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강 팀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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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두를까···.’
강민혁은 회식 자리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이유는 역시나 ‘비부도 살인사건’을 맡은 수사관을 만나기 위해서.
‘이미 비부도 살인사건은 마무리된 듯하지만.’
애초에 범인이며 사건의 진상까지 전부 밝혀낸 이후였고, 수사관이라 해봤자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마무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기에 사건 자체는 빠르게 해결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언급된 범죄 코디네이터의 존재. 그가 바로 사회 기업가 박동식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아차렸는지 모르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누군가의 개입. 아마도 박동식의 개입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기에, 이를 모른 척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만약 박동식이 정말 이 사건에 개입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입막음시킨 것이라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 가늠되지 않았다.
경찰 내부, 그것도 자신을 수사하는 수사관을 찾아내 수사에 개입한다. 어지간해서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의 상황임은 분명했다.
단지 수사관 한 명의 입막음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보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을 그 위의 상관. 혹은 더 위의 상관까지. 그들에게 모두 자신의 영향력을 끼쳤다는 이야기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단순한 기업가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단순한 기업가 따위는 아니지만···.’
거물급의 뒷배 그리고 막대한 돈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
물론, 이 정도 상황을 파악하는 것 역시 강민혁 그가 비슷한 경험을 겪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분노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율촌 오거리사건 당시, 강민혁은 이와 비슷한 상황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형사과장이었던 박광철 역시 마찬가지.
그 말은 즉, 부장급 이상급의 권력이 개입되어있다는 의미였으며. 지금의 강민혁으로선 그 정도 권력과 맞서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그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기에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확신한 정보와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승부를 보기 어려웠다.
‘생각보다 큰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당연하게도 강민혁이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 이곳에 온 것이었고, 발걸음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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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떻게 오셨습니까?”
강민혁이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무섭게, 앳돼 보이는 청년이 그를 가로막았다.
근무복을 입고 있는 그의 어깨에는 봉우리 한 개. 의경이라는 의미였고, 늦은 저녁 경찰청으로 들어오는 낯선 이를 막아선 것이었다.
“...”
강민혁은 말없이 품 안의 경찰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고, 그것을 확인한 그가 재빨리 손을 올리며 경례했다.
물론 서울지방경찰청이었다면, 일전의 사건도 있었고, 나름 유명인사인 그의 얼굴을 모르는 의경은 없었기에 이러한 상황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경기지방경찰청. 과거 강민혁이 근무했던 근무지였다.
관할의 명목으로 ‘비부도 살인사건’이 배정된 곳이었기에 이곳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최수용 경사, 퇴근하셨니?”
강민혁은 도로 경찰신분증을 집어넣으며 눈앞의 의경에게 물었다.
“아, 아직 청을 나가는 건 못 봤습니다. 바, 바로 호출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신분증에 적힌 강민혁의 경감 계급을 확인해서인지, 과도할 정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고 단숨에 위경소에 올려진 전화기로 뛰어갔다.
“아냐. 이제 곧 나오겠지. 여기서 잠깐 기다려도 될까?”
“무, 문제없습니다.”
강민혁은 그런 그를 말리며,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났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올 터. 굳이 그를 호출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의경에게 의사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위경소 안으로 들어갔다.
“...”
그곳에는 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한 명의 의경이 더 있었고, 그 역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강민혁이 힐끔 눈을 돌려 그는 허리를 뻣뻣이 편 채 CCTV에 시선을 고정 하고 있을 뿐이었다.
민원인이나 방문자도 없는 저녁 시간대라 굳이 이렇게 집중할 필요는 없어 보였으나, 그 이유는 얼마 안 가 파악할 수 있었다.
‘내 계급 때문에 그런가?’
강민혁의 계급은 경감. 보통 의경소대의 소대장이 경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높은 위치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일반 사무실 그리고 경찰 조직 내에서도 높은 위치임은 확실했기에 그들이 긴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 편하게 있어도 돼.”
“예, 예! 감사합니다!”
강민혁은 이윽고 너무 불편해 보이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과도할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편하게 있어라 해도, 상대가 편하지 못한 자신의 계급을 실감하던 그때, CCTV 속 익숙한 모습이 발견됐다.
“여기, 최수용 경사 맞지?”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강민혁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분할된 화면 중 하나를 가리키자, 그가 그 화면을 곧장 확대해 보여주었다.
“예, 맞습니다. 최수용 경사.”
“그래, 이제 나오네.”
의경인 그가 다시 한번 화면을 확인하며 대답하였고, 강민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했다.
비부도 살인사건의 담당 수사관인 그가 사무실을 나오는 모습이 그대로 발견된 것이었다.
여전히 뻣뻣함을 유지하고 있는 의경과 오랜 시간을 유지할 필요 없이 때마침 잘 도착한 모양이었다.
강민혁은 이제 위경소를 나와 밖에서 기다릴까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CCTV 속 화면의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저기는···.’
최수용 경사의 이동 경로가 출구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이라면 꽤 복잡하게 보일 수 있는 CCTV 구조였으나, 강민혁에게 이곳은 과거 출근지였기에 그가 향하는 그곳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 청장님이 아직 퇴근 안 하셨니?”
“예? 예. 아직 청 내에 있습니다.”
강민혁은 불현듯 옆의 의경에게 물었고, 그는 인수인계사항이 적힌 종이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음···.”
강민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온 최수용 경사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향해 5층으로 향했고, 그곳의 청장실로 들어갔다.
‘...’
의경들은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했으나, 강민혁은 아니었다.
경사의 계급을 가진 수사관이 이 시간에 청장실로 갈만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일반적인 업무일 경우, 그가 보고하든, 청장이 명령하든 지금, 이 시각에 이루어질 만한 사항은 없었다.
무엇보다, 청장이 직접 그와 독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청장이 직접 무언가를 지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 계급이 경사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기에 지금, 이 상황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조금 후면 알게 되겠지.’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의 기억을 읽어보면 알게 될 터. 강민혁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그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청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후 그는 자연스럽게 청 밖으로 이동하였고, 강민혁 역시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편했지? 고맙다. 수고해.”
“아, 아닙니다. 수고하십시오!”
의경인 그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곧장 위경소의 밖으로 나와 그를 기다렸다. 곧바로 퇴근하는 최수용 경사와 마주쳤고, 그는 순간 멈칫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오랜만···. 아, 오랜만은 아닌가요?”
“...어쩐일로 오셨습니까.”
강민혁이 먼저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대답했다.
“여기는 보는 눈이 있으니 나가서 얘기하시죠. 잠깐이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강민혁은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밖으로 나가기를 제안했다. 최수용 경사 역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의경들을 확인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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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코디네이터에 대한 증언 및 정보가 사건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더군요. 그에 대한 수사 역시 마찬가지고요.”
청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강민혁은 본론을 물었다. 앞뒤 젤 거 없이 결국 이곳에 온 것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
하지만, 최수용 경사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복잡해 보이는 그의 표정.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대답은 그것이 전부였다.
“수사에 개입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사실관계만 파악하고 싶을 뿐입니다.”
“...”
하지만 강민혁 역시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정중하게 다시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말씀하기 어려운가 보군요.”
“...죄송합니다.”
최수용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같은 태도를 반복했고, 강민혁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이렇게 해보죠. 이 사건은 수사관님 담당 사건이기도 하지만, 제가 범인을 검거한 제 사건이기도 합니다. 경감으로서, 상관으로서 묻는 겁니다. 그래도 말씀하기 어려우신가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으나, 계급을 내세워 그를 압박했고, 대답을 요구하자.
“...”
침묵은 여전했다.
“좋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보다 더 위 누군가의 압박이 있다는 말과 같았기에 더는 그를 난처하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겠죠. 곤란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강민혁은 이해한 듯 곧장 손을 내밀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가 그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민혁이 생각한 키워드는 ‘범죄 코디네이터’.
최수용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빨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
잠시 눈을 감은 강민혁은 그의 기억 속, 범죄 코디네이터에 관한 모든 장면을 훑어보았고,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최수용의 처지에선 어디까지나 눈 한번 깜박거릴 시간일 뿐. 그가 눈치챌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놓기 전, 강민혁은 한 번 더 키워드를 생각했다.
‘청장과의 관계.’
조금 전, CCTV를 통해 그가 청장실에 간 사실을 확인했기에 시도한 것이었다.
키워드를 생각한 동시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흡수했고, 그제야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악수 후, 강민혁이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자 부담을 느낀 그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허···. 재밌게 흘러가는데?”
뛰는 모습에 가깝게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를 보며 강민혁이 한마디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