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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읽는 환생경찰-24화 (24/124)

24화. <아마추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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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굵은 이목구비와 머리카락 한 톨 없는 머리로 인해 더욱 강렬해 보이는 인상의 노인. 그는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에 천 원짜리 지폐 두 장.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지갑 사정은 그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거야 원. 체육관 문을 닫을 때가 온 건가.”

씁쓸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노인은 백일호. 그는 복싱체육관의 관장으로 체육관 관장이기 이전에 이 바닥에선 꽤 유명한 감독이었다.

프로선수 육성은 물론, 그가 배출한 복싱 챔피언만 한 트럭.

하지만 그것은 다 옛날이야기일 뿐이었다.

“요즘 젊은것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쯧.”

그도 그럴 것이 백일호의 훈련은 정평이 나 있었다. 과하다 못해 혹독하기 그지없기로.

그의 독자적인 방식인 육체 능력을 최대까지 끌어올려 한계를 돌파하고 성장시키는 훈련을 받은 이들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 그의 훈련을 견뎌내는 이는 없었고, 시작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후우···. 관원을 아무나 받을 수도 없고.”

또한, 백일호의 교육 방식에는 독특한 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인성.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가능성이 보인다고 한들, 인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보인다면 그는 제자로 받지 않았다.

‘강인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한때 그가 가장 좋아했던 말이었으나. 오랜 기간 감독 생활을 해온 그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육체 능력이 뛰어나고 훌륭하다 해도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선수는 후에 탈이 나는 것을 그는 숱한 경험을 통해 확신했다.

하지만 그러한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체육관의 관원은 한없이 부족했고. 결국,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한지도 벌써 5년째. 이제 체육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될 시기였다.

“아니야 그 녀석이라면···.”

그때 백일호의 머리를 스쳐 간 한 사람. 얼마 전 체육관에 등록한 신입 관원이었다. 그는 복싱의 복 자도 모르는 생초짜였지만, 단 몇 시간 만에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보여준 몸놀림과 주체할 수 없는 본능적인 힘은 그야말로 복싱을 위해 태어난 사람과도 같았다.

“그 녀석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챔피언도 무리가 아니야.”

다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실전에서는 어쩔지···.’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실전에서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감독으로서는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로, 훈련에서는 훨훨 날아다니지만, 막상 본 경기에 들어갔을 때 제힘의 10분의 1도 발휘 못 하고 패배하는 이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 역시 그런 경우는 아닐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후우··· 의지가 없으니.’

당사자인 그가 선수가 될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꺄아아악! 그만두세요!”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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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러세요.”

“쓰읍. 조용히 하래도.”

백일호는 갑자기 들려온 비명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단숨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려갔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명의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네 명의 무리.

‘요즘에도 저런 놈들이 있구먼.’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이 곤경에 빠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백일호는 그런 상황을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서려고 했지만.

‘응? 저 녀석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한 발짝 물러섰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온다더니.’

그가 나서기도 전에 먼저 나선 이는 강민혁. 체육관의 신입 관원이자, 지금껏 그가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였다.

‘흐음···. 어떻게 하나 볼까?’

백일호는 강민혁의 행동에 흥미가 생겼고, 조심스럽게 숨어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뭐야? 저 새끼는.”

“갈 길 가쇼. 저승으로 가기 싫으면.”

양아치로 보이는 그들은 낄낄거리며 자신들을 막아선 강민혁을 조롱했다.

“못 배웠는지 입이 꽤 험하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아로 자랐나 보지?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모양이야.”

“뭐? 이 새끼가. 너 뭐라고 지껄였어?”

하지만 강민혁 또한 지지 않았다.

웃으며 말을 했지만, 그 대답은 분명 공격적이었다. 흥분한 네 명의 양아치들은 이내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으나, 그의 표정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더는 말로 안 한다.”

“아이, 너 뭐야? 지가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지 아나?”

그 사이, 여자는 도망갔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단단히 화가 난 그들 중 한 명이 품속에서 작은 커터칼을 꺼내 든 것이었다.

칼을 쥔 그의 손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으나, 상대는 한 명. 이 정도면 충분히 겁을 먹고 도망갈 거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

강민혁의 인상은 오히려 더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칼을 꺼내기 전까지 그는 그저 상황만 빠르게 해결하고 지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칼을 꺼낸 순간.

강민혁은 진심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뭐야? 쫄았냐? 그러니까 왜 겁도 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하지만 눈치 없는 그들은 말수가 없어진 그가 잔뜩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며 떠들기 시작했고.

그 순간, 강민혁이 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뭐, 뭐야. 이 새끼가. 해보겠다는 거야?”

“혀, 형님.”

“에이, 씨 몰라. 혼 좀 내줘.”

겁을 먹고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강민혁을 본 그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맞서기 시작했다.

“너 오늘 제삿날인 줄 알아라.”

이쯤 되자,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백일호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움직이려는 순간.

“아. 아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양치들 역시 마찬가지,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다가온 강민혁은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강민혁을 맞추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갈 뿐.

“으악.”

그리고 그가 뻗은 단 세 번의 주먹과 들려온 외마디 비명. 정신을 차렸을 땐 커다란 주먹을 쥔 그의 발아랜 세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쓰러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제압한 강민혁은 뻐근한 듯 손목을 돌리며 서 있었다.

“다, 당신 뭐야?”

칼을 움켜쥔 그는 본능적으로 떨리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 감히 우리를···. 너 얼굴 기억했어. 가, 각오해.”

그는 다리를 벌벌 떨면서 소리치더니, 이내 그대로 도망갔다. 자신의 동료들을 버리고 꽁지 빠지게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민혁은 이내 혀를 찼다.

“쯧. 의리도 없는 놈들. 각오는 무슨.”

달리기 시작한 강민혁은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았고, 완전히 제압했다.

그리고 인근 경찰서에 연락해 그들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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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정리되자, 백일호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관장님?”

“흠.”

강민혁은 그를 발견함과 동시에 다가왔고. 백일호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그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다친 곳 하나 없구먼.’

장정 네 명과 싸움. 심지어 엉성하지만, 무기까지 들고 있던 상대들과 홀로 맞섰다.

그런데도 상처하나 없는 깔끔한 승리.

그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이 녀석이 사용하던 기술은.’

자신이 가르쳤던 복싱 기술들이었다.

상대의 주먹을 머리를 흔들어 피하고, 빈틈을 발견해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라이트 스트레이트.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는 실전에서 완벽히 그 동작들을 수행해 내고 있었다.

‘과연. 믿을 수 없군.’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상황.

그가 체육관에 등록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건만, 단지 몇 번 알려준 동작을 그는 벌써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때문에 그가 더 탐이 났다.

“흠, 그래. 어디 가는 길인가?”

이내 정신을 차린 백일호는 또다시 성급하게 굴지 않고, 차분히 그에게 물었다.

“아, 저 체육관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체육관에? 어쩐 일로. 항상 오던 시간에 안 와서 오늘은 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강민혁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수줍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참가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백일호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곧장 그것을 받아 확인했다.

[아마추어 복싱대회]

종이에 써진 대회 일정, 그 또한 알고 있는 대회였다. 단지, 자신의 체육관엔 참가할 관원이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애써 벌렁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물었다.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어쩐일로?”

“...흠흠. 부상으로 바이크를 준다고 쓰여 있어서요.”

“바이크? 오토바이?”

백일호의 시선이 다시 전단으로 향했고, 1등 옆에 적힌 부상이 눈에 들어왔다.

복싱 자체보다는 그것이 목적인 듯싶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기회다!’

지금 눈앞에 있는 옥석을 보석으로 만들 기회. 아직은 선수에 관심이 없지만, 그를 챔피언으로 만들 기회라 생각했다.

“하하하, 아무리 아마추어 대회라지만 첫 출전에 1등을 노린다고.?”

백일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오만함을 비웃는 것이 아닌, 배포에 감탄하는 웃음이었다.

“...역시 무리겠죠?”

강민혁은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했지만.

백일호는 눈을 빛냈다.

“무리는 무슨, 앞으로 내 직접 특훈을 시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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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검은빛의 고풍스러운 차가 허름한 체육관 앞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운전사로 보이는 그는 상관으로 보이는 뒷좌석의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그는 슬며시 눈을 뜨며 대답했다.

“수고했네. 집에는 알아서 갈 테니 먼저 들어가 보게.”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차 문을 열고 내리려 하자.

“저···.”

“아, 내 정신 좀 보게. 걱정 말게.”

운전석에 있던 그가 멈춰 세웠고, 그는 곧바로 눈치챈 듯 목에 걸린 명찰을 벗으며 내려두었다.

[국가정보원 – 장석환]

이내 차에서 내린 장석환은 ‘참피온 복싱장’이라 적힌 허름한 간판을 쓱 보고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장님, 저 왔습니다.”

장석환은 익숙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지만, 체육관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문이 열려있는 것을 봐선 쉬는 날은 아닌 듯한데. 관장 백일호는 어딘가 잠깐 나간 모양이었다.

“하긴, 훔쳐 갈 것도 없지.”

장석환은 문을 열어놓고 체육관을 비운 백일호가 걱정됐지만. 이내 한번 쓱 훑어보고는 걱정을 지웠다. 도둑이 든다 해도 훔쳐 갈 물건이 없어 보였다.

“훔쳐 간다면, 줄넘기 정도려나?”

그마저도 얼마나 오래 썼는지 멀쩡한 기구를 찾기 어려웠다. 줄은 끊어진 채 묶어서 다시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색은 바래 누리끼리했다.

“그게 또 매력이지만.”

하지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장석환은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복싱광. 유일한 취미인 복싱은 그의 삶의 낙이었다.

좋은 기구, 비싼 장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두 주먹과 신체를 이용해 맞붙는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직접 기술을 연마하고, 단련하며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상대를 쓰러뜨리는. 그야말로 정정당당한 스포츠에 그가 빠지지 않으려야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응? 샌드백이 바뀌었나?”

장석환은 체육관을 살펴보던 중 새로운 샌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일에 치여 오랜만에 온 체육관의 변화였다.

끼이이익.

그때 체육관의 문이 열렸고.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가 반짝이는 그가 들어왔다.

“자네 왔는가. 오랜만이구먼.”

“오랜만에 힐링하러 들렸습니다. 관장님.”

“허허, 힐링은 무슨.”

백일호는 장석환의 너스레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보다 어찌한 일입니까? 샌드백을 교체한 겁니까?”

“아, 저거? 교체할 때가 됐지.”

장석환은 번쩍이는 새로운 샌드백을 가리키며 물었다. 헤지고 낡은 샌드백들 사이에 있는 그것은 유난히 더 빛이 났다.

조금이라도 구멍이 나거나 찢어질 기미가 보이면 가죽을 덧대고 덧대 사용하는 백일호 관장이었다. 구두쇠 기질이 다분한 그가 웬일로 새것을 구매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완전히 터져버렸어.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방도가 없더라고.”

“샌드백이 터져요?”

“허허허, 엄청난 놈이 하나 들어왔거든.”

그저 단순한 궁금증이었던 장석환은 백일호의 대답을 듣자 호기심이 쏟아졌다.

“새로운 관원이 들어왔습니까?”

“말도 말게. 그런 놈은 지금껏 본 적이 없어. 운동 감각이며 주먹이며 실전 감각까지 완벽해.”

“그 정도입니까?”

“아니 글쎄. 그놈이 스트레이트 몇 방 날리니까 이놈이 터져버렸다니까.”

백일호는 불평을 쏟아내는 듯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칭찬하는 것처럼 과할 정도라 느껴졌다.

‘새로운 관원?’

하지만 이내 장석환 역시 새로운 관원이 누구인지.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백일호를 잘 알고 있는 장석환은 그가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누구길래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십니까?”

“허허허, 시간이 된다면 자네가 직접 한번 봐보게. 이제 곧 대회가 있거든. 물건이 들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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