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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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진 심사요?”
최재희 팀장의 발언에 사무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래. 특진 심사. 왜들 그렇게 놀라? 특진 심사 기간인 것도 몰랐나?”
강민혁 또한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지만,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특진, 특별 진급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특별히 진급시켜주는 제도였다.
경찰공무원이 승진하기 위해서는 계급별 최저 근무연수가 정해져 있었다.
순경 및 경장은 1년 이상.
경사 및 경위는 2년 이상.
경감 및 경정은 3년 이상.
총경은 4년 이상.
단순히 관례나 내부 규정 따위가 아닌 법령으로 명시되어있는 조문이었고, 승진을 위해서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최저 근무연수였다.
하지만.
특별 진급. 즉 특진은 사회적 주목을 받은 사건을 해결하거나, 우수한 공적을 낸 경찰관 또는 경찰의 위상을 드높이거나 발전시킨 경우. 최저 근무연수와 상관없이 특별히 진급할 수 있었다.
당연히 모든 계급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었고, 경위 이하의 계급. 현재 강민혁이 딱 걸쳐있는 경위까지 가능한 제도였다.
“특진 심사 기간인 건 알았지만···.”
당연히 경찰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기회였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저, 4개월 됐습니다.”
문제는 강민혁의 근무 일수였다.
경찰대에서의 교육은 후보생 신분이었기에 당연히, 근무 일수에 포함되지 않았고.
미제 사건팀에 합류한 지 약 4개월.
그걸 넘어 정식 경찰이 된 지 약 4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특진에 최저 근무연수가 상관없다고 하지만 근무 일수가 낮아도 너무 낮았다.
당연히 강민혁을 포함 사무실 모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던 그때. 최재희가 폭탄 발언을 꺼낸 든 것이다.
“음···. 문제가 되나?”
하지만 최재희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형평성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강민혁의 대답에 그는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형평성? 강민혁 경위. 네가 지난 4개월 동안 해결한 사건만 해도 웬만한 다른 경위들 1~2년 사건 해결량보다 많은 건 알고 있나?”
“...”
“우수한 공적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쟁점이 된 사건도 꽤 많이 포함되어있었고. 감히 누가 형평성 문제를 꺼내 들 수 있겠나? 제 얼굴에 먹칠하는 짓일 텐데.”
“...”
강민혁은 그의 말에 동의도 부정도 못 한 채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요. 민혁 씨 축하해요!”
“그래, 누가 뭐라 하겠어. 능력 있는 사람이 진급하는 거야 당연한 건데.”
“추, 축하드립니다. 강민혁 경위님.”
조용하던 사무실에서 노희재를 시작으로 하나둘 축하 인사를 건넸다.
“민재 씨. 이제 강민혁 경위님이 아니라, 경감님이지. 하하하”
유진호는 한술 더 떠 너스레를 떨었다.
“호들갑 떨지 말게. 아직 심사만 넣은걸세. 심사만. 결정은 위에서 하는 거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최재희는 한마디 했고. 분위기는 급속도로 낮아졌다.
그 역시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고는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흠흠. 그래. 공로나 실적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자네 말대로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반려 당할 수도 있으니 너무 김칫국은 마시지 말고. 그냥 그렇다고 알고만 있게.”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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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감이 된다고?’
물론 최재희의 말처럼 결과는 나와봐야 알 수 있고, 심사에서 떨어질 가능성도 현저히 컸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감추긴 어려웠다.
경감이라는 계급.
무궁화 두 개가 주는 그 의미는 남달랐다.
지금처럼 경찰간부후보생 또는 경찰대학 졸업생으로 시작할 때는 굳이 특진이 아니어도 승진시험, 승진심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는 계급에 불과했지만.
과거 순경부터 시작할 적에는 경감이 주는 의미는 전혀 달랐다.
순경에서 경위까지 근속기간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간은 18년 6개월. 여기서 경감을 달기 위해서는 12년이 더 필요했고, 그러면 경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총 30년 6개월이 걸린다는 의미였다.
일반적으로 순경으로 시작해서 경위로 정년을 맞이한다면 평범한 수준. 승진이나 특진을 이용해 경감을 달았다면 훌륭한 정도였다.
물론, 예외적으로 고속승진을 이용해 경정까지 가는 대단한 이들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극소수에 불과했다.
‘벽처럼 느껴지던 경감이었는데···.’
강민혁 역시 당시에는 남들과 다를 바 없었고, 정년까지 경감을 달성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 4개월···.’
경찰이 된 지 고작 4개월 만에 경위를 넘어 경감을 넘보고 있었다.
30년 6개월과 4개월···.
극단적인 이 차이는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었다.
최재희 입에서 특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망설였던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몰랐다.
극과 극의 상황을 모두 겪어본 강민혁으로선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특진···. 경감. 솔직히 욕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시켜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계급사회에서 계급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 작지 않았다.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서 계급은 곧 신분과 직위를 따지는 위계였고, 계급이 높아진다는 것은 결국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권력이 높아진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권력과 권한은 강민혁이 앞으로 헤쳐나가기 위해서 필수적이었고, 욕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부당한 방법이나 잘못된 방법을 이용한 것도 아니었다. 경찰, 형사로서 수많은 범인을 잡아 얻게 된 정당한 기회였다.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나아갈 기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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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과 발표 맞죠?”
이른 아침, 일찍 출근한 노희재가 다가와 물었다. 강민혁은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고, 그녀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씰룩거렸다.
“오,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욕심이 나죠?”
사실, 모르려야 모르기가 더 어려웠다. 며칠 전부터 청 내 직원들의 모든 관심사는 바로 오늘의 특진 심사 발표. 어찌 보면 공무원에게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관심사는 없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청 내 어디를 가도, ‘누가 유력하다더라.’, ‘누구는 왜 심사를 받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안 되면 문제 있는 거다.’ 등등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식이 전해졌다.
“그럼요. 당연히 욕심나죠.”
또한, 강민혁 역시 욕심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역시 나름의 긴장 탓에 저절로 눈이 떠져 아침 일찍 출근한 것이었다.
“오, 다들 일찍 왔네? 오늘 발표 맞지?”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강민혁 경위님 오늘 파이팅입니다!”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유진호와 이민재가 함께 출근했다.
이들도 역시 주된 관심사는 특진 심사 결과 발표. 아침부터 떠들썩한 분위기로 응원을 보내왔다.
유진호와 이민재 모두 자리에 가방만 올려놓은 채 자연스럽게 강민혁을 향해 모여들었다.
“민혁이 오늘 기운이 좀 어때? 될 것 같아?”
유진호는 장난스럽게 툭 치며 물어왔다.
“글쎄요. 잠을 설치긴 했는데···.”
“네? 와 천하의 민혁 씨가 긴장한 거예요?”
강민혁의 대답에 노희재는 진심으로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처음 봤어요. 민혁 씨가 긴장한 거. 완벽한 로봇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었네요?”
그리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장난을 걸어왔다.
두 사람 모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그보다 두 분은 좀 괜찮아요? 상황이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돼서···.”
주제가 계속해서 승진 쪽으로 기울어지자, 유진호와 노희재 두 사람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세 사람 모두 경찰간부후보생 동기 출신이었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지만, 한 명이 치고 나오는 상황. 겉으로는 축하해주고 있지만, 혹시 모를 그들이 느낄 감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민혁은 애써 모른척하며 상황을 즐기기보단 대놓고 물어보는 편은 선택했다.
“그럼, 당연히 괜찮지. 너 이번에 승진해도 우리가 늦은 게 아니야. 네가 빨라도 너무 빠른 거지.”
“맞아요. 그리고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옆에서 민혁 씨를 계속 지켜봤는데 저희가 어떻게 질투를 해요. 능력 있으면 팍팍 치고 나가야죠.”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러냐. 걱정하지마 우리는 항상 네 편이니까.”
“맞아요.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알죠?”
강민혁은 밝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껏 자신이 했던 쓸데없는 고민을 지워버렸다.
“그나저나, 결과 발표는 언제쯤 날까?”
“빨리 나오지 않겠습니까? 직원들 모두 기대하고 있는 것도 알 테고. 이미 결과는 나왔을 테니.”
유진호가 궁금한 듯 내뱉은 혼잣말에 이민재가 대답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다들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진호가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의 표정을 살피며 질문했다.
“그래서. 다들 진지하게 어떻게 될 것 같아? 이번에 민혁이 경감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강민혁이 입을 열었다.
“저야 뭐. 당사자니까 그렇다 치고. 이민재 경장은 팀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제외하고 두 사람 의견은 어때요?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저 뒤끝 없는 거 아시죠?”
강민혁은 싱긋 웃으며 역으로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저는 무조건 통과! 생각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통과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알 수 없는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노희재가 먼저 대답했다.
“음···. 이유는요?”
“민혁 씨가 맡았던 사건 중에 이슈가 된 사건들도 많이 있었고, 강력 범죄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잖아요. 전부 미제 사건이었고요. 사실 이런 사건 한두 개 만 해결해도 특진은 충분할 거라 봐요.”
“음···.”
“근데 민혁 씨가 몇 달 사이 해결한 사건만 해도 하나, 둘, 셋, 넷···. 엄청 많잖아요. 솔직히 노인분들에게 겉옷을 벗어준 것만으로 특진한 사례가 있는데, 떨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강민혁은 노희재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유진호를 쳐다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 희재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한데. 사실 나는 좀 걱정되네.”
“어째서요?”
“뭐. 네 능력은 확실히 대단하고 실적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네 나이랑 경력 때문이지.”
“...”
“네 나이가 좀 더 많았거나, 경력이 좀 쌓였으면 모를까.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결국 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공무원분들일 텐데.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럼요."
”그런 분 중에 튀는걸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강민혁은 유진호의 의견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두 사람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고, 자신 역시 그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정확히 50:50으로 나뉜 의견.
결국, 결과는 나오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이제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그때.
“어? 이번 특진 심사 결과 발표 공문 떴습니다.”
이민재가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