를 엿볼 수 있었다.
취해 잠을 자고 있던 그들을 깨운 사람은 김용석 그였고, 일어나지 못하는 그들을 억지로 끌고 데리고 나간 사람 역시 그였다.
“김용석 씨 사건 당일 당신도 다른 동료들과 같은 종류, 같은 양의 약을 투약했나요?”
그리고 질문이 이어졌다.
기억을 통해 확인한바.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해 훨씬 멀쩡했다.
아마도 범행의 의도를 가지고 남들 몰래 조절했거나 투약하지 않았을 터.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어진 질문이었다.
“...예.”
그는 잠시 멈칫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 대답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예상컨대, 그는 시작부터 범행의 의도가 있었고 남들의 눈을 피해 투약을 조절했을 것이다.
환각 파티 속 홀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며 때를 기다렸고,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 범행을 저질렀다.
그 후, 매니저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며 급하게 동료들을 데리고 사라진 것으로 파악했다. 범행을 저린 후 혼자 사라지게 된다면 의심당할 것을 염두에 둔 행동일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타이핑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그는 마약에 관한 범죄는 인정하되, 살인에 대한 범죄는 피해가려고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이 범죄를 실행하는 데 있어 조력한 사람이 있습니까?”
다시 한번 그와 시선을 마주치며 물었다.
어찌 보면 다소 의아한 질문. 마약 사건에서 조력자를 유무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마약을 투약하고 취해서 노는데 조력자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약을 구해주는 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는 조력자라기보단 판매상 또는 공급상 정도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
그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고, 재차 질문을 달리했다.
“범행을 행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준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범죄계획을 짜준다거나?”
“...!”
질문이 이어지기 무섭게 그의 표정이 한 번 더 경악으로 물들었다.
질문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비수가 꽂히는 기분일 터. 어찌 보면 당연했다. 기억을 읽어냄으로써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을 쏟아내는 것이었으니.
“...”
“이번에도 묵비권입니까?”
그는 이번만큼은 부정조차 하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며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새를 보여줄 뿐. 침묵을 유지했다.
“...”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조심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경계하는 눈빛. 마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탐색하는듯한 눈빛이었다.
“전부···. 알고 있는 겁니까?”
“...무엇을 말이죠?”
“...”
그는 한번 떠보듯 물어왔고, 은연중 모르는 척 대답했지만 더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입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물어왔지만, 그의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섣불리 입을 열었다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게 되는 것을 걱정한 것일 터.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다.
대충 상황 파악을 하는 정도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미리 준비해온 휴대용 프린터를 꺼내 작성한 자료를 두 부 인쇄했다.
“읽어보시죠.”
그리고 김용석에게 그것을 건네며 내용을 확인시켰다.
“...”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불만은 없는 것으로 파악.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에게 손을 건넸다.
“지장 찍으시죠.”
이 내용이 그가 한 말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절차였다. 위조할 수 없도록 종이를 겹쳐 꽤 많은 지장을 찍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기억을 읽어내는 건 덤.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이 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것은 증거를 확보하는 것뿐.
사건을 마무리할 일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