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20화 (20/124)

20화. <아파트 밀실 살인 사건(1)>

#

경기도 모 고급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이 사건에 대해서라면 조금이나마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당시 나름 유명했던 사건으로.

“밀실 살인이라···.”

범인의 침입과 탈출 방법, 그리고 용의자조차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죠? 요즘 같은 시대에?”

노희재는 들고 있던 사건 파일을 몇 번이나 읽어봤지만,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어왔다.

하긴 무리도 아닐 테지.

10년, 20년 전이면 모를까, 어디를 가도 CCTV가 있고 경찰 수사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아무리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지만 DNA, 지문, 심리, 음성, 영상 수많은 과학수사는 여전했고,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은 충분히 놀랄만한 점이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강민혁은 그런 노희재를 보며 대답했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경기도의 한적한 시골 마을.

해당 사건의 피해자인 이 씨의 남편을 직접 만나러 온 것이었다.

똑 똑 똑

주소를 확인하며 문을 두드리자,

“어서 오게. 이번에는 젊은 형사들이 오셨구먼.”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발의 노인. 사건 당시 그의 나이가 73세였으니, 아마 그가 남편 박 씨일 것이다.

“들어오게. 그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했지? 차라도 내어오겠네.”

미리 약속한 연유도 있겠으나, 그는 경찰을 만나는 상황이 익숙한 듯 자연스러웠다.

“벌써 몇 번째 같은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구먼.”

그는 차를 내어오며 불평 어린 말을 내뱉었고.

“죄송합니다.”

“아닐세. 자네들이 아내를 그렇게 만든 놈을 잡아주기만 한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말할 수 있네.”

사과하자,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노희재는 미리 질문을 작성해온 듯 녹음기와 함께 노트를 꺼내 들었고,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사건이 일어날 당시 남편 박 씨의 나이는 73세, 피해자인 아내 이 씨의 나이는 69세.

두 노부부는 특별한 직업이 있지는 않지만 십수억대 자산가로, 주식투자를 통한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 신식 아파트였다는 거죠?”

“맞네. 완공된 지 1년조차 되지 않은 아파트였지.”

당시 지긋한 나이였던 두 부부는 한적한 공간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전망이 좋은 14층의 아파트를 선택했다.

“외부인 출입은 자유로운 편이었나요?”

“음, 아닐세. 아파트 입구에 출입 카드나 비밀번호가 없으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네. 외부 차량 역시 차단기를 통과해야 주차장에 들어올 수 있었고.”

신식 아파트인 만큼 보안 시설 역시 최신식이었고, 단지 곳곳엔 CCTV가 존재했다.

“당일 상황을 생각하는 대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음···. 알겠네.”

처음 진행하는 노희재였지만, 생각보다 능숙하게 질문을 이어갔고, 그는 당시를 떠올리는 듯 눈을 살짝 감았다.

“나는 아침 10시에 골프 약속이 있었고, 아내는 경로당 행사가 있다고 해서 분주했네.”

“경로당 행사요?”

“아마···. 무슨 옹심이를 만들어 먹는다고 했나? 그랬던 것 같네.”

노희재의 물음에 답한 그는 다시 진술을 이어갔다.

“지인들과의 골프모임 후 저녁 식사와 술을 조금 마시고 11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네···.”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그는 당시가 떠올라 괴로운 듯 잠시 멈칫했다.

“진정이 되면. 천천히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닐세. 괜찮네.”

이내 진정된 그가 진술을 이어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너무나도 조용했어. 처음에는 골프모임이 이어지는 동안 전화 한 통 하지 않아서 아내가 화가 난 줄로만 알았지.”

“...”

그의 말을 끊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나중에는 집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내가 외출했나? 라는 의문과 함께 짐 정리를 위해 안방에 들어갔을 땐···.”

그는 이내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훔쳤다.

강민혁은 그런 그를 위로하며 보고서에 적혀있던 이후 상황을 떠올렸다.

안방 침대에는 아내 이 씨가 쓰러져있었고, 그녀는 얼굴과 목에 10차례가 넘게 흉기에 찔려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방과 아내를 본 남편 박 씨가 울부짖으며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사망 원인은 경동맥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

피해자인 아내 이 씨의 양손에는 사투를 벌인 흔적, 방어흔이 11군데나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사망 추정시간은 남편이 나간 오전 8시부터 12시 사이.’

경로당 행사 역시 아내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범행 흉기는 피해자의 집에 놓여있던 부엌칼. 피의자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다만···.’

집 안에 있는 물컵과 같은 식기에서 6명의 것으로 보이는 DNA 일부가 검출되었다. 6명의 DNA 정보 대조 결과 딱히 의심되는 용의자는 없었다.

또한, 신발장의 거울에 지문이 남아있었는데. 1년 전 이사 때 나온 이삿짐센터 직원의 지문으로 확인됐다.

‘한가지 결정적 증거라면.’

발자국이 남아있었다는 것.

사건 현장에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슬리퍼의 자국이 남아있었고, 확인 결과 이 씨의 집 화장실 슬리퍼 바닥에 혈흔이 묻은 채 놓여있었다.

“미안하네.”

“혹시 다른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작은방의 장롱을 뒤진 흔적이 있었네. 침대 위에는 시계들이 놓여있었고.”

하지만, 범인이 금품을 노렸다기엔 사라진 물건은 없었다.

금품을 노린 것으로 위장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순 없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아닐세. 도움은 내가 받고있는거지. 더 생각나는게 있으면 전화하겠네."

남편 박씨에 대한 모든 조사가 끝이 나고 그의 집을 나왔다.

“뭔가 알아낸 것 좀 있어요?”

노희재가 궁금한 듯 물어왔다.

“글쎄요···.”

범인은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을까.

창문과 현관에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리해보자.’

범인은 집에 들어와 화장실의 슬리퍼를 신고 안방에 있는 이 씨를 살해한 후, 화장실에 들어가 흔적과 피를 씻어낸 뒤 다시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두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꾸민 뒤 사라졌다.

‘잠깐, 화장실의 슬리퍼를 신어?’

누군가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 슬리퍼를 신을 동안 가만히 있을 사람이 있을까?

‘면식범일 가능성이 커.’

#

“처음엔 그저 단순한 사건이라 생각했지.”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

우리가 남편 박 씨를 만나는 동안,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유진호 덕분에 빠르게 수사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없고, 아파트에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 보안도 최신이었기에 출입기록과 CCTV만 뒤지면 금방 범인이 나올 줄 알았지.”

수사관은 해당 사건의 수사 파일 가져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 오전 5시부터 자정까지. 아파트 출입구부터 엘리베이터 내부, 1층 엘리베이터 앞까지. CCTV에 나온 188명 모든 이들의 당일 행적을 조사했으나 용의 선상에 오를만한 사람은 없었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범인이 이곳으로 들어간 방법조차 알 수 없었지.”

그리고 그가 수사 자료에서 무언가 찾기 시작하더니,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신식 아파트에는 월 패드라는 보안시스템이 설치되어있네.”

그가 가리킨 사진에는 벽에 부착된 형태의 기기가 찍혀있었다.

“집안 전자기기를 연결해서 집 밖에서도 집안을 볼 수 있고 초인종이 울리면 자동으로 기록과 함께 녹화되는 장치라네.”

“거기에 어떤 기록이 남아있었나요?”

수사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진호가 물었지만.

“초인종이 울린 기록이나 녹화가 된 영상은 단 한 건도 없었네.”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출입 카드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도 이 기기에 자동으로 기록 남게 되는데 남편 박 씨의 기록 외에는 없었네. 삭제된 흔적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답답한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아무거나 다 물어보게나. 도움이 된다면 전부 말해 주겠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진호의 질문이 이어졌다.

“부부가 원한을 살만한 무언가는 없었나요?”

“특별히 원한이나 재산 다툼,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사실조차 없었네. 혹시나 하여 모든 가족과 친지들을 조사했지만, 알리바이는 있었고.”

뒤이어 노희재가 질문했다.

“남편 박 씨가 꾸몄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나요?”

“우리 역시 그 생각했지. 하지만 당일 박 씨의 휴대전화 기록, 식당과 골프장의 CCTV를 통해 그의 알리바이는 확인됐네.”

“그럼 외부에서 들어온 범인이 미리 집 안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은?”

“그 역시, 일주일 동안의 모든 기록을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네.”

“흠, 쉽지 않네요.”

노희재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도통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자면, 가족이 아닌 다른 면식범이 원한으로 인해 사건 당일 카메라 사각지대에 숨어있다가 노크를 한 후 이 씨가 나올 때를 기다려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도겠군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던 강민혁이 그제야 입을 열었지만.

“일리 있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현장을 빠져나왔는지 도통 의문이네. 외부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계단을 통해 이동했다 해도 1층의 엘리베이터를 지나가야 했네. 그럼 CCTV에도 찍혔을 테지.”

수사관은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강민혁은 좌절하지 않고 계속 질문은 이어갔다.

“그럼 아파트의 비어있는 가구나 옥상을 통해 출입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2층과 3층에 입주하지 않는 가구가 있었지만 특별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네. 옥상 또한 확인했고.”

“...”

“우리도 오죽 답답했으면, 아파트의 48세대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신발장, 화장실, 의류까지 혈액 반응 검사를 했으나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

강민혁의 질문을 끝으로 그와 만남은 끝이 났다.

오히려 답답함은 더욱 심해졌지만, 더는 그에게 물을 것은 없었다.

“감사했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경찰서 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돌아서려는 찰나, 그가 들고 있던 자신의 파일을 넘겼다.

“미제사건 수사팀이라고 했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수사 파일 가져가게.”

“감사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네들을 끝으로 해결됐으면 좋겠구먼.”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들어갔다.

“후, 이제 뭘 해야 할지.”

수사에 경험이 없는 노희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듯했지만.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조사는 끝이 났으니, 남은 것은 발로 뛰는 것뿐이었다.

“우선 피해자 주변의 노약자 그리고 여성을 중점으로 조사하죠.”

“네? 어째서요?”

“피해자의 손에는 열 군데가 넘는 방어흔이 있었어요. 70이 가까운 노인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고, 또한 가깝거나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익숙한 면식범인 인물이 범인일 가능성이 커요.”

노희재와 유진호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강민혁은 조용히 자신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가죠!”

이제 기억을 읽는 이 능력이 빛을 발할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