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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읽는 환생경찰-16화 (16/124)

16화. <발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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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온 뒤, 나의 첫 발령지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미제사건 수사팀.

경찰대학의 교육을 끝마침과 동시에 기숙사의 모든 짐을 빼서 나왔고, 앞으로 근무하게 될 근무지 근처로 조그만 자취방을 계약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단 한 가지.

“시간이 붕 뜨네···.”

정식 근무까지 3일 정도가 남아있었다.

고향에 내려갔다가 오기에는 시간이 애매했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바쁜가?”

서울에 아는 이라곤 노희재와 유진호뿐이었기에 두 사람을 만나 시간이나 때울까 했지만.

어째서인지 연락이 되지 않는 두 사람.

왠지 모르게 임용식 이후로 나를 피하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첫 발령으로 이것저것 바쁠 걸 알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근처 지리나 익힐까?”

그렇다고 이렇게 하릴없이 빈둥대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기에, 근질거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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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 체육관이 있네?”

거리를 둘러보던 강민혁이 멈춰선 곳은 간판에 ‘참피온 복싱’이라 적힌 낡은 체육관이었다.

한눈에 봐도 망해가기 일보 직전의 허름한 모양새.

‘한번 들어가 볼까? 어차피 체력훈련도 필요하고.’

강민혁은 체력시험을 볼 때와 이민재를 상대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40대의 몸에 비해 20대의 신체는 활기가 넘치고, 강인하고, 무엇인 듯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부족함을 느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직업 특성상 체력은 필수적이었고,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신체 능력은 좋았으나, 매일같이 운동했던 당시의 지구력과 체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타고난 힘은 강했으나 근력부터 지구력 순발력은 20년의 공백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여실히 느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알고 있고 다른 이의 기억을 읽을 수 있지만, 결국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복싱이라···. 한번 구경이나 해보지 뭐.”

-관원 상시모집.-

투박한 글씨로 쓰인 용지가 붙어있는 체육관의 입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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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허름해 보이던 외관과 마찬가지로 체육관의 내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예상외인 점이라면, 생각보다 넓다는 것 정도. 특별히 큰 기구나 가구가 없어 공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운동하기엔 나쁘지 않겠는데?’

꾸리꾸리한 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입구 바로 오른편에는 조그만 사무실이 그 옆에는 실전용으로 보이는 사각 링이 있다.

나머지 공간에서 운동하는 듯, 한쪽 벽이 큰 거울로 뒤덮여있었고, 천장에 걸린 샌드백 몇 개. 샤워실도 따로 만들어져있다.

그 옆에 벽에는 대충 박은 못에 수십 개의 줄넘기가 걸려있었다.

띵!

난데없이 울려 퍼진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쪽 벽에 타이머가 돌아가고 있었다.

띵!

그리고 다시 한번 울리는 타이머. 3분 그리고 1분이 번갈아 가며 울리도록 설정된 모양이었다.

“누군가?”

체육관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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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운동은 배워본 적 있나?”

체육관 관장 백일호는 강민혁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운동복에 가려져 있지만 대충 보더라도 균형이 잘 잡인 몸.

떡 벌어진 어깨에 탄탄해 보이는 대흉근. 지방이 아닌 근육으로 가득 찬 허벅지는 일반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아뇨. 없습니다.”

하지만 강민혁의 대답은 의외였다. 경찰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당시 유도를 배운 적이 있었으나, 그 기간이 매우 짧아 배웠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과거 형사 시절 항상 무도를 배워보고 싶었으나, 그때마다 문제 되는 것은 항상 오른쪽의 빗장뼈였다.

형사 초기 시절 사고는 수술로 이어졌고, 후유증이 남았다.

격한 움직임이나 중량을 이용한 운동은 통증을 유발했다. 그로 인해 간단한 맨몸운동이나 러닝 외에 다른 운동은 할 수 없었다.

‘타고난 놈이구먼.’

운동을 배운 적이 없다는 강민혁의 말에 백일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젊은 적 선수로 잘나가던 시절을 지나 은퇴 후 수많은 선수를 육성시켜온 그였다.

한번 훑어보는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신체 능력이나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런 그의 눈에 강민혁의 몸은 최상 그 이상이었다.

운동을 배워보지도 못한 몸이 이 정도라면 운동을 배우고 난 뒤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한, 두 달 배우다 관둘 거면 시작도 하지 말게.”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인재였으나.

백일호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근성이 없는 놈이라면 가르칠 이유가 없었다.

“아뇨. 일 때문에 꾸준히는 못 나오겠지만. 시작하면 열심히 다닐 겁니다.”

강민혁은 이글거리는 백일호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근무가 시작되면, 이후로는 매일 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백일호는 매일 못 나온다는 강민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표정을 구겼지만, 일 때문이라 하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싱을 배우려는 이유는?”

백일호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강민혁을 보며 말했다.

“사람을 패려는 목적이면 못 가르쳐. 아니 안 가르쳐.”

“아, 체력을 기르고 싶어서 그럽니다.”

“음. 체력 기르려면 복싱만 한 것도 없지.”

강민혁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무실의 조그만 책상 밑을 뒤적거리더니 강민혁에게 툭 던졌다.

“따라 나와.”

백일호가 건네준 것은 초급자용 글러브와 핸드랩이었다.

“한 번만 알려줄 테니까 집중해.”

백일호에게 가장 먼저 교육받은 것은 핸드랩을 감는 방법. 핸드랩은 손을 감는 붕대로, 손의 부상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다 외웠지? 체육관에 오면 가장 먼저 핸드랩부터 감도록 해. 냄새나니 사흘에 한 번 정도는 세탁하도록 하고.”

강민혁은 양손에 감긴 검은색 붕대의 어색한 감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백일호는 그런 그를 데리고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기본자세부터 숙지한다. 오른손잡이 맞지?”

“예.”

“오른 주먹은 관자놀이에 붙이고 왼 주먹은 눈높이까지 올려.”

그리고 기본적인 복싱의 자세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자세 낮춰. 허리 세우고. 주먹 올려.”

백일호의 교육 방식은 입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몸으로 익히게 하는 방식이었다.

지적할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툭툭 치며 자연스럽게 교정시켰고. 강민혁은 백일호의 손짓에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운동을 배운 적 없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가 보군.’

백일호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강민혁의 자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베이식 가드는 근본이 되는 자세였기에 이 자세가 완벽하지 않다면 백일호는 절대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짧게는 몇 주부터. 몇 달까지. 거울 앞에서 자세만 연습하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그만두는 관원이 빈번했다.

복싱을 배우기에 앞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자세였지만.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분 후,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호오. 이놈 봐라?’

강민혁은 몇 번의 지적만으로 완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전히 어색함은 남아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최적화된 자세를 찾아내 취하고 있는 자세였다.

“다음은 스텝이다.”

백일호는 그런 강민혁을 보며 의욕이 끓어올랐다.

보통 첫날, 아니 일주일 이상은 자세와 줄넘기를 알려주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미 완벽한 자세를 계속해서 시킬 이유는 없다.

기본적인 복싱 스텝을 알려주자, 그 역시 곧장 따라 했고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주먹을 가볍게 던져. 그게 잽이다. 그리고 허리를 돌리면서 체중을 실어서 스트레이트. 좋아.”

이내 잽과 스트레이트까지. 스텝의 박자에 맞춰 원투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강민혁을 보며 백일호는 저도 모르게 칭찬했다.

‘신체만 타고난 게 아니었어. 이놈. 물건이다.’

백일호는 제 발로 찾아온 강민혁을 다시 한번 쳐다보며 쾌재를 불렀다.

강민혁은 하나를 알려주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고.

이쯤 되자 백일호는 궁금해졌다.

“이번에는 거울 말고 여기서 해보지.”

“예.”

강민혁이 마주한 것은 묵직함이 느껴지는 샌드백이었다.

너무 진도가 빠른 감이 있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백일호는 강민혁의 펀치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바로 시작하면 됩니까?”

“그래. 이제부터는 3분 동안 운동하고 1분 동안 휴식해. 시작과 끝은 공이 울리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게다.”

“예.”

그 말을 끝으로 백일호는 한 발짝 물러나 지켜봤다.

일부로 샌드백을 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그가 어떻게 하나 관찰하는 것이었다.

띵!

3분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자, 강민혁이 샌드백 앞에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볍게 던지는 왼 주먹.

‘...!’

다른 이들이 본다면 별거 없어 보였겠지만, 백일호는 그 모습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잽으로 거리조절을 해?’

알려준 적도 없것만.

강민혁은 잽이 거리를 재거나 견제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백일호는 강민혁의 미칠듯한 습득력에 감탄을 내뱉고 싶을 정도였다.

최대한 끓어오르는 욕망을 자제시키던 그때.

펑!

백일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잽에 이어 연계로 들어간 스트레이트.

강민혁의 오른 주먹이 샌드백을 만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계속, 계속해보게나.”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타격음.

주먹의 힘은 물론, 정확한 타격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체중을 싣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강민혁은 왠지 모르게 흥분돼 보이는 백일호를 의아하게 보면서도 계속 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날리는 원 투.

퍼 펑! 퍼 펑! 퍼 펑!

체육관이 떠나갈 듯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백일호는 절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와. 완벽해!’

강민혁은 오른 주먹을 날리는 순간.

어깨부터 허리, 들려있는 뒤꿈치까지 완벽하게 돌려가며 손을 뻗었다.

그야말로 주먹에 완벽하게 체중을 싣고 있다는 의미였다.

일반적인 관원이라면 주먹에 체중을 실기 위해 몇 달 이상이 걸렸다.

그마저도 빠른 편이었고, 개념 자체를 완전히 이해 못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혁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터득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본능. 재능의 영역이었다.

“자네 선수 해볼 생각 없나?”

운동 후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백일호가 건넨 말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매섭게 노려보며 건네온 제안이었으나, 생각할 가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곳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서였기에.

“흠. 쩝. 그렇구먼. 알겠네. 그냥 해본 말이니 부담 갖지 말고 꾸준히 나오게나.”

백일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졌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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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끝낸 강민혁이 집으로 돌아가고.

체육관에 홀로 남은 백일호는 사무실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생각하는 인물은 역시 강민혁. 오늘 처음 봤고 처음 운동을 지도했지만. 그에게 빠져들기엔 충분했다.

“좀 더 부드럽게 물어야 했는데. 어휴.”

백일호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자책했다.

선수를 해보자는 제안을 거절당한 후, 그는 덤덤하게 반응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강민혁의 타고난 힘과 운동 감각 그리고 재능을 확인한 그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왜 거절했을까? 일 때문에? 포기해야 하나?”

그 순간.

펑! 수우우우.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터져버린 샌드백.

“포기할 수야 없지.”

백일호는 내용물이 터져 나온 샌드백을 살피며 씨익 웃었다.

낮에 강민혁이 사용했던 바로 그 샌드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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