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17화 (17/124)

17화. <미제사건 수사팀(1)>

#

과거로 돌아온 후, 첫 출근날.

설렘 때문일까 아니면, 기대감? 그것도 아니라면, 불안함?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아침이라 하기에는 이른 새벽,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강민혁은 바로 일어나지 않은 채, 잠시나마 침대에 누운 그대로 눈을 감으며 생각에 빠졌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또다시 경찰이라는 길을 걷게 됐지만, 출발 선상이 다르다.

순경으로 시작했던 지난 20년. 단순히 계급만으로 따지자면 그 20년을 앞당겼다.

20년의 세월을 거쳐 달성한 경위.

지금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 경위를 어깨에 짊어졌다.

달라진 것은 단순히 계급뿐이 아니었다.

‘목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에게 경찰이라는 직업은 그저 생계수단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선택했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서 성장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다.

누군가 어째서 그랬냐 묻는다면 수많은 변명과 핑곗거리들이 넘쳐났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의 나에겐 경찰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될 수밖에 없는 목표가 존재했다.

‘율촌 오거리 사건’부터 나를 습격했던 범인과 그 이유. 그리고 진범임을 알고 있음에도 처벌할 수 없었던 그런 상황을 없애겠다는 목표까지.

‘쉽진 않겠지.’

경간부시험부터 경찰대학, 이민재 사건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지만.

그것들은 준비과정에 불과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부터 시작이다.”

#

한쪽 벽을 채울 만큼 큰 화면에 빔프로젝터가 띄워져 있는 소회의실.

테이블에는 심재준 청장과 최재희 과장이 앉아있다.

제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가 브리핑을 마치자, 최재희가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서류를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이 친굽니까?”

그가 들여다보는 서류에 붙어있는 강민혁의 사진과 인적사항.

그것은 강민혁의 인사기록카드였다.

심재준은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딸깍.

브리핑하던 남자는 재빠르게 다가와 불을 붙여주었고, 심재준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후우,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나름 인재라더군.”

“...글쎄요.”

담배 연기를 뿜으며 건네온 질문이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필기시험 만점에 실기도 최상위, 경찰대학 성적도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신체 능력은···. 허. 괴물 같은 놈이네요.”

인사기록카드에 적힌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헛웃음을 짓는 그였지만, 표정은 영 밝지 못했다.

“뭔가 최과장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구만. 탐탁지 않은 부분이라도 있나?”

심재준은 최재희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는 곧바로 알아챘다.

오랜 기간 함께한 그들이었기에 표정만으로 감정을 읽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아닙니다. 그저.”

최재희는 잠시 뜸 들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서류상으로 완벽한 놈들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 적이 없어서요. 다들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더라고요.”

“으하하, 그렇지. 생각해보니 또 그렇구먼.”

심재준은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싹 바꾸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주사위는 던져졌네. 강민혁. 좋든 싫든, 아마 그 친구가 이 프로젝트에 핵심이 될걸세.”

분위기를 읽은 최재희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친구가 그렇게 대답합니까?”

“사실 나도 한번 마주한 게 전부라네. 그 서류에 적힌 내용 말고는 아는 게 없어. 굳이 꼽자면 아들놈 친구라는 것 정도이려나?”

“...근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듣자 하니 절차까지 무시하고 발령을 냈다던데. 벌써 특혜니 뭐니 떠드는 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최재희는 마치 제 일인 양 열을 올렸지만, 심재준은 코웃음 칠 뿐이었다.

“뒷말 나오는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런 거에 일일이 반응하다간 일 못 해. 알지 않나.”

“...”

“그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한번 만났을 뿐이지만, 강민혁 그 친구···. 뭔가 있어.”

“무엇이···. 말입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으하하”

심재준은 다시 한번 동네 아저씨 같은 너털웃음을 터트렸고, 최재희는 작게 한 숨질 뿐이었다.

“그 친구에 대한 평가는 자네가 직접 하면 될 것 같고. 그보다 어떨 것 같나? 이 프로젝트는.”

“...미제사건 수사팀 말입니까?”

“맞네.”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최재희는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솔직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미제사건. 말 그대로 수사가 개시되고 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사건들입니다. 초동수사 대처와 증거수집에 실패한 사건들이 대부분일 테고, 시간이 지난 후, 사건을 해결하기에는 더더욱 어려움이 있을 테죠.”

“음···.”

“수사에 필요한 인원도 그렇고 이들의 경력이나 경험을 생각해봐도···. 솔직히 가망이 있어 보지는 않습니다.”

“가망이 없다라.”

“그래서 청장님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신 거 아닙니까.”

심재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6개월. 6개월 안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팀은 해체될걸세. 그렇게 된다면 나도 자네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순 없겠지.”

“...”

“나야 더는 미련이 없지만, 자네는 승진길이 막힐지도 모르지. 제안은 했으나 강요는 하지 않겠네.”

“...”

“어때? 그래도 이 팀을 맡아 보겠는가?”

잠시 최재희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때 그 사건···. 때문에 미제사건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

심재준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최재희는 그것이 긍정의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맡아 보죠.”

#

강민혁은 서울지방경찰청 앞에 멈춰서서 잠시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순백의 건물과 그곳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위경소.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듯 굳건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노란 안전바는 직원들의 차가 지나갈 때마다 자동으로 올라갔고, 입초근무자들은 그들을 경례로 맞아주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경찰대학의 풍경과는 또 다른, 하지만 익숙한 광경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번 수사를 시작하면 먹고, 자고, 씻고, 어쩌면 집보다도 더욱 집 같은 장소였다.

비록 과거와 같은 근무지는 아니었으나, 왠지 모르게 옛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첫날부터 늦어서 찍힐라.”

순간,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강민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심재준 청장에게 팀을 꾸리고 싶다고 말하긴 하였으나, 받아들여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 같아도 그건 무리지.’

계급상으론 팀을 꾸려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어찌 됐든 다른 이들로선 이제 막 경찰이 된 초짜에 불과했다.

계급사회라곤 하나, 모든 일이 계급에 의해 결정되진 않았다.

이미 형성된 질서는 결코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경력도 실력도 더구나 나이까지도 어린 상관의 명령을 고분고분 들어줄 만큼 지금껏 겪어온 형사들은 하나같이 녹록지 않았다. 초반의 기 싸움 역시 피할 수 없을 테고.

실제로 이제 막 경위로 임관한 경간부, 경대생들이 계급만 믿고 까불다가 큰코다치는 꼴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었다.

심재준 청장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연락 한번 없네.”

심재준 청장과 마주한 그 날 이후 그에게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지 못하였다. 팀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누구를 뽑을지에 대한 연락을 받았어야 했다.

연락이 없었다는 건 이미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누군가 따로 있다는 의미였다.

심재준 그에게도 중요한 프로젝트임은 틀림없을 것이기에, 아마 자신이 믿을만한 누군가를 팀에 넣어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내 상관이 될 테지.

‘아마 그 사람.’

예상가는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가 나의 모든 제안을 수락한 건 아니었으나, 무리한 부탁을 받아준 건 확실했다.

미제사건팀에 들어오게 된 것만으로 큰 수확임은 틀림없었다.

강민혁은 기분 좋게 웃음을 지으며 경찰청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위경소에서 입초근무 중이던 의경이 다가와 강민혁의 앞을 막아섰다.

태도는 공손했으나, 누가 보더라도 외부인을 경계하는 행동이었다.

‘옷, 때문인가?’

제집처럼 드나들던 청의 입구에서 막아서자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자신의 옷차림을 보고 알아챘다.

면접 때 이후 다시 한번 세탁소에서 빌려 입은 정장 차림.

오늘 이후 다시는 입을 리 없겠지만, 나름 첫 출근이라고 힘을 준 상태였다.

“조사 때문에 오신 거라면, 방문 대장 기재 후, 방문증 수령하셔야 합니다.”

근무복이었다면 이런 오해 따위 받지 않았을 테지만.

미제사건 수사팀은 광역수사대에 속해있었고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에 사복이 기본적인 복장이었다.

“아니요. 여기.”

강민혁은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품속의 경찰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신분증을 건네받은 근무자는 순간 멈칫하며.

“가, 강 경위님 죄송합니다.”

경례했다.

“아니에요. 저도 첫 출근이라.”

강민혁은 지나치게 뻣뻣한 그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일경이에요?”

“예, 예! 맞습니다. 일 경. 김 영웅!”

예상대로 긴장된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대는 그는 일경이었다.

청장이나 소대장이면 모를까, 의경이 직원을 상대로 이렇게 긴장하는 경우는 없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이름 멋있네요. 그보다 미제사건 수사팀이 건물 몇 층에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형사 시절 서울지방경찰청에 와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광역수사대는 대부분 본관 1층에 모여 있었으나, 기억 속에 미제사건 수사팀은 존재하지 않았다.

건물 안에 들어가 헤매는 것보단 빠를 것 같아 물었으나.

“미, 미제사건 수사팀 말입니까?”

김일경 역시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내 벙쩌있던 그는.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선임에게 물어볼 요량인 듯 위경소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선임으로 보이는 머리가 비교적 긴 근무자와 함께 나왔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까닥였다.

‘전역을 앞둔 수경인가?’

저 역시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기에, 생각에 빠진 사이.

“미제사건? 처음 듣는데?”

문제가 생긴 듯했다.

오랜 기간을 근무했을 수경으로 보이는 그 또한 처음 듣는 듯 당황했고,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한참을 씨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이번에 새로 생긴 팀이라 저희가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근무자들에겐 모두 전달해 놓겠습니다.”

확실히 새로 만들어진 팀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음 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가 튀어나왔다.

“미제사건 수사팀은 본관 건물 뒤, 별관 2층에 있다고 합니다.”

“어디요? 잠깐, 거긴 창고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