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41화 (41/124)

41화. <천장의 시체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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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인도로 너만 버텨라.]

메모에 적힌 마지막 글귀.

짧은 문장 속의 두 단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강민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의 머릿속엔 비슷한 생각이 스쳐 갔다.

‘성령 인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 단어는 종교적인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육대주는 공예품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성령’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까.

천장 위의 그들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의문이 피어났다.

그리고.

‘너’

메모의 내용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이 마지막 글귀에 직접 드러났다.

‘너’라는 누군가에게 이 메시지를 보내거나, 보내려고 했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곧, 천장에서 죽은 이들 외에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제삼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했다.

“사건 파일···. 아니. 수사 과정이 기록된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있습니까?”

생각을 마친 강민혁이 다급하게 외쳤고. 순간 매섭게 번뜩이는 눈을 본 박호산은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꺼냈다.

“여, 여기 있네. 내가 기록해둔 것이네.”

그가 건넨 것은 자신의 수첩. 사건을 조사해오며 그간의 과정을 스스로 정리해 기록해 놓은 자료였다.

“잠깐, 확인해 보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게.”

강민혁은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첩을 펼쳐 들었고, 손가락으로 가장 처음 사건이 벌어진 날짜를 찾아 나갔다.

[16일. 육대주 직원 6명 구속.]

육대주 사건의 시초는 채권자의 감금 및 폭행 사건. 그들의 고소로 인해 이 수사가 시작되었다.

[24일. 박순영 자진 출두. 졸도 및 잠적.]

그리고 회사 대표 박순영이 조사를 앞둔 시점에 졸도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사이 잠적했다.

[25일. 박순영 및 80여 명 용인공장 피신 – 추정.]

다음날, 박순영을 포함한 육대주의 직원 80여 명이 자취를 감췄고, 수사관들은 이날 그들이 용인공장으로 피신했으리라 추정하고 있었다.

[27일. 용인공장 주변 장 씨 조사.]

잠적 3일 차. 그의 수첩엔 강민혁이 알지 못했던 기록이 남아있었다.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박호산에게 물었다.

“이 27일 날 조사한 장 씨는 누구죠?”

“그날, 용인공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행인이네. 수상해 보여 조사했지만, 공장의 주방일을 하던 직원이라는 점 외에는 특별히 아는 건 없어 보였네.”

“...주방일을 하던 직원이었단 말이죠.”

박호산의 대답에 강민혁은 더욱더 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사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금방 찾아보겠네. 우리도 계속 주시하고 있으니 바로 찾을 수 있을걸세.”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강민혁의 분위기에 압도된 그는 당장 휴대전화를 붙들며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사건일지를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28일~29일. 용인공장 수색. 창고 안, 어린아이들 발견. 탈의실 천장 깨진자국-천장 위 32구 시체 발견.]

그리고 강민혁과 이민재가 도착했던 전날 새벽. 용인공장에서 발견한 아이들과 천장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후부터는 함께 했기에 그대로 수첩을 덮었다.

“그···. 장 씨가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겁니까?”

그때 옆에 함께 있던 이민재가 궁금한 듯 물어왔다.

강민혁이 장 씨를 만나보려고 하는 이유. 무언가 중요한 단서를 알아차린 것이 있는지 물어온 것이다.

“글쎄요···. 아직 확실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강민혁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의문만 가득할 뿐, 확신할 수 있는 정보는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메모에 적힌 제삼자, 그리고 공장을 어슬렁거렸다는 장 씨. 연관이 없을지언정 의심을 피해가긴 어려웠다.

‘만약 무언가 숨기고 있다면···.’

수사관들은 속일 수 있었겠지만.

‘나를 피해 갈 순 없을 것이다.’

강민혁이 자신의 오른손을 움켜쥔 그때. 통화를 끝낸 박호산이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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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장현숙은 주위를 둘러싼 시커먼 형사들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호산의 안내로 우리는 곧장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장 씨, 그녀는 용인공장의 주방장으로 일하며 벌써 몇 년째 육대주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직원이었다.

“27일 용인공장에는 어째서 간 겁니까.”

제대로 된 질문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무것도 모른다며 회피하는 그녀였지만.

강민혁은 거두절미하고 질문을 시작했다.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기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녀.

“하아···. 계속 이런 식이라네. 저번에도 마찬가지였어. 뭔가 알아내긴 힘들 걸세.”

옆에서 관망하던 박호산은 그녀가 보지 못하게 짧게 한숨을 쉬고는 귓속말을 걸어왔다.

“사건은 대충 결말이 나온 것 같으니. 그만 포기하고 마무리하는 게 어떤가.”

그리고 그는 더는 알아낼 게 없다고 판단하며 여기서 그만두길 권유했다.

강민혁은 장현숙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침묵을 유지하며, 잠시 대답을 미뤘고.

그녀의 눈이 흔들리는 순간.

“10분···. 10분만 단둘이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대답했다.

“음···. 자네가 원한다면야. 알겠네.”

박호산은 시간만 낭비하리라 생각하는 듯 내심 내키지 않는 눈치를 주었지만.

“잠시, 나랑 대화 좀 하지.”

“예, 알겠습니다.”

이민재를 눈치껏 데리고 나가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장현숙은 서둘러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돌렸고.

“이제 저랑 단둘이 이야기 나눌 겁니다.”

강민혁은 그녀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이러셔도 소용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경계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의 형사들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제가 큰소리치거나 협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과할 정도로 경계하는 태도에 어느 정도 상황이 그려졌다.

앞서 장현숙은 형사들에게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 했고, 당시의 분위는 꽤 험악했을 것이다.

박호산은 강민혁에게 예의를 차리며 대해주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급에 따른 대우였다. 상대적으로 계급이 낮은 이민재에 하는 태도나 통화를 들어보면 그는 꽤 거침없는 스타일이었고.

그가 조사하는 스타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혁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강민혁 경위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자.

“장···. 장현숙입니다.”

그녀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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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기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의 장현숙이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 손 좀···.”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려가자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야 다급히 손을 놓아주었다.

‘역시 장현숙이 메모의 대상이었어.’

가장 먼저 그녀를 통해 읽은 기억은 메모에 관한 내용이었다.

천장에서 목을 매단 남성과의 대화. 그는 용인공장의 공장장이었고 때는 27일.

아직 형사들이 공장에 들이닥치기 전 그때의 상황이었다.

‘박호산 형사가 충격 좀 받겠어.’

그녀를 통해 읽은 기억은 단순히, 공장장과 눈앞의 장 씨가 메모를 주고받은 장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과 메모의 내용을 토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사망 추정시간.

27일 저녁, 메모의 내용으로 보아 박순영을 비롯한 직원들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형사들이 공장을 수색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형사들이 공장에 도착해 장 씨를 추궁하고 수색할 때 역시, 마찬가지일 터.

공장의 내부를 수색하고 있던 그때. 천장 위에선 수십 명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아직 박호산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하지만, 결국 국과수를 통해 듣게 될 것이고 꽤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보셔도 저는 아는 게 없어요.”

강민혁이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자, 부담을 느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하지만 강민혁은 여전히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방금 살펴본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릴 뿐.

‘믿을 순 없지만. 그러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

그가 두 번째로 본 그 장면.

박순영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강의하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눈앞의 장현숙에 물었다.

“육대주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군요.”

“...!”

순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이내 표정 관리하며 되물었다.

“무슨,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역시 모르쇠로 일관하려 했지만, 그 방법은 더 통하지 않는다.

“육대주의 박순영 대표···. 아니 박순영 교주의 명령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 그걸 어떻게.”

그리고 이어지는 강민혁의 질문에 그녀는 이제는 침묵할 수 없었다.

공예품을 만드는 기업을 넘어 수많은 사회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육대주의 정체는.

교주 박순영이 만든 거대 사이비 종교였다.

‘그럼 모두 이해가 돼.’

강민혁이 처음 공장에 들어섰을 때의 위화감부터, 지금껏 이해하기 힘들었던 상황들.

가장 먼저 의아함을 느꼈던 것은 공장의 모습이었다.

공장 내부에 수많은 상자와 공예품들이 놓여있지만, 그 어디에도 직접 생산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직원들이 스스로 사채 및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돈을 끌어다 모아 투자유치를 벌인 점.

그 외의 모든 것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결국, 직원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육대주에 헌납했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장현숙 역시 마찬가지.

“당신이 무엇을 믿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믿고 의지하던 교주는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며 죽었고, 더는 남아있는 건 없습니다.”

“...”

“당신이 입을 닫아도. 제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결국 모든 것은 밝혀질 겁니다. 이제 그만 털어놓으세요.”

강민혁은 인상을 쓰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그녀의 눈을 보며 이야기할 뿐.

하지만 장현숙은 심하게 요동쳤고,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단순 폭행 사건으로 시작했던 수사는 대형 사기 사건으로 변하였고, 결국 사이비 종교사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때 이야기는 잘했는가? 어때 뭐 별거 없었지? 그래도 수고했네. 사건은 우리가 잘 마무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장현숙을 뒤로하고 나오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는 박호산. 그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거라 단정하며 어깨를 두드렸지만.

“사건. 마무리됐습니다.”

강민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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