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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읽는 환생경찰-53화 (53/124)

53화. <기레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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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봉투를 꺼내 들어? 웃기지도 않는군.’

강민혁은 박예진을 지나쳐, 그대로 사무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녀의 목적은 사과가 아닌 것이 확실해 졌고 더는 대화를 이어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후···.”

상식에서 벗어난 그녀의 행동에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심호흡과 함께 살짝 뒤를 돌아본 순간.

‘잠깐···.’

왠지 모를 위화감이 엄습했다.

‘뭔가···. 뭔가. 이상해.’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보니, 박예진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가 돈 봉투를 건넨 장소, 아무리 야외 벤치라고 한들. 주위에 CCTV가 가득한 경찰청의 내부였다.

하지만 박예진은 은밀하게 봉투를 건네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이.

‘어째서 돈을 건넸지?’

또한, 의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돈을 건넨 이유가 무엇일까.

돈 봉투를 꺼내든 순간, 흥분해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돈을 건네 소송을 마무리해야 할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세어본 건 아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꽤 두둑한 봉투였고, 그만한 돈을 건네준 이유가 무엇일까.

‘소송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회사에서 눈치가 보일 테고 알게 모르게 윗선의 압박을 받을 테니, 일견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액의 돈을 건네야 할 이유라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소송에서 질 것을 예상해서?’

이 부분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녀에겐 불리한 싸움이었고 재판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느껴 합의금 목적으로 돈을 건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찾아온 그녀는 한 마디의 사과도 건네지 않았고, 돈 봉투부터 들이밀었다. 이런 식이었다면 찾아올 필요 없이 전화와 계좌이체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편이 합의금을 줬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기에 그녀로선 안전하고 간편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박예진이 건넨 건 현금다발이었어···.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한번 의심이 피어나자,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민혁은 즉시 발걸음을 멈추며, 박예진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가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

강민혁이 다시 돌아오자, 그녀가 고개를 들며 올려다보았다.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잠깐, 봅시다.”

강민혁은 짧은 한마디와 동시에 그녀가 움켜쥔 봉투를 뺏어 들었다.

단단히 봉해져 있는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자,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금액의 지폐가 가득했다.

어차피 이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를 슬쩍 쳐다보며, 다시 봉투 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편지?’

그리고 그 지폐 사이에서 한 장의 종이가 발견되었다. A4용지를 접어놓은 그 안에는 그녀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글자가 적혀있었고, 곧장 그것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서울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 강민혁 경감님께.]

첫 줄부터 과도할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있는 내용. 강민혁은 이것만으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 이것 봐라?’

그 뒤로, 편지의 뒷부분은 의미 없는 안부 인사와 인사치레의 내용이 쭉 이어졌고 핵심 문장은 결국 마지막에 적혀있었다.

[일식집 사건과 같은 대형 사건이 있을 때, 저한테 연락 주시면 언제든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보기에는 별거 아닌 내용 같지만, 문제는 이 편지를 돈과 함께 줬다는 것이었다.

“이게, 목적이었습니까?”

그녀가 돈과 함께 건넨 부탁.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뇌물이 분명했다.

강민혁처럼 대형 사건을 연속해서 해결하는 형사는 드물다 못해 유일한 존재였다. 기자인 박예진의 처지에서 그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소중한 기삿거리였고, 그 화제성은 이미 증명된 바 있었다.

결국, 뇌물을 줄 테니 그 기삿감을 자신이 독점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형사님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예요. 그냥 사건을 조사하고 해결하기 직전에, 저한테 연락 한 통만 주시면 되는 거라고요.”

“그러면 이 돈을 주시겠다?”

강민혁이 반응을 보이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예, 이 돈이 끝이 아니에요.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아니, 지금 처럼만 검거율 1위에 사건 해결이 이어진다면 달마다 꼬박꼬박 드릴 수도 있어요.”

“...”

“이걸로 부족하시다면,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해주세요. 저 혼자 감당하지 못해도 저희 국장님에게 말씀드리면 분명···.”

“그만하죠. 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박예진은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다급하게 설득하며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강민혁이 그녀의 말을 끊어냈다.

“이게 뇌물이란 걸 모르지 않죠?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찾아온 거였습니까?”

“...그게 어때서요. 네, 맞아요. 뇌물을 주려고 온 거예요. 뭐가 잘못됐나요?”

강민혁의 물음에 그녀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드디어 본심을 드러냈다.

“돈 주겠다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강 형사님은 뭐가 다릅니까? 소송도 결국, 저한테 돈 받아내려고 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돈 주겠다고요! 원하는 만큼! 대신 전화 한 통 해달라는 게 그게 뭐가 문제에요!”

“...”

박예진은 폭발하듯 제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완전히 사고방식 다른 그녀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고, 그때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렌즈?’

그녀의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 정확히는 그 주머니에 들어있는 만년필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물건이었으나, 자세히 바라본 그 만년필에 렌즈가 달려있었다.

“허. 재밌네요.”

강민혁이 그것을 확인하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자, 그녀가 반사적으로 그것을 가리며 몸을 돌렸다.

“기자라서 카메라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겁니까?”

“...쯧.”

비꼬듯 물어온 질문에 그녀는 혀를 찰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강민혁은 정색하며 손을 내밀었고, 주춤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주머니에 꽂혀있던 만년필을 건네주었다.

“소형 카메라가 달린 만년필이라···.”

“...저도 안전을 보장할 장치정돈 있어야죠.”

“허. 왜요? 제가 먹튀라도 할까 봐?”

박예진이 꺼낸 변명에 기가 차서 더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의 왼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은 만년필 모양의 소형 카메라. 뇌물을 건네주는 장면을 담기 위해 그녀가 준비한 것이었다.

“아니면, 뇌물을 건네고, 그 장면을 찍어서. 협박이라도 하려고 하셨나?”

“...”

박예진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것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그녀가 직접 찾아온 이유부터, 현금으로 돈다발을 건넨 이유, 그리고 경찰청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돈을 건넨 사실까지.

의문은 전부 해소되었다.

박예진은 이곳까지 찾아와 손수 돈을 건넸고, 그 모든 과정을 소형 카메라를 통해 기록했다.

당연히 그녀 역시 자신이 건네는 돈이 뇌물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고, 강민혁이 돈을 받는 순간, 진짜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공무원에게 있어서 뇌물수수의 범죄, 즉 수뢰죄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 처벌 수위만 해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수준의 범죄였고, 그녀는 이를 이용해 강민혁을 협박하며 이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은 박예진의 뇌물을 받을 생각조차 없었고, 결과적으로 받지도 않았다.

“강민혁 당신, 언제까지 잘나갈 것 같아? 언젠가 지금, 이 선택 반드시 후회할 거야.”

박예진은 더 가망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눈앞의 강민혁을 흘겨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돈 봉투를 챙겨 그대로 경찰청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잠깐.”

강민혁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인제 와서 생각이 바뀌었나? 그래야 봐야 늦었어. 내가 후회할 거라 했지?”

잠시 뒤돌아선 그녀는 한쪽 입꼬리만을 올리며, 말 그대로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돈이 아쉬워서 자신을 불러세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따위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후회? 후회는 박예진 당신이 하겠지.”

“...?”

강민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뭐가 문제냐고 물었지?”

“뭐···?”

이어지는 질문에 박예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강민혁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사실, 문제 맞아. 네가 준 건 엄연한 뇌물이거든.”

“누가 그걸 몰라? 그게 어쨌다는 거야?”

도덕심이 심하게 결여된 그녀는 당당하게 대답했고, 강민혁은 그녀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대한민국 형법 제133조에 의하면 ‘뇌물을 약속, 공여 또는 공여의 의사를 표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명시되어있는 것도 알고 있나?”

“...”

강민혁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뇌물을 받지 않았어도 시도한, 그것만으로 범죄가 된다는 소리지.”

이에 멈추지 않고, 확실히 알아먹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천천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뇌물공여죄. 네가 방금 저지른 죄명이야. 민사소송으로 끝낼 사건을 너 스스로 형사범죄까지 키웠다는 소리야.”

“무, 무슨···.”

박예진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히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 용기는 칭찬해.”

“...”

“네가 말한 대로 검거율 1위의 잘나가는 형사 앞에서 범죄를 저지르다니 말이야.”

“지, 지금 여기서 나를 체포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당장 저리 안 비켜?”

그녀는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강민혁은 그 앞을 막아, 서서 비켜주지 않았다.

“체포할 거냐고? 원래라면 무리겠지만···.”

대신 그가 꺼내 든 것은 박예진이 소지하고 있던 소형 카메라. 만년필의 형태를 한 그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너를 풀어주면, 집에 가서 이걸 바로 지우겠지. 내가 돈을 받지 않았고, 너한텐 불리한 증거이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긴급 체포의 요건 중,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가 방금 네 덕분에 충족됐다는 말이야. 네 무덤을 네가 직접 판 거지.”

“뭐? 이런 씨-”

자신만만한 그 대답에, 박예진이 욕설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박예진. 너를 뇌물 공여죄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한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이거 안 놔!!! 이 개새-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의 발악일 뿐. 강민혁은 그녀를 간단히 제압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지금부터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발버둥 치는 그녀가 강민혁에게 빠져나갈 수 있을 리 없었고, 미란다의 원칙과 함께 박예진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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