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의경 살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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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서울지방 경찰청은 지금껏 유례없던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지난밤 경찰청에서 벌어진 사망 사건, 비록 의경들 생활하는 근무소대이긴 하였으나 수십, 수백 명의 현직 경찰들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장소였다.
그러한 장소에서 발견된 사체와 범죄 가능성의 존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의경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아침 일찍 긴급 소집된 회의, 단단히 화가 난 심재준 청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질타했다.
그 대상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대장과 사건 당일 당직이었던 강민혁.
“하아···. 요새 좀 잠잠하나 했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부여잡은 심재준은 한숨을 내쉬더니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비록 그들의 잘못은 없었지만, 사건은 벌어졌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최대한 소문 퍼지지 않게 빠르게 처리해! 당장! 냄새 맡고 연락해오는 기자들한테는 어떤 정보도 넘겨주지 말고!”
“청장님, 그럼 사건 조사는···.”
“뭐? 사건?”
눈치 없는 소대장이 한마디 거들었지만, 오히려 그의 심기를 건드린 듯하였다.
“여기에 사건이 어디 있어? 사건? 경찰청에서 살인사건이라도 났다는 거야 뭐야?”
“아, 아닙니다! 최대한 빠르게 조치하겠습니다.”
“당장 사고사로 마무리해!”
그는 최대한 사건을 빠르게 무마시켜 이슈가 되는 것을 막아보려 했다. 경찰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조롱과 질타. 자신의 커리어에 남을 오점을 걱정하는 것이었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기엔 의문점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강민혁이 그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어째서 휴가 중이던 의경이 소대에서 죽어있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음은 물론, 누군가 그를 살해했을 가능성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이대로 아무것도 밝혀진 것 없이 사건을 덮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뭐?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미제사건 몇 개 해결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지? 허, 참. 뭐 의문점이 있어?”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난 심재준이 코앞까지 다가와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강민혁은 뒷짐을 진 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망자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어느 하나 밝혀진 사실이 없습니다.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사건은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허.”
오히려 당돌하기 그지없는 대답에 심재준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봐, 강민혁 잘 들어. 경찰청에서 사람이 죽었어. 그것만으로도 난리가 날 텐데. 더군다나 살인이다?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강민혁의 계속되는 반항 아닌 반항에 심재준의 손이 절로 올라갔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뭐 책임? 네 까지게 무슨 수로. 살인이 기정사실로 되고 범인을 찾지 못하기라도 하면. 무능한 경찰이다, 무늬만 경찰이다. 프레임 씌운 다음 여기저기서 물어뜯기 시작할 텐데 네가 무슨 수로 책임을 져?”
“범인만 밝혀내면 해결될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국과수에 부검 요청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소식 전해졌을 것이고, 이대로 사건을 덮으면 더 논란이 될 뿐입니다.”
“뭐? 누구 마음대로 부검을 신청···.”
심재준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회의장의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모두 시선을 회피했다.
“후···. 그래. 네가 책임지고 조사를 하든 지지고 볶든 마음대로 해 봐.”
이내 그는 더는 화낼 기운도 없는 듯 한숨 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 오늘까지야. 오늘 안에 그 어떤 단서 하나라도 찾지 못하면 그대로 끝날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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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던 청장과 만남을 뒤로한 채 강민혁이 향한 곳은 본관의 안내 데스크.
‘시간이 없어.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한다.’
어젯밤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조사로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오늘 하루, 이것조차 청장에게 억지로 따낸 기회였다.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기에 곧장 조사를 시작했다.
“잠깐 CCTV 좀 확인할게.”
“예, 예. 알겠습니다.”
자동문이 있는 넓은 홀의 좌측,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 중이던 자경대 대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CCTV를 보고 있던 그는 이미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켜주었다.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여기랑 위경소가 전부지?”
“예, 맞습니다.”
자경대. 즉 자치경비대 소속의 의경들의 주된 업무는 CCTV 관찰과 외부인 출입 관리였다.
본관 1층의 안내 데스크와 경찰청을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위경소 두 군데에서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가 설치되어있었다.
“따로 녹화는 되지 않는 건가?”
“예, 실시간 확인만 가능합니다.”
혹시나 CCTV에 조그만 단서라도 찍히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이래선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민혁은 다시 고개를 돌려 그에 물었다.
“CCTV로는 주로 어떤 걸 관찰해?”
“민원인이 들어왔을 때 다른 부서로 가지 않는지 동선파악과 사팔을 주로 확인합니다.”
물음에 그는 한쪽에 놓인 종이를 내밀며 대답했다.
[청장 – 05시 30분 IN]
[1부장 – 05시 17분 IN]
[2부장 – 05시 00분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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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과장 – 05시 11분 IN, 07시 OUT]
그 종이의 내용은 경찰청 내부의 고위간부들이 청에 들어왔다 나간 시간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경찰 음어로 현재 위치를 뜻하는 사팔을 확인해 적어놓은 것이었다.
“그래? 어제 사팔 적어놓은 거 있어?”
강민혁은 혹시나 하여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하루 근무가 끝날 때 적어놓은 사팔은 제거하는 게 원칙이라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
강민혁은 못내 아쉬웠지만 대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넘어가려는 찰나. 그가 대뜸 말을 걸었다.
“근데···. 대충 기억은 하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강민혁이 바로 물었다.
“그럼, 저녁 6시에 7시 사이 기억해?”
“음···. 예. 18시 이후로는 경무과장님 혼자 남아 계셨습니다. 제가 그때 근무여서 정확히 기억합니다.”
“혹시 그때 내 위치도 기억해?”
“예. 별관 2층 사무실에 머물고 계셨던 거로 기억합니다.”
강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간부들의 사팔 따위 관심도 없을뿐더러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있는 의경. 이보연 일경이 사망 추정시간대에 근무 중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물어본 내용이었다.
‘근무는 제대로 섰던 것 같은데.’
단지 근무태도를 확인하려는 의도가 아닌, 그가 CCTV에서 무언가를 놓쳤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혹시 장현수가 들어오는 걸 보지는 못했고?”
“자, 장현수 수경 말입니까···.”
사체로 발견되었던 그에 관해 묻자 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예, 경무 과장님이 운동 삼아 계단으로 주로 이동하셔서. CCTV를 유심히 봤는데 장현수 수경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내 돌아온 그의 대답에 강민혁이 집중했다.
‘계단으로 다녀서 CCTV에 집중했다?’
그 말뜻을 파악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려 CCTV 내용을 직접 확인했다.
“본관, 별관 둘 다 계단에는 CCTV가 없는 건가?”
“예, 맞습니다. 주로 복도에만 CCTV가 설치되어있고, 사무실이나 계단,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에는 설치되어있지 않습니다.”
그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수십 개의 화면 그 어디에도 계단으로 보이는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통해서 옥상으로 이동했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단순히 생각하기엔 그럴듯한 내용이었다. 경찰청 별관의 계단에 CCTV는 설치되어있지 않았고, 1층부터 4층까지 어디에도 들리지 않고 바로 올라갔다면 찍히지 않았을 것이다.
옥상의 문 앞 역시 CCTV는 없었기에 근무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정문에서 별관까지 오는 동안 CCTV에 찍히지 않는 건 불가능해.’
별관 내부에서 계단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문에서 별관까지의 이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위경소가 있는 정문을 지나, 본관의 안내 데스크. 본관의 뒷문을 빠져나오면 주차장이 있고 그곳을 지나야 별관이 나타난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CCTV의 화면만 적어도 50개 이상. 본관 내부를 비추는 화면을 빼더라도 위경소부터 주차장, 별관까지의 거리를 최소 20개의 CCTV가 지켜보고 있다.
그럼 장현수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별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인가.
‘사각지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다시 한번 화면에 집중했다.
사각지대의 존재. 아무리 CCTV가 많다고 해도 분명 담지 못하는 공간은 존재했다.
옆에 앉아있는 이보연 일경 역시 경무과장을 찾기 위해 집중해야 할 정도라 했으니, 사각지대가 적은 편도 아닐 것이다.
사망한 장현수는 자경대 소속이었고, 전역을 앞둔 수경이었다. CCTV의 위치라면 청에 있는 직원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아.’
강민혁은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저었다.
CCTV 자체만 놓고 본다면 분명 사각지대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존재를 제외했을 때의 이야기다.
정문 근무자, 그러니까 자경대는 항상 3명이 함께 교대로 24시간 근무했다. 정문에 2명, 데스크에 1명은 항시 그 자리에 있다는 의미였다.
CCTV를 피해 사각지대를 통해 이동한다고 해도 정문과 본관은 반드시 지나갈 수밖에 없다.
함께 생활하는 그들이 서로를 몰라볼 일도 없을뿐더러, 얼굴을 가렸다면 더더욱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겠지.
‘장현수···. 너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냐.’
강민혁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옆에 앉아있던 그가 말을 건네왔다.
“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안절부절못하며 무언가 굉장히 고민하는 모습. 한참을 뜸 들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대장한테는 비밀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장현수 수경이 어떻게 들어 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
“아마 입초 근무자들은 전부 알고 있을 겁니다.”
“뭐?”
순간 저도 모르게 그의 발언에 반문했다. 다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을 기다던 그때.
지이이이잉.
주머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꺼내 확인했지만 처음 보는 번호. 하지만 어디서 온 전화인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자, 잠깐만.”
중요한 말을 앞두고 있던 이보연 일경의 말을 잠시 끊으며 전화를 받았다.
“미제사건팀 강민혁입니다.”
“국립 과학수사 연구소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다리고 있던 전화였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 처리가 진행된 모양이었다.
강민혁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물었다.
“사망 원인이 나온 겁니까?”
“아, 예. 그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장현수 씨의 사망 원인은···.”
전화를 건 그는 곧장 용건을 말하는 강민혁에 잠깐 당황한 듯했지만, 급하다는 상황을 전해 들은 듯 뜸 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심장마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