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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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했습니다. 지금 바로 접근하겠습니다.”
이민재는 저 멀리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가리며 전화기에 속삭였다.
그리고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투명한 유리문을 밀었다.
“어서 오세요~”
맑은 종소리와 함께 곧바로 들려오는 힘없는 목소리. 옆을 힐끔 바라보자 손님에겐 관심도 없는 듯 아르바이트생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를 지나 자리를 찾는 척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자연스럽게 목표물을 향해 걸어갔다.
피시방의 수많은 컴퓨터를 지나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의 옆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툭.
의자를 빼는 척 그를 건드렸고.
“아이 씨. 뭐야?”
그가 바로 반응했다.
“아, 죄송합니다. 의자를 빼다가 그만. 하하.”
“쯧.”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이민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그는 혀를 차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컴퓨터의 화면 속 불법도박에 집중하는 사이.
[신원 확인 완료. 상황 봐서 바로 검거하겠습니다.]
이민재는 그의 눈치를 쓱 살피며, 문자를 보냈다.
[OK]
곧바로 날아온 답장을 확인하며 컴퓨터를 하는 척, 온 신경을 옆자리에 집중했다.
티가 나지 않게 당장이라도 그를 덮치려는 순간.
“손님~ 이용하시려면 충전 먼저 하셔야 하는데요.”
어느새 다가온 아르바이트생이 삐딱한 자세로 말을 걸어왔다.
“예···?”
“...피시방 처음이세요?”
이민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자신의 화면을 돌아봤다.
요금이 충전되지 않아 실행되지 않은 화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잠시.”
옆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어서 빨리 이 관심을 돌려야 했다.
“여기 회원 가입하시고. 저기서 충전하시면···.”
“아뇨. 아뇨. 제가 알아서···.”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당황한 이민재가 횡설수설하자 그는 귀찮은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미 옆자리의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민재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최대한 손사래를 쳤지만,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젠장.”
이민재가 노리고 있던 그가 무언가 낌새를 느꼈는지, 순식간에 자리를 이탈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설명하던 아르바이트생은 밀쳐져 이민재를 향해 넘어졌고, 당황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민재는 그를 빠르게 옆으로 치우며 한 말이 있는 듯 입을 옴짝달싹했지만.
이내 빠르게 도망간 그를 쫓기 시작했다.
피시방을 뛰쳐나와 달리는 와중, 다급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노, 놓쳤습니다. 예상치 못한···.”
“범인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전화를 걸기 무섭게 강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는 저 멀리 달려가는 그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피시방에서 500M 거리, 지금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계속 쫓아가세요.”
강민혁은 짧은 한 마리만 남긴 채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하아···. 젠장. 젠장.”
이민재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자책했고, 계속해서 범인의 뒤를 따라갔다.
“저놈은 또 무슨 달리기가 이렇게 빨라?”
이민재 역시 육체 능력은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녀석의 달리기는 왜 저렇게 빠른지, 쉴 틈 없이 달렸음에도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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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역시 짭새였구만.’
골목길을 접어 들어 뒤를 힐끔 바라본 그는 자신을 따라오는 형사를 보며 조소를 날렸다.
피시방에서부터 낌새가 이상하다 했더니. 조금만 늦었으면 잡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범인인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잡힐 일은 없다. 달리기, 그중에서도 도망가는 그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더구나 이 골목길에 들어선 이상 저 형사가 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곳은 그가 제집처럼 드나드는, 소위 말하는 ‘구역’이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어느 쪽으로 가도 도망갈 구석을 전부 알고 있음은 물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초행길인 저 형사는 얼마 가지 않아 이 복잡한 골목길에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는 자유자재로 담벼락을 넘고, 개구멍을 통해 이동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흥. 벌써 보이지도 않네.”
자신을 따라오던 형사는 이미 티끌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기회가 있을 때 잡았어야지.”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유유자적 모퉁이를 돌던 그때. 그의 발에 묵직한 무언가가 걸렸다.
“어···?”
순간,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이 공중에 뜨며 꼬꾸라지기 시작했고. 검은 그림자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켁.”
넘어지기 일보 직전, 엄청난 악력이 그의 멱살을 휘감았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쿵!!
몸이 한 바퀴 돌며 그대로 땅바닥을 향해 메다꽂아졌다.
“으아아악!!!”
온몸에 고통이 퍼져나가기 무섭게, 차마 반항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그의 몸을 짓눌렀다.
“너···. 너 뭐 하는 새끼야···?”
있는 힘껏 발버둥 쳤지만,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 몸. 그의 얼굴을 확인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자.
“나? 서울지방경찰청 강민혁이다.”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곧이어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목에 채워졌다.
“한세영. 너를 살해 및 시체 유기 혐의로 체포한다.”
그리고 강민혁이 미란다의 원칙을 줄줄 외는 동안, 저 멀리서 이민재가 달려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강민혁 경위님···. 허억.”
“상황 종료됐습니다. 한숨 돌리세요.”
강민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거리는 그를 보며 말했다.
“허억. 후···. 씁.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아닙니다.”
이민재가 변명을 늘어놓으려 하자, 강민혁이 그의 말을 막아섰다.
“제가 해결했으니 됐죠. 팀이잖아요?”
“하···. 하지만.”
“됐습니다. 바로 청으로 복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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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민혁 씨. 또 한 건 했다면서요?”
미제사건수사팀 사무실.
노희재는 복귀한 강민혁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냥 뭐. 별거 아니었어요.”
“별거 아니긴요. 오면서 보니까 이미 청에 소문 쫙 퍼졌던데. 이제 사람들이 천재냐고 의심도 안 해요. 그냥 뭐 저런 사람이 있냐고 한다니까요.”
강민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자, 그녀는 과장된 표정으로 그를 칭찬했다.
“그래, 겸손도 지나치면 독이야. 그게 별거 아니면 우리는 뭐가 되냐?”
가만히 듣고 있던 유진호 역시, 그녀의 말을 거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손가락을 펴들더니.
“우와. 이번 달만 벌써 몇 개 째야? 하나, 둘, 셋, 넷···. 여섯 개네. 여섯 개. 맞지?”
하나씩 접으며 감탄을 내뱉고는 물었다.
“글쎄요. 세보질 않아서. 숫자가 중요한가요.”
“캬···. 역시 천재는 다르구나. 정신 상태부터가 다르네.”
강민혁이 민망한 듯 다시 한번 머리를 긁적이자, 그는 신이나 더욱 장난치기 이르렀다.
“그나저나 대단하긴 하네요. 민혁 씨가 저번 달에도 5건 정도 해결했죠?”
“예, 맞습니다.”
이번에는 노희재가 물었고,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이민재가 대화에 참여했다.
“여기가 파출소도 아니고. 전부 미제 사건이었잖아요. 대단해요. 대단해.”
“그러게. 여기 오기 전에 듣기로는 미제 사건은 1년에 한 건 해결할까 말까 라던데 지금 보니까 또 주위에서 괜히 겁준 건가 싶기도 하고.”
노희재와 유진호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국 돌고 돌아, 다시 강민혁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하긴. 나를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민혁이 이 녀석이 대단한 거지.”
“그렇죠? 초반에는 운이 좋았나 해서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했는데, 이제 그런 마음도 안 들어요.”
“우리랑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 경찰대 때 기억나지? 이 녀석. 떡잎부터 달랐어.”
강민혁은 자신을 앞에 두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민망해 그저 듣고만 있을 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비결이 뭐야? 좀 알려줘.”
유진호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그제야 대답했다.
“비결이요?”
그가 묻는 비결.
미제 사건 수사팀에 들어온 지 약 4개월째. 굵은 사건들을 지나 몇 달째 강민혁은 미제 사건 검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실적은 단연 최고.
지금껏 유례없는 기록을 매일매일 갈아치우고 있었고, 이미 경찰들 사이에선.
‘범인 잡는 귀신’, ‘헐크 형사’, ‘경찰계 셜록’ 등등 수많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 비법은 역시 ‘기억을 읽는 능력’과 타고난 힘 덕분이었다.
타고난 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 ‘능력’. 누군간 사이코메트리라 부르는 이 초능력은 형사인 강민혁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익숙해지기도 했고.’
최근 몇 달 사이 강민혁의 검거율은 수식 상승했고,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능력이 익숙해진 것을 넘어, 구체적인 능력의 활용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단순히 기억을 읽는 것이 아니었어.’
지금까지 단순히 누군가의 손을 잡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을 겪고 능력의 활용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특징을 발견했다.
‘키워드.’
이 능력은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인생을 살펴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정 시점. 특정 상황을 한정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뿐. 그 장면 역시도 무작위로 선택되었다. 사건을 조사하며 전혀 관계없는 기억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던 이유. 그것은 사건을 조사하며 그 핵심 키워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키워드를 알고 있었기에 그 상황에 맞는 기억을 읽어냈다.
그 사실을 강민혁은 눈치챘고, 지난 몇 달간 실험 아닌 실험을 거듭했다.
‘키워드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상황과 연관된 기억을 읽을 가능성이 커진다.’
단순한 예로, 커피라는 키워드가 있으면. 커피를 넘어 아메리카노, 테이블 위의 아메리카노, 시체에 쏟아진 아메리카노 등으로 확장할수록 더 구체적인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식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역시 마찬가지.
이미 검거한 범인의 동료들을 통해 그들의 기억을 읽어냈다.
키워드는 ‘범인 한세영이 자주 이용하는 골목길.’
그를 통해 강민혁은 그가 어디로 도망갈지 예측했고 그곳에서 기다렸다. 범인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애용하는 그곳으로 발길을 향했고 결국 검거된 것이다.
‘이걸 말해줄 수도 없고.’
하지만 비법을 물어오는 유진호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긴 어려웠다.
믿을 리는 만무하고, 알려준다 해서 그가 사용할 수 있을 리는 더더욱 없을 테니.
그저 웃음으로 때우려던 그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나?”
최재희 팀장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모여있던 우리는 눈치를 보며 바로 흩어졌고, 최재희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사무실을 둘러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강민혁 경위.”
“예.”
“이번 사건도 깔끔히 해결했더구먼. 수고했네.”
강민혁은 곧장 최재희를 보며 대답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뜸 들이는 그를 쳐다보자. 그가 입꼬리를 살짝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이번 특진 심사 자네를 넣어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