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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읽는 환생경찰-84화 (84/124)

84화. <신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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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 안의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럼 이 물건은 당신과 전혀 상관없겠네요.”

강민혁은 그 안에 들어있던 조그만 USB 하나를 집어 들었고, 당황한 듯 굳어버린 신명호를 향해 질문했다.

“그···. 그건···.”

신명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고, 강민혁은 조소를 날리며 그 USB를 미리 준비한 비닐 팩에 보관했다. 그는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고, 입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와 상관없는···.”

“그건 확인해보면 알 수 있겠죠.”

이내 신명호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지만, 강민혁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그의 말을 끊으며 그것을 재킷 호주머니 안쪽에 집어넣었다.

“이 방에서 찾을만한 게 더는 없어 보이는데. 비켜주시겠습니까?”

“...”

강민혁은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방안을 빠져나가려 했으나, 길을 막은 채 서 있던 그는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금고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어왔다. 나름대로 존대를 해주던 말투에서 완전히 반말로 태도가 뒤바뀌었지만, 강민혁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황당하겠지. 완벽한 안전장치라 생각했을 테니.’

강민혁은 그가 느끼는 황당함과 허탈함을 그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 기억을 읽음으로써 살펴보았던 그가 느끼는 신뢰. 금고에 대한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물론 그의 믿음엔 지금과 같은 압수수색과정이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전재가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이 금고는 자신 외에 그 누구도 열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림 뒤에 숨겨둔 이 금고가 들킨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비밀번호를 모른다며 발뺌하면 그만이었고 무엇보다 이 금고는 세 번 이상 비밀번호가 틀리면 그대로 잠겨버려 영원히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다.

훗날 그의 범행이 들통난 것을 보면, 결국 물리적인 힘으로 열리지 않는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으나, 고작 그 정도에 그는 안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우연이죠. 뭐. 비밀번호가 병원 설립연도라니, 누가 주인인 줄은 몰라도 단순하네요.”

하지만 강민혁은 단번에 금고의 비밀번호를 풀어버렸고, 어디까지나 단순한 유추가 아닌 그의 기억을 통해 살펴본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 그게 말이 되는···!”

강민혁은 우연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지만. 그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소리를 버럭 지르려던 그가 이내 밖의 눈치를 살피며 언성을 낮췄다.

“그럼 제가 어떻게 이 비밀번호를 알았을까요. 당신 기억이라도 읽었을까요? 아, 당신은 이 금고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했었죠.”

강민혁은 도발하며 능청을 피웠지만, 그는 부들거릴 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어떤 의심을 한다 해도 이 USB는 정식 압수수색을 통해 얻어낸 증거였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럼, 이만···.”

이후 강민혁이 비켜달라는 의미로 눈짓을 줬지만, 신명호는 여전히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비킬 생각을 않았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입술만 물어뜯을 뿐이었고, 강민혁은 그의 반응을 살피며 속으로 혀를 찼다.

‘반응도 참 한결같구만.’

강민혁은 굳이 기억을 읽지 않아도 그가 고민하는 것이 무언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랜 형사 생활을 통한 경험이었으며, 궁지에 몰린 범인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태도였다.

‘좋게좋게 넘어갈 법도 하건만···.’

그리고 그 예상을 끝마치기도 전에, 그의 행동이 이어졌다. 신명호가 문을 잠금과 동시에 주먹을 움켜쥐며 강민혁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흡.”

하지만 전부 예상하던바.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던 강민혁은 주먹이 올라오는 순간, 머리를 뒤로 젖히며 그것을 피해냈다.

“이런다고 해결될 일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신명호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고, 중심이 쏠린 그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강민혁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으나, 그의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젠장.”

쓰러진 신명호의 시선이 책상 서랍 쪽을 향했고,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에서 의료용 메스를 꺼내 들었다.

“그 USB···. 내놔.”

그리고 위협하듯 메스를 겨누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그는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 듯했고, 주먹을 휘두른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후···.”

강민혁은 그러한 과정들을 전부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행위부터 지금 자신에게 메스를 겨누고 있는 상황까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밖에 제 동료도 있고, 당신 직원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만하시죠.”

강민혁은 그의 행동에 위협을 받기는커녕, 귀찮음을 느낄 뿐이었다. 여기서 이러한 소중한 증거를 뺏길 일도 없겠지만,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밖에는 이민재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의 직원들 그리고 손님들까지 있었으니 그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행동이 전혀 소용없다는 것을 그 역시 모르지 않을 터.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 USB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닥치고, 그 USB 내놔. 다치기 싫으면.”

그는 자신의 의사 생명, 그것을 넘어 앞으로의 미래가 담긴 그 USB만이라도 어떻게 해보려는 작정인 듯싶었다. 다시 한번 손에 쥔 메스를 휘두르며 위협해 오기 시작했다.

-가, 강 팀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문밖에서는 소란을 들은 듯 손잡이를 돌리며 철컹거리는 소리와 이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명호는 본능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며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거 빨리 안내놔!”

그리고 이내 소리치며 강민혁을 향해 달려들었고, 위협하던 메스를 이용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퍽!

동시에 방 안에 무언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헉···. 컥···. 컥···.”

그리고 이어지는 땡그랑 소리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캑캑거리는 소리. 이후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악은 끝났습니까?”

강민혁은 아무 일도 없듯 평온한 상태로 물었다. 신명호가 달려드는 순간, 왼손으로 메스를 든 그의 손을 꺾은 뒤 오른손으로 멱살을 누르며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꼼작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 제압당했다.

- 강 팀장님!

문밖에서 역시 그 소리를 들은 듯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지고 이민재의 목청이 더욱 커졌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명호 씨, 당신을 공무집행방해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 긴급체포합니다.”

강민혁은 그 상태 그대로 허리춤의 수갑을 꺼내 그를 체포했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고!!!”

신명호는 그 순간에도 발버둥을 치며 안간힘을 썼지만, 강민혁의 압도적인 악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철컹. 철컹.

그때 병원직원이 열쇠를 가져온 듯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열리며 이민재와 병원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강 팀장님! 괜찬···.”

이민재는 다급하게 들어와 소리치는 도중, 눈앞의 상황을 확인했고, 말문이 막혔다. 병원의 직원들 역시 신명호의 손에 수갑을 확인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민재는 어떻게 된 건지 유추조차 할 수 없는 듯 눈을 껌벅거리며 물어왔다. 모두의 시선의 강민혁에게 집중됐고.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사건, 해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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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증거인 USB를 확보한 뒤, 사건은 매우 순조롭게 흘러갔다.

병원의 수술실에서 일어난 범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젯거리였지만, 그 모든 것은 신명호의 USB 하나로 해결되었다.

“그래서 그 USB에 든 게 뭐였어요?”

노희재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며 물어왔고, 그에 반응한 사람은 이민재였다.

“음, 증거였어요. 증거.”

신명호의 USB에 담긴 것은 쉽게 말해, 자신의 모든 범행이 아주 세세하게 적힌 증거와 자료들이었다.

“네? 그걸 왜 범인이···.”

노희재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고, 그런 반응은 당연했다.

신명호 그는 어째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그러한 자료를 모아두었고, 보관하였는가.

말 그대로 자살행위와 같은 그런 짓을 어째서 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민재는 그에 대한 대답은 생각해보지 못한 듯 강민혁을 쳐다보았다.

이내 노희재의 시선까지 이어지자, 그의 대답이 이어졌다.

“훗날, 영업사원을 협박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로 생각됩니다. 이번과 같은 폭로에 대한 입막음이나 만약의 상황에 범죄 사실이 든 자료를 보여줌으로써 협박하려 한 것이겠죠.”

신명호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기록해놓은 이유는 결국, 또 다른 협박을 위해서였다. 입막음 또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보험과 같은 자료였다.

“음, 오히려 준비가 철저해서 꼬리가 잡힌 거군요.”

노희재의 말처럼 오히려 범행이 들키지 않기 위해 준비한 자료가 자신을 덮쳐온 것이었다.

절대 이 자료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거란 확신을 두고 행한 행동이었겠지만, 그것은 오만에 불과했다.

자신보다 똑똑한 이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결국 자신의 범행을 증명해준 꼴이었다.

“제 발에 제가 넘어진 거죠.”

강민혁은 한심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돌리며 연신 타자기를 두드렸다.

이번에 해결된 것은 의사의 갑질에 의한 영업사원의 대리수술에 관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이 맡았던 사건은 청장의 딸인 그녀가 피해자인 사건이었고, 그 사건 간의 연관 관계를 증명해 내야 했다.

다행히 신명호의 USB엔 매우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었기에, 그것을 증명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강민혁은 그것을 위해 보고서를 상세히 꾸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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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불법 대리수술에 관한 논란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강민혁 이 사건과 심지현의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과 같이, 수많은 연관된 사건들이 이를 계기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강민혁은 그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 것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연관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와도 같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으로 일어났다.

띠리리링.

사무실의 전화가 울리기 무섭게 강민혁이 수화기를 들었고,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경감. 잠시, 청장실로 올라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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