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11화 (11/124)

11화. <연쇄살인(1)>

#

심지혁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의 몸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와아아아!!”

“강민혁! 강민혁! 강민혁!”

상대편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강민혁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댔다.

“이, 이게 무슨···.”

경대생들의 분위기는 암울 그 자체. 다들 놀랐듯 토끼 눈을 뜨고 바라볼 뿐이었다.

“내, 내가 졌다고?”

그저 기억나는 것은 강민혁에게 옷깃을 잡힌 순간뿐.

뿌리치려 했지만,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호오. 악력이 세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심판의 역할로서 모든 경기를 지켜보던 교관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강민혁이 보여준 두 경기 모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정확히 보고 있었다.

‘확실히 유도기술이 뛰어나진 않아.’

강민혁이 유도를 배운 적 없다는 게 거짓말로 보이진 않았다. 유도 교관인 그가 봤을 때, 강민혁의 기술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아니 기술이라 볼 수도 없을 만큼 허접했다.

‘하지만 저 힘은 도대체···.’

그런데도 강민혁의 힘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강력했다.

그저 상대방 도복의 옷깃을 강력한 악력으로 붙잡은 다음.

그대로 힘으로 던져버리는 동작.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작이었지만, 압도적인 힘이 없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허허. 엄청난 걸 구경해 버렸구먼.’

사실 경간부팀의 승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혁과 박한석 합기도 수업을 듣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 둘의 유도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천재가 바로 이런 거구먼. 허허허’

청소년 유도대회에서 메달을 휩쓸던 그들이었다. 유도수업에서 배울 게 없다는 이유로 무도수업에서 합기도를 선택했던 그들을 강민혁은 그저 힘으로 찍어 눌러버렸다.

‘천재.’

그 두 글자 말고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교관님, 바로 시작하시죠.”

“어, 어 그래.”

교관은 강민혁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봐, 너도 좀 비켜줄래?”

그리고 강민혁은 넋 놓고 있는 심지혁을 향해 어서 비키라며 손짓했다.

계속해서 경기는 이어졌고.

그 뒤로도 강민혁이 보여준 것은 그것뿐이었다.

옷깃을 잡고. 넘겼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두 가지 동작이었지만,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5명의 경대생 대표 모두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

오전 7시. 아침 일찍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첫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2시간이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는 경찰대학 내의 헬스장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요즘 들어 부쩍 들고 있는 생각이다.

40대의 몸에 비해 20대의 신체는 활기가 넘치고, 강인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매일같이 운동하고 단련했던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직업 특성상 체력은 무엇보다 중요했고,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타고난 힘은 그대로였으나 근력부터 지구력 순발력은 20년의 공백을 여실히 느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알고 있지만, 결국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침 일찍 어디 가세요?”

아침 공기를 마시며 설렁설렁 걷고 있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희재 씨. 운동가는 길이에요.”

“잘됐네요. 저도 같이 가요.”

간편한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쓴 노희재 역시 체육관을 향해 걷고 있던 모양이다.

“어제는 대단했다면서요?”

노희재의 걸음걸이에 속도를 맞춰주자 쪼르르 달려온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어제요?”

“혼자서 경대생들 전부를 내팽개쳐버렸다던데. 소문이 자자해요. 경대생들이랑 내기···. 어?!”

심지혁을 비롯한 경대생들과의 유도경기에 대한 소문에 관해 물어오는 찰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저 앞에 심지혁과 마주쳤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뒤에는 여전히 부하 두 명을 거느린 상태였다. 그들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민혁 씨 저 사람들 표정이···.”

“괜찮아요.”

노희재는 죽일 듯이 노려보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겁을 먹은 듯 살짝 뒤로 숨었지만, 개의치 않고 심지혁에 성큼성큼 다가갔다.

“안녕?”

“...”

그리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서로 말을 놓은 기억은 없었으나 경찰대학 내에서 우리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뭐 잊은 거 없나?”

미묘하게 꿈틀대는 심지혁의 눈썹. 생각이 복잡한 듯 한껏 인상을 찌푸린 녀석은 한동안 노려보더니 이내, 서서히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억지로 잡고 올리듯, 로봇의 팔처럼 삐걱거리며 올라오는 그의 손.

“지, 지혁아···.”

“...”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굴욕적으로 느끼는지 눈썹 끝에 멈춘 그의 손은 부들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심지혁의 뒤에 서 있던 그들 역시 낯선 그의 모습에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그들 또한 경례했다.

제식훈련을 받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엉거주춤한 심지혁의 자세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으나, 그 정도면 만족했다.

“좋네. 그것뿐인가?”

경례를 받아 주자, 누가 볼세라 거칠게 손을 내린 심지혁은 주위를 재빠르게 살폈다.

“...걱정하지 마라. 약속은 지킬 테니. 가자.”

그리고는 나를 한번 노려본 뒤,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자리를 떠났다.

“후, 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무슨 경례를 저렇게 무섭게···. 차라리 안 받는 게 낫겠어요.”

노희재는 그들이 떠나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의외네요? 저 사람 자존심 엄청 세다고 들었는데. 진짜로 경례를 하네요.”

“자신이 제안한 내기니까요. 다른 사람도 있는 데서 자신만만하게 제안했는데, 무시할 수 없었겠죠.”

대답을 들은 그녀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런데, 유도는 얼마나 배운 거예요? 그 정도 실력이면 한 10년? 15년? 어릴 때부터 배우신 거예요?”

“아뇨. 유도 배운 적 없습니다.”

“네? 아, 그럼 다른 운동을 배우셨구나. 어떤 종목? 합기도? 태권도?”

노희재는 그가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운동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하며 해온 질문이었지만.

“아뇨. 어떤 종목도 배운 적 없습니다. 그저 흉내만 낸 것뿐입니다.”

“네?”

대답은 의외였다.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운동을 배운 적이 없다는 강민혁의 말에 노희재는 속으로 감탄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번 훑어보는 그것만으로도 강민혁의 신체 능력은 최상이었다. 운동을 배워보지도 못한 상태가 정도라면 운동을 배우고 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 운동을 배울 생각은 있어요?”

중앙경찰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당시 유도를 배운 적이 있었으나, 그 기간이 매우 짧아 배웠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운동이라···. 한번 배워볼까?’

항상 무도를 배워보고 싶었으나, 그때마다 오른쪽 빗장뼈의 부상이 문제가 되었다.

형사 시절의 사고는 수술로 이어졌고, 후유증이 남았다. 격한 움직임이나 중량을 이용한 운동은 통증을 유발했기에 간단한 맨몸운동이나 러닝 외에 다른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범인을 검거할 때 역시 통증을 참아가며 움직였기에 운동을 배운다는 생각은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앞으로 1년.’

경찰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기간은 1년, 시기 또한 적절했다.

지금 운동기술을 배워놓는다면, 임용 후에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1년 동안 일어날 범죄들과 사건을 알고 있다. 내가 경찰이 되기 전의 사건들이겠지만, 그것들이 그대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대답을 기다리며 말똥말똥 눈을 깜빡이고 있던 노희재를 보며 대답했다.

“네. 운동 배울 겁니다.”

#

“반갑다. 너희들의 경찰간부후보생 기간, 이론교육을 맡게 된 정기석이라고 한다.”

수많은 교육생으로 가득 찬 강단 앞, 익숙한 얼굴의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기 있는 모두 면접 때 나를 만난 적이 있을 거다. 너희들의 담당 교수 역시 내가 맡았으니 문의 사항이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나에게 찾아오면 된다.”

“예.”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정기석은 바로 수업을 시작하려는 듯 분필을 꺼내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다.

[殺人]

그리고 교육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살인의 정의에 대해 아는 사람 있나?”

정기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장 앞자리에 앉은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자신 있다는 듯이 손을 들고 있는 그녀를 정기석이 가리켰다.

“그래 너.”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다. 살인이란 사람이 불특정 인간에게 상해를 입혀 죽이는 행위로. 특정한 대상에게 이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살해와는 구분된다.”

각자의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수강생들을 향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반 살인사건의 해결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

“...”

모두 적는 것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으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틀려도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말해 보도록.”

하나둘, 손을 들며 대답했다.

“60% 정도 될 것 같습니다.”

“30% 정도 될 것 같습니다.”

“75%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정기석은 손을 드는 교육생들의 질문을 모두 듣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누군가를 발견한 듯 번뜩이며 바라보았다.

“음, 거기 강민혁 후보생은 어떻게 생각하지?”

조용히 수업을 듣고 있던 강민혁을 향해 질문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이내 대답했다.

“우리나라의 일반 살인사건 해결률은 99.9%입니다.”

“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기석은 강민혁의 대답이 흥미로운 듯 씨익 웃으며 다시 물었다.

“현대사회에서 아무리 감정이 격해져도 살인이란 행위까지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누군가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살인자는 대게 피해자에게 강한 동기가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피해자의 신원과 인간관계를 조사하다 보면 자연스레 용의자가 특정됩니다.”

정기석은 이번에도 집중하며 강민혁의 대답에 경청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강민혁 후보생 말대로,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면 보통 고소, 고발 또는 신고 정도. 아무리 심해도 폭행 정도에서 그치게 되지. 일반적으로 살인까지 일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교육생들 향해 강의를 이어가는 도중 다시 한번 강민혁을 바라봤다.

“살인의 경우 증인, 증거를 찾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편이지. 하지만 방금까지 나온 대답에는 70%, 80% 심지어 30%까지 있었네.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해 주겠나?”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 정기석은 다시 한번 손짓하며 물어왔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강의만 들으려 했건만.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유명 범죄자들 때문입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교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들의 특징은?”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정기석은 분필을 이용해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連鎖 殺人’

앞서 적어둔 ‘살인’에 추가한 ‘연쇄’. 교수는 탁 소리가 나게 분필을 내려놓고는 말을 이어갔다.

“맞네. 연쇄살인. 일반살인과 비교하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자극적이며 더 큰 충격과 공포를 가져다주지.”

그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연쇄살인의 경우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가장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또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아쉽지만, 아니네. 자네가 말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 강민혁 후보생?”

정기석은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저으며 시선이 이동했다.

“연쇄 살인자들의 목적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한 또는 복수 같은 감정이 아닌,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 이해할 수 있는 동기 또는 계산 없이 살인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쳤으나 어떠한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정기석 교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고.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자 교수를 바라보고 있던 교육생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너무 지나쳤나?’

교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틀렸을 리는 없다.

지금껏 경험하고 알고 있던 내용. 누군가 알려주거나 배운 것이 아닌 형사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자연스러운 정보였다.

나에게는 1+1=2처럼, 그저 당연하였지만.

“아, 미안하네.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 교육생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구먼. 정확하네. 모두 박수.”

지금껏 공부만 해온 수험생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아직 현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교육생의 입에서 정확한 대답이 나오리란 예상을 하지 못했던 그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강의가 끝나고 교육생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사이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뒤를 돌아봤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각자 제 갈 길 가고 있는 사람들.

“어딜 보는 거예요? 여기에요. 여기.”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내리자 그제야 보이는 교육생. 작은 키에 동그란 안경이 돋보이는 그녀는 강의를 듣는 동안 맨 앞자리에 앉아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아신 거예요?”

“네?”

“교수님 질문이요. 책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데.”

따지듯이 물어오는 질문.

정기석 교수의 수업에서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모범생 스타일로 보이는 그녀는 책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을 알고 있는 이유가 궁금한 듯 찾아온 모양이었다.

당연히 찾을 수 없었겠지. 이론보다는 실무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지식이었으니.

“우연히 아는 질문이 나온 겁니다.”

숨길 의도는 없었으나 이 대답이 최선이었다.

‘미래에서 형사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래요? 그쪽이 강민혁 맞죠? 필기 만점자.”

그녀는 입을 삐죽이더니,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유명해진 모양이었다.

귀찮아지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저는 이주현이라고 해요. 임용 때는 제가 1등을 할 거니 각오하세요.”

“...네?”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