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방관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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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비부도의 고향 친구들.’
강민혁은 김진솔을 제압한 그 상태 그대로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그녀의 고향 친구들. 비부도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들을 죽이려 했던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공범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생각해낸 키워드였다.
김진솔의 손을 스치는 순간, 그녀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진솔아 같이 놀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설기준부터 강미희 그리고 정수지까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지만, 이미 만난 적이 있는 그들을 구별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김진솔의 기억 속 그들은 첫 만남이 있기도 전부터 이미 친해진 상태. 같은 고향, 더구나 이런 조그만 섬의 출신인 그들에게 같은 또래,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자신들 외에 없었기에 더욱 각별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였다.
단순한 친구 사이를 넘어, 가족.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 또 한 명.
-누나. 나도 놀래.
강민혁이 본적 없는 어린아이가 끼어있었다. 그는 김진솔과 어딘지 모르게 매우 닮은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그래 진수야. 너도 일로와.
김진수라고 불린 아이는 김진솔과 남매. 그녀의 남동생이었다. 그를 포함한 비부도의 다섯 명의 친구들은 매일같이 놀고, 공부하고, 생활하며 특별한 유대감을 가졌고 그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유년기를 지나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들은 섬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비부도에는 이렇다 할 교육기관이 없었으니, 이미 예견된 절차와도 같았다.
섬을 떠난 그들은 난생처음으로 서울에 오게 되고,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너무 그렇게 울지 마. 학교 끝나면 언제든 볼 수 있는데 뭘.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두가 함께한 것은 아니었다. 입학 과정에서 김진솔 그녀만은 홀로 떨어져 다른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서로 다른 학교에 들어갔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학교가 끝난 이후에 항상 마주하고 생활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사건은 그녀의 동생. 김진수가 중학생이 된 이후에 시작됐다.
그는 김진솔이 아닌 설기준을 비롯한 이들의 학교에 배정을 받아 입학했다.
- 무슨 문제 있거나 문제 있으면, 기준이나 미희 수지한테 말해. 그게 무엇이든 걔네들이 분명 해결해 줄 거야.
김진솔은 자신과 다른 학교에 입학한 그가 내심 불안했으나,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곳엔 자신의 친구들. 그 누구보다 든든한 그들이 있었기에.
시간이 또 흘러, 도시 그리고 학교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김진솔은 무언가 이상을 느끼게 된다.
-너 얼굴이 왜 그래? 싸웠어?
집에서 마주한 김진수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수많은 상처로 얼룩진 그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학교에서 싸웠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 너. 또···?
그 이후에도 상황은 반복됐고, 점차 그가 상처를 입은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친구들을 찾아간다.
- 그, 글쎄···.
- ...그냥 싸운 거겠지.
학교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질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 저었다.
-한번 알아볼게. 너무 걱정하지마. 무슨 일 있으면 내가 다 해결할게.
심지어 설기준은 자신만 믿으라며 큰소리쳤고, 그녀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친구들이 그것을 해결해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 진솔아, 오늘은 수업 그만 받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봐라.
하지만 상황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수업을 듣던 중, 교사는 누군가에게 다급한 연락을 받고 그녀를 조퇴시켰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지, 진수가 죽었다고요?
원인은 교내 폭력. 집단 폭력으로 인해 그가 숨진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동생은 입학과 동시에 섬 출신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따돌림은 점차 괴롭힘으로 이어졌고, 폭력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죽음을 겪게 된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김진솔은 좀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울부짖었다.
-미안하다. 우리가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진솔아 힘내···. 우리가 있잖아.
김진솔은 한참 동안 공황과 우울증세에 시달리며 벗어날 수 없었고. 그런 그녀를 달래준 이들 역시 고향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국 그녀는 이겨냈고, 점차 밝았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랬기에 더더욱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을 무렵. 문득 떠오른 자신의 동생을 생각하며 유품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 시작한다.
-이런 게 있었나?
그리고 발견된 하나의 노트. 그것을 펼쳐본 그녀는 그것이 김진수가 썼던 일기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도 쓰지 않던 일기를 썼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아이였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읽어 나갔다.
- ...
그리고 한 장, 두 장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녀의 표정은 구겨지기 시작했다.
배신감, 분노, 슬픔, 안타까움까지. 수많은 감정이 표정에서 드러났고. 마침내 그 일기를 전부 읽었을 땐 참을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김진수의 일기는 학창 시절에 적은 내용이었다. 그저 단순한 감수성 때문이 아닌. 누군가 이것을 발견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그런 일기였다.
괴롭힘의 과정부터 폭행의 시작, 그리고 따돌림까지 모든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것들은 경찰 조사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들 한 명 한 명 모두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처벌하는 과정을 이미 거친 이후였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무언가 더 한다고 하여 동생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이겨냈다.
하지만, 일기에 적혀있는 단 몇 개의 구절.
- 기준이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 수지 누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자신이 섬 출신이라는 걸 비밀로 해달라 했다.
- 미희 누나를 학교에서 마주쳤지만,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꾹꾹 눌러쓴 그 글씨들은 김진솔의 가슴 깊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가 죽었던 그 전날 쓰인 일기.
- 옥상에서 구타를 당하던 중, 기준이형과 미희 누나, 수지 누나가 옥상으로 들어왔다. 맞고 있는 나는 모두와 눈이 마주쳤고, 누나의 친구들이 말려 줄 거라는 생각에 다급하게 불러보았지만, 그들은 모른 척 옥상을 빠져나갔다.
김진솔은 덤덤하게 쓰인 그것을 보며 배신감을 넘어 분노에 휩싸였다.
자신의 친구들, 둘도 없는 자신의 편이라 굳게 믿었던 그들은 동생의 괴롭힘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대로 모른 척 지나갔다는 소리였다.
자신들 또한 같은 섬 출신이기에 처지가 될 것이 두려워서? 아니면 그저 관심이 없어서? 자신이 해결할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결국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방관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나에게 말이라도 해줬으면···.
그들의 방관은 동생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의 언질이라도 줬으면 이렇게까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느낀 배신감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고, 원망을 넘어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일반인인 그녀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살인이라고는 시도는커녕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그녀였다.
복수하고 싶으나 방법을 모르는 그녀는 결국, 사람을 구하기에 이른다.
각종 대행 서비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트들까지 들락거리며 방법을 모색했으나. 그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장난으로 치부하거나 완고히 거절. 적극적으로 해준다는 이가 있어도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하거나 사기꾼들이 전부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녀에게 접근한 이가 한 명 있었다.
-복수할 방법을 찾고 계신다고요?
알 수 없는 번호로 날아온 한 통의 문자.
어디에서 자신의 번호를 알게 된 것인지, 또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그녀로서는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대답했고. 결국, 만남을 약속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약속장소에 나간 그녀를 의외로 멀끔한 남성이 맞아주었다.
깔끔한 인상의 그는 한 장의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게 명함인가요?
하지만 그 명함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번호만 있을 뿐. 어떤 정보도 적혀있지 않았다.
-뭐 하시는 분이시죠?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그에게 묻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딱히 정해진 일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죠.
김진솔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음···. 누군가는 저희를 범죄 컨설턴트 또는 범죄 코디네이터라 부르더군요.
그게 그와 김진솔의 첫 만남이었다.
-저···. 그럼. 제가 말했던 그것은 해주시는 건가요?
-아뇨. 복수는 직접 해야 복수죠.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김진솔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자신은 방법과 필요한 도구들만 제공해줄 뿐. 모든 일은 그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그를 믿지 않았고, 속으로 사기꾼이라 생각하며 일어서려 했지만.
-이미 방법은 제가 다 짜왔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그가 의외의 말을 꺼내 들었다. 솔깃한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의 설명을 하나하나 꼼꼼히 듣기 시작했다.
-...하는 거죠. 어떻습니까?
마침내 모든 계획을 듣고 난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제아무리 빈틈을 찾아보려 해도 완벽한 계획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어떻게 이런 걸 전부 알고 계시죠?
자신의 개인정보를 포함한 친구들의 정보, 아주 사소한 그런 사실까지도 그가 알고 있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돈은 얼마나···.
김진솔은 결국 마음이 이끌렸고, 가장 중요한 액수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웃을 띤 채 대답했다.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저희 첫 고객이시거든요.
결국, 그렇게,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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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의 기억이 끝났을 때.
“...그 남자.”
강민혁이 그녀의 기억 속에서 발견했던 그 남자. 자신을 범죄 코디네이터라 부른 그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떠오른 한 장의 사진. 과거 이민재가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사진이 떠올랐다.
율촌 오거리 사건과 연관이 있으리라 유추되는 바로 그 사진 속에 그 남자가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