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미제사건 수사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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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강민혁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과거 업무상의 이유로 서울지방경찰청에 와본 적이 있었고, 이곳 역시 들른 적이 있다.
경찰청 본관을 지나 주차장을 사이에 둔 별관. 이 별관의 1, 2층은 정보화장비과에서 사용하는 창고였고, 3층은 의경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민혁이 서 있는 곳은 별관의 2층, 앞으로 사용하게 될 사무실이 바로 이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곳은 여전히 창고에 불과했다. 경찰 제복부터 벨트, 단화, 춘추복, 모자, 형광 잠바 등 먼지 쌓인 보급품들로 가득했다.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미제사건 수사팀]
프린터로 복사된 종이 한 장이 문 앞에 붙어있는 정도였다.
‘예상은 했지만, 변변찮은 사무실도 없을 줄이야···.’
사실 미제사건 수사팀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급조된 팀이었음은 물론, 내세울 만한 성과를 올리리라 기대하는 이도 없을 테니까.
“후···. 어쩔 수 없나.”
하지만 이내 아쉬움은 주변의 케케묵은 먼지들과 함께 날려버렸다.
본관에 비어있는 사무실은 없을 테고, 급하게 마련하다 보니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그보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
문득 강민혁은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려 시계를 확인했다.
공지된 출근 시간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만나게 될 상사가 누구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기에 서두른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대충 청소라도 해야 하나?’
주변에 회의할만한 테이블 하다못해 앉을 만한 멀쩡한 의자조차 없는 상황에 청소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어디부터 손을 봐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팔부터 걷어 올린 그때.
끼익.
누군가 들어왔다.
“어이구, 누가 벌써 왔구먼.”
살집이 있는 덩치에 온화한 인상, 숱이 없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뽀글뽀글 파마한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이미 사무실에 들어와 있는 강민혁을 예상하지 못한 듯 흠칫 놀라 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신입인가 보지?”
그는 강민혁을 처음 본 듯 말을 걸어왔지만.
“안녕하세요. 박봉구 경사님.”
정보화 장비과의 박봉구 경사. 그와는 과거 인연이 있었다. 정이 많고 호탕한 성격의 그에겐 종종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에 필요한 장비를 보급받으려고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였으니 꽤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구면이던가?, 나를 어떻게 알았지?”
“거기 적혀있어서요.”
강민혁은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던진 인사였지만, 이내 알아차리곤 그를 빠르게 살펴 가슴을 가리켰다.
“응? 하하하. 재밌는 친구고만.”
박봉구는 자신의 목에 이름과 계급이 적혀있는 직원증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미제사건 수사팀에 새로 들어온 경위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자네 말대로, 장비과 박봉구라고 하네.”
강민혁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박봉구가 못내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성격이 잘 맞는 그와는 금방 다시 친해질 수 있을 테니.
“그나저나, 이곳을 사무실로 쓴다지?”
박봉구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떠오른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나도 오늘 출근해서 소식을 들어서 말이지. 사무실이 이 모양이라 첫 출근부터 많이 당황했겠구먼. 이곳은 원래 우리가 보조창고로 사용하던 곳이거든.”
그는 이 상황이 불만을 내뱉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하여튼 윗대가리 놈들 일 처리가 이래.”
그리고는 순간 내가 경위라는 것을 떠올렸는지.
“흠흠, 자네는 나중에 그러지 말게나.”
무안해했다. 그런 그에게 괜찮다는 듯이 싱긋 웃어 보이자, 이내 그는 손을 걷어 올렸다.
“금방 치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저도 같이하겠습니다.”
박봉구를 도와 함께 창고를 치우려는 찰나.
띠링.
문자가 울렸다.
곧바로 휴대전화의 문자를 확인했지만.
‘모르는 번호인데?’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에서 도착한 문자는 어딘가의 주소가 적혀있을 뿐.
잘못 왔나 싶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허둥지둥하자, 박봉구는 궁금한 듯 물었고, 그 사이 휴대전화가 다시 한번 울렸다.
[15분 안에 튀어오도록.]
“윗대가리가 부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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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며 모여있는 사람들과 통제하는 제복 차림의 경찰들. 아파트의 입구를 막아놓은 노란 테이프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곳에 최재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13분 경과.”
그가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내뱉자, 주위의 경찰들이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또 시작이야? 이번엔 누구래?”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나 봐.”
“어휴, 숨이 막힌다. 숨이 막혀.”
주변의 경찰들은 몸서리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최재희.
청장의 최측근이자, 미제사건 수사팀을 맡은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을 중요시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중요시하는 정도가 아닌.
“병이야. 병.”
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단 1분, 아니 1초라도 늦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부하직원이라면 상황은 더더욱 심각해졌다.
그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내지도, 어째서 늦었냐 묻지도 않은 채 그저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 대상이 아닌 주변인조차 무안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장에서 배제했으며, 같이 일하는 처지에서 그런 분위기는 곤욕과도 같았다.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 그 상황을 직, 간접적으로 겪어보았고, 제발 신입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14분 50초”
초침을 바라보던 최재희는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여지없이 몸을 돌려버렸다.
그때.
“허억, 허억. 안녕하십니까”
강민혁이 나타났다.
최재희는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고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14분 55초. 음.’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강민혁을 쳐다보았다.
“경위. 강민혁.”
“됐네. 앞으로 밖에서 경례는 생략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새 호흡을 가다듬은 강민혁은 최재희와 눈이 마치기 무섭게 경례했고, 그는 무심하게 돌아섰다.
“따라오도록.”
강민혁은 앞장서는 최재희를 따라가면서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수군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들과 주변을 통제하는 경찰들, 그리고 우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경찰통제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혹시, 다른 팀원들은···.”
문자를 받은 순간, 최재희가 미제사건 수사팀의 팀장이 되었음을 확신했지만.
다른 팀원들이 보이지 않아 질문했다.
하지만.
“질문은 삼가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더 질문한다고 하여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보다 아직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다.
의문이 가득한 채로 그의 뒤를 따라갔고, 아파트의 입구를 지나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시체 썩는 냄새.’
단순히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시체가 썩는 시큼한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계단을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날카롭고 지독한 그 냄새는 더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최재희는 한 발짝 물러서 있었고 어느새 나보다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
시간이 지나 발견된 것으로 보이는 사체는 부패해 있었고 그로 인한 냄새는 사방에 가득했다.
끔찍한 광경.
누구나 이러한 상황을 처음 본다면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론 모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인가···.’
강민혁의 표정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최재희는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보고 있을 뿐. 그를 힐끔 바라봤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의도지?’
최재희는 어째서 지금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그는 나를 이곳에 데려오는 동안 이곳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주의도 주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관찰할 뿐.
‘잠깐. 이 상황···.’
그리고 그제야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 상황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이자 관습.
처음 경찰이 된 신입에 어떠한 상황 설명이나 주의 없이 갑작스럽게 사체와 마주하게 하는 관습이 존재했다.
단순히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닌, 적성에 대한 평가이기도 했다.
살아생전 처음 사체를 겪은 경찰 중엔 참지 못하고 구토를 쏟아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개중엔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사직서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직업 특성상, 언제 어디서든 사체와 마주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견뎌내고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 직업을 이어나가긴 힘들 것이다.
최재희는 자신의 팀원이 될 강민혁을 평가이자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체를 보는 것은 처음일 텐데, 표정 변화조차 없다?’
최재희는 강민혁을 관찰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한들, 이 정도로 침착한 반응은 처음이었다.
혹여나 자신을 의식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지만.
강민혁의 눈은 사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민혁이라고 해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늘 밥 먹긴 글렀군.’
그저 수없이 많이 접했기에 무덤덤했을 뿐.
속이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최재희는 지금껏 그가 구토하면 어떻게 치울지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그의 침착한 반응에 궁금증이 들었고 슬쩍 질문을 던졌다.
“가까이 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훗, 마음대로 하게.”
그는 마치 분석이라도 하려는 듯한 강민혁의 행동을 코웃음 쳤지만.
“음···. 배꼽 주위 및 사타구니의 피부가 부패로 변색하였고, 사체에 부패수포가 생긴 거로 보아 사후 2~3일 내외로 보입니다.”
이내 그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결코, 신입의 입에서 나오리라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사인은 어떤 것 같나?”
충격은 곧 흥미로 연결되었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강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주저 없이 대답을 쏟아냈다.
“현장에 외부침입 흔적이 전혀 없고. 현장이 잘 정돈된 점. 제대로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사체의 상처가 반항흔이 아니라 주저흔으로 유추되는 것으로 보아 자살로 추정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최재희는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현장 경험이 많고 오랫동안 수사에 몸담았던 이라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대답이었지만.
그 대상이 신입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 사건 현장은 물론, 사체조차 살아생전 처음 봤을 눈앞의 신입은 지금의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고 분석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지?”
최재희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 순수하게 궁금증이 밀려왔고, 그에게 물었다.
“...경찰 대학 교육과정에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강민혁이 대답했고.
최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쓸 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