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아마추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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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복싱 대회 출전이 결정된 이후, 강민혁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복싱체육관에 출입했다.
그리고 시작된 백일호의 특훈.
“원 투 훅 투 원 투.”
미트를 든 백일호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면, 강민혁의 주먹이 펑펑 소리를 내며 정확히 그곳을 타격했다.
‘엄청난 성장세다.’
백일호는 특훈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강민혁을 보며 내심 감탄을 내뱉었다.
기술하나, 동작하나를 알려주면 그는 스펀지처럼 그것들을 흡수했다. 하루, 아니 몇 시간 만 지나면 그것들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
“더 빠르게! 이쪽이다!”
백일호의 미트는 단순히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 경기에서처럼, 상대의 움직임, 급소, 연계하기 힘든 동작까지. 단순히 눈으로 따라간다고 하여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철저하게 계산적인 움직이었으나.
팡! 팡! 파방!
강민혁의 주먹은 여지없이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주먹을 뻗는 것이 아닌, 백일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정확한 궤도를 예상하며 주먹을 뻗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파워, 속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까지, 그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땡! 땡! 땡!
그때, 체육관에 설치된 종이 라운드의 종료를 알렸고, 두 사람은 동시에 멈췄다.
“잠깐 쉬었다가 하지. 어때? 버틸 만한가?”
“예! 문제없습니다!”
벌써, 8라운드째.
백일호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린 강민혁을 보며 물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처음에는 3라운드도 버티지 못했던 놈이···.’
강민혁은 체력적인 부분에서 역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여 결국 이겨내게 만드는 백일호의 훈련방식 덕분이었지만, 결국 그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결코 일뤄낼 수 없는 성장임이 분명했다.
‘허허, 독한 놈.’
백일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단기간 내 이렇게 엄청난 성장, 가르칠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그를 보며 얼굴에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다만.
‘나도 늙었구먼. 몸이 못 따라가겠어.’
자신 역시 예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강민혁의 훈련을 진행하면 할수록, 늙어버린 자신의 신체가 따라오지 못했다.
지금만 해도 미트를 잡고 있던 그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다만, 뒷짐을 지며 손을 숨기고 있을 뿐.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 시켜주는 제자에게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땡땡땡.
그때 다시 경쾌하게 울려 퍼진 종소리가 라운드의 시작을 알렸고, 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미트를 잡았다.
“자, 다시 훈련이다.!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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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대회 날이 다가왔다.
“이제 진짜 실전이다. 아무리 훈련 때 잘 해냈더라도 오늘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다. 알고 있겠지?”
백일호는 처음 시합에 출전하는 강민혁이 긴장하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한편, 그의 눈빛을 보고는 잔뜩 기합을 넣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강민혁 역시 힘차게 대답하고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저 아마추어 대회였으나 꽤 그럴듯하게 준비되어있었다.
근처의 체육관을 통째로 빌려 대회를 주최한 듯 주위에는 온통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선수와 관장이 전부였다.
대회가 진행되는 사각 링의 경기장이 중앙에 놓여있었고, 입구를 제외한 삼면에는 경기를 구경할 수 있는 좌석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이제 곧 예선전이 시작됩니다. 출전하는 선수들은 자리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잠깐 구경하는 사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체육관을 울렸다.
오늘 경기는 예선부터 결승까지 단번에 진행되는 토너먼트 방식. 출전선수라 해봐야 8명이 전부였고, 아무래도 아마추어 경기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좋아! 내가 봤을 때, 지금 네 몸 상태는 최상이다. 마음껏 날뛰고 와라!”
백일호는 강민혁의 등을 찰싹 때리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저 응원의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보고 있는 강민혁의 몸 상태는 최상, 그 이상이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체력이며 힘, 지구력, 기술 그 무엇하나 발전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은 외적인 면에서도 드러냈다.
‘왜 다들 힐끔힐끔 보는 거지?’
오늘 경기에 출전하는 강민혁의 복장은 검은색 복싱용 트렁크 한 장이 전부였다. 당연히 위를 벗고 있었기에 상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원래도 태가 좋았던 그의 몸이었지만, 대회를 준비하며 진행했던 특훈과 어마어마한 운동량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졌다.
‘와 씨, 뭐야? 이런 사람이랑 붙는다고?’
‘아마추어 몸이 아닌데?’
오늘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과 감독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민혁의 몸에 꽂혔다.
떡 벌어진 어깨에 탄탄한 가슴, 균형 좋은 비율에 과하지 않은 근육까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신체였고 저 정도의 근질이 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지 이 바닥에 있는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 만큼은 되도록 대전에서 피해야 해.’
본능적으로 감독들은 강민혁과 자신의 선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파악을 마쳤다.
‘붙으면 반드시 진다.’
경험이 많은 감독들은 단번에 현실을 파악하며 이 녀석 만큼은 피하게 해달라 기도할 뿐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지켜보고 있으마.”
경기는 지체없이 시작되었고, 강민혁이 링 위에 들어섰다.
상대방 역시 로프를 젖히며 링 위로 들어왔고, 그와 마주했다.
‘첫 출전인가?’
심판이 몸을 수색하며 주의를 시키는 사이, 상대방을 관찰했다.
처음 대회에 출전한 모양인지 몸을 부들거리는 그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겠습니다.”
그사이 준비가 끝난 듯 심판이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자, 상대방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시, 작!”
심판이 경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양 주먹을 광대까지 올려 가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앞의 상대를 살피며 통통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가볍다.’
그야말로 가벼운 발놀림. 눈앞의 상대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휘감으며 모든 정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경기장 안의 자신과 상대방 외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으어어억!”
그 사이, 상대가 먼저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첫 출전이 맞는지 이미 그는 긴장과 더불어 심하게 흥분되어 있었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던져왔고, 심하게 힘이 실려있었다.
‘어설퍼.’
그는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 눈에 뵈는 것은 없어 보였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배워온 기술이나 스텝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 듯.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뻗는 그 모습은 길거리 싸움꾼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 볼 것도 없네.’
차분히 가드를 올린 채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던 강민혁의 눈빛이 돌변했다.
더는 분석 할 거리조차 없다는 생각.
턱.
순식간에 가드를 올리고 있던 강민혁의 왼손이 잽을 날렸다.
당황한 상대가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렸지만.
퍽. 퍽. 퍽.
그야말로 바위로 계란치기!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강민혁의 주먹 앞에 가드 따위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마치 대포 같은 주먹이 팔에 닿기 무섭게 그의 가드는 바스러졌고, 기세를 몰아 공격을 매섭게 이어갔다.
슈우욱. 펑. 슈우욱. 펑.
고요한 경기장 안에는 바람 소리와 타격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일방적이다 못해 학살적인 경기.
보다 못한 심판이 다가와 강민혁을 말리며 승리를 선포했다.
“허억. 허억······. 응?”
강민혁은 경기가 종료됨과 동시에 숨을 몰아쉬며 정신이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썰렁한 분위기에 주위를 돌아보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괴물이다.’
‘엄청난 신예가 나타났다.’
‘복싱의 판도가 바뀔 거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같이 얼이 빠진 모습.
백일호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축하한다. 첫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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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들이 전부 기권했다더군. 남은 경기는 결승전뿐이네.”
강민혁이 다음 경기를 준비하며 쉬고 있는 사이, 관계자의 호출을 받아 일어났던 백일호가 다가오며 소식을 전했다.
“감독들이 전부 삐꾸는 아닌 모양이지.”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앞선 강민혁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감독들과 일부 선수들이 겁을 먹고 남아있는 경기를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쩝. 실전 경험을 최대한 키우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구먼.”
백일호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결승전이 남아있으니, 긴장 늦추지 말게.”
“네, 관장님.”
기권한 상대들로 인해 강민혁은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했지만, 막상 결승전은 꽤 허무하게 끝이 났다.
“축하하네, 첫 대회에서 우승 그리고 첫 케이오까지.”
축하해주는 백일호의 말처럼, 강민혁의 결승전 승리는 KO.
즉, 녹아웃으로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강민혁이 상대에게 주먹을 날렸고, 미처 가드 하지 못한 상대는 정통으로 주먹을 맞고 쓰러졌다.
심판이 10초를 세는 동안, 그는 다운된 상태로 일어나지 못했고, 그대로 강민혁의 승리가 선언되었다.
“강민혁 선수, 우승 축하합니다.”
얼떨떨하기도 잠시, 어느새 강민혁의 이름이 새겨진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우승···. 우승이다!!!”
“축하하네, 축하해!”
강민혁은 우승 트로피를 하늘 높게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백일호는 그런 강민혁을 칭찬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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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관객석 한편에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가 썩 어울리는 그는 과거 백일호의 제자이자, 국정원 소속의 장석환.
그는 저 멀리 승리를 만끽하는 강민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백일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키워봐야지. 모르긴 해도 제대로 키워보기만 하면 최소 챔피언이야.”
“최소가 챔피언입니까?”
“신체, 감각. 근성까지 갖춘 놈이야.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도 무리가 아닐 테지.”
누군가 들었다면 다소 과장 섞인 표현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백일호의 눈은 꽤 정확했다.
줄이면 줄였지, 과장을 할 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직접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까지 찾게 된 것이었다.
‘과연, 탐낼 만한 인재는 확실하네.’
복싱에 일가견이 있는 그의 눈에도 강민혁의 재능은 특별했다.
빠른 상황부터 아마추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정확한 기술들. 무엇보다 무식할 정도의 그 힘은 감탄할만한 정도였다.
‘서울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수사팀.’
장석환은 다시 한번 강민혁을 힐끔 바라보고는 노트에 적어두었던 정보들을 되뇌었다.
그가 친분이 있는 백일호 모르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경기에 방해가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민혁 경위···. 경찰에 있기엔 아까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