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일식집 살인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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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노희재가 발 빠르게 연락을 취했던 덕분에 감식반이 빠르게 도착했다.
사건 현장을 수습하고, 증거가 될만한 물건을 수집해 검사를 맡겨놓았다.
“최일수씨를 살해한 범인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인 것 같은데···. 상황이 더 복잡해 졌군요.”
이민재는 변기 위의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강민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현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발견된 남성은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종업원이 기억하는 그대로 그는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턱에는 마스크가, 변기 옆에는 구토의 흔적과 함께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검은 옷의 남자가 최일수를 죽였다.’
이민재가 말한 그대로 그 의견에 이견은 없었다.
죽은 남자의 품속에선 범행 도구로 유추되는 송곳이 발견되었다. 송곳을 비롯해 그의 옆에 놓여있던 가방에는 갈아입은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가 들어있었고, 그 옷엔 혈흔의 흔적 또한 남아있었다.
그에게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피해자인 최일수의 혈흔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과학수사대팀이 돌아가는 즉시 혈흔을 분석 할 테고, 그 사실은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는 증거였다.
그렇게 되면, 당장 최일수를 살해한 범인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로 밝혀지겠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누구이며 어째서 최일수를 죽였고, 또 어째서 이곳에서 죽어있었는가.’
상황은 더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신원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그의 주머니부터 가방, 신체까지 샅샅이 수색해봤지만, 지갑을 비롯한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갈아입은 옷가지를 제외하면, 살해에 쓰인 것으로 파악되는 송곳 하나가 그 가진 유일한 소지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외모.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야···.’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동남아 계열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자국민이 아닌 이상, 신원 조회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은 분명해 보였음은 물론. 신원을 확인한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꼬리 자르기 냄새가 풀풀 나는구먼.”
경험이 많은 최재희 역시 같은 걱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꼬리 자르기.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저녁 시간대. 식당에 수많은 손님이 있음에도, 굴하지 않고 범행을 저지른 남자였다.
붙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거나, 붙잡혀도 전혀 상관없다는 말일 터.
‘더구나 우발적인 살인처럼 사건을 위장했어.’
피해자인 최일수의 몸에 남아있던 범행의 흔적. 배에 남아있던 수많은 바람구멍의 흔적은 마치 가해자가 흥분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최재희를 비롯한 강민혁 역시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의문점이 남아있다.
‘피해자는 독방에 있었기에 손님들이 살해현장을 목격할 순 없었지만. 소리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을 터.’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최일수의 사건 현장을 발견한 건, 종업원의 비명을 들은 이후였다.
그렇다면 최일수는 어째서 자신이 범행을 당한 그 순간,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까.
아무리 최일수가 개별적인 공간에 있었다고 한들. 검은 옷의 이 남자가 흉기를 꺼내든 순간, 최일수가 반항하고, 소리치며, 도망가려는 행동을 취했다면.
다른 손님들이 그 광경을 보이지는 못했을지언정 그 소리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포함한 가게 안의 그 어떤 손님도 그러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범행을 저질렀다.’
최일수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죽었다는 의미가 된다.
검은 옷의 남자는 최일수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품 안의 송곳을 꺼내 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급소를 정확히 노려 죽게 했고, 이에 멈추지 않고 배에 수십 차례 송곳을 찔러넣어 수사의 혼돈을 유발한 것이다.
더불어, 사건 현장에 그의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점. 종업원이 아닌 다른 손님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움직인 점.
그리고 범행 후 대범하게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로 들어가 흔적을 지우려 했던 점까지.
“전문 킬러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죠.”
단지 초짜의 솜씨라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남아있었다.
“키···. 킬러 말입니까?”
이민재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한 듯 되물었지만, 강민혁의 표정은 진지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나 나올법한 단어였기에, 그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검은 옷의 남자가 전문 킬러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검은 옷의 그를 고용해 최일수를 살해했고, 그가 죽은 이상 모든 혐의를 덮어씌운 채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가능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수사를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이민재는 혼란스러운 듯 최재희와 강민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최재희는 별말 없이 강민혁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자네가 한번 진행해보게. 그 실력. 눈으로 직접 보고 싶군.”
그는 한발 물러서며 모든 권한을 강민혁에게 일임했다.
강민혁 역시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그가 계속 신경이 쓰였기에, 바라던바.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지금으로선 당장, 이 남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보이네요. 우선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해보죠.”
이민재를 비롯한 노희재와 유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수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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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주방입니까?”
“예, 맞아요. 여기서 손님들에게 나가는 음식 전부를 요리하고 있어요.”
다시 돌아와, 식당 내부를 더욱 적극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강민혁이 주방으로 들어와 묻자, 종업원의 대답이 곧장 돌아왔다.
“요리 전부라면, 손질도 포함입니까?”
“네, 맞아요. 생선 손질을 포함해서 웬만한 재료 손질은 여기서 전부 하고 있어요.”
강민혁은 주방 한편에 버려진 생선 비늘을 확인하며 물었다.
아무래도 일식집이다 보니 생선 손질이 주를 이뤘고, 그 외에도 각종 채소 같은 종류 역시 이곳에서 손질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칼은 주방장 외에는 사용할 수 없나요?”
“네? 아뇨. 굳이 그런 규칙은 없지만···. 아무래도 요리하는 분이 주방장이 혼자라 사용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번에 강민혁은 도마 위에 놓여있는 칼을 들어 올리며 물었고, 종업원의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되는 질문과 대답에 종업원은 어째서 그런 걸 묻는지 의아한 눈치였으나.
강민혁의 의도는 따로 있었다.
‘이들의 기억을 살펴볼 키워드가 뭘까.’
몇 번의 시도 끝에 파악한 노하우, 이들의 기억을 살펴볼 핵심 키워드가 무엇일지 찾는 중이었다.
단순히, 용의자로 주목되는 이들의 손을 잡아 기억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해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건과 연관되지 않는 기억을 살펴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기억을 읽는데 제한 따위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누군가와 손이 맞닿아야 기억을 읽을 수 있었고, 그 기회는 좀처럼 많이 오지 않았다.
낯선 이와 손이 스칠 일은 예상외로 드물었고, 강민혁은 보통 악수하거나 실수인 척 손을 부딪치는 방법을 이용했다.
그마저도 여러 번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최대한 신중하게 사건과 연관된 용의자들의 키워드를 찾아내야 했다.
“피해자인 최일수씨가 주문했던 메뉴는 어떤 음식이었습니까.”
“음···. 회였어요. 회. 복어회를 시켰던 거로 기억해요.”
강민혁은 사건 현장에 남아있던 음식을 떠올리며 물었고,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대답했다.
“복어회?”
순간, 멈칫하며 종업원을 쳐다보았고, 그녀가 식당의 입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네. 모르셨어요? 저기 보시면 주방장님, 복어 자격증 걸려있어요.”
강민혁은 곧장 입구로 걸어가 확인했다.
모두 주방장의 이름으로 걸려있는 수많은 자격증. 그중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이 눈에 들어왔다.
“예, 제 자격증 맞습니다. 저희 가게에 복요리 때문에 찾아주는 손님들이 꽤 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방장이 한 발짝 나오며 입을 열었다.
강민혁이 그를 쳐다보며 질문했다.
“그럼, 최일수씨에게 나간 복어회도 주방장님이 요리했겠군요.”
“예. 하지만 복어 독 때문에 그렇게 보는 거라면 잘못 집었습니다. 제가 복어 손질만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사고 한번 없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자격증도 그래서 자신 있게 걸어둔 거고요.”
그는 자신을 의심한다 생각한 듯 발끈하며 대답했다.
“아뇨. 주방장님이 최일수에게 독이든 요리를 건넸을 거라곤 의심하진 않습니다.”
강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최일수가 죽은 원인은 흉기에 의한 것이었기에 독과는 연관이 없었다.
‘물론, 최일수의 경우에는.’
오히려 의심이 가는 건 검을 옷을 입은 남자였다. 그는 화장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외부에 의한 피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발견된 구토의 흔적.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주방장은 최일수에게 사채를 지고 있었다. 복어의 독을 이용해 그를 죽이려 했지만, 웬 엉뚱한 놈이 그걸 먹고 죽었다면?’
그럴듯한 가설이었고, 강민혁은 그에게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손 좀 잠깐, 볼 수 있습니까?”
“...뭐. 뭡니까. 손은 왜요.”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쭙잖은 방식보단, 당당하게 손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저 수사의 일환인 듯, 진지한 표정을 본 그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고. 강민혁은 ‘복어 독’을 생각하며 그의 기억을 읽어냈다.
‘별다른 이상은 없어.’
하지만, 그런데도 기억 속의 그에게 별다른 혐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주방장의 손을 살펴보는 척, 스침과 동시에 그의 과거 장면이 떠올랐고.
장면 속 그는 열심히 복어를 손질하며 독을 떼어내는 모습 외에는 없었다.
“...된 겁니까?”
강민혁이 손을 놓아주자, 그는 어색하게 내민 손을 거두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대답과 동시에, 갑자기 이민재가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강민혁 경감님, 과수대에서 감식결과 나왔다고 합니다.”
어딘가의 연락을 받고 나갔던, 이민재가 다급히 들어오며 휴대전화를 건넸다.
“수고했어요.”
강민혁은 곧장 하던 일을 멈추며 그 전화를 받아들었다.
“서울지방청 강민혁입니다.”
“예, 수고하십니다. 감식반입니다. 당장 빠르게 확인 가능한 사실들만 먼저 알려달라 하셨다고요~”
“예, 맞습니다. 결과 나온 거 있습니까.”
당장, 그런 부탁을 한 기억은 없었지만. 평소 강민혁의 방식대로 이민재가 부탁한 모양이었다.
“당장 급해 보이는 것들 위주로 감식 진행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강민혁의 대답을 끝으로 전화기 너머의 그가 결과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최일수의 사망원인은 역시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 목과 빗장뼈 근처의 급소를 정확히 찔린 것이 원인이었다.
검은 옷의 남자가 소지하고 있던 송곳과 가방 안의 옷에 묻은 혈흔 역시 최일수의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사망원인을 그가 대답했다.
“에···. 그 사람은 테트로도톡신 중독으로 인한 호흡 마비. 그로 인한 심정지로 유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