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연쇄살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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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이 끝난 후 기숙사. 자신의 침대에 누워 멍하니 TV에 시선이 고정된 유진호에게 물었다.
“진호 형, 혹시 동기 중에 이주현이라고 알아요?”
정기석 교수의 강의 중, 가장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대답하던 학생. 다짜고짜 선전포고 비슷한 걸 날리던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꽤 익숙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주현? 음, 의외네?”
“뭐가요?”
“그렇게 안 봤는데.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가?”
유진호는 TV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상태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뜬금없는 오해에 변명이라도 하려는 찰나.
“나도 주현이랑은 대화 몇 번 나눠본 게 전부긴 한데. 조금 독특해.”
“독특···. 이요?”
유진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무언가를 떠올리듯 턱을 매만졌다. 앞서 만난 그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독특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기에 의아한 듯 묻자, 유진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외모나 성격이 아니라. 목표가 독특하더라고.”
“목표요?”
“프로파일러가 목표래. 공식적으로 프로파일러를 모집하지 않으니 일단 경간부에 들어왔다나 뭐라나 쯧.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독특하지 않아?”
혹시나 하고 물어본 질문의 대답에 순간 멍해졌다.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하나의 사건.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설마설마했건만. 우연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나도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프로파일러. 경찰. 그리고 이주현.’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모두 그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주현이···. 그 프로파일러 이주현이라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분석해 자료를 보내준 프로파일러. 비록 상황은 좋게 끝내지 못했지만, 그녀의 자료 덕분에 진범을 밝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의문.
‘어째서 나에게 그 자료를 보냈는가.’
이주현은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분석자료를 나에게 보냈다. 정확하고 오랜 준비와 분석이 없다면 알아낼 수 없는 정보들이 분명했다.
그 순간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이주현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과 이주현의 연결고리.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이유도 없이 프로파일링 자료를 나에게 보내지는 않을 터. 명백히 그것은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의도가 품어져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와 연관이 있을까?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쓴 그와?’
어느 쪽이든 그녀 또한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이주현이 진짜 그 프로파일러 이주현이라면···.
“쯧.”
왠지 모를 죄책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주현에 대한 고민은 이내 덮어버렸다. 지금 아무리 고민한다고 한들,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짜고짜 그녀에게 찾아가.
‘당신이 나에게 자료를 넘겨준 프로파일러 이주현 맞습니까?’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따위의 질문을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 기억을 읽어낸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은 전부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이다.
지금은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았기에 그 무엇도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이 반복되게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 왜 그래? 기분 나빴어? 미안. 농담이었는데.”
순간 떠오른 옛 생각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는지 힐끔 바라본 유진호가 사과했다.
“아니요.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그에게 애써 웃어보며 대답하던 중.
-다음 소식입니다.
뉴스를 진행 중인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그 화면에 집중하자.
-또다시 신원불명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시신을 불태우려는 흔적이···. 경찰은 앞선 사건과 같은 이의 범행이라 추측···.
심각한 표정으로 보도하는 앵커와 모자이크된 채 보이는 사건 현장. 그것을 보며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졌다.
“연쇄살인? 경찰은 뭐 하는 거야? 저런 새끼 하나 못 잡고.”
유진호 역시 분개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강원도 인근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으로 나 역시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
지금은 단지 두 번째 살인이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금방 잡히겠지?”
유진호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글쎄요.”
하지만 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경찰은 범인의 단서조차 찾지 못한다.
검거에 성공했을 땐 이미 8명의 피해자가 나온 이후.
“에이, 저런 새끼는 빨리 잡아 쳐넣어야 하는데. 교육만 아니었어도, 내가 어떻게든···.”
유진호는 교육을 받는 자신의 처지에 직접 수사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못내 아쉬운 듯 불만을 내뱉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이대로 놔둔다면 살인은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그의 3차 범행이 바로 일어날 것이다. 범행의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범인은 자신의 2차 범행이 뉴스에 보도된 다음 날 새벽, 또 다른 살인을 저질렀다.
지금 그의 범행이 보도됐으니, 다가오는 새벽. 그가 움직일 것이다.
여전히 분개하고 있는 유진호를 보며 물었다.
“그럼, 실습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한번 잡아볼까요?”
“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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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두 분이 연쇄살인범을 잡으러 간다고요?”
노희재는 표정에서 당혹을 감추지 못한 채 되물었다.
“네. 도와주실 거죠?”
이미 어두워진 시각에 버스는 끊겼고 우리는 차가 없다. 차를 가지고 있으며,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 중 떠오른 이가 바로 노희재.
그녀는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야 뭐···. 민혁 씨한테 신세 진 것도 있고 시간도 비여서 상관없는데···. 어떻게 잡으려고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몸으로 부딪쳐 보는 거죠. 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일단 타세요.”
노희재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석에 올라탄 그녀를 따라 보조석에 몸을 맡기자 들려온 것은 뒷좌석의 나지막한 목소리.
“이···. 이게 대체···.”
뒤를 돌아보자 유진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어찌할 줄 모르며 얼어버린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조, 조금만 참아봐요.”
노희재의 차는 군것질거리들로 가득했다. 이미 타본 적이 있는 나에게는 각종 사탕과 과자로 가득한 차 안이 익숙했지만.
문제는 군것질과 함께 쓰레기들 또한 가득하다는 것.
여기저기 떨어진 과자부스러기와 사탕 껍질은 유진호에게 있어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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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은 저녁. 경기도의 모 시골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쉴 틈 없이 주변을 살폈다.
“범인이 범행 장소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음, 교수님도 강의 때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일리는 있어 보여요.”
범인을 잡으러 간다는 말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유진호와 노희재였으나, 그가 다시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과 재차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에 관해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같은 주말에 노희재에게 부탁해서까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연쇄살인범의 3차 범행이 일어나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고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다만.
‘정보가 부족해.’
범행이 일어날 당시 나는 순경준비를 하던 수험생에 불과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정보라곤 이곳 어딘가에서 범행을 일으킨다는 사실과 그의 이름이 전부였다.
연쇄살인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그는 단순한 잡범이 아닌 살인범이다. 형사로서의 오랜 경험이 있다곤 하나. 언제 어디에서 살인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받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불가능.
‘의심만 받게 되겠지.’
애초에 앞으로 일어날 살인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방법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공범자가 아닐지 의심만 받게 될 게 뻔했다.
‘이번에 해결해야 한다.’
지금 여기서 연쇄 살인마 막지 못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더 생겨날 것이다.
이미 저녁을 넘어 쌀쌀해진 새벽. 강민혁과 유진호, 그리고 노희재는 몇 번이나 일대를 돌아다니며, 범행이 일어날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고, CCTV가 없는 장소. 범행이 일어날 법한 장소는 이곳 외에는 없었다.
‘...잠복이라도 해야 하나?’
강민혁이 생각에 빠진 그때.
“아 배고파, 혹시 먹을 거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나도 좀 출출한데?”
노희재가 자신의 배를 과장되게 부여잡으며 물어왔다. 유진호 역시 배가 고픈 듯 말을 거들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 1시, 식사도 하지 않고 이곳까지 이동했으니 충분히 배가 고플 만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강민혁 역시 마찬가지였고.
“저기 편의점 있네요.”
마침 눈앞에 보이는 24시간 편의점을 향해 들어갔다.
“제가 살게요. 두 분 다 마음껏 고르세요.”
단지 편의점이었지만 식사도 거른 채 배고파하는 그들을 보며 왠지 미안해져 한 말이었다.
강민혁은 이곳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처지에선 범인을 잡겠다는 행동이 황당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지 않은 채 강민혁을 따라주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색했다.
“정말요? 와, 이거랑. 이거랑. 아 이것도 맛있겠다.”
노희재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고르기 시작했고.
“그, 그걸 다 드시려고요?”
강민혁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본 그녀의 손엔 초콜릿부터 티라미슈, 슈크림 빵···. 단것들로 가득했다.
“형은 안 고르세요?”
그에 반해 성분표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한참을 고민하는 유진호.
그는 아직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설탕이 과도하고···. 이건 포화지방이···.”
그 사이.
“아, 역시 너무 많은가? 두 개 중 어떤 게 더 맛있어 보여요?”
이미 적당히 많아 보였지만, 노희재는 마지막 두 개 중 고민하며 골라 달라는 듯이 물어왔다. 그것들 역시 전부 단 음식들이었다.
“하하, 둘 다 골라도 될 것 같은데요? 저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 고르면 계산대로 와요.”
그들의 고민하는 사이 대충 샌드위치 하나를 고른 뒤, 계산대에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띠랑.
그때, 편의점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검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는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거침없이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계산대에 서 있던 강민혁과 부딪혔고 그의 지갑이 떨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강민혁은 본능적으로 지갑을 주워주기 위해 손을 뻗었고 그와 손이 맞닿았다.
‘...!’
손이 스치는 찰나의 순간, 그의 과거 기억이 강민혁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뭐, 뭐야?’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자의 시선으로 보이는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선혈이 낭자한 채 쓰러진 여성과 손에 들려있는 서슬 퍼런 쇠붙이.
그는 그곳에 앉아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여···. 연쇄살인범!’
짧지만 충격적인 기억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눈앞의 남자는 담배를 산 채 서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담배를 구매한 남자. 우연히 읽은 그의 기억으로 보아. 그는 범인이 분명하다.
20년 동안 8차례의 살인을 저지른 희대의 살인마 이재원.
그가 눈앞에 서 있다.
“...”
담배를 구매한 그는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볼 뿐이었다.
강민혁의 머릿속엔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지? 무언가 느낀 건가?’
‘지금 잡아야 하나?’
‘품 안에 칼이 있지는 않을까?’
‘신고해야 하나?’
‘모르는 척 제압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그는 몸을 돌려 유유히 지나갔다.
멀어져 가는 그는 두 번의 살인을 저질렀다.
지금 여기서 그를 잡는다면 그것들을 증명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연쇄 살인마 이재원. 그는 영악한 놈이었다.
20년 동안 8차례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쉽게 잡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고 용의주도했다.
아마 지금도 미리 범행 장소를 물색하고 있을 테지.
‘믿어주지 않겠지.’
지금 당장 그를 제압한 뒤 경찰서로 끌고 간다 한들. 경찰들이 내 말을 믿어줄 리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제압하고 살인범이라 주장해도, 처벌되는 건 내 쪽일 테니까.
하지만.
‘오히려 기회다.’
편의점의 투명한 유리창 밖을 지나고 있는 남자.
“희재 씨, 저 먼저 갈게요.”
“네? 계, 계산은···.”
강민혁은 노희재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다급히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근처에 몸을 숨기며 잠복이라도 할 생각이었지만, 이재원을 발견한 이상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그의 정확한 범행 장소를 모르는 이상 잠복을 한다고 해서 그가 나타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를 직접 미행하는 편이 오히려 확실하다.
‘범행이 일어나기 직전. 덮친다.’
연쇄 살인마 이재원. 훗날 8차례의 범행 후 체포된 그가 밝힌 살인의 원인은 사회에 대한 원망. 불공평에 대한 복수. 가정불화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
이재원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고통과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타고났다.
그랬기에 그의 손에 희생된 피해자들 역시 그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범행이 들키지 않을 장소와 준비만 되어있다면 대상에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그가 살인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오히려 잠복보다는 미행이 더 확실했다.
무엇보다.
‘그는 나의 정체를 모른다.’
어째서 그가 나를 보고 멈칫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인을 위해 어슬렁거리는 자신을 누군가 미행할 거라는 생각 따위를 할 수 있을 리는 없을 테지.
조심스럽게 기척을 숨기며 그의 뒤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