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함정수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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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제가 먼저 씻어도 되죠?”
“...네?”
강민혁이 음료를 입에 가져다 데려는 순간, 멈칫하며 물었다. 음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반문했고.
“그럼, 제가 먼저 씻겠습니다.”
강민혁은 그대로 음료를 들이켜며 화장실로 들어왔다. 화장실에 들어온 순간, 입에 머금고 있던 액체들을 전부 뱉어내며 내용물을 전부 버려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내용물을 전부 비워낸 음료 캔 안쪽을 살펴보며 바깥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가 직접 음료를 마시는 건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그녀는 강민혁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음료를 머금고 있다 뱉었을 거라는 상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음료 맛있네요.”
강민혁은 이내 다시 나와 빈 음료 캔을 내려놓은 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충 씻은 후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왜요?”
강민혁은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웠고, 무언가 관찰이라도 하는듯한 그녀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아, 아니요···.”
강민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 그녀였으나 무엇을 관찰하는 행동인지는 모르지 않았다. 음료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을 게 분명했고, 음료를 마신 그에게 약효가 퍼져나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암, 왜 이렇게 졸리지···. 그보다 안 씻으세요?”
“아뇨, 씻어야죠.”
강민혁은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하품하며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악.
침대 위에 홀로 남은 강민혁의 시선은 TV를 향하고 있었으나, 온 신경은 그녀가 들어간 화장실로 향해 있었다.
샤워하는듯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나, 그녀는 씻고 있지 않을 터. 굳이 범행 과정에 필요하지 않은 샤워함으로써 자신을 특정할만한 증거를 남길 필요는 없었다.
‘껍데기 살인사건’에서 역시 머리카락이나 체모와 같은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다.
‘...잠들길 기다리고 있겠지.’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그저 샤워기만 틀어놓았을 뿐. 강민혁이 약에 취해 잠이 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범행을 시작할 것이다.
그녀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강민혁은 그대로 침대 위에서 눈을 감으며 잠이 든 척 연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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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장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로 유추되는 인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감은 채, 귀를 열고 있는 것뿐. 상황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움직임이 없었다.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에 불안감이 피어올랐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기억 속에서 살펴본 그녀는 어디까지나 미끼 역할일 뿐. 직접 행동 하는 이는 따로 존재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잠든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저기요. 저기요.”
이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완전히 잠에든 것인지 확인하려는 행동으로 보였고, 전혀 미동도 하지 않자, 그 행동을 멈추었다.
“...”
그리고 다시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전부 마신 걸 확인했어요.”
“...”
“네, 잠든 거 확실해요.”
“...”
“네, 네.”
그녀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듯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확실히 들려왔다.
모텔이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는 내용부터, CCTV가 고장 났다는 내용. 음료를 마신 것과 잠이 들었다는 사실까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네···. 제대로 걸려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이곳의 주소와 방의 호수까지 주고받은 그녀는 그대로 통화를 마쳤다.
“불쌍해라···. 너는 함정에 걸린 거야. 멍청하게도.”
그리고 그녀의 비릿한 웃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듯했다.
‘함정? 재밌네.’
그들은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내가 걸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 모텔 전체가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 그 자체였고, 그 함정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누구 함정이 더 강력한가 한번 해 보자고.’
똑. 똑. 똑.
다시금 의미 없는 시간이 흘러갔고, 이내 누군가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동료들로 유추되는 이들이 방문을 두드렸고, 곧바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서들 들어와요.”
“그래, 상품은 어때?”
“꿈에도 모르고 자고 있죠. 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익숙한 듯, 그들의 대화는 어색함이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그들이 곧바로 다가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음, 확실하네. 이번에 미진이 몫 좀 더 챙겨줄게. 잘했어.”
그리고 느껴지는 손길. 앞선 통화를 통해 들었던 목소리의 남성이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듯했다.
“흥, 당연하죠. 빨리 작업이나 시작해요.”
지금껏 같이 있던 그녀의 이름이 미진인 듯,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그를 재촉했다.
“가만있어봐라. 내 알아서 할 테니. 수진이랑 구경이나 해.”
“알았어요. 알았어. 누가 돌팔이 아니랄까 봐 더럽게 뜸 들이네.”
“그보다 여기 안전한 건 확실해?”
다시 한번 불평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후,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이름이 수진인 듯했고, 이 모텔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었다.
“응, 말했잖아. CCTV도 고장이고,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어제 재오픈했다는데. 어떤 멍청한 놈인지는 몰라도 속아서 산 거겠지.”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들은 계속해서 CCTV에 집착하며 반복적으로 확인했고, 미진이 그것을 다시 한번 대답하며 확실히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것일 뿐. 그 말이 진실은 아니었다. 그녀가 CCTV 작동 여부를 확인할 방도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모두 내가 지어낸 거짓이었고, CCTV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모든 증거를 담아내고 있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이번 작업만 끝나면 여길 뜰 거니까.”
그때, 돌팔이라 불린 남성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가 이 그룹의 행동대장이자 리더격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였고. 그의 말에 두 사람이 반응했다.
“우리 다른 곳으로 가요?”
“나도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들 역시 처음 듣는 소식인 듯 반문했고, 시큰둥한 남성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이었어? 아마, 이번 작업하고 나면 모르긴 몰라도 난리가 날거야. 이번 작업도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운이 좋았던 거지.”
“하긴 그렇네.”
과연,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미 앞선 사건으로 인해 떠들썩해진 상황임에는 분명했고, 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다면 더 큰 논란이 될 터. 사건이 커지면 커질수록, 널리 알려지면 알리질 수록 그들이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보다 저번 작업, 진짜 안들 켰던데? 단서 하나 못 찾았고 뉴스에 나온 거 봤어?”
다시 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가 말하는 저번 작업은, 껍데기 살인을 말하는 듯했다.
대범하게 범행을 저지르고도 증거를 남기지 않은 범죄.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 그분, 계획 덕분이지.”
그리고 남성의 대답이 돌아옴과 동시에 귀를 의심했다.
‘그분?’
누군가의 계획에 따라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범죄를 계획해주는 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은 무슨. 근데 그 사람 얼굴도 본 적 없고, 믿을 만해?”
“네가 안 믿으면 어찌할 건데. 너는 그냥 닥치고 내 말이나 따르면 돼. 그분 실력은 증명된 거나 다름없잖아?”
“참나.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따르는 거야?”
“알지 당연히, 뭐라 그랬더라···. 범죄···. 컨설턴트?”
미진의 물음에 남성의 대답이 이어졌고, 설마 했던 단어가 결국 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박동주···. 또 너였냐?’
범죄 컨설턴트, 그러한 독특한 명칭을 쓰는 이는 내가 알리로 단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박동주 바로 그였고, 이번 사건에서 역시 그가 연관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범죄···. 뭐? 그게 뭔데?”
“아 씨, 나도 몰라. 여기 와서 작업이나 도와줘.”
이내 그들은 작업을 시작하려는 듯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의 작업에 필요한 연장을 꺼내는 듯 부스럭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작업하게? 저번처럼 화장실로 안 가고?”
그때, 수진이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대에서 바로 작업을 시작하려 하는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긴 질문이었다.
“응, 저번에 그놈 옮기다 허리만 삐끗했어. 어차피 그렇게 놓아둘 거면 여기서 해도 상관없잖아? 화장실은 좁아서 불편하기도 하고.”
돌팔이라 불린 남성의 대답이 이어졌고, 그는 이 침대 위에서 바로, 그들이 말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돼? 그분 생각도 같아?”
수진의 질문이 한 번 더 이어졌고, 그의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그분은 이번 건은 모르지. 갑작스럽게 생긴 일정인데. 왜 겁나?”
“아니, 뭐.”
“나만 믿어. 저번하고 다를 건 없다고.”
“쩝.”
수진은 그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으나, 결국 그대로 작업을 시작하려는 듯했다.
‘...’
연장을 뒤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주저 없이 느껴지는 감촉. 자는 척을 하는 내 몸에 무언가 닿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번에는 그림도 그리는 거야?”
그리고 그 상황을 구경하고 있는 듯, 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과 몸에 느껴지는 감촉을 유추해볼 때, 그는 매직과 같은 것을 이용해 내 몸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 저번에 밑그림 없이 그냥 했다가 제대로 작업 못 한 게 몇 개 있어서.”
“아~그렇게 하면 좀 편해? 몇 개쯤은 상관없지 않아?”
“그 몇 개가 얼만지 알면, 네가 날 죽이려 들걸?”
그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내 몸에 그림을 그렸댔고, 그것이 그들이 지금 작업하려는 밑그림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 미진이 너는 피 튀길 거니까 좀 떨어져. 수진이는 메스 좀 꺼내주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듯 그가 입을 열었다. 작업을 위한 연장을 꺼내는 듯 쇠붙이를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리고 집중하는 듯 더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의 날카로운 메스가 피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어, 뭐, 뭐야?”
눈을 뜨며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