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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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혁의 어색한 인사에도 심지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강민혁 어깨 위의 견장을 뚫어지게 노려볼 뿐.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는 그로 인해 공기는 어색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견장 닳겠다. 인마.'
강민혁은 차마 본심을 내뱉진 못한 채, 꾹 삼키며 어색한 공기를 풀어보려 노력했다.
"하하, 이번에 운이 좋았어. 아직 경감이 되기에는 경험도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던 그때.
치이익.
심지혁이 들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걸어왔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에게서 니코틴의 쩐내가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겨우 이 정도로 네가 앞섰다고 착각하지 마."
그가 입을 열었다.
"무슨···."
그리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심지혁은 청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강민혁은 한동안 머물러있는 니코틴 냄새를 맡으며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짜식. 자존심 좀 상했나 보네.'
경찰대학에서 교육을 받으며 생활하던 시절, 빈번히 마주치던 심지혁이었다.
경찰대 출신 심지혁과 경간부 출신의 강민혁. 서로를 동기라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떼려야 뗄 수도 없는 관계였다.
각자의 위치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이었고,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위의 시선이 주목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은 곧 두 사람을 비교하기 이르렀다.
경찰대 vs 경간부.
기존의 대결 구도와 더불어 나이까지 같은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라이벌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당사자들 역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강민혁의 경우에는 그저.
'귀찮네. 라이벌은 무슨.'
신경만 쓰일 뿐,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는 눈치였으나.
심지혁은 전혀 아니었다.
경찰대 출신에 現 경찰청장 아들, 경찰 계의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그에게 강민혁의 존재는 눈엣가시 그 자체였다.
강민혁이 나타난 순간부터, 자신에 대한 칭송과 칭찬은 비교와 대조로 바뀌었다.
더구나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조차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점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열한 수를 써서라도, 그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마저도 패배.
자존심이 강한 심지혁은 잊을 수 없는 치욕까지 맛봐야 했다.
‘강민혁 다시는 네놈에게 지지 않을 거다. 언젠간 반드시 콧대를 눌러주마.’
그날 이후, 다시는 강민혁에게 패배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경찰대를 졸업한 후, 현장에 투입돼서조차 녀석의 활약상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들려왔고.
그때마다 자신을 억누르며 때를 기다렸다.
“하하, 오랜만이다. 심지혁.”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강민혁의 어깨의 견장을 확인한 순간,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폭발했다.
물론, 그의 승진 소식 따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제길. 제길. 제길. 또 강민혁. 또. 네가.’
패배감, 분노, 절망, 좌절, 시기. 그 무엇 하나로 꼽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쳤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추태를 벌인다며, 패배가 확실시됨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저 그에게 한마디 경고만을 남겨둔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당장은 기뻐해라···. 언젠가···. 언젠가 반드시 콧대를 꺾어주마. 강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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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왜 그래요? 벌레라도 물린 거 아니에요?”
강민혁이 간지러운 듯 귀를 만지작거리자 옆에 있던 노희재가 걱정하듯 물어왔다.
“음. 아뇨. 물린 자국은 없는데···. 왜 갑자기···. 누가 제 욕이라도 했나 보네요.”
강민혁은 거울을 살펴보며 농담을 건넸다. 승진 임용식은 단체 사진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되었다.
승진의 기쁨을 뒤로한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강당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직원들을 보며, 미제사건수사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사무실로 복귀하죠.”
유진호를 선두로 강당을 빠져나와 본관의 출구에 다다랐을 무렵.
“자네들 어디 가나.”
그간 조용하던 최재희가 입을 열었다.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모두 멈춰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사무실로 바로, 복귀 안 하실 겁니까?”
강민혁이 먼저 나서서 그에게 물었고.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그러니까. 사무실로 복귀를 해야지. 자네들은 어디로 가는 거냐고.”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 바빴고, 그때 노희재가 무언가 알아차린 듯 손뼉을 마주쳤다.
“앗, 팀장님. 설마?”
“모두 따라오게.”
최재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미제사건수사팀의 사무실이 있는 별관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강민혁 역시 의아한 마음을 갖고 그의 뒤를 따랐고, 최재희는 얼마 가지 않아 바로 멈춰 섰다.
“아!”
그가 멈춰선 곳은 본관 1층의 광역수사대 소속 부서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장소. 1층의 강당과는 정반대에 있는 그 장소였다.
“우와! 저희도 드디어 제대로 된 사무실이 생겼어요!”
노희재가 펄쩍 뛰며 좋아하는 사이, 강민혁 역시 사무실 문에 붙은 명패를 확인했다.
[미제사건수사팀]
단순한 그 명패가 의미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었다.
본관 1층의 사무실에 붙어있는 미제사건수사팀의 명패. 그것은 곧, 별관의 창고를 벗어나 본관에 정식 사무실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팀장님, 들어가 봐도 되나요?”
“당연하지. 우리 사무실인데.”
노희재의 질문에 최재희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망설일 것 없이 바로 문고리를 열었고, 모두 그곳으로 들어갔다.
“광수대에서 사용하던 사무실 하나를 비우고 우리가 사용하게 됐다.”
그리고 최재희의 이어지는 설명. 광역수사대팀의 사무실 중 하나를 미제사건수사팀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원이 많은 광역수사대팀이었기에 사무실 역시 3개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를 넘겨주었다는 설명이었다.
“광수대에서 불만은 없었습니까?”
그렇다면 광역수사대는 세 개의 사무실에서 두 개로 압축했다는 의미였기에, 불만이 나오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원체 넓게 사용하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청장님이 직접 명령했다고 하더구먼.”
이어지는 최재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장이 직접 명령했다면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어쩌긴 힘들겠지.
“여기 치우려면 종일 고생 좀 하겠네.”
벌써 청소부터 시작하려는 유진호를 보며 잠시 사무실 내부를 살펴보았다.
‘공간은 비슷한가?’
언뜻 보기에는 기존의 사무실로 이용하던 별관의 창고보다는 조금 작은 공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가운데에는 회의를 위한 공간인 듯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테이블을 기준으로 뒤집어놓은 디귿 모양으로 팀원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팀장의 자리가. 그곳에서 오른편에는 문이 달려있지 않은 공간이 있었는데, 휴게실과 창고로 이용하는 장소였다.
그 외에도 기존 사무실에는 갖춰져 있지 않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찾아볼 수 없던 파쇄기부터, 정수기, 각종 비품이 놓여있었다.
“그럼 우리는 별관의 물건들을 옮길까요?”
광역수사대에서 나름 매너있게 청소까지 해주고 사무실을 비운 듯했지만, 유진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벌써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좋아요. 후딱 해치우죠.”
강민혁의 제안에 노희재가 바로 팔을 걷어붙였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잠깐. 그 전에.”
최재희가 다시 한번 모두를 집중시켰다.
모두 하던 일을 멈추며 그를 바라봤고, 뜸 들이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뭐, 별건 아니고. 모두 사무실 보고 예상했겠지만. 우리 미제사건수사팀. 정식 팀으로 인정되었다.”
노희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가장 먼저 반응했다.
“저희 팀. 6개월 동안 지켜보기로 했던 거 아니었나요? 이제 4개월 정도밖에···.”
그녀의 물음대로, 지금껏 미제사건수사팀은 정식 팀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청장의 요구로 주먹구구식으로 생겨난 팀.
그마저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의미 있는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면 언제든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는 그런 팀이었다.
최재희의 발언은 그런 미제사건수사팀이 정식 팀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그는 노희재의 질문에 강민혁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전부 강민혁 경감 덕분이지.”
이런저런 긴말 없이 그저 단 한마디로 설명했지만. 모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혁이 단기간에 보여준 활약, 그리고 그에 대한 앞으로의 기대감은 이 팀을 유지하기에 과분할 정도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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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한턱낼 테니. 맘껏 먹고 즐기게.”
온종일 사무실 정리에 매진한 후, 최재희의 권유로 회식 자리가 이어졌다.
“아닙니다. 팀장님. 오늘 같은 날은 제가···.”
오늘따라 유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의 말에 강민혁이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이런저런 좋은 일들이 겹쳤지만, 결국 이 자리는 자신의 승진 축하 자리라는 것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다.
강민혁 역시 오늘 승진으로 인해 기분이 매우 좋았기에 회식비 정도는 거뜬히 낼 용의가 있었다. 더불어 주식으로 인해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재희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민혁의 말을 제지했다.
“됐네. 우리 미제사건수사팀이 정식 팀으로 인정받기도 했고. 부하직원이 승진도 했으니 오늘 같은 날은 내가 내게 해주게.”
“하지만, 팀장님···.”
“어허, 그만하게. 의미 없는 말싸움 하고 싶지 않네. 상관의 명령일세.”
최재희의 강한 어투에 강민혁은 결국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계산할 사람이 결정되자, 그제야 모두 발걸음을 이동했다.
-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미리 이민재를 통해 예약한 일식집으로 들어서자, 개별룸으로 안내받았다.
“팀장님, 여기 엄청 비싸 보이는데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노희재가 최재희의 지갑 사정을 걱정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노려보며 혀를 찼다.
“쯧. 돈 얘기 그만하게. 자네들은 그냥 맛있게 먹고 즐기기만 하면 되네.”
최재희의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음식들이 도착했다.
메인인 회부터 시작해서 버섯, 조림, 견과, 무침 등등 수많은 음식이 테이블 위로 세팅되었다.
“그럼, 팀장님이 먼저 한 말씀 해주시죠.”
“흠흠. 그러지. 모두 잔 들게.”
그리고 모두 잔을 채우자, 유진호가 그에게 공손하게 말했고.
잔을 들어 올린 최재희가 입을 떼는 순간.
“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주저앉아있는 종업원.
비명의 근원지를 찾을 필요도 없이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까.”
종업이 떨리는 손으로 방안을 가리켰고, 자동으로 그곳을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살인사건이다.’
그곳에.
피가 흥건한 남성이 쓰러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