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62화 (62/124)

62화. <그리고 범인은 없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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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솔 씨가 정말, 확실합니까?”

강민혁이 되묻자 설기준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말도 안 돼. 진솔이가 어째서···. 어,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어? 내가 보기에는···.”

정수지는 눈물을 머금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아직 연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방 안에는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가 놓여있었다. 단 몇 분, 아니 몇 초 만에 그 시체를 김진솔이라 단정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치료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확실해.”

“그, 그럴 수가···.”

정수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고, 그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완전히 타버린 그 시체를 외관으로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치과의사인 그가 과거 김진솔을 치료했던 흔적. 금니를 씌워두었던 그 위치가 정확히 일치했다.

“기준이 너···. 미희에 이어서 진솔이까지···.”

정수지는 모든 설명을 듣고 난 후, 오히려 그를 경계하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너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야? 진심으로?”

설기준은 이번에도 역시 억울한 반응을 보이며 다른 이들에게 어필했으나.

반응은 차가웠다. 노부부를 비롯한 정수지까지. 이미 그에게서 몸을 돌리며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 아니에요. 제가 왜···. 저 손자 기준이에요. 전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요.”

정수지에게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노부부를 바라보며 애원하듯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그들 역시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고,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기준 씨. 상황설명이 필요해 보이네요. 당신과 김진솔 씨가 불침번 아니었습니까?”

마침내, 설기준의 시선이 강민혁에게로 향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했다.

불침번을 서며 교대로 잠을 잤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순서는 설기준과 김진솔이었다. 강민혁은 그들과 교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물은 것이었다.

설기준과 김진솔이 불침번을 서는 사이, 사건이 벌어졌고. 그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죽은 이는 김진솔이라 밝혀냈다. 의심을 피해가긴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했다.

“설기준 씨, 설명하세요.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그게···. 갑자기···. 잠이 들어서···.”

“...잠이 들었다?”

“아니, 분명 나는 쌩쌩했는데···. 어느 순간···. 젠장.”

강민혁이 다그치며 물었고, 그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한 듯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당신과 김진솔 씨가 함께 불침번을 서는 도중, 잠이 들었고 일어나보니 그녀가 죽어있었다. 그 말입니까?”

“...”

다시 한번 이어진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못한 채 머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것은 말이 되지 않았고, 범인이라 자백하는 꼴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그가 말한 그 상황을 자신 역시 느낀 것이었다. 설기준, 김진솔과 교대한 후, 강민혁은 자리에 누웠지만. 잠에들 생각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고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단지 지금껏 쌓인 피로가 몰려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말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설기준 씨. 그 말 진짜입니까? 대답하세요!”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거세게 밀치며 물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범인을 의심한 형사가 그를 다그치는 모습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을 읽기 위한 행동이었다.

“전부 사실이라고···.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그리고 설기준의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그의 기억을 읽어냈다.

‘...’

불침번을 키워드로 읽어낸 그 기억은 설기준과 교대를 했을 당시부터 시작됐다.

늦은 저녁. 자신의 차례가 돌아온 설기준은 김진솔과 함께 깨어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자고 있었음은 물론,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들은 일체의 대화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때, 김진솔이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고, 의자에 앉아있던 그는 별 뜻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응? 이거. 휴대용 가습기.”

“흥.”

김진솔이 조그만 무언가를 꺼내 작동시켰고, 그가 시큰둥하게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이 상황에서조차 가습기를 트는 그녀를 보며 황당하다고만 생각할 뿐.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그리고 그녀가 문밖의 화장실에 간 사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매캐한 냄새에 잠에서 깬 그가 서둘러 근원지를 찾아 나섰고,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설기준의 말에 거짓은 없었어. 특별하다고 할만한 상황도 마찬가지고. 다만···.’

강민혁은 다시 돌아와, 억울한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노부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게, 그 가습기인가?’

방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조그만 휴대용 가습기를 들어 올려 확인했다. 그의 기억에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잠깐···. 이게 뭐지?”

애초에 적게 채워놓은 듯 이미 증발해 버린 물은 남아있지 않았으나, 자세히 들여다본 그 안에 무언가가 보였다. 곧장, 그 가습기를 분리해 물을 채워 넣는 그 통에 손가락을 쓸어보았고.

‘가루?’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의 가루가 묻어나왔다. 먼지 따위가 아닌, 분명한 가루의 형태였고, 정상적인 물에서는 절대 이런 가루가 나올 리 없었다.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한가지가 떠올랐고, 그것은 바로.

수면제.

‘수면제를 물에 녹여 가습기로 분사시켰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나, 그렇게 된다면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설기준과 마찬가지로 강민혁 역시 이상하리만큼 갑작스럽게 잠이 들었고, 만약 수면제의 성분이 공기에 노출되어있었다면.

눈치를 챌 수 있을 리 없었다.

‘가능성은 충분해.’

직접 복용이 아니었고 노출된 시간이 비교적 짧아 효과가 그리 강력하지는 못했을 터.

화재를 인식하며 일어날 수 있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완전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기준의 기억을 통해, 과거를 돌아봤고. 이 가습기를 가져온 사람 그리고 이것을 작동시킨 이도 김진솔,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었다.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고, 설기준을 통해 증명된 바 있었다.

‘뭔가. 뭔가 놓치고 있어.’

강민혁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떠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던 그때.

“혀, 형사님. 미희···. 미희가 없어졌어요.”

강수지가 다급하게 뛰어와 그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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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준을 비롯한 노부부는 방 앞에 멈춰,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이 서 있는 장소는 설기준과 강미희가 사용하기로 했던 바로 그 방 앞이었고. 그곳에 죽은 강미희의 시체를 임시로 안치해둔 상태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지만, 방 안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미희가···. 미희가 사라졌어···.”

정수지가 중얼거린 그대로였다.

죽은 강미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 안에는 오직 잘 개어진 이불과 베개뿐.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강미희가 사라졌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으나,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는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시체에 발이 달려 있지 않은 이상, 누군가 강미희의 시체를 옮겼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그러한 짓을 벌였다면 반드시 흔적이 남아있을 터.

쏴아아아.

곧바로 펜션의 입구로 뛰어가 문을 열었지만, 그 어디에도 시체를 옮긴 흔적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비는 거세게 내리고 있었고, 질척거리는 이러한 땅에서 어떠한 흔적도 없이 한 구의 시체를 옮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시체는 이 방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설기준은 공황에 빠진 듯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것은 다른 이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은 그들을 공포로 내몰았고, 더는 서 있을 힘조차 낼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온전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강민혁뿐이었고, 그가 사건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강민혁은 한 명 한 명 다가가 손을 맞잡으며 위로를 건넸고, 그렇게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젠장.’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강미희의 시체와 관련된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일 뿐.

여기 있는 이들 중, 그녀의 시체를 옮긴 사람은 없다는 의미였다.

‘여기에 범인이라 지칭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그렇다면···. 누구일까.’

이 섬에 우리를 제외한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섬을 샅샅이 뒤져본 바 있었고, 발견된 이는 없었다.

“역시, 설기준 너지? 제발···. 제발 인제 그만둬.”

그때, 정수지가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또, 그딴 개소리를···.”

설기준 발끈하며 반박하려 했지만.

“너, 미희랑 별거 중이었고 이혼을 앞두고 있었잖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우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연기하고 있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정수지가 그의 말을 막아서며 폭탄과도 같은 발언을 내뱉었다. 설기준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인상을 구겼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기준아. 별거는 또 무슨 말이고, 이혼이라니!”

그동안 조용하던 할머니는 펄쩍 뛰며 그에게 되물었고, 그는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 이었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너는 몰랐겠지만, 미희는 나한테 계속 상담을 요청했어. 결혼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네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말이야!”

설기준이 입을 다물자, 정수지가 더욱 흥분해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의 침묵은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설기준과 강미희 부부는 결혼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별거에 들어갔다. 이유는 설기준의 바람. 강미희가 정수지에게 지속해서 상담해왔기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충격을 받을 노부부와 친구들에게 체면을 위해 그가 강미희에게 비밀로 해달라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솔직히···.”

“그래, 내가 바람을 피웠고. 미희가 이혼을 해달라 했어. 대신 완전히 이혼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달라 한 것도 맞아.”

“그럼, 역시···.”

“하지만, 나는 그동안 미희에게 용서를 빌 생각이었어. 나는 미희와 이혼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고, 죽일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지금 누구보다 슬픈 건 나라고···. 나는 정말 아니야···.”

정수지가 그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결국 설기준은 울분을 토하며 대답했다.

‘...’

강민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수지의 의심은 그럴듯했으나,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의심이 되었기에, 여기 있는 이들 중, 그의 기억을 가장 많이 읽었고. 그에겐 어떤 혐의도 보이지 않았다.

억울한 그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당장 사건을 해결하는 것 외에 그의 오해를 풀어줄 수는 상황은 없었다.

‘잠깐. 방금 두 사람이 별거했다고···.’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설기준 씨.”

“...?”

강민혁의 불음에 그가 고개를 올려 쳐다봤다.

“지금부터 대답 잘하세요. 제가 당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기준 씨. 강미희 씨와는 같은 치과에 근무했다고 했죠?”

“...예. 예. 맞습니다.”

강민혁은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고, 그의 대답이 힘없이 돌아왔다. 상황에 몰리자 존댓말을 하는 그였지만, 굳이 신경은 쓰지 않았다.

“혹시, 강미희 씨 진료를 직접 봐 주신 적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 미희가 병원을 옮긴 거라···. 별거를 시작하고 미희는 병원에서 저를 없는 사람 취급했습니다.”

“단순한 치료나 치아 상태, 엑스레이조차 확인한 적이 없는 겁니까?”

“예···. 일단 저한테 진료는커녕 말조차 건 적이 없으니···.”

설기준은 고분고분 성실하게 대답했다.

강민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고. 잠시 후.

“잠시, 확인할 게 있습니다.”

김진솔로 특정했던 시체가 있는 그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불에 탄 그 시체를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설기준이 말했던, 치아의 금니. 그리고 목의 밑부분까지. 이미 피부는 완전히 불에 타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한가지 의구심이 피어났다.

‘만약, 이 시체가 김진솔이 아니라면?’

설기준의 대답을 들으며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는 치과의사였으나, 자신의 부인인 강미희의 치아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김진솔이 어떤 방법을 통해 강미희의 치아 상태를 알아냈고, 고의로 의도를 가진 채, 설기준에 접근해 그녀와 같은 위치에 금니를 씌웠다면?

‘아무리 치과의사인 설기준이라도 치아만으로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을 테지.’

불에 탄 시신의 신원을 조회하기 위해 치아를 확인할 것을 예상했다면. 당연하게도 그 역할은 치과의사인 설기준이 맡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에게 미리 치료를 받아, 자신을 특정할 수 있게 만든 후, 사실은 그것이 강미희의 치아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면.

‘강미희의 시체를 불태운 후, 자신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또한.

‘김진솔이 사용한 가습기의 가루 그리고 사라진 강미희의 시체까지.’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만약.’

김진솔이 죽은 척 위장을 한 후 살아있다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 후, 이 섬 어딘가에 숨어 이들을 살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면.

“그곳밖에 없어.”

강민혁은 우비를 주섬주섬 입으며 펜션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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