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57화 (57/124)

57화. <그리고 범인은 없었다. (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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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관, 1층 정보화 장비과.

강민혁이 들어서자 제 일에 집중하고 있던 박봉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박봉구 경사님, 저 왔습니다.”

사무실을 본관으로 옮긴 이후, 좀처럼 별관에 올 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오랜만에 찾아온 정보화 장비과였다.

별관에 사무실이 있을 당시에는 의경소대를 제외하면, 미제사건팀과 장비과 외에는 타 사무실이 없었기에 자주 왕래하며 자연스럽게 그와 친분이 두터워졌다.

“오, 자네. 오랜만이구먼. 오늘은 또 어찌한 일로 왔는가. 왜 또, 필요한 게 있나 보지?”

박봉구는 오랜만에 찾아온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에는 나이에 비해 월등히 높은 계급으로 인해 강민혁을 어색하게 대했던 그였으나, 편하게 대해달라는 그의 부탁에 지금의 관계로 발전했다.

“하하, 역시 박 경사님. 오늘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시간이 좀 나서 안부도 물을 겸 찾아 왔습니다.”

강민혁은 장난스럽게 째려보는 그를 보며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요즘에는 통 찾아오지 못했지만, 별관에 근무할 당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그에게 찾아가곤 했었다. 일일이 정식절차를 거치는 것보단, 친분이 있는 그에게 부탁하는 편이 빨랐음은 물론.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게. 뭐, 웬만한 건 다 구해줄 수 있으니.”

박봉구 역시 강민혁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때마다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감사합니다. 항상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허허, 도움이 되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여기 앉게 나는 차라도 좀 내올 테니.”

강민혁이 웃으며 대답하자, 그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열대저압부가 일본 오키나와 동남동쪽···. 현재까지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되나···.

그가 인스턴트커피를 종이컵에 따르는 사이, 사무실 한편에 틀어진 텔레비전 소리가 유유히 흘러나왔다.

‘음···. 태풍이라···. 이맘때쯤이었나?’

강민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뉴스로 향했고,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사이, 그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커피를 건네며 마주 앉았다.

“요새 일은 좀 어떤가. 뭐, 자네 소식이야 듣기 싫어도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마는. 이번에는 또 권총 마스터에 합격했다지?”

“하하···. 벌써 소문이 났습니까···.”

강민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청 사람들이 입이 한두 갠가. 자네가 워낙 유능해야 말이지. 이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걸세.”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보다 장비과는 요새 어떻습니까?”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며, 박봉구에게 묻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뭐, 여기야 항상 똑같지.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고. 그게 좋아서 여기 있는 거지만 말이야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 보이던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자신의 책상에 놓여있던 서류를 가져왔다.

“아 참. 특별한 게 있기는, 있지. 요새 골칫거리가 하나 있어.”

“뭡니까?”

강민혁은 질문과 함께 그에게 서류를 건네받았고, 바로 그것을 확인했다.

“총포 소지 허가 갱신서? 이게 왜 골칫거립니까?”

서류에는 총포 소지 허가증 갱신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총포 소지 허가증이란 말 그대로, 누군가 총포를 소지하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서류. 엽총부터 가스 발사 총, 공기총, 마취총, 도살 총 등등 총포 소지를 허가받기 위해서는 필요한 허가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수렵을 위해 이 허가증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강민혁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이야 이 허가증이 있더라도 경찰서 보관이 의무화되어 개인의 총기를 국가에서 관리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15년에 시행된 제도였다.

시골에서는 노인이 멧돼지와 같은 짐승으로부터 밭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이거 생안과 업무 아닙니까?”

물론, 그 과정이 복잡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의아한 것은 그가 왜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가였다.

총포 관련은 보통 생활안전과에서 도맡아 했기에, 장비과인 그가 걱정할 문제 거리가 아니었다.

“그게 좀 복잡한 사정이 있네. 이분이 연세가 좀 있으신데, 예전에 내가 생안과에 있을 때부터 쭉 봐주시던 분이라서 말이지.”

박봉구의 설명이 이어졌고, 그제야 그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가 장비과로 부서를 이동하기 전, 생활안전과에서 근무했고. 그때부터 이 업무를 봐주던 어르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부서가 바뀌었음에도 어르신이 익숙한 직원을 찾아오는 경우. 설명하기보다 이제는 제 일이 아니어도 그냥 일 처리를 해주는 건 생각보다 비일비재한 상황이었다.

“이제 일 처리를 해주기 곤란한 상황이 온 겁니까?”

“아닐세. 총포 갱신 업무라 해봐야 3년에 한 번 정도인데, 단골 어르신 그 정도 일 처리 하나 못 해주겠나.”

강민혁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입술을 앙다물며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이분 총기 소지 갱신 기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말이지. 그동안은 제때 마쳐 오셨는데, 전화도 안 되는 곳에 사시는 분이라···. 쩝”

강민혁 역시 그의 말을 듣고 나자, 꽤 골치 아픈 상황임을 인지했다.

“그럼 그 총기는···.”

“회수해야겠지.”

강민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증이 없는 이상, 총기 불법 소지가 될 여지가 다분했다. 결국, 어르신의 총기는 회수처리 될 것이 분명해 보였고, 박봉구는 그것을 걱정하는 듯했다.

“생안과에 내가 직접 회수해 오겠다 허락은 맡았는데···. 갑자기 일이 몰려서 말일세. 자리를 비우기가 곤란해졌어.”

“그 어르신이 꽤 멀리 사시는 겁니까?”

강민혁은 곤란해하며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총기 회수라 해봐야 기껏해야 반나절 정도면 충분하다 여긴 것이었다.

“그분이 외딴 섬에 사시거든. 적어도 3일은 걸릴걸세.”

“아···. 아쉽겠습니다.”

“하하, 그렇지 뭐. 공짜 휴가에 출장비까지 빵빵하게 받을 기회인데 말이야.”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그가 껄껄 웃으며 농담 식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렇지, 말 나온 김에 자네가 가보는 건 어떤가? 간 김에 공기 좋은 곳에서 겸사겸사 휴식도 좀 취하고 말이지.”

박봉구는 무언가 번뜩인 듯 강민혁을 보며 물었다. 귀찮거나 힘든 일이었으면 이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섬에 들어가는 걸 꺼리지만 않는다면, 썩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어디까지나 총기를 회수해야 하는 공적인 업무였고, 3일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다. 당연하게도 출장비 역시 지급이 될 것이고, 결국 총기만 회수해 오면 되는 일이었기에, 나머지 그 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섬에서의 휴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섬입니까?”

강민혁은 순간 관심이 생겼고, 그에게 물었다.

“아마 자네는 모를걸세. 그분들 부부 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거든. 비부도라고 섬이 하나 있네.”

그리고 그의 대답이 돌아온 순간. 한가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비···. 비부도라고요?”

조금 전 본 뉴스와 그가 말한 섬의 이름은 한 가지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그 섬.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제가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섬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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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 봤어요? 조만간 태풍이 온다던데.”

“너, 뉴스 끝까지 안 봤구나. 그거 오다가 방향 튼 데. 꽤 멀리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영향 없을 거라고 했어.”

이른 아침, 오늘 사무실의 대화 주제는 태풍이었다. 며칠 전부터 태풍이 온다 안 온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어제 그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달되었다.

“아, 그래요? 스치듯이 본 거라. 그럼, 다행이네요. 태풍이 오면 이런저런 피해도 잦고. 오지 않으면 좋죠.”

노희재는 무안한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경찰의 입장에 태풍은 이동의 불편함은 물론, 각종 피해사례와 신고가 많아지기에 유독 더 달갑지 않았다.

“근데, 확실하진 않아. 기상청도 오락가락하더라고. 태풍이 온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뭐, 예측이 쉽지 않다고는 들었는데. 쯧”

유진호의 말대로, 뉴스를 통해 전해진 태풍 소식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가능성만 제시할 뿐. 결국, 우리나라에 영향은 거의 없을 거라는 예측에 힘이 실린 듯했지만.

‘유례없는 강한 태풍이 불었었지.’

기억에 의하면, 이번에 오는 태풍은 꽤 강력했다. 일본 쪽에서 방향을 틀 거라 예상했던 태풍은 오히려 더 커져 그 영향력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지금의 이러한 뉴스와 기상청의 발표로 인해 체감상 피해는 더욱 막강했고, 그들은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시기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태풍이 지나간 뒤의 발견된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비부도 집단 살인사건.’

태풍이 지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를 통해 보도된 이 사건은 꽤 유명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다.

비부도라는 조그만 섬에 놀러 간 이들은 펜션에 머물게 되고, 그때 들이닥친 태풍으로 인해 그 섬에 고립된다.

‘그리고 발견됐을 땐···.’

태풍이 끝나고 바다가 잠잠해지자, 그 섬에 그들을 데려다줬던 선장은 재빨리 섬으로 들어갔고. 그들을 다시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

선장은 충격적인 광경에 공황에 빠졌고, 신고를 통해 결국 경찰들이 섬에 들어와 조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결과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부 타살에 의한 살인이었지.’

단순, 자살 또는 사고가 아닌 타살에 의한 살인의 흔적이 다수 발견된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범인이 없다는 것.’

분명, 이들은 태풍에 의해 고립된 상태였고. 그들이 들어간 비부도는 오래전, 마을이 있었다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하나둘 육지로 떠나가 그 흔적만 남아있는 섬이었다.

이제는 관광객조차 오지 않아 그곳의 펜션 주인 부부를 제외하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었다.

태풍으로 인해 외부인이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고립된 섬. 그곳에서 누군가 다수의 살인을 벌인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범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제사건을 넘어, 미스테리한 사건이었기에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무슨 생각 해요? 팀장님이 불러요.”

그때, 노희재가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최재희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뇨.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강민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의 자리에 다가갔다. 최재희의 책상 앞에 마주 서자,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출장을 다녀오겠다고? 비···. 부도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음. 알겠네. 내 알아서 처리해 둘 터이니. 가는 김에 휴식 좀 취하고 오게.”

최재희는 별다른 말 없이 곧바로 본론을 이야기했고, 그대로 강민혁의 출장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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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쨍쨍함에도 어째서인지 녹색 우비를 입은 남성이 부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보는 사람마다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비부도라고 아십니까? 그곳에 가야 하는데.”

“비부도? 글쎄. 처음 들어 보는데?”

녹색 우비 입은 남성은 다름 아닌 강민혁. 지금쯤 출근했어야 할 그는 이곳 부두에서 비부도를 아는 이를 찾아다녔다.

‘하···. 시작부터 쉽지 않네.’

하지만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섬이라는 사실은 거짓이 아닌 듯 비부도를 아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총기 회수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이곳까지 찾아와 비부도를 찾는 이유는 역시 집단 살인사건을 막기 위해서였다.

만약,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다행이겠으나.

비부도에서 일어난 집단 살인사건은 어차피 미제사건으로 분류되고, 결국 미제사건팀까지 오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어.’

그때가 되면 사건을 밝힌다 해도 결국, 모두 죽어버린 이후가 될 것이다. 비부도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는 무려 6명. 하지만, 아직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지금 자신이 그곳으로 간다면,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사건이 벌어질 것을 알고, 사람들이 희생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만, 그 범인.

그 범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비부도에서 6명의 죽였다는 사실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도, 살해 방법도, 그리고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살인자가 그 고립된 섬에 존재한다.

그리고 강민혁은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그곳으로 제 발로 들어가야만 했다.

“저, 혹시 비부도라고 아시나요? 그곳에 들어가려 하는데.”

하지만 그보다 먼저 비부도를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배를 운영하는 선장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봤지만, 모두가 고개를 저을 뿐, 아무도 비부도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없었다.

“하···. 비부도에 어떻게 가지?”

강민혁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자네가 비부도를 찾고 있다고? 허허. 내가 알고 있으니, 따라오게.”

얼굴이 수염으로 반쯤 뒤덮인 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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