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아파트 밀실 살인 사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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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의류와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한, 하지만 어째서인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노인이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있다.
“무슨 일이야.”
그에 반해 평범한 아니, 후줄근해 보이기까지 한 남성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인사조차 나누기 전에 그는 지금의 만남이 불만인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것은 서로 마찬가지인 듯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찌푸렸고, 그 표정을 본 남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더는 얼굴 보지 않기로 했던 거 같은데?”
“경찰들이 또 들쑤시고 다니는 것 같아요.”
그가 다시 한번 불평을 쏟아내려 했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표정은 험악하게 변했다.
“또? 벌써 몇 번째야.”
“세 번째요.”
“누가 그딴 거 몰라서 물어본 건 줄 알아? 젠장. 미제사건이니 뭐니 하면서 다 끝난 거 아니었느냐고.”
“목소리 낮춰요. 누가 들겠어요.”
순간,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주위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눈치를 줬다.
그 또한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살폈지만 시끄러운 카페의 분위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없어 보였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하게 물었다.
“네가 조사를 받은 거야?”
“아니요. 어제 경찰들이 그 노인네를 찾아갔나 봐요. 직접 통화했어요.”
“뭐? 아직도 그 노인네랑 아직도 연락한단 말이야?”
“그럼 어떡해요.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데.”
“젠장, 이미 이사까지 간 노인네야. 대화하다가 덜미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그만 해요. 나도 그 정도 바보는 아니니.”
“제기랄”
그는 계속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쉴 새 없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녀는 그런 그가 익숙한 듯 요동하지 않았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요.”
죽일 듯이 인상을 찌푸린 그가 대답했다.
“뭘 어떡해?”
“경찰들이 그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다닌다고요.”
“그러니까.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
그녀는 골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감싸 안았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똑같아. 경찰들은 허탕만 치다 갈 거고, 우리는 지금까지랑 그저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고.”
“정말 그럴까요?”
쾅!
그녀의 반문에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그가 테이블을 내리쳤고,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이내 그가 인상을 쓰며 돌아보자 다들 시선을 거두었다.
“이봐, 잘 들어. 이미 다 끝난 일이야. 이만하면 시간도 오래 지났고, 더 나올 증거 따위도 없어. 너하고 나. 둘만 조심한다면 절 때 들킬 리 없다고. 알았어?”
“...알았어요.”
남자는 반쯤 협박하듯 조용히 말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끝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멈칫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제 경찰들이 그 노인네를 찾아갔다고 했지?”
“네.”
“아마 조만간 너한테도 찾아갈 거야. 그리고 나한테도.”
“...”
“입을 조심하라고.”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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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는 어디 갔어?”
유진호는 벌써 몇 분째 생각에 빠진 강민혁을 힐끔 보고는 노희재가 보이지 않자 물어왔다.
“수사협조 요청하러 갔어요.”
“수사협조? 어디로?”
“경비실이요.”
“아~”
강민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고, 유진호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사건이 벌어졌던 아파트.
앞선 조사를 통해 아파트에 외부인 출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온 유진호의 반응이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모셔왔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 노희재가 다가왔고, 그녀의 곁에는 후줄근한 차림의 경비원이 함께였다.
“응? 굳이 모셔올 필요까진···.”
“마스터키만 줘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오겠다고 하셔서.”
그저 수사협조와 아파트에 출입할 수 있는 정도의 도움만 필요했기에 물었지만, 그녀 또한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하, 뭘 그리들 속삭이시는가?”
경비는 특유의 넉살과 함께 다가왔고, 강민혁은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서울 지방 경찰청. 경위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희를 도와주신다고 하셨다고요.”
하지만.
“나도 반갑네. 그럼 바로 이동하세나.”
그는 손을 잡지 않았고, 그대로 앞장서 지나쳤다.
‘조바심낼 필요는 없겠지.’
명백히 의도가 있는 행위였으나, 그가 그런 사실을 알 리는 없다.
그의 기억을 억지로 읽어낼 필요는 없었기에 그대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경비원이 마스터키를 이용해 공동현관의 문을 열었을 때, 유진호가 물었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고 거의 바로 일을 시작했지. 그 일이 있을 때도 경비원이었냐 묻는 것 같은데, 맞네. 당시에도 내가 근무를 서고 있었지.”
그는 질문의 의도를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시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까?”
“흠,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네. 경찰이 들이닥칠 때까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강민혁은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공동현관부터, 엘리베이터의 앞까지. 보고서 그리고 조사했던 대로 역시 CCTV가 설치되어있었다.
‘과연 사각지대가 없을까?’
하지만 CCTV의 화면을 보지 않는 이상 지금 여기서 확인하긴 어려웠다.
“혹시 그럼 피해자 부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 노인네···. 흠흠. 14층의 두 노부부 말인가?”
순간, 말을 멈춘 그는 헛기침하며 되물었다.
‘노인네?’
왠지 모르게 당황한 티가 역력한 그의 행동에 시선이 집중되자, 그가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그다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네. 몇 번 마주쳐서 인사를 나눈 게 전부라서 말이지. 그저 부유층이라는 것 정도일까? 소문엔 굉장히 돈이 많다더군. 그 일도 다 돈을 노리고 벌인 일 아니겠어?”
경비는 과장된 몸짓을 선보이며 그들이 돈이 많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강민혁은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며.
“아뇨. 집에서 사라진 금품은 없었습니다.”
행동을 관찰했다.
“흠흠. 그랬구먼. 자, 도착했네.”
그때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멈춰 섰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 나갔고, 곧장 카드를 꺼내 들어 사건 현장의 문을 열었다.
“집은 비어있는 겁니까?”
주위를 몇 번 둘러본 강민혁이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후, 소문이 쫙 퍼졌네.”
“소문이요?”
“경찰, 그러니까 자네들이 이 동 전체의 모든 세대를 혈액검사니 뭐니 해댔으니 무리도 아니지.”
“...”
“그날 이후, 소문이 퍼져서 아무도 구매하려고 하질 않네. 그 일을 당한 박 씨도 이사를 가버렸고.”
그가 말한 대로 피해자의 남편인 박 씨는 더는 이 집에서 살지 않았다.
사건이 있고 난 뒤, 마치 도망가듯 가구들조차 내버려 둔 채 시골로 이사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 같아도 이 집에서는 못 살지.’
아내의 사고 그리고 그 범인과 범행조차도 어떻게 이뤄졌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누구라도 이곳에 있기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바로 살펴보자.”
경비원을 뒤로한 채, 우리는 집안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조금이라도 증거가 될만한 물건들, 혈액이 묻은 이불이나 화장실의 슬리퍼 같은 것들은 회수해간 상태였기에 별다른 무언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확실히 문을 강제로 연 흔적 따위는 없어.’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상태였기에, 강민혁은 증거를 찾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대신, 범인이 어떻게 CCTV에 잡히지 않고 이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가에 집중했다.
‘창문 역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현관문부터 창문 그리고 출입이 될 수 있을 만한 틈새들을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이곳에도 역시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앞의 CCTV.
각도상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빈 구석은 없었다.
‘잠깐. CCTV의 각도?’
CCTV를 보며 생각에 빠져있던 중 경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누군가 CCTV의 각도를 변경할 수 있다면?’
범행 전 CCTV의 각도를 틀어 미세한 사각을 만들어 둔 다음, 사건 후 다시 원래의 각도로 조절해 뒀다면?
아주 미세한 차이라면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경비 아저씨?”
그밖에 없다.
“무, 무슨 일 있는겐가?”
그는 한참을 CCTV만 보고 있던 강민혁이 부르자 재빠르게 다가왔다.
강민혁은 갈 곳 잃은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 CCTV 확인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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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CTV 말인가?”
“예.”
어째서인지 그는 말까지 더듬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다시 한번 되묻는 그에게 단호하게 말하자.
“아마 시간이 오래돼서 지워졌을 거네.”
그가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워져요?”
“내가 지운 게 아니라, CCTV라는 게 말이지, 저장공간이라는 게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오래된 순으로 자동으로 지워진다네. 아쉽구먼.”
이내 얼굴에 희미한 미소까지 띤 채 답변하는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CCTV 자료는 제가 받아놓은 게 있어요.”
노희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USB를 꺼내 들며.
“바로 확인해 볼래요?”
흔들어 보였다.
“...”
그리고 순간, 말문이 막힌 경비의 표정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경비실에서 확인할 수 있겠죠?”
“가능하네.”
그런 그에게 묻자 다시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다시 내려가 그의 경비실로 향했고, 노희재의 USB를 확인했다.
“이미 수백 번이나 확인했던 영상이네. 볼 건 없을 거네.”
그는 옆에 서서 계속해서 무어라 훈수를 두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 당일의 영상을 재생했다.
‘과연. 사각지대는 보이지 않아.’
가장 먼저 확인한 시간은 저녁때. 그 어디에도 CCTV의 사각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거 보게. 볼 필요 없다니까.”
경비가 자신만만하게 떠들고 있는 사이.
영상을 빠르게 되감았다.
범행 예상 시간인 오전 8시에서 12시 사이의 시간대를 확인했고.
그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 다르다.’
분명 미묘하지만, 확연히 그 각도에는 변화가 있었다.
의심이 생기자 몇 번이나 그 영상을 앞, 뒤로 돌려 보고는 확신했다.
“정말. 아주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어요.”
“그래. 이렇게 비교해서 안 보면 절대 모르겠는데?”
함께 있던 유진호와 노희재 역시 함께 확인했고.
“어째서 영상의 각도가 다르죠?”
나는 사색이 된 경비에게 직접 물었다.
“다, 다르긴 뭐가 달라? 나는 모르네. 장비가 노후화되기라도 했나 보지.”
“분명 신식 아파트라고···.”
그의 변명을 노희재가 받아치자.
“아 글쎄. 나는 모른다니까! 그만 가게!”
그가 거칠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떠미는 그 손을 스치는 순간.
‘찾았다···!’
기억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