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63화 (63/124)

63화. <방관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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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폭풍우가 치는 새벽.

칠흑 같은 어둠은 조금도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섬 위를 가득 채운 먹구름은 앞으로 나아가길 방해하듯 비를 쏟아냈고, 녹색 우비를 붙잡았다.

“...”

강민혁은 펜션을 나옴과 동시에 거침없이 발길을 이동했다. 빗물이 눈 앞을 가리고,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그따위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김진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그녀뿐.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고, 비부도 집단 살인사건의 범인은 김진솔 그녀 외에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무섭도록 치밀한 계획···.’

강미희의 시체를 불태움으로써 자신의 알리바이를 넘어, 김진솔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겐 서로를 의심하며,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게 했고, 그 사이 자신은 방관자의 관점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터.

‘여기서 막아야 한다.’

이미 다른 이들의 판단력은 흐려질 때로 흐려져 있다. 죽었으리라 확신한 그녀가 나타나 살해를 저지르기 시작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고.’

실제로 강민혁의 기억 속, 이 섬의 모든 이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김진솔 그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완벽범죄···.”

강민혁이 지금까지 발견한 증거들. 가습기에 남아 있던 하얀 가루부터 설기준에 치료를 받았다는 증언. 그리고 앞으로 범죄를 이어가며 남게 될 증거들까지.

모든 범죄를 마친 뒤, 그것들을 유유히 지워나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고 난 후, 어떤 방법을 이용해 자신 또한, 진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완벽범죄를 끝마쳤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았지만.

당시와 지금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단, 한가지.

강민혁 그가 이곳에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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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오래된 폐가.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손전등을 돌리자, 조금만 쥐새끼 한 마리가 순식간에 그 불빛에서 달아났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벽을 가득 메운 곰팡이뿐.

딸···. 깍.

이내 손전등마저 끄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끼익.

오래된 폐가의 문을 열자, 녹슨 경첩의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되고 낡은 시골집. 그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것은 증명이라도 하듯 썩고 문드러진 가구 몇몇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투두두두두

낡은 지붕을 쉴 틈 없이 때리는 빗소리와 그마저도 막지 못해 집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방울 소리만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곳에는 비가 오기 시작하고, 섬을 둘러보던 당시 들른 기억이 있었다.

‘김진솔이 살던 집···.’

강민혁이 도착한 이곳은 김진솔의 집. 그녀가 어릴 적 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로 그녀가 이곳에 있으리라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역시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기억. 그만이 알 수 있는 그 정보 때문이었다.

‘비부도 집단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당시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 프로그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러했다. 비부도에서 일어난 참극, 그중 최후에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김진솔이 발견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과거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집엔 그녀가 며칠간 생존한 흔적이 존재했다. 티브이 속 전문가는 그 흔적이 바로 알 수 없는 살인자를 피해 그녀가 숨어지낸 증거라 떠들었다. 그리고 결국, 범인에게 발견되며 죽음을 맞이했다는 주장이었지만.

‘헛소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완전한 헛소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정반대. 김진솔 그녀가 이 사건의 범인이었고, 자신의 존재를 지운 뒤, 이곳에 숨어 지냈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강민혁은 김진솔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곳을 떠올렸다.

삐걱.

그는 이곳에 그녀가 숨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최대한 기척을 지우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맞은 집의 상태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좀 익숙해졌나?’

손전등은 집안에 들어오기 전, 이미 끈 상태였고 집 안 어디에도 불빛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어둠에 익숙해진 듯 서서히 집안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집 안에 존재하는 방은 총 세 개. 지금 강민혁이 들어온 현관 앞에 한 개. 그리고 거실을 지나 화장실 앞에 두 개가 전부였다.

완전히 어둠에 익숙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조심스럽게 찾기 시작했다.

“...”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현관 앞의 조그만 방. 이미 방문은 어디로 간 건지 온데간데없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숨을 죽이며 방문 옆에 몸을 숨겼고, 그 안에 그녀가 있지는 않을까 귀를 기울였다.

뚝. 뚝. 뚝.

하지만, 빗소리 외의 그 어떤 조그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속으로 심호흡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신속하지만, 은밀하게. 그 어떤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단숨에 그곳으로 들어가 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은커녕 누군가 내다 버린 쓰레기 조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앞으로 남은 방은 두 개.’

그리고 다시 방, 안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 발끝에 최대한 체중을 실으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숨을 장소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넓지 않은 집이었기에 거실까지 금세 도착했다.

‘과자 봉지···.’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흔적. 이 역시 쓰레기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조금 달랐다.

과자 봉지의 상태며 안에 내용물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상태가 눅눅하지 않고, 아주 멀쩡하다는 사실까지.

‘여기에 누군가 확실히 있다.’

이 과자 봉투를 연 건 하루, 아니 몇 시간 채 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이 섬에 노숙자가 없는 것은 이미 확인했고, 있다고 해도 이런 과자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 역시 그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시선은 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

거실의 맞은편, 화장실이 있었고. 그 화장실을 기준으로 양쪽에 방이 하나씩 존재했다.

‘어느 쪽이냐···. 김진솔.’

이 두 개의 방, 한쪽에 그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두 개의 방 모두 문이 달려있었고, 그것을 열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한쪽의 문을 열면, 다른 한쪽에선 반드시 알아차린다.

“후우···.”

방 안의 그녀는 살인범이다. 단순한 살인범이 아닌 5명의 사람을 죽일 정도의 연쇄 살인범. 성별을 떠나 매우 위험한 존재임은 확실했고. 방 안의 그녀가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여기서 놓칠 수는 없지.’

하지만 그녀 또한 독 안에든 상태, 강민혁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꿀꺽.

하지만 긴장이 되는 건 그 역시 마찬가지인 듯 마른침을 삼키며 화장실 앞에 멈춰 섰다.

오른쪽과 왼쪽.

귀를 기울였지만, 여전히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고민한다고 하여 달라질 건 없었고 곧바로 손을 뻗었다.

끼이이익.

문고리를 돌림과 동시에 녹슨 쇠붙이의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죽어어어어!!!”

뒤에서 문이 열리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뒤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여성의 모습. 하지만 그 표정만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머리는 산발을 한 채, 동공은 풀려있었으며 손에는 날카로운 식칼을 들고 있었다.

양손으로 그것을 움켜쥔 그녀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강민혁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런, 젠장.”

그는 그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피하려 했지만.

“으윽.”

그녀의 칼날은 복부를 스쳐 지나갔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나, 통증은 그대로 느껴졌다.

“역시···. 너였구나.”

강민혁은 피가 새어 나오는 복부를 손으로 감싸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눈앞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여성.

식칼을 든 채, 있는 힘껏 인상을 구기고 있는 그녀는 역시 김진솔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녀는 숨기지도, 감추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간파한 눈앞의 그에게 질문할 뿐. 이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 또한 모르지 않았다.

“...변명조차 하지 않는 거냐?”

하지만 강민혁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오히려 되물었다.

“당연하지. 너를 여기서 살려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김진솔은 그 질문에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가 움켜쥔 배를 슬쩍 쳐다보며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으야야약!!”

그리고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명백히 살의가 가득한 움직임이었다.

그녀의 칼 끝은 강민혁의 상처 입은 복부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그것을 찌를 생각인 듯 품 안에 양손으로 칼자루를 쥔 그녀가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왔다.

“죽어!!!”

그녀가 양손을 뻗으며 소리치는 순간.

“으아아악!!!”

섬 전체를 가득 채울만한 비명이 들려왔다.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고통. 그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

그리고 그런 상대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는 강민혁.

김진솔은 어느새 팔이 뒤로 꺾인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고, 칼은 저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강민혁은 그런 그녀의 등 위에 올라탄 채, 팔을 꺾어 완전히 제압했다. 상처 입은 상대 그리고 자신에게 칼이 있었기에 유리하다 생각했던 것일까.

울고불고 소리치며 애원하는 그녀였지만, 그는 더욱더 팔을 거세게 꺾을 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상대를 잘 보고 덤벼야지.”

김진솔이 칼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순간, 강민혁은 순식간에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해냈다. 복부에 칼을 스친 것은 어디까지나 기습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정면에서 겁도 없이 달려든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이미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품 안에 품고 있었고, 그녀의 칼끝과 시선은 복부를 향하고 있었다.

강민혁에게 있어 그녀의 움직임은 어린아이의 장난보다도 간파하기 쉬울 정도였다.

오히려 살기가 섞여 있었기에 더욱 단순한 움직임이었고, 강민혁은 순식간에 그 칼끝을 피해, 그녀의 한쪽 손을 움켜잡았다.

100kg에 육박하는 악력으로 으스러지듯 움켜쥔 그 압도적인 힘을 그녀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칼은 이미 손에서 놓친 지 오래였고, 그녀의 몸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쪽 손을 움켜쥔 그대로, 김진솔의 발목을 사정없이 걷어찼고, 등을 보인 채 엎어진 그녀를 완전히 제압했다.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이 계획 네가 짠 거냐?”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그녀에게 물었다.

비부도 집단 살인사건의 계획.

무섭도록 치밀했던 그리고 결국엔 성공시킨 적이 있던 이 범죄 계획을 이토록 단순한 그녀가 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랬기에 누군가 배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피어났다.

“으아아악!! 그만, 그만···.”

하지만 대답할 여유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그럼 다 생각이 있지.”

그녀의 손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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