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19년의 공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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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강민혁은 노트북에 떠오른 화면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한국사 100/100. 형법 100/100. 행정학 100/100. 경찰학 개론 100/100]
[형소법 100/100. 형사정책 100/100]
1차 객관식과 2차 주관식으로 치러진 필기시험에서 받은 점수는 만점.
솔직히 합격할 자신은 있었지만, 이 정도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하진 못했다. 준비하는 동안 몇 번이고 치러본 모의고사에서조차 만점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았네.”
이뿐.
더 큰 감흥은 없었다.
채용시험이라는 것은 합격점수를 넘는 것으로 충분했다.
80점이든 90점이든 100점이든.
결국, 합격선만 넘으면 똑같은 합격이었기에 그다지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관식에서 만점을 받은것에는 의미가 있었다.
“의외네.”
이전의 기억을 통해 모범답안을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작성하지 않았다.
정답으로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평소의 내 생각과 형사 생활을 하며 느낀 경험을 녹여냈다.
내것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각으로 합격하고 싶진 않았기에, 점수를 조금 포기하더라도 내 능력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물론 문제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강민혁은 노트북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쫙 켰다. 필기에 합격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시험 자체가 전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관문이지.”
경간부시험은 총 3차례의 관문을 넘어야 했다.
1차는 필기시험.
2차는 체력시험.
3차는 면접시험.
필기시험의 합격은 그저 최소한의 문턱일 뿐이었고, 아직 두 차례의 시험이 남아있었다.
다음 시험은 체력시험.
“으랴차차차”
자리에서 일어난 강민혁은 곧장 현관으로 나와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체력시험에서 평가하는 종목은 100m 달리기와 10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그리고 악력.
경찰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수행능력들이었지만, 수험생 중에는 이 때문에 탈락하고 포기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다.
필기시험에서 만점자가 드문 이유도 이것 때문.
최종 합격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결국 필기와 체력 둘 다 붙어야 했기에,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모호하더라도 필기와 실기,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이가 합격하고, 한쪽에 치우친 수험생은 탈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내 전공이지.”
강민혁은 자취방을 나서며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앉아서 공부하고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고 활동하는 행위는 그의 특기였다.
강민혁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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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시험으로부터 약 한 달 후.
경간부 수험생들의 체력시험이 시작됐다.
“이미 안내했지만, 시험 중간에 무작위로 도핑테스트 진행합니다. 지목받으면 잘 따라 주세요.”
체력시험 감독을 맡은 박수용 경사는 수험생들을 향해 무미건조한 안내를 내뱉었다.
“평가 종목 중 1종목 이상 1점을 받으면 바로 불합격 처리되니. 바로 집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박수용 경사의 말을 끝으로 각 종목의 담당을 맡은 시험관들이 수험생들을 인솔했다.
분주하게 이동하면서도 긴장한 듯 몸을 푸는 수험생들을 보던 박수용 경사에게 신미화 경장이 다가왔다.
“박 경사님. 쟤예요. 쟤.”
“응? 뭐가?”
신미화는 은밀한 대화라도 하듯 입을 손으로 가리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큰 키에 남자다운 외모. 운동복 사이로 다부진 몸매가 드러나는 수험생이었다.
“이번에 만점자요. 필기시험 만점자.”
“뭐?”
약간 언성이 높았는지 몇몇 수험생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내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경간부 시험을 만점 받았다고? 주관식까지?”
“예, 모르셨어요? 소문 쫙 퍼졌는데.”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번 경간부 시험 중 엄청난 고득점의 1차 합격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박수용 경사는 이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야, 필기 점수 높았던 놈들 처음 봐? 결말이야 뻔하지.”
“에? 선배님은 체력시험 탈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딱 보면 모르냐? 저런 놈들은 공부 쪽만 죽어라 판 거야. 결국, 합격이 중요한 건데. 그걸 모르는 거지.”
박수용 경사는 비꼬듯 으스대며 말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너무 필기에만 치중한 이들은 합격할 수 없다.
실기의 비율 또한 필기에 못지않게 중요했지만, 종종 필기의 고득점자 중엔 그것을 간과해 꼬꾸라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박수용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강민혁 또한 그런 놈 중 하나라 확신했다.
“그래요? 저는 저 수험생 합격할 것 같은데.”
“뭐? 왜?”
“슬쩍 봐도 몸 좋은데요. 뭘.”
신미화는 그 말을 끝으로 박수용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박수용은 결심했다.
‘저 새끼 내가 오늘 꼭 떨어뜨린다.’
절대 질투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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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혁 씨.”
“네!”
강민혁은 자신을 확인하는 감독관을 보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100m 달리기 2번 출발선 앞에 자리했다.
함께 달리는 이들은 자신을 포함해 5명.
다들 손발을 털며 긴장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100m 달리기 만점이 13초였나?’
다른 이들은 과락 점수를 받지 않기 위해 그것을 고민했지만, 강민혁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만점이 나오냐 마냐의 싸움.
생각부터가 달랐고, 그 차이는 금세 눈으로 보였다.
“준비하시고.”
탕!!
감독관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화약총이 터짐과 동시에 강민혁의 팔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속도는 다리가 아니라, 팔에서 나온다.’
형사 생활 중 동료였던 서도현 팀장이 한 말이었다.
육상선수에서 특채로 경찰이 된 그의 특기는 엄청난 속도였다.
항상 그 비법을 물어보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발을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팔을 빠르게 흔들어라.
팔을 빠르게 흔들수록 다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강민혁이 팔을 엄청난 속도로 치기 시작하자, 발은 더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함께 달리던 이들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고, 찰나의 순간 결승전에 있던 감독관이 외쳤다.
“2번. 12.10”
만점이었다.
하지만.
“허억, 허억. 후···.”
고작 그거 뛰었다고 숨을 헐떡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상황.
‘체력이 줄었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형사 시절 범인을 잡기 위해,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단련하고 운동했던 신체와 지금 수험생의 신체.
순간적인 속도나 순발력은 뛰어났으나 체력은 형사 시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19년의 공백은 체력적인 부분에서 또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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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혁은 여유롭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몸을 풀었다.
100m 달리기부터 시작해 10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까지. 줄어든 체력으로 인해 목표로 했던 모든 종목에서 만점을 받지는 못했으나, 전부 높은 점수를 받아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악력.
악력기를 이용해 손아귀 힘을 측정하는 종목이다.
‘저 사람은 뭐지?’
체력시험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었다. 명찰에 박수용이라 쓰여있는 감독관.
계급장을 보니 경사인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부담스러울 만큼 내게 관심을 보이었다.
‘좀···. 부담스러운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노골적인 관심.
아니 왠지 모를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체력시험 종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용 경사는 눈에 보였다.
어째서인지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느낌.
형사의 직감으로 볼 때, 저 눈은 증거를 찾는 눈빛이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그러나? 내가 뭐 잘못했나?’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 사람이 내게 악의를 가졌다고 해서, 잘못될 건 없었다.
꼬투리 잡히지 않게 더 완벽하게 하면 될 테니.
“저기. 힘들지 않아요? 물 한 번도 마시지 않던데. 이거 마셔요.”
“네? 아, 감사합니다.”
“아뇨. 뭘. 헤헤”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물을 건넸다. 명찰에 쓰인 이름은 신미화. 계급은 경장이었다.
약간 조그만 키에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그녀는 물을 건네주고는 수줍게 도망갔다.
‘그래도 다행히 친절한 분도 있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박수용 경사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져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그때 수험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악력, 61kg!”
앞선 수험생의 악력 테스트의 결과가 나온 순간이었다.
성인 남성의 평균 악력이 50kg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과연 높은 수치임은 틀림없다.
-우와. 악력 만점이야.
-미쳤다. 악력을 어떻게 키웠지?
-악력 만점은 타고나야 해. 단기간에 절대 못 키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구경하던 이들은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그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다음. 강민혁 씨.”
“네!”
나 역시 그를 구경하려는 찰나, 이름이 호명됨과 동시에 악력 측정기가 놓여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잠깐, 잠깐.”
측정이 시작되는 순간.
박수용 경사가 수험생들 사이를 헤치며 나타났다.
“박 경사님. 어쩐 일로.”
“이 경사님. 여기 감독, 제가 맡겠습니다. 좀 쉬시죠.”
원래 악력 담당을 맡았던 이 경사는 갑작스러운 박 경사의 행동이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막무가내 행동에 자리를 비켜줬다.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선 박수용 경사는 매서운 눈으로 뚫어질 듯 쳐다봤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나의 약점을 찾으려는 태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악력기야 당기기만 하면 되는 걸 저런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후.”
박수용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악력 측정기에 손을 가져다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당기기 시작하자.
툭.
“어?”
“뭐야. 뭐 했어.”
힘을 주는 도중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박수용은 ‘요놈 잡았다.’라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그때 원래 악력의 감독관이었던 이 경사가 다가왔다.
“아이고, 악력 측정기가 고장 났나 보네.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다른 거로 가져다줄 테니.”
“이 경사, 고장 나다니.”
“너무 많이 써서 그래요. 잠깐만이면 돼요.”
그리고는 이 경사는 정말 금방 새로운 악력 측정기를 가져왔다.
“그럼. 다시 시작하세요.”
이 경사도 박 경사도 모두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
다시 새로운 악력 측정기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힘을 주는 순간.
툭.
“어? 이게 왜 이러지?”
“이 경사 장비들이 다 왜 이래?”
또다시 악력 측정기가 고장 났다.
“아, 잠깐. 혹시?”
의아한 듯 망가진 악력 측정기를 살펴보던 이 경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어. 그거. 오래된 거 어 가져다줘. 그래. 고마워.”
무언가를 가져달라는 전화.
전화를 끊고 얼마 되지 않아 한 경장이 크고 무거워 보이는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이걸로 해봐요.”
“이 경사 뭐야 이건?”
“오래되긴 한 건데. 80kg 이상 측정 가능한 건 이거밖에 없어.”
“80kg? 무슨 소리야 만점이 61kg인데.”
“아이, 혹시나 해서. 죄송해요. 바로 시작하세요.”
박 경사와 아웅다웅하던 이 경사는 낡은 악력 측정기를 권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세 번째 악력기에 손을 넣었고.
다시금 힘을 주기 시작했다.
모든 힘을 오른손에 끌어모아 손이 부들거릴 정도로 악력을 쏟아부었다.
“...103kg”
악력 측정기에 표시된 악력을 이 경사가 읽는 순간.
주위의 모든 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웅성대는 사람들.
-뭐야. 괴물이잖아.
-악력이 103? 만점이 61인데?
-그럼 악력기가 고장 난 것도 오래돼서가 아니라 악력이 너무 세서 그런 거였어?
-기계가 못 버틸 정도라고?
-엄청난데. 악력을 어떻게 저 정도까지 기른 걸까?
민망할 정도로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왼쪽 악력까지 측정이 완료되었다.
왼쪽의 악력은 98kg.
이 역시 괴물 같은 숫자였다.
박수용 경사는 끝내 검사관들을 불러 도핑테스트까지 받게 했지만.
당연히 검출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필기시험에 이어 체력시험까지.
높은 점수로 합격하는 기염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