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52화 (52/124)

52화. <기레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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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새끼야, 너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굳게 닫힌 문 넘어까지 들려오는 고함은 그 안의 상황을 유추하는데 전혀 문제없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넘어,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그곳은 mk 방송국의 국장실.

“구, 국장님. 그게 아니라···.”

“조용히 안 해!”

최태수 국장은 박예진이 입을 떼기 무섭게, 다시 한번 고함쳤다. 그녀는 곧장 입술을 깨물며 멈췄지만, 그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그따위로 하는 새끼가 어디 있어? 네가 그러고도 기자야? 너 나 엿 먹이려고 작정했냐?”

“...”

이내 최태수 국장은 다시 한번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소리치기 시작했다.

“인제 와서 뭐 기사를 내려? 거짓 기사였다고? 고소? 소송? 뭐, 재판준비를 해? 너 일은 안 할 거냐? 회사가 장난이야? 미쳤어!”

얼마나 흥분했는지 박예진의 얼굴에 침이 튈 정도였으나, 그녀는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젠장.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불과 며칠 사이 완전히 변해버린 상황.

박예진이 강민혁을 다룬 인터뷰와 사진을 기사화했을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 반대.

박예진이 작성한 기사는 며칠 동안 그 열기가 식을 줄 몰랐고, 회사 내에서도 그녀는 영웅 취급을 받았다. 후배도 선배고 없이 모두가 그녀에게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 씨, 잘했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 불같이 화를 내는 최태수 국장 역시 박예진이 어떤 식으로 강민혁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는지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술 더 떠, 오랜만에 특종을 물고 온 그녀에게 보너스를 약속할 만큼 상황은 좋게만 흘러갔다.

하지만.

‘강민혁···. 무슨 짓을 한 거야.’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기사가 올라갔음에도 강민혁에게 전화 한 통 오지 않았고, 그렇게 흐지부지 흘러간 줄로만 알았다.

그 역시 속으론 좋았던 것이 틀림없다며, 안심하고 있던 그때.

법원에서 소장이 날아왔다.

하지만 박예진은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소를 당한 선배 기자들을 줄곧 봐왔으니까.

그때마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일을 처리해주고, 당사자에겐 아무런 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선배,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해요? 귀찮아 죽겠네. 이거 도와주시면 밥 한번 쏠게요.”

당연히, 자신 또한 같은 경우라 생각하며 선배 기자에게 별거 아닌 듯 도움을 청했지만.

“쓰읍. 음···. 강민혁 그 사람. 직업이 형사였지?”

뭔가 이상한 반응.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네? 예. 그게 왜요?”

“박예진. 너. 잘 못 걸린 것 같다. 미안하다. 이건 내가 못 도와주겠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가버렸고,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이야, 이거 어떡하냐. 큰일 났는데. 이거 회사에서 손을 못 대개 만들어놨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왜 형사를 건드리냐.

-누울 자리를 보고 뻗었어야지 인마. 너 큰일 났다.

-이거 재판 가도 너 절대 못 이겨. 가서 싹싹 빌어라.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박예진은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구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비슷했다.

‘회사는 도움을 줄 수 없다. 네가 해결해야 한다.’

하나같이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고, 박예진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자신의 행동을 칭찬하던 이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고, 나무랄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진 씨, 국장님 호출이요.”

“구, 국장님이 저를요?”

“네. 음···. 화가 단단히 나셨던데요.”

회사에는 정정 보도 청구 소송이 날아왔고, 국장에게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만의 특종 기사에 신이나 이미 윗선에까지 보고를 올렸던 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당장, 박예진 불러와!”

마침내 기사를 내려야 할 상황까지 몰리자, 그의 분노는 폭발했고, 그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구, 국장님. 그럼 저는 어떻게···.”

“뭘, 어떻게? 가서 싹싹 빌든, 협박하든, 돈을 쥐여주든. 네가 알아서 처리해! 지금 당장!”

최태수 국장의 고함에 눈물을 머금은 박예진이 서둘러 나가려는 순간. 그가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박예진.”

“네, 네! 국장님.”

“너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강민혁 그 친구 기사를 못 따오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면 정말 각오해야 할 거야.”

“...네.”

“일 처리 똑바로 하라고.”

박예진은 그대로 국장실을 빠져나왔고, 정신을 추스를 틈도 없이 곧장 서울 지방경찰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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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민혁 씨. 저번에 그 기사 내려갔는데요?”

미제사건수사팀 사무실.

점심 식사 후, 잠시 쉬는 시간. 컴퓨터를 하고 있던 노희재가 무언가 발견한 듯 소리쳤다.

“아, 그 기사요? 네. 이미 확인했어요.”

강민혁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모두 관심이 순식간에 집중됐다.

“벌써 소송한 거예요? 언제요?”

강민혁이 박예진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 거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나, 실제로 그가 행했다는 소식은 그 누구도 접하지 못했다.

노희재가 관심을 쏟으며 물어오자, 이번에도 역시 별거 아니라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저번에 짬 내서 제가 처리했어요. 오래 끌 필요도 없고, 생각난 김에 바로 해버렸죠.”

“도대체 언제? 뭐 자료 수집하고 그런 건 못 봤는데?”

유진호 역시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며 묻기 시작했다.

“주말에 집에서 했죠. 사무실에서는 일하고.”

“와, 그걸 혼자 다 처리한 거야? 말하지, 뭐 어떻게든 도와줬을 텐데.”

강민혁은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도움은요 무슨. 그냥 피해 사실 좀 모아서 제출만 하면 되는 건데요. 그때만 조금 귀찮았을 뿐이지. 이후로는 신경 쓸 거 없어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요량인 듯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것 때문에 기사는 바로 내려갔다 쳐도, 연락은 왔어요? 뭐라고 그래요?”

“그래, 박 기자한테 연락 왔어? 사과했어?”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박 기자의 반응. 당사자인 박예진 기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사과는 곧장 했는지를 물었다.

“아뇨. 별다른 연락은 없던데요. 근데 아마 제 번호가 없을 거예요. 제가 준 적이 없거든요.”

강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박예진 기자의 명함을 받기는 하였으나, 연락을 나눈 적은 없다.

명함은 받기만 했지, 연락처를 주거나 명함을 주지 않았기에 그녀로서는 강민혁의 번호를 알 방법이 없었다.

“음···. 그래도 지방청에 연락하면 바로 연결해 줬을 텐데. 왜 사과를 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박예진이 강민혁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무지부터 소속까지 전부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사과할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진호의 말처럼 그녀는 어떠한 사과도, 연락도 시도하지 않았다.

“상황파악을 못했던 거겠죠. 아마 지금쯤 발에 불똥이 떨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강민혁은 이러한 상황까지 전부 예상했다.

소장이 날아왔어도, 자신은 아무 문제 없을 거로 생각하며,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상황파악이 끝났을 것이고 그녀가 취할 행동은 뻔하게 눈에 들어왔다.

“며칠 안에 볼 수 있을 거예요.”

“응? 누구를?”

강민혁의 자신만만한 한마디에 유진호가 되물었고.

띠리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사무실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제가 받을게요. 예, 미제사건수사팀입니다.”

강민혁이 자신의 앞에 놓인 수화기를 들며 말하자,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문 근무자, 일경···. 입니다. 미제사건수사팀에 찾아오신 분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지방청 정문에서 걸려온 의경의 전화였고, 누군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기자라고 하시는데 안내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어진 그의 말에 강민혁이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안내해 주세요.”

그렇게 수화기 놓자, 바로 질문이 이어졌다.

“누군데? 그렇게 웃어? 누구 찾아왔데?”

“네, 보시면 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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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박 기자님···. 안녕하세요···.”

얼마 후, 사무실 문이 열렸고. 근처 있던 노희재가 그녀를 맞아주었다.

찾아온 사람은 박 기자. 방문증을 목에 걸고 있는 박예진 기자였다.

“저···. 강민혁 형사님 좀···.”

그녀의 등장에 사무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버렸고, 강민혁은 그것을 의식한 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여기 있습니다. 여기는 다른 분들도 있으니, 잠시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될 것을 고려해 앞장서자, 그녀가 곧장 뒤를 따라왔다.

강민혁은 그녀와 함께, 야외에 마련된 벤치로 이동해 대화를 시도했다.

“갑자기 어찌한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

강민혁의 딱딱한 말투가 이어졌지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땅만 바라볼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과를 하러 오신 거면 사과를 하시고. 아니면···.”

이내 답답함을 느낀 강민혁의 말이 이어지기 무섭게,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무언가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순간, 강민혁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양손으로 건넨 것은 흰 봉투. 무언가 두둑이 들어있는 봉투였다.

“섭섭지 않게 넣었어요. 인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박예진은 그 말을 끝으로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게 뭡니까. 돈 봉투? 이거 받고 떨어져라. 그겁니까?”

강민혁은 머리끝까지 화가나 그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녀가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저 사과하러 온 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건넨 것은 돈 봉투였고. 그것은 실수였다.

“그만하죠. 그건 받지 않겠습니다. 돌아가세요.”

더 그녀를 상대하고 있다간 폭발할 것만 같아,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 했고.

그때. 박예진이 무릎을 꿇으며 빌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를···.”

“후···. 박예진 씨. 제 직업이 뭔 줄 아십니까?”

강민혁은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네? 경찰···.”

그녀는 고개를 들며 대답했고,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맞습니다. 경찰이죠. 제 직업이 범죄자들을 잡는 겁니다. 그 범죄자들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죄를 지은 사람들”

“예, 죄를 지은 사람. 맞습니다. 정확히는 법을 어긴 사람이죠.”

“...”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해야만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박예진 씨 당신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법을 어겼고, 저는 그래서 당신을 처벌하려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죠? 겨우 돈 봉투로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한 번만 용서를···.”

박예진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감정에 의한 호소.

썩 난감한 상황이었으나 강민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직업은 경찰이었고, 지금껏 수많은 범죄자를 잡아 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겪어왔고, 지금 여기서 용서해준다고 하여 그녀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여실히 알고 있었다.

어떤 범죄를 일으켰던, 누구에게나 사정은 존재했다. 그때마다 감정에 흔들리고 용서해준다면, 이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순 없다.

“그럴 순 없습니다. 죄에 맞는 정당한 처벌을 받으세요.”

그 말만을 남긴 채, 그녀를 지나 그대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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