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의경 살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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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장현수의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 의문을 제기할 수도, 의심할 수도 없는 국과수의 부검 결과였다.
휴가 중인이었던 의경인 장현수는 어떤 이유에서든 경찰청에 들어왔고, CCTV를 피해 별관의 옥상에 숨어있다가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결론이었다.
‘그저 우연의 일치였나?’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과만 제거하고 보면 그저 독특한 상황일 뿐. 범죄의 가능성은 작아 보였다.
강민혁은 지금껏 자신이 너무 어렵게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피어날 무렵.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이상한 점이라면?”
“사체. 그러니까 장현수 씨의 몸에서 카페인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과도할 정도로 높게 검출되었습니다.”
강민혁의 물음에 바로 답변이 돌아왔지만,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어떤 의미죠?”
“우선, 카페인을 과다복용할 시 심장박동 증가와 심장마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인의 경우 카페인 최대 일일 섭취 권고량은 400mg 정도로···.”
카페인과 콜레스테롤 수치에 관해 설명하던 그가 스스로 말을 멈추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과도한 카페인과 콜레스테롤은 심장마비를 일으킵니다. 장현수 씨의 사망 원인도 그로 인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간략히 설명했다.
“얼마나 높은 수치가 검출된 겁니까? 그날 커피를 많이 마셨다거나···.”
“아니요. 일반적으로 음식으로 섭취할 수 있는 카페인과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훨씬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약을 통해서, 그것도 꽤 오랜 기간이 아니면···.”
강민혁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에 강민혁이 다시 한번 되물었다.
“일부러 카페인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였다는 말입니까?”
“일단 제 소견은 그렇습니다. 검사 결과 특별한 병이나 치료 중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주기적으로 카페인과 콜레스테롤을 남용했다고밖엔 설명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아니면···.”
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강민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장현수의 카페인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였다···.”
“글쎄요. 거기부턴 수사관님의 역할인 것 같네요.”
그 대화를 끝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장현수의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 카페인과 콜레스테롤 과다복용으로 인한 결과였다.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저지른 결과라면 이건 분명한.
‘살인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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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오래 기다렸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잠시 구석에서 통화를 마친 강민혁은 데스크로 돌아와 앉았다.
여전히 긴장한 듯 보이는 이보연 일경과 마주한 그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마저 끝낼까? 장현수가 CCTV에 찍히지 않고 들어온 방법. 그리고 자경대 대원이라면 그 방법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예. 일경까지는 모르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상경 이상부터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보연 일경은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며 다시 한번 부탁했다.
“정말, 소대장한테는 비밀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 뭐 범죄행위만 아니라면. 그 정도 융통성은. 약속할게.”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답을 주자, 그제야 그는 결심한 듯 서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별관 뒤쪽에 개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
머뭇거리던 그가 내뱉은 한마디. 강민혁은 순간 놀랐지만, 표정을 유지하며 묵묵히 들어주었다.
“산짐승이 만든 것인지 원래 있던 구멍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전 우연히 제가 발견한 구멍입니다.”
“네가 발견했다고?”
“예. 당시에는 제가 이경이어서 소대의 쓰레기를 비우는 담당이었는데, 그 길에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보연 일경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별관 뒤, 개구멍이 있고 그곳을 통해 장현수가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되면 CCTV에 잡히지 않은 것 또한 해결된다. 별관 입구에는 CCTV가 존재하지만, 뒷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면 가능했다.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이 있다고?”
“...처음부터 큰 구멍은 아니었고. 저는 그저 신기해서 맞선임에만 말했을 뿐인데···.”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그가 처음 구멍을 발견했고, 선임들에게 말하자 그들이 몰려와 억지로 구멍을 넓혔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구멍 한 번도 못 봤는데?”
“워낙 눈에 안 띄는 곳이기도 하고 그곳으로 다니는 직원들도 없어서···. 선임들이 가려놓기도 했으니 눈치채지 못하셨을 겁니다.”
어떤 상황인지는 충분히 이해했기에 마지막 남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건넸다.
“그 개구멍을 대원들이 자주 이용했고?”
이보연 일경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도 크네. 명백히 탈영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을 테고. 소대장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
“선임들은 주로 업무시간이 끝나고 어수선할 때 편의점이나 피시방에 다녀오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지방청은 소속이 다들 달라서 일일이 파악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니···.”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조사하며 알게 된 근무소대의 부서만 해도 자경대부터 시작해서 홍보단, 112상황실, 경무계, 홍보실, 운전병까지 총 6가지였다.
그들의 근무시간이며 근무의 형태 또한 모두 달랐으니, 소대장 혼자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해가 될 걸 우려해 모른척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차, 참고로 저는 개구멍을 이용한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마무리되자 그는 다급하게 자신은 이용하지 않았음을 어필했다.
강민혁 또한 그가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어깨를 토닥여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용기 내줘서 고맙다.”
그리고 본관을 빠져나와 향한 장소는 별관의 뒤편. 주차장을 가로질러 곧장 그곳으로 이동했다.
“어디 보자.”
강민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쓱 훑어보았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금속의 울타리. 그 울타리는 별관 주차장을 넘어 경찰청 전체의 외부인 출입을 막고 있었다.
별관 뒤편엔 조그만 산이 자리했고, 그 사이에도 역시 울타리가 존재했다.
“엇차.”
그 울타리 앞, 지금 보고 있자니 매우 어색한 드럼통 하나가 놓여있었다.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치우자 사람의 몸이 겨우 통과할만한 구멍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정도로 나가고 싶었을까?”
이해하기 힘든 한편 씁쓸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들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이 개구멍을 마음껏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한번 이용하고 들키지 않자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또 한 번···.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은 줄어들었겠지.
‘자경대 소속인 그들이 이 정도 CCTV를 피하는 건 가소로웠을 것이고.’
또한, 다른 부서의 대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아, 개구멍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들킬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죽은 장현수 역시 그들 중 하나였고.’
그가 이 개구멍을 통해 청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충분히 파악했다.
하지만.
“어째서 보이지 않았을까.”
강민혁은 자신의 손을 펼치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악수를 통해 다른 이의 과거를 읽는 능력.
하지만 전 소대원들의 기억을 읽었음에도 이 개구멍에 대한 기억은 읽히지 않았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제약이나 조건이 있는 것일까.’
당장이라도 내가 모르는 그것들에 대해 파악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우선은, 오늘 안에 이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궁금증을 뒤로한 채 별관의 계단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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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슨 일이 십니까. 저번에 전부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을 따로 부른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있는 그대로 불만을 표시했다.
“쉬는데 미안합니다. 최원희 상경. 몇 가지 궁금한게 생겨서요.”
하지만 강민혁은 웃으며 그를 상대했다.
이미 앞서 그와 면담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금 그를 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저번에 전부 말했···.”
“사회에서 약사를 하다가 왔다고 했지?”
인상을 찌푸리며 되풀이하는 그의 말을 짜르며 다시 물었다.
순간 정색하는 강민혁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자 그가 움찔하며 바라보았다.
“말해. 약사를 하다 온 거 맞아?”
최원희를 다시 불러 강하게 압박하는 이유. 그는 강민혁이 생각하는 장현수를 살해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 그게 왜 궁금합니까.”
그는 애써 담담하게 받아쳤지만, 눈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그냥 물어본 겁니다. 대단해서요. 흔히 만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강민혁은 또다시 분위기를 바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눈앞의 최원희는 황당한 듯 바라보았지만, 어느새 그에게 다소곳이 집중하고 있었다.
“약사면, 영양제 같은 것도 따로 챙겨 먹습니까?”
강민혁은 수첩을 이리저리 넘겨보며 별거 아닌 흘러가는 질문인 양 물었다.
“예. 그냥 뭐. 이것저것.”
그리고 그의 대답이 돌아왔을 때.
탁-!
수첩을 접으며 다시 물었다.
“이것저것 어떤 종류를 먹습니까?”
“그게 왜 궁금하죠? 현수 일 때문에 부른 모양인데 잡다한 이야기 그만하고 어서 본론으로 넘어가죠.”
하지만 그는 대답을 회피하며 강민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서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으나.
눈앞의 형사는 겨우 그런 얕은수에 넘어갈 정도의 초짜가 아니었다.
“이봐, 최원희.”
“...”
강민혁이 그를 부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이어갔다.
먼저 압박을 넣은 것은 강민혁.
“지금 본론을 말하고 있으니까 대답해. 어떤 영양제를 먹지?”
“...”
“...”
“...종합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정도 먹고 있습니다. 됐습니까?”
한동안 침묵하던 그의 대답이 돌아왔고.
강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확인해봐도 되겠지?”
“...”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사실 강민혁은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다.
국과수를 통해 장현수의 사인이 밝혀진 순간, 그의 머릿속엔 한 명의 인물이 스쳐 갔다.
‘약사 최원희.’
첫 면담 당시, 그가 의심될 만한 상황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원희는 피해자 장현수와 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원들의 증언과 스스로 증언 그리고 그에게서 읽은 기억까지도.
두 사람은 그저 친한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항상 밥을 같이 먹고, 근무를 같이 들어가고, 여가에도 함께 행동하는.
하지만 강민혁은 그의 기억 속에서 한가지 장면을 보았다. 장현수의 사인을 듣기 전까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그 장면.
‘그는 장현수와 알약을 나눠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