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80화 (80/124)

80화. <부탁 (2)>

#

강민혁은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고 있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였다.

“청장의 부탁이라···. 쯧”

이내 강민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턱을 매만졌다. 그는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복잡미묘한 표정 끝에 혀를 차며 머리를 긁적였다.

‘신경이 쓰이긴 하네.’

강민혁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번에 맡은 사건. 무엇보다 그 사건을 부탁한 대상 때문이었다.

경찰청장이 직접 자신에게 부탁한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의 딸이었고, 그 사실은 은근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민혁은 자신이 지금껏 맡아왔던 여타 다른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하려 노력했으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경찰청장이라는 지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인물이라는 그 사실만으로 느껴지는 중압감이었다.

그가 직접, 그것도 일반 절차가 아닌 사석에서 따로 부탁해온 사건이었다. 불법적인 부탁이나 개인의 사리 사리사욕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기에 그가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사건을 해결하면···.”

경찰청장으로서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간곡한 부탁. 이 사건을 수월하게 해결하게 된다면, 강민혁은 자신이 얻게 될 이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신뢰를 얻게 되겠지.”

물질적, 금전적 이득이 아닌 고작 신뢰.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어떻게 보면 하찮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러한 것이었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히 여길 것은 아니었다.

‘신뢰’

고작 이 두 글자가 가지는 의미는 그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부하직원인 이민재가 그 대상이라면, 강민혁 자신에게 주는 존경심과 같은 의미가 될 것이고. 동료인 노희재나 유진호가 그 대상이라면 믿을 수 있는 동료, 의지할 수 있는 동료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신뢰를 주는 대상이 청장, 조직의 우두머리인 그가 된다면 의미는 조금 색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과거 내가 가지지 못했던···.’

연줄.

심재준이 강민혁에게 보내는 신뢰란 결국, 소위 말하는 ‘빽’이라는 뒷배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쩝. 하긴, 이제 신경 쓸 때도 됐지···.”

강민혁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과거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승진하지 못했던 이유. 연줄과 뒷배경과 같은 것들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역시 크게 한몫했다.

지금이야 크고 작은 사건들을 연속으로 해결하며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승진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다.

현재 강민혁의 계급은 경감. 아직 고위 간부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으나, 적당히 높은 계급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올라가야 할 것은 분명했고, 더는 실력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더 높은 계급,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 위에서 끌어주는 이가 없어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비단, 경찰 조직뿐만이 아니었다.

인맥을 중요시하는 사회 특성상 그 어떤 조직이라 한들, 위로 올라갈수록 ‘라인’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연줄, 혈통, 계보, 계파 등 그 의미가 무엇이든 결국 ‘라인’을 형성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은 간단했다.

‘라인을 형성한 이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준다.’

조직 내, 같은 라인을 형성한 이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며 이익을 도모한다. 이러한 행위를 좋게만 볼 수는 없었지만, 다르게 본다면 어쩔 수 없는 현상임은 분명하였다.

조직의 위로 올라갈수록, 계급이 높아질수록 그 자리는 한정적이었다. 피라미드형 계급 구조였기에 높은 곳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당연했고,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경쟁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라인.

개인적인 친분부터 해서 평소의 생각, 정치적 행보, 성향, 성격 등 그게 무엇이든 뜻이 맞는 이들끼리 모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한 조직에 라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라인을 잘 타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조직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라인이 있는가 하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라인 역시 존재했다.

그러한 상황은 어떤 상황에 의해 시시각각 바뀌었고, 그중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그 라인의 우두머리가 누구인가였다.

‘심재준···. 라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지···.’

경찰청장인 그는 현재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자, 지금 강민혁을 가장 잘 끌어줄 수 있는 위치임은 틀림없었다.

그런 그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었고, 강민혁에게 입장에선 기회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껏 나름의 친밀함은 있었던 그였으나, 아직 라인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존재했다. 그간의 과정들이 쌓여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이 사건은 일종의 테스트와도 같았다.

지금 이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해 낸다면, 심재준은 그를 완전한 자신의 편으로 인식하며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반면···.’

그만큼의 위험부담 또한 존재했다.

강민혁이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재준에게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더욱 강렬했고, 강민혁이 해결하지 못했을 경우 그가 느낄 실망감은 더욱 커질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쌓아 올린 그와의 관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조직 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의 눈 밖에 났을 경우 일어나게 될 상황들. 강민혁이 헤쳐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겠으나,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서 갈 필요는 없었다.

‘어찌 됐든 리스크가 존재하는 사건임은 분명해.’

강민혁은 사건과 관계없이 이러한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고, 약간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무실에 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컴퓨터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찾았다···.”

모니터에 뜬 기사 한 줄을 확인하며 일어섰다.

#

“너무 일찍 도착했나?”

시내의 한 카페. 강민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가 싶더니, 이내 시간을 확인하며 빈자리에 앉았다.

누군가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듯하였으나 상대방이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약속 시각까지는 아직 30여 분이 남은 상태였고, 강민혁은 그동안 사건을 다시 되짚어볼 요량인 듯 가방에서 파일철을 꺼내 들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여대생 MT 살인사건···.”

심재준의 딸이자, 심지혁의 누나인 그녀가 피해자인 바로 그 사건이었다.

강민혁은 전체적인 내용을 훑어본 뒤, 곧바로 사건 개요가 적힌 내용으로 눈을 돌렸다. 사건 당시 피해자인 그녀는 대학생이었고, MT라는 명목하에 30여 명의 학생과 함께 바닷가의 펜션으로 여행을 간 상황이었다.

MT는 1박 2일이 계획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일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대학생 MT답게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그러한 일정이었다.

오후 5시쯤. 펜션에 도착한 그들은 짐을 풀어놓은 뒤, 곧바로 바다로 이동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물놀이 후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펜션에 오기 전, 미리 장을 봐온 그들은 각종 고기를 구웠고, 동시에 상자째로 구매해온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의 시간이 오후 7시쯤. 이른 시간에 시작된 술자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녁 식사가 끝난 이후에도 펜션 안으로 자리를 이동하며 각종 게임과 함께 술을 마셨다.

당시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인 그녀 역시 그때까지 그들과 술자리를 함께한 것이 확인되었다.

펜션에서의 술자리는 끝없이 이어졌고, 새벽 2~3시쯤. 피해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과대의 증언이 있었다.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펜션을 나선 것이 살아있는 그녀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

언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는지, 기억하는 이는 없었고 대부분이 술에 취해 그대로 뻗어버린 것으로 예상하였다.

다음 날 아침, 과대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 가장 먼저 학생들 인원파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 없는 것을 확인. 그리고 그것이 피해자인 그녀라는 것을 깨닫는다.

과대는 지난밤의 기억 중, 그녀가 바람을 쐰다며 펜션을 나섰던 것을 떠올렸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닷가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바닷가 근처에서 그녀가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숨이 붙어있던 것이 최초발견자인 과대를 통해 확인되었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게 된다.

당시 수사관들은 그녀의 몸에 잔상처가 많다는 점, 머리에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큰 외상이 발견되었다는 점에 집중하며 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이끌어갔다.

피해자의 사망 추정시간은 그녀가 사라진 오전 3시 이후부터, 발견된 오전 7시 사이. 당시 학생들의 기억을 통해 그 시간 동안 펜션에 없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추려냈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취했던 상태였고, 상당수의 인원이 몰려있던 점으로 보아 그 기억들을 온전히 믿기는 힘들었다.

또한, 당시 펜션에 없었다는 이유로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 대부분이 다른 이와 함께였기에 서로 알리바이를 입증해주는 상황이었다.

특별히 어떠한 증거나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사건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발생한 거였지.”

강민혁은 사건 파일을 모두 읽어본 후, 조용히 혼잣말을 읊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이후 몇십 년이 지나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과거 심재준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 인생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력했다. 그 스스로 미제사건팀을 제작하고 팀을 키워내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이 사건은 그가 키워낸 미제사건팀이 아닌, 의외의 방법으로 해결된다.

한 남자의 자백을 비롯한 폭로.

심재준이 경찰 생활을 마무리할 때쯤. 누군가의 폭로로 인해 이 사건이 재조명되고, 결국 해결되기에 이른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결된 사건이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숙원을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사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조사를 받는 그 남자의 폭로가 알고 보니 그때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부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지속해서 폭로하며 공론화시키려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민혁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낸 것이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조그맣게 실린 폭로 기사였고, 그와 만남을 주선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페의 문을 열며 그가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