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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읽는 환생경찰-3화 (3/124)

3화. <새로운 시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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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원이 개강하고 첫 수업에 참석했을 때, 도민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오, 민혁 씨.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이전의 무시하고 괄시하던 태도가 아닌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모의고사 채점은 해보셨나요?”

“그럼요. 민혁 씨 초시생 아니었죠? 미리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저는 민혁 씨가 걱정돼서 그랬죠.”

반겨주는 것으로 모자라 옆구리를 툭툭 치며 친한 척을 해 오는 도민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

‘자신에게 이득이 되리라 판단되면 한없이 잘해주지만, 득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되면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그런 인성을 가진 인간.’

그는 여전히 그런 인간이었다.

“강민혁 씨, 우리 잘해봐요. 나중에 위에서 만날 것 같은데.”

도민호는 씨익 웃으며 손을 건넸다.

그가 이토록 잘해주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모의고사가 잘 나왔나 보네.’

채점 결과 점수가 높게 나왔고, 그의 인상에 깊게 박힌 모양이다. 훗날 내가 자신에게 이득이 될 거라는 판단이 들었고,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검사 집안이랬나?’

7년이라는 수험기간 후 합격한 그가 승승장구한 이유에는 남부럽지 않은 뒷배경에 있었다.

도민호의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형까지 모두 검사로 이루어진 검사 집안. 어째서 검사가 아닌 경찰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러한 배경은 도민호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도민호의 손을 잡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는다. 그와 지금부터 친분을 쌓게 된다면 훗날 내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가 어떤 인간인지 그만큼 잘 알고 있다.

20년 후 도민호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비리 경찰’.

청 내에서 직원을 잡고 그가 저지른 비리를 말해 보라 하면 각자 다른 비리 하나씩을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는 율촌 오거리 살인사건과도 연관이 있다.

도민호가 해당 사건의 담당 경찰은 아니었으나, 그의 밑에 있던 부하직원이 맡았던 사건. 강민혁의 파트너 형사였던 이민재 경사가 살해당했던 바로 그 사건이다.

그리고 카페 아르바이트생 이 모 군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되는 것을 모른척했던 자가 바로 그였다.

‘그는 알고 있었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수사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었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 잡는 것 또한 성장하는 과정일 터.

하지만 그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뭐?”

훗날 진범을 찾아내고 자백을 받아냈을 때, 그가 건넨 말이었다.

도민호는 진범이 있다는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봐, 강 형사. 주제에 맡게 행동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누가 그딴 걸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

그는 이 모 군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초에 알고 있었음에도 진실을 감췄다.

증거조작부터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압박까지. 진실이 드러났을 때 자신에게 떨어질 불이익이 두려워서인지, 또 다른 무언가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당시의 나는 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건 두고 봐야겠네요.”

나는 그의 악수를 받지 않았다.

도민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썩어들어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용건 없으면 들어가 보겠습니다.”

붉게 물든 그의 표정을 뒤로하고 강의실로 들어가며 슬며시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어, 잠시만요!”

누군가가 다급하게 나를 멈춰 세웠다. 뒤를 돌아보자, 자신의 입을 막으며 눈이 동그래져 있는 여성. 본의 아니게 카운터에 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노희재였다.

“무슨 일이시죠?”

나 역시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 수강 과정이 바뀌셔서. 그 강의실이 아니에요. 교재도 새로 받으셔야 해요.”

노희재는 마치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도민호의 눈치를 보며 답했다.

“흠흠, 교재는 어디서 받아야 하죠?”

“저쪽 상담실이요. 따라오시면 돼요.”

민망함에 헛기침을 내뱉으며, 발걸음을 돌리자 그녀는 눈에 띄게 허둥거리며 나를 안내했다.

다시 한번 도민호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가 그녀 또한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잠시만요, 금방 찾아드릴게요. 수강 과정이 바뀐 걸 오늘 들어서요. 여기 어디 여분이···.”

어째서인지 자신이 더 당황스러워 보이는 노희재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정신없이 이동하던 그녀는 문턱에 걸려 휘청거렸고.

“어?”

반사적으로 노희재의 손을 잡아챘다.

덕분에 그녀는 넘어지지 않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갑작스러운 어지러움. 머릿속의 무언가가 하나의 줄로 연결된 것 같은 느낌. 주변의 공기마저 멈춰버린 듯 알 수 없는 기분에 휘청거리며 다시 눈앞을 봤을 땐.

‘뭐, 뭐야?’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손이나 발 역시 마찬가지.

신체 그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그만두세요!”

입이 멋대로 움직였고, 소리가 새여나왔다.

‘...이 목소린.’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노희재. 그녀의 목소리가 내 입을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눈알을 굴려 거울에 살짝 비춘 모습 또한 내가 아니다.

마치 노희재의 몸속에 내 영혼이 들어간 듯.

그녀의 모습을 한 내가 의지와 상관 하고 움직이며 말하고 있었다.

‘무, 무슨···. 도민호가 왜 여기에?’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도민호는 분명 상담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들어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음은 물론, 어떻게든 들어왔다고 해도 문 앞에 있던 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어째서 그가 저기에 잔뜩 흥분한 얼굴로 멈춰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진정하자, 진정해.’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힘겹게 눈알을 굴려 보았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옷이 달라!’

노희재 그리고 도민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 아니 불과 몇 초 전에 보았던 그들의 복장이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들,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지금 눈앞에 멈춰있는 이들의 복장은 방금까지 입고 있던 옷이 아니다. 단정한 새미정장 차림이었던 도민호는 지금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깔끔한 와이셔츠 복장이었던 노희재는.

‘...어째서?’

그녀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다시 한번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미간이 좁혀졌다.

잔뜩 웅크린 그녀의 앞섬은 풀어헤쳐 있었다. 마치 누군가 억지로 단추를 뜯어버린 듯 실밥이 뜯어진 자국과 함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누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은 질문.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곤 나를 제외한 단 한 명밖에 없다.

그리고 멈춰버린 그의 손톱엔 노희재의 블라우스에서 뜯긴 것과 같은 실밥이 껴있었다.

‘도민호 설마 이런 짓까지···.’

상황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쯤.

“민혁 씨!”

눈을 깜박이자, 노희재가 멀쩡한 모습으로 앞에 서 있었다. 꽤 많은 양의 교재를 낑낑거리며 들고 있는 그녀.

“저.”

“아, 받아요. 빨리!”

무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급한 외침에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교재를 건네준 후, 시간을 확인하며 재빨리 문을 나서려 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 저기요!”

“네?”

“방금 혹시 이상한···.”

“이상한 거요? 음···. 아! 책에 먼지 때문에 그러세요? 그래 보여도 새 책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아, 아닙니다.”

“...? 민혁 씨도 어서 나가세요. 이제 수업 시작해요.”

노희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의아한 표정으로 일관했고 그대로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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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혁은 도민호가 먼저 퇴근하는 것을 확인한 후, 학원 건물의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나 착각, 헛것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장면이었기에.

-띵! 1층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며 보이는 사람은 노희재. 행복한 표정으로 막대사탕을 입에 넣으려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응? 컥컥. 아, 아직 집에 안 가셨네요?”

순간적으로 사레에 걸린 듯 컥컥거리던 그녀는 사탕을 슬그머니 뒤로 숨기며 애써 태연하게 물어왔다.

“노 실장님을 기다렸어요.”

“네? 저를요?”

강민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희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잔뜩 경계하는 움직임.

“무, 무슨 일이시죠?”

“노 실장님, 혹시···.”

그녀의 물음에 답을 하려는 찰나.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본론을 내뱉었다.

“도민호 때문에요.”

도민호의 이름이 나오자 노희재의 표정이 순식간에 더욱 찡그려졌다. 그녀는 표정에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뭔가 있기는 있구나.’

직접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도민호의 이름을 들은 그것만으로 그녀는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도 실장이요?”

그녀의 물음에 하고자 하는 질문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혹시 도민호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나요?’ 따위의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알 수 없는 현상에 의해 그러한 상황을 보았을 뿐.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혹여나 그러한 질문을 하여도 성에 관한 범죄의 피해자일수록 감추려는 성향이 강했기에 제대로 된 답변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도민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노희재는 잔뜩 경계하며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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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강민혁은 좁디좁은 자취방 책상에 홀로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있었다.

상담실에서 경험, 난생처음 느껴본 현상.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세세하고 구체적이었다. 그 기억은 마치 장면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듯 매우 선명하고 생생하게 자리 잡았다.

“뭐였을까···. 빙의?”

혼잣말을 내뱉던 강민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빙의라고 하기엔 정신을 차렸을 때 노희재는 눈앞에 있었다.

오히려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으니, 당시의 일어난 상황은 아닐 터.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

확신할 순 없었으나 신빙성은 있었다. 노희재, 도민호의 옷차림이 달랐고 사무실의 풍경 또한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어째서 노희재의 과거 기억이 나에게 보였을까.

오히려 도민호의 경우 그녀보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어떠한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손?”

순간 넘어질 뻔한 노희재의 손을 무심코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지···. 만.”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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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모든 강의가 끝난 지 한참 지났음에도 여전히 열려있는 학원의 문.

조심스레 들어가자 상담실의 불빛만이 은은하게 퍼져 나왔다.

‘확인해서 나쁠 건 없지.’

스스로 생각해도 이곳에 온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민혁은 곧장 상담실의 문을 열었고, 그 안의 도민호와 눈이 마주쳤다.

“응? 뭡니까?”

갑작스레 상담실의 문이 열리자 놀란 듯 그가 고개를 들었고, 강민혁을 확인하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수강 과정을 또 바꾸러 온 겁니까?”

도민호는 아직 악수를 거절한 앙금이 남아있는 듯 자신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

이미 생각해온 그럴듯한 변명을 내뱉었다.

“아침에 무례했던 것 같아 사과하러 왔습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며 사과했고, 그는 한동안 빤히 그 손을 쳐다볼 뿐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어.’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내일부턴 주말이 시작된다. 즉, 이틀 동안 학원이 쉰다는 의미였고 지금이 아니라면 이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만약 손을 접촉하는 것으로 ‘그 현상’이 발현되는 것이 맞는다면 이 방법 외에는 떠오는 것이 없었다.

“...”

“...”

하지만 이 방법 또한 통할지는 미지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침묵하던 도민호는 이내 거만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허. 잘해봅시다. 강민혁 씨.”

그리고는 비웃는 듯 조소를 날리며 악수를 받았다. 자신에게 꼬리를 내린다 생각한 것이겠지.

마침내 그의 손이 맞닿는 순간.

다시 한번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

이미 경험해본 적이 있는 현상.

과거의 기억이 회상되는 것으로 유추는 그 현상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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