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억을 읽는 환생경찰-5화 (5/124)

5화. <19년의 공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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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순경시험에 합격한 강민혁의 첫 발령지는 지방청이었다.

이제 막 중앙경찰학교에서의 교육이 끝나고 시보임용을 마친 순경이 지방청으로 오게 된 것은 엄청나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파출소, 지구대에서 매일 밤 주취자와 전쟁을 벌이는 것에 비하면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는 것이었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반가워요.”

사람 좋은 얼굴로 악수를 건네는 사수 이준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순경. 강민혁. 반갑습니다.”

“너무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요. 청 내에서는 과장님 밑으로는 관등성명 안 해도 되고요.”

이준석의 첫인상은 너무나도 좋았다.

인사과 인사계에 발령받은 강민혁은 내심 아쉬웠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배부른 소리라 했겠지만, 그는 앉아서 일하기보다는 현장에 나가고 싶어 했다.

강민혁에게는 사무적인 일보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더욱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결국,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면 되는 거지.

그 생각은 일주일도 안되 바뀌었다.

“강민혁 순경, 이거 외우세요.”

이준석이 건네온 서류.

경리계에 온 후 받게 된 첫 업무였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확인한 서류의 내용은 뭔가 이상했다.

[3교시. 형사소송법. 일반]

그리고 그 밑에 적힌 세 개의 문제. 그 옆에는 각각 50점. 25점. 25점이 적혀있었다.

“이준석 경장님 서류를 잘못 주신 것 같습니다.”

“아뇨. 그거 맞아요. 전부 외워요. 도움 될 거에요. 다 필요하니까 시키는 겁니다. 불평 하지 말고 하세요.”

그가 건네준 것은 서류가 아닌.

경찰간부후보생시험의 주관식 문제와 만점자의 모범 답안이었다.

이것을 전부 외우라는 소리였다.

“제가 검사할 테니까. 다 외우면 찾아오세요.”

어째서 이것을 외워야 하는가. 따위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관습이에요.”

만점자의 답을 신입이 외우는 것이 인사계의 관습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강민혁은 주관식 문제와 답을 적어가며 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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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간부시험의 핵심은 주관식 과목이었다.

다른 시험과 달리 2개의 과목을 주관식으로 치러야 했기에, 수준이 높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합격의 당락도 결국 주관식에서 좌우됐다.

하지만 강민혁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게 제일 쉽겠네.”

인사계의 꼰대 사수가 도움이 될 줄이야.

강민혁은 이번 경간부시험의 주관식 문제와 모범 답안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드디어 시험인가.”

시험 당일, 강민혁은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이나 떨림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개운한 기분.

어서 빨리 시험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강민혁은 자신 있었고,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증거였다.

과거로 돌아온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는 조깅을 그 이후의 시간에는 전부 학원과 기출문제를 푸는 시간에 투자했다.

이미 나올 시험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관식 문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너무나도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다.

주관식에 할애되는 시간이 없었기에 나머지 과목들에 집중할 수 있었고, 기본바탕이 탄탄했기에 성적은 빠른 속도로 안전권에 접어들었다.

시험의 지원자격인 운전면허증과 군대는 이미 해결된 이후였다.

군대에서 휴가를 따기 위해 토익 공부를 했던 것 또한 좋은 이점으로 작용했다.

경간부 시험에서 영어시험은 따로 보지 않고 토익 자격증으로 대체되었기에 준비할 것 역시 하나 줄어있었다.

“완벽해.”

스스로 느끼기에도 모자란 부분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수험생활이었지만, 반대로 준비할 것 역시 많지 않았다.

시험의 핵심인 주관식의 문제는 이미 알고 있었고, 기본적인 내용 또한 완벽했다.

결국, 해야 하는 것은 시험의 출제 경향과 자주 나오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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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출발할까?”

오늘 시험은 인근의 대학교에서 치러지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시험장에 적응할 요령으로 일찍 출발했다.

자취방에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그때.

빵-!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노희재.

“민혁 씨! 여기요. 여기.”

“노 실장님?”

이른 아침부터 차를 운전하는 그녀에게 다가가자 손짓하며 자신의 옆좌석을 가리켰다.

“타세요. 태워줄게요. 시험 보러 가는 길 아니에요?”

노희재 역시 나와 같은 수험생이었고,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민혁 씨는 왜 이렇게 일찍 가세요?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9시에 시험 시작해서 설명하고 하면 9시 20분 정도에나 시작할 건데.”

노희재는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으며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

“집에서 할 것도 없고, 일찍 가서 적응하려고요. 그동안 기출문제나 몇 개 보면 좋죠.”

“아아.”

“노 실장님은요? 일찍 가는 이유가 뭐에요?”

“저도 비슷해요. 뭣보다 차 끌고 가려면 일찍 가는 게 좋아요. 시간 맞춰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주차는커녕 입구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그녀는 시험장 상황이 익숙한 듯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알고 있었다.

‘하긴. 수험기간이 길어지면서 학원에서 실장을 병행한다 했으니. 시험도 많이 치러봤겠네.’

운전하는 노희재의 옆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꼈다.

‘시험엔 결국 떨어졌었지.’

과거 그녀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홍보실에 들어간 그녀는 경찰청 아나운서 보직을 맡게됬고, 각종 홍보물이나 영상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견장은 경사를 달고 있었다.

‘현실을 선택한 거지.’

경간부 시험을 준비하는 그녀가 합격했다면, 최소 경위 이상의 견장을 달고 있어야 했다.

경사를 달고 있었다는 것은 오랜 수험기간 끝에 방향을 틀어 순경시험에 합격했다는 뜻이었다.

“민혁 씨는 초시였죠?”

“네, 처음 보는 시험 맞아요.”

잠시 신호를 기다리던 노희재는 삐딱하게 쳐다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었다.

“불공평하네요. 나이가 있으니 거짓말은 아닐 텐데. 모의고사만 봤다 하면 학원 탑이고. 비법이 뭐에요?”

장난인 듯 진담처럼 물어오는 질문에 차마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환생하면 됩니다. 그전에 20년 공부했고, 앞으로 출제될 20년 치 문제까지 전부 다 풀어봤습니다.’

라고 대답할 순 없었다.

“하하하.”

“웃음으로 때우는 거에요?”

“아뇨. 비법 같은 거 없어요.”

“그럼 천재네요. 천재. 부러워라. 쩝.”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대뜸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 실장 소식 못 들었죠?”

“도 실장? 아, 도민호요?”

“아, 죄송해요. 입에 붙어서. 담당 경찰분에게 연락 왔어요.”

노희재가 말하지 않더라도 꽤 궁금하던 참이었다.

고소를 진행한 것은 그녀였기에 내가 그 결과를 아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아직 재판도 들어가지 않았겠지만, 담당자가 중간 과정을 알려준 모양이었다.

“모든 범행 시인했다고 해요.”

“음. 잘됐네요.”

도민호가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무리도 아니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 시험도 포기했데요. 학원도 그만뒀고요.”

“빨간 줄 생기면 자격요건이 안되니 알아서 그만뒀나 보네요. 잘됐네요. 축하해요.”

“다 민혁 씨 덕분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도착했고, 각자의 시험장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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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간은 다가왔고, 시험이 시작됐다.

오늘 보는 필기시험의 과목은 총 6과목.

오전과 오후에 걸쳐 치러질 예정이다.

‘오전에 객관식 시험이 있고, 오후에 주관식 시험이었지.’

시간이 되자 시험감독을 맡은 경찰들이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지금 보고 있는 책. 전부 가방에 넣어서 앞으로 제출하세요. 그리고 모두 복도로 나가세요.”

시험관의 안내에 따라 모든 수험생은 가방을 앞으로 제출했고, 복도로 쫓겨났다.

“한 명씩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시험관이 꺼내 든 것은 금속 탐지기였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인 듯, 모든 수험생을 일일이 검사를 하며 시험장으로 들여보냈다.

그렇게 시험은 바로 시작됐다.

‘이건 3번. 이건 4번. 1번.’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판례와 용어들은 빠삭했기에 문제가 없었고, 그동안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했던 것이 유효했다.

오전 시험은 객관식 문제.

1교시당 두 과목을 풀어야 했다.

문제의 깊이보다는 문제와 지문을 읽고 빠른 속도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도 아는 문제고, 이것도 풀어봤던 문제야.’

이미 20년 동안의 기출문제까지 전부 풀어본 상태였고, 학원에 다니며 출제 경향과 중요포인트를 잡은 것도 크게 도움이 된 것이었다.

문제를 전부 읽어볼 필요도 없이 단어 몇 개, 지문 몇 줄만으로 답을 찾아냈다.

오전 시험은 오히려 시간이 남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흠, 식사 맛있게 하셨죠. 그럼 오후 시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점심 후, 바로 오후 시험이 치러졌다.

주관식 문제로 구성된 시험.

이미 알고 있던 문제는 그대로 출제됐고, 모범 답안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모범 답안을 그대로 제출하지는 않았다.

‘이미 형평성은 무너졌지만.’

주관식 문제에 관한 내 생각과 경찰 생활을 통해 느꼈던 것들을 답에 녹여냈고, 그것들을 답안으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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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난 후, 며칠 뒤.

경리계에서 한가지 화젯거리가 터져 나왔다.

“진희 씨, 이번 경간부에서 만점자 나왔다며?”

“네, 아직 못 보셨어요? 주관식 답안이 대박이에요. 완전 모범 답안보다 더 잘 썼어요. 한번 보세요.”

진희라고 불린 그녀는 자신이 더 흥분하며 종이를 건넸다.

“와, 미쳤네. 수험기간이 얼마나 돼? 한 10년 됐나?”

종이를 천천히 읽어보던 박민기는 감탄을 내뱉으며 물었다.

답안을 작성한 필력이며, 서술, 지식이 초보의 그것이 아니었다.

“맞죠? 근데 확인해보니까. 초시예요.”

“초시?”

“네, 경간부시험은 물론이고 순경시험도 한번 본 적이 없어요.”

“뭐? 그게 말이 돼? 나이는? 나이가 많지?”

“아뇨. 24살이에요.”

“24살? 군대 막 전역했겠구먼.”

“그러니까 대박이죠.”

이진희와 박민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경리계에 들어온 지 15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 보고 있는 답안지만큼 잘 쓴 문장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까지 어리다니.

더군다나 처음 본 시험에 만점이라니!

“천재 아니야?”

“천재 맞아!”

각 청의 경리계에는 빠른 속도로 만점자이자 엄청난 답안을 써낸 수험생에 관한 소문이 퍼져갔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칭찬은 더 큰 칭찬을 불렀다.

각 과의 계장들을 넘어 과장들에게까지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지경까지 온 것이었다.

박민기는 얼어있는 신입에 다가가 종이를 건넸다.

“준석 씨, 이거 외워야겠다.”

“이게···. 뭡니까?”

“관습이야. 전부 외우면 돼.”

이제 막 들어온 이준석 순경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는 강민혁의 답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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