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권총 마스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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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에 소형카메라까지 준비했으면, 빼도 박도 못하겠네요.”
요 며칠 사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화젯거리. 미제사건수사팀뿐만이 아닌, 경찰청 내부, 그것을 넘어 경찰 관계자 사이에까지 단연 최고의 관심사는 이번에 체포된 기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심해야 해. 실수로라도 그런 봉투 받았다가, 영상으로 협박해오기라도 한다면···. 와 끔찍하네.”
경찰을 상대로 한 기자의 뇌물 공여 그리고 소형카메라를 이용해 영상을 확보한 후, 협박을 시도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경찰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치밀하게 함정을 파놓으면, 몇 명은 금방 골로 갔겠는데?”
“경찰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여튼 뭐든 조심해야 해.”
경찰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당할 수 있는 범죄였고. 그 대상이 자신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이 그 상황에 부닥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나라면 그 상황을 아무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었을까.
-혹여나 기자의 협박을 받고 시달리게 되진 않았을까.
그랬기에 이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고, 분노를 터트리며, 자신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를 생각하게 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해결한 게 그 친구라며? 강민혁 경감. 그 친구.”
경찰 관계자들 사이의 뜨거운 화젯거리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대상은 역시, 강민혁.
사건의 피해자도 사건을 해결한 이도 그였기에,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
“그 친구, 검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양심까지도 깨끗한 친구였구먼.”
돈과 관련된 범죄, 더구나 경찰이라면 누구나 예민할 수밖에 없는 뇌물과 연관된 범죄였다.
하지만 강민혁은 단호히 그 돈을 받지 않았고, 어떤 문제도 없이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했다.
“정말, 대단한 친굽니다. 실력에 인성에 양심까지. 무엇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안 그래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그였기에,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청렴결백한 그 행동에 모든 이들이 감탄하며 칭찬을 내뱉었다. 칭찬은 오히려 더 큰 칭찬을 불러일으켰고, 그럴수록 소문은 점점 더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성까지 모자람이 없어. 요즘에 이런 친구 만나기 쉽지 않지.”
“그럼요. 그럼요. 강민혁 경감. 말 그대로 타의 모범이 되는 친굽니다.”
강민혁에 대한 칭찬은 돌고 돌아,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까지 전해졌고. 그들이 모인 조찬회의에서 언급될 정도였다.
“강민혁, 그 친구. 상이라도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좋네요. 좋아. 뇌물을 거절한 경찰 이미지 개선도 되고, 깔끔히 해결했으니 함부로 돈을 못 건네도록 경고도 될 테고.”
단순한 칭찬을 넘어, 상을 주자는 이야기까지 이어졌고, 그곳에 있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단순히 그들뿐만이 아닌.
“청창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조찬에는 경찰청장 심재준 또한 참여한 자리였다. 누군가 그에게 의견을 구하며 넌지시 물어왔다.
“좋군요. 경무과에서 맡아서 처리하면 되겠네요. 상하고 더불어 보너스 좀 두둑이 챙겨주도록 하죠.”
심재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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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하네.”
“민혁 씨, 축하해요!”
“이야, 좋겠다. 모범경찰 강민혁!”
“축하드립니다!”
최재희 팀장부터 이민재 경장까지. 사무실 식구들의 축하 인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뭐 이런 걸, 다.”
강민혁은 쑥스러워하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화답했다. 그의 앞에는 꽃다발과 함께 나름 고급스럽게 처리해놓은 상장이 놓여있었다.
‘모범경찰이라니···.’
강민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상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모범경찰상’이라는 직관적이지만, 낯부끄러운 이름이 적힌 상장에는 ‘경감 강민혁’이 적혀있었다.
청장실에서의 호출에 헐레벌떡 찾아간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상장 전달식이 진행되었다.
박예진 기자에게 건네받은 뇌물을 거절하고, 불법을 저지른 그녀를 체포했다는 것이 그 이유. 타의 모범이 되고, 올바른 본보기가 되어 상을 건네준 것이었다.
비록 청장실에서 진행된 조촐한 이벤트였으나, 청장부터 사무실 식구들까지 있을 사람들은 모두 모인 자리였다.
홍보실에서까지 찾아와 사진이며, 인터뷰까지 진행한 것을 보면, 경찰 이미지 개선을 위해 기사와 홍보물을 사용할 것으로 보였지만.
‘뭐, 상관없겠지.’
강민혁이 자신의 사진은 올리지 말아달라 부탁하였고, 상을 받는 뒷모습만 찍겠다는 확답도 받았으니 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 청장이 있는 자리였기에, 박예진 기자 같은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부럽다. 나는 언제 이런 상 한번 받아보냐···. 기분이 어때요?”
노희재는 상장을 매만지며 온몸으로 부러움을 표시했고, 강민혁을 향해 질문했다.
당사자인 그는 막상 상에 대한 큰 감흥은 없었으나,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좋네요.”
물론, 단순히 이 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 보너스. 상과 함께 지급된 보너스가 꽤 두둑했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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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조용하던 사무실에 갑작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자, 한껏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노희재가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낸 듯. 입을 막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뇨. 이번에 올라온 공문 봤어요?”
“공문이요? 잠시만요.”
노희재는 민망한 듯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고, 그녀가 말한 공문을 바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트라넷에 접속하자, 올라온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공문. 그것을 바로 클릭해 확인했다.
“권총 마스터제···. 검정? 이거요?”
혹시나 다른 공문이 있나, 마우스 휠을 돌려보았지만 가장 최근 올라온 공문은 이것이 유일했다.
강민혁은 의아한 듯 노희재에게 물었고, 대답은 곧장 돌아왔다.
“네, 드디어 권총 마스터 검증 시작한 데요. 제가 이거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얼마나 기쁜지, 좀처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희재 씨 사격 솜씨가 꽤 좋은 편이었지.’
경찰대학 시절부터 권총 사격에 있어, 꽤 재능을 보이던 그녀였다.
권총 마스터제란, 전반기와 후반기에 시행되는 정례사격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받은 이들을 선별해, 마스터 자격 검정절차를 치르는 제도였다.
검정을 통해 권총 마스터로 인정되면, 경찰청장이 인정하는 권총 마스터증과 휘장을 수여하며,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사격훈련 평가를 시행하지 않아도 무조건 최고점수를 부여해 주는 혜택을 부여했다.
마스터증을 획득하면, 사격훈련 교관으로 보직을 이동할 수 있는 선택권도 주어졌으나, 강민혁은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솔직히 혜택의 의미보다는 자부심과 명예, 자존감의 영역이라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강민혁이 관심이 없었을 뿐, 결코 그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음, 희재 씨. 이번 사격훈련 때도 1등급이었죠?”
“네! 맞아요.”
노희재에게 질문하자,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사격훈련에는 당연히 평가 제도가 존재했다. 사격점수에 따라 특등급부터 1등급, 2급···. 5등급까지 분류되었고.
그 1등급 이상의 실력자들만을 모아 검증하는 것이 바로 마스터제 였다.
마스터 검증 대상에 오른 실력자 중에서도 실제로 마스터 증을 거머쥔 사람은 전체의 3.6%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도전해보려고요?”
강민혁의 물음에 그녀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결심한 모양이네.’
하지만, 노희재가 권총 마스터에 도전할 거란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이미 그녀는 굳게 마음먹은 듯 눈만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열을 올리는 이유 역시 모르지 않았다. 경찰대학 시절, 그녀가 사격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역시 이 마스터제 때문이었다.
노희재는 당시에도 권총 마스터제에 시도한 전력이 있었다. 꽤 훌륭한 사격 실력을 보여줬음은 물론, 후보생 역시 참여가 가능했기에 교수의 추천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후보생 중에서는 유일한 도전자였기에 주위에서 한동안 떠들썩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물론, 결과는 아쉽게 떨어졌지만, 당시에는 준비도 부족했고 경험도 없었기에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민혁 씨는 이번에도, 도전 안 할 거예요?”
그때, 노희재가 불쑥 강민혁을 보며 질문했다. 지나가듯 물어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분명 의식하고 있었다.
“저요? 글쎄요.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왜요? 한번 도전해 봐요. 민혁 씨도 이번 사격에서 1등급 나온 거 다 아는데.”
경찰대학 시절 권총 마스터에 도전한 사람은 노희재가 유일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만이 월등한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강민혁 역시, 그녀 못지않은 사격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단지, 마스터제에 관심이 없었기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뿐. 그 역시 이번 사격훈련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했기에, 자격은 충분했다.
“저 혼자 하면, 의욕이 안 생기는데. 내기라도 한번 해보면 어때요? 누가 권총 마스터에 성공하나.”
노희재는 강민혁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의외의 제안을 걸어왔다.
누가 먼저 권총 마스터에 성공하나 내기를 걸어온 것이었다.
“내기요? 밥 사기 같은 거?”
“뭐.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전 자신 있거든요.”
강민혁이 되묻자, 그녀는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이내 도발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외네. 승리욕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승부욕을 불태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평소에는 그저 방실방실 웃으며 사람 좋은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였기에, 알고 지낸 지 꽤 지났음에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사격에 있어서만큼은 자부심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흥미가 생겼다.
“괜찮겠어요? 제가 진지하게 임해도?”
강민혁은 이내 지지 않고 그녀에게 도발을 날렸다. 지금까지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 사격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과거에서도 사격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고, 그동안은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었기에 관심이 없던 것뿐이었다.
“뭐야? 두 사람 다 도전해보려고?”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호 역시 흥미를 느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도 참가하실래요?”
“아니. 나는 참가 조건이 안돼서···.”
유진호에게 함께 하길 권유했으나, 그는 아쉬운 듯 말꼬리를 흐렸고. 다시 한번 그녀를 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뭐.”
강민혁은 자신에 가득 차 대답했다.
승부를 걸어온다면, 피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