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일식집 살인사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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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혁은 눈앞의 그녀와 마주 앉은 채 여전히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악수하기 전과는 정반대의 이유, 오히려 그녀에게 물을 것이 너무나도 많아진 것이었다.
그녀의 기억을 통해 훔쳐본 장면.
식당 종업원인 이혜수와 피해자인 최일수의 연결고리였다.
기억 속의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식당일에 열중했고, 어느 순간부터 식당에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 최일수와 마주했다.
그는 단순한 단골이라 하기에는 항상 마감 시간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식당에 머물렀음은 물론.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래. 이거랑, 이거랑. 이것도 갖다 줘.”
“어···. 이렇게 많이. 일행분이 또 오시나요?”
“아니. 그렇게 주문해 줘.”
혼자서 방을 차지한 채 꽤 많은 양을 시키는 독특한 손님. 처음에는 그저 대식가인가 싶었지만, 막상 그가 떠난 자리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매번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 몇 점만을 집어먹고는 그대로 놔두기 일쑤였다.
“어···. 손님. 어제도 계산을 안 하셨는데. 오늘은···.”
“응? 아, 계산? 사장이 별말 안 했나 보지? 너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심지어, 매일 같이 비싼 요리를 위주로 시켜놓고 계산조차 하지 않는 손님. 평소 사장의 까칠한 성격이라면 당장 쫓아내고도 남았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그에게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서 불쾌한 기색만을 내비칠 뿐.
“이봐, 언제까지 이럴 거야? 금방 갚을 수 있다니까? 이러면 장사 방해하는 그것밖에 더 돼? 돈을 갚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러던 중, 마감 준비를 하던 이혜수는 우연히 사장과 최일수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최일수가 사채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과 사장이 그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까지.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호기심에 불과했다. 까칠한 사장이 돈을 빌렸다는 사실과 뉴스에서나 보던 사채업자가 매일 같이 가게에 찾아오고 있었다는 사실. 그녀에겐 그저 단순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혜수에 있어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 바로 명품과 사치품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구매했던 첫 명품. 이름만 명품일 뿐, 그다지 비싼 건 아니었으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에겐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녀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느낀 것이었다.
자신에겐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저 명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이 이어졌고, 그것은 곧 그녀를 변화시켰다.
“와, 이거 신상 아니야? 너무 예쁘다. 혜수는 돈도 많은가 봐. 부럽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부러움과 칭찬에 그녀가 명품에 중독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녀는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기 시작하며 돈을 버는 족족 명품과 사치품에 투자했다.
“뭐야? 이 가방이 벌써 나왔어? 아이 씨. 이거 지금 아니면, 평생 못 구할 텐데···. 저번 달 월급도 이제 다 쓰고 생활비도 없는데···. 어디 돈 빌릴 데 없나?”
분수에 맞지 않는 과도한 소비는 결국 그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그때 그녀가 떠올린 사람이 바로.
식당에 매일 찾아오는 손님, 사채업자 최일수였다.
“그래, 다음 달에 갚을 수 있는 정도만 조금만 빌리고, 월급을 받자마자 바로 갚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이미 숱하게 시달리는 사장을 본 그녀였지만,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사채의 이자가 높기는 하였으나, 많은 돈을 빌릴 것도 아니었고 금방 갚기만 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미 그녀의 신용등급은 바닥이었고, 돈을 빌릴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
“응? 아까 주문했는데? 음식이 벌써 나왔나?”
“아뇨. 그게 아니라···. 저도 돈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결국, 이혜수는 식당으로 출근한 최일수에 접근했고, 그는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다.
큰돈이 아니었음에도 평소의 사채업자의 이미지와 달리 그는 매우 친절하고 예의 있게 그녀를 대해주었다.
“저, 빌린 돈 이자까지 해서 전부 갚았어요.”
“네, 확인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끝인가요?”
“그럼요. 돈을 빌려줬고, 그쪽에서 갚았으니 끝난 거죠. 문제 있나요?”
“아, 아뇨. 그럼 이만.”
이혜수는 월급을 받기 무섭게, 자신이 빌린 돈과 이자를 그에게 갚았고, 그렇게 최일수와의 첫 거래가 깔끔하게 이뤄졌다.
“사채도 벌 거 없네. 괜히 무섭게만 생각했나?”
이혜수가 가지고 있던 ‘사채’라는 단어의 막연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냥 이자만 조금 비쌀 뿐이지, 금방 갚으면 아무 문제 없잖아?”
처음이 어려울 뿐, 최일수에 돈을 빌리는 상황은 두 번. 세 번으로 물 흐르듯 이어졌다.
“이혜수 씨, 이번에도 기한 잘 지킬 수 있죠? 기다려 주는 건 일주일 남았어요. 저희는 어떻게 해서든 돈은 받아내니까 그 안에 해결하는 게 좋을 겁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빚을 그에게 지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강민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있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냥. 생각을 좀 하느라.”
강민혁은 이혜수의 기억을 읽고 난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 명의 용의자 중, 유일하게 범행 동기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녀는 순식간에 매우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되면, 주방장과 종업원 둘 중의 한 사람이···.’
김용식의 경우, 최일수와 안면이 있긴 했으나 오히려 범행의 동기 부분에서는 세 명의 용의자 중 가장 빈약했다.
식당의 주방장이자 사장의 경우는 최일수에 돈을 빌린 정황과 그로 인해 시달린 것. 무엇보다 복어의 독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심은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이혜수. 종업원인 그녀는 동기 면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로 손꼽았다. 세 사람 모두 최일수에 사채를 빌린 정황이 있었으나, 두 사람은 갚을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 김용식은 어쨌거나 갚았고, 주방장은 갚을 예정이었다.
반면, 그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한번, 두 번 기한이 밀리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 이자를 그녀가 감당하긴 어려웠고, 마지막으로 약속했던 기한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녀는 협박당하고 있었고, 그것은 꽤 큰 불안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살인을 저지를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종업원인 그녀가 복어의 독을 숨겨둔 단지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서빙을 하는 건 그녀였기에 음식에 독을 섞는 것 역시 수월했을 터.
당장 그녀는 매우 유력한 용의자임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증거인가.’
결국, 진범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결국 증거가 필요했다.
똑, 똑. 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곧이어 이민재가 들어왔다.
“강민혁 경감님. 여기, 문자 도착했습니다.”
그는 마주 앉아있는 이혜수를 피해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감식반입니다. 부탁하신 결과 나와서 연락 드립니다.]
[감식 결과, 테트로도톡신은 복어회 일부와 피해자의 젓가락에서 검출되었습니다.]
[검사한 28점의 회 중, 단 한 점에서만 독이 발견되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회에 치사량 이상의 독이 묻어있던 점, 누군가 손으로 문지른 흔적이 있는 점으로 보아 손질의 실수보다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독을 묻혀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강민혁은 곧장 휴대전화를 받아 감식반에서 보낸 문자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독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묻혔고, 단, 한점에서밖에 검출되지 않았다.’
감식반의 문자를 요약하자면 이러한 내용이었다. 앞선 주방장의 말에 따르면, 복어회 한 접시는 대략 삼십 점 정도가 손님상에 나간다고 말하였다.
검은 옷의 남자는 복어회에 묻어있는 독을 섭취해 사망했고, 그것은 결국 30점의 회 중 최소 두 점 또는 세 점에 독이 묻어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두 사람 중에 범인이 있다.’
범행에 복어의 독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확실해 졌으니, 주방에 들어간 적이 없는 김용식은 용의 선상에서 제외. 주방장과 종업원, 두 사람 중에 범인이 있다는 이야긴데···.
‘어째서 두세 점의 회에만 독을 묻혔을까.’
최일수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모든 회에 독을 묻혀두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평소 음식을 싹싹 비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두 사람 모두 최일수가 음식을 몇 점 먹고 남겨두는 행태를 잘 알고 있었다.
삼십 점의 회 중, 겨우 두세 점은 너무나도 낮은 확률임이 분명했다.
그것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었거나, 그 두세 점을 최일수가 먹을 거라 확신했다는 의미겠지···. 아니면 그 둘 다 이거나.’
강민혁은 순간 눈을 번뜩이며 눈앞의 이혜수를 노려보았다.
종업원인 그녀는 평소 최일수의 행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주방장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혜수는 매일 같이 최일수가 먹고 남긴 음식을 치우면서 확인했어.’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 몇 점만을 먹고 남겨두는 최일수의 식습관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주방장도 그가 음식을 고의로 남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주방에 있는 그가 그러한 세세한 부분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일수가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 몇 점만을 알고 있는 그녀라면 자신이 묻혀놓은 독을 그가 먹으리라 확인했겠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혜수는 주방장이 건네준 요리를 최일수에 전해야 했고, 그사이 많은 시간을 소요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회에 독을 묻히는 것이 가장 안전했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함은 물론. 이미 세팅된 회를 일일이 만지게 되면 모양이 흐트러져 의심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단 두세 점. 그리고 최일수가 평소 먹던 그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독을 발라 살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사건 당일. 평소에는 일행이 없던 최일수의 방에 계획에 없던 검은 옷의 남자가 등장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방에 들인 걸 보면, 두 사람은 평소 알고 있던 사이였을 테고. 최일수의 젓가락에서 독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보아, 그가 자신이 먹었어야 할 회를 검은 옷의 남자에게 건네줬을 것이다.
검은 옷의 남자는 그 회에 독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먹었고. 최일수를 잔혹하게 살해한 후, 자신 또한 화장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증거가 무엇이 있을까.’
당장 검은 옷 남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당장 이곳에서 밝혀야 하는 사실.
강민혁은 이혜수. 그녀 역시,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 반 이상 확신하고 있었다.
이제 이 모든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증거, 이혜수가 범행을 저지른 증거가 필요했다.
‘증거···. 어떤 증거가···. 독···! 그래 복어 독을 맨손으로 만지진 않았을 테지.’
순간, 강민혁의 머릿속에 주방장이 확인시켜줬던 단지가 떠올랐다.
복어의 독을 모아 두었던 그 단지. 이혜수가 범인이라면 반드시 그 단지에서 독이 묻은 복어의 부산물에 손을 댔을 것이다.
‘도구를 이용했겠지. 예를 들면 장갑 같은···.’
맨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독이었기에 장갑과 같은 도구를 이용했을 터. 하지만 가게 안 그 어디에서도 독이 묻은 장갑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 가게의 식기들을 설거지 않았기에 젓가락이나 집게와 같은 도구 역시 마찬가지.
그 맹독이 묻은 도구를 맨몸에 지닐 수는 없을 것이고.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발견됐으니, 그사이 따로 버릴 만한 장소도 없다.
‘그럼 어디에?’
그때 이혜수의 소지품이 눈에 들어왔다. 신줏단지 모시듯 꼭 끌어안고 있는 그녀의 명품 가방.
‘설마···?’
이미 이민재를 통해 용의자들의 모든 소지품은 확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대표적인 무색, 무취, 무미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맨눈으로 독이 묻어있는 것까진 확인할 수 없었겠지.
“그 가방. 확인 좀 할 수 있을까요?”
의심은 곧 확신으로 번졌고, 강민혁은 그녀를 똑바로 물어보며 물었다.
“가방을···. 왜요?”
이혜수는 눈에 띄게 방어적인 기세로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확인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아, 아뇨. 저는 결백해요. 자, 보세요. 의심될만한 물건 전혀 없다고요.”
강민혁이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녀는 발끈하며 손수 자신의 가방을 펼쳐 보였다.
그녀의 명품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은 유명한 로고가 박힌 가죽 장갑 한 켤레뿐.
“가방 안에 든 건 그게 전부입니까? 다른 소지품은 없나요?”
“네, 왜···. 왜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이혜수의 적대적인 대답에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그 장갑도 명품인가요?”
그리고 몸을 기울여 장갑에서 손을 뻗는 순간.
“아, 안돼···!”
이혜수가 소리쳤고.
강민혁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