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화.용하다 용해 (238/246)

◈ 용하다 용해

“장군일세, 최 비서.”

수태광이 장기 말을 움직이며 말했다.

장기판을 빤히 바라보던 최 비서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엔 제가 졌군요. 회장님 장기 실력이 나날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겸손은.”

“한 번 더 두시겠습니까?”

“됐네. 벌써 세 번이나 두지 않았는가. 이제 슬슬 장기도 지겨운 것 같으이.”

최 비서가 슬쩍 수태광의 표정을 살폈다.

왜인지 모르게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내가 너무 티 나게 졌나? 아니지, 그럴 리가 없다. 회장님 사위분께 접대 장기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내가…….’

최 비서가 창밖을 응시하는 수태광을 바라보았다.

사색에 잠긴 듯한 그의 표정이 신경 쓰여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전 서방하고 선화의 여행 기간이 한 달 정도 너 늘어났다지. 그런데 왜 이런 타이밍에 그런 꿈이…….”

“예? 꿈 말입니까?”

낮게 중얼거리는 수태광의 목소리에 최 비서가 반색했다.

일단 근심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듯해서다.

“커다란 상어 두 마리가 오늘 밤 내 꿈속에 나왔다네. 두 마리 모두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더군.”

“허! 여의주! 그, 그거 태몽아닙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한데…….”

수태광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끔 태몽을 다른 사람이 대신 꾸는 경우가 있다.

집안에 임신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선화였고, 태몽이 진짜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선화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지 않은가.”

“아?”

과거, 선화가 유산했던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당장에 선화에게 전화해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은 수태광이었지만, 딸이 가진 아픔을 알고 있기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선화는 그날의 아픔을 어느 정도 치유한 상태이지만, 만약 태몽이 아닐 경우 굳이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꼴이었으니까.

태몽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 꿈을 고이 간직한 채 선화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보려고 했으나, 예전의 아픔이 떠올라 불안함에 근심이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최 비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던 수태광이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 예전에 딸아이 가졌을 때 무슨 부적을 썼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저희 안사람도 유산 경험이 있었던 터라, 주변에서 다들 신경을 많이 써줬었죠. 그때 그 부적도 제 친구 녀석이 준 것이었는데……괜찮으시면, 그 부적을 어디서 구했는지 제가 친구에게 물어라도 봐 볼까요?”

“그래 주겠나. 꿈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쓰곤 있으나, 아무래도 불안해서 가만히 있지만은 못 하겠구만. 선화에게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고개를 끄덕인 최 비서가 곧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현듯 이 나라에서 가장 용한 무당을 알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무렵.

- 그제도 만나서 술 한잔 해놓고, 또 술 먹자고 전화했는가?

“그, 그런 게 아니라, 강철이 자네 용한 무당 한 명 알고 있다고 했지? 왜 그 예전에 우리 예나 낳을 때 자네가 부적 줬잖나?”

- 아아! 그 할머니 신 모시는 무당? 거기가 진짜 엄청 용하긴 하지! 기억나지? 자그마치 내게 귀인을 보내주셔서 목숨까지 구해주신 무당이라고!

“그 무당집 주소 좀 보내주게. 급한 일이니 서둘러 부탁 좀 함세.”

통화를 마친 최 비서가 핸드폰 문자를 통해 보내온 점집의 주소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 수태광을 향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당, 확실히 용한 거 맞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회장님. 이 친구가 공인중개사인데, 본업보다 용한 무당 찾는 걸 훨씬 더 잘하는 녀석이거든요.”

“흐음. 좋아,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미신을 퍽 믿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번엔 너무나 마음이 불안한지라 거기에라도 기대어보고 싶은 수태광이었다.

***

방울 소리가 연달아 들려온다.

주위를 가득 에웠던 방울 소리가 차츰 줄어들더니, 두 눈을 감고 있던 무당이 눈을 서서히 치켜뜨며 말했다.

“저희 할머니 신께서 말씀하시길 부적은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부, 부적도 의미가 없다? 그럼 어찌 해야……?”

수태광의 광대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꿈 해몽 들으러 왔다가 괜히 기분만 잡치게 된 상황.

하지만 다행히도 무당의 말은 아직 끝나질 않았다.

“붉은색.”

“……?”

“그리고 바다.”

“붉은색 바다?”

“할머니가 그러시네요. 붉은색과 바다를 가까이하면 상어가 여의주를 아이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허어! 붉은색 바다라……붉은색 바다…….”

난해하다. 더 자세히 듣고 싶었으나 무당이 말하길 할머니 신께서도 딱 거기까지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나마 붉은색과 바다와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답답한 마음이 시원하게 뚫린 것은 또 아니었다.

엑시스 회장답게 거금의 복채를 지불하고 나온 수태광은 저택으로 돌아가는 내내 무당의 말을 되뇌었다.

“붉은색과 바다…….”

백미러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최 비서가 문득 눈을 번뜩였다.

마침 붉은색과 바다, 두 단어와 모두 연관이 있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어, 회장님? 제가 감히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붉은색 바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기는 한데, 어딘가 좀 우스운 말 같기도 해서…….”

“말해보게. 무당이 그러지 않았나? 두 단어와 관련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그러니 뭐든지 간에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좋네.”

“제, 제가 요즘 노후 준비로 요리 학원을 다니지 않습니까?”

“요리 학원? 아아! 자네 은퇴하면 요식업 해보고 싶다고 했었지! 아무튼 그래서?”

“다음 주 요리 수업 메뉴가 쭈꾸미 볶음이라…….”

“쭈꾸미 볶음?”

“죄, 죄송합니다. 그냥 두 단어를 동시에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그게 생각나기에…….”

다소 심각한 고민 속에 너무 뜬금없는 발언이긴 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딱히 뭔가 떠오르지 않는 수태광에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던 최 비서의 마음이었다.

‘너무 아무거나 내뱉었나?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걸.’

그때였다.

수태광의 눈동자가 요리조리 구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최 비서를 향해 멈춰 섰다.

“최 비서. 그 요리 학원 말인데. 다음 주에 나도 같이 갈 수 있겠는가?”

***

요리 학원 내 중년 여성 학생들이 수태광을 흘낏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나이대가 다양한 학생들이었지만, 개중에서 특히나 중년 여성들은 수태광에게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아들놈이 너무 잘나니까, 이런 곳에서도 내가 관심을 다 받게 되는군.’

이제는 익숙한 시선들이다.

민혁이가 가수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이제는 엑시스의 수태광이라는 이름보다 ‘수민혁 아버지’ 가 더 달갑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기분 좋은 관심 속.

수태광은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쭈꾸미 볶음. 붉은색과 바다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지.’

분명히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뭔가가 더 떠오르긴 할 거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쭈꾸미 볶음이었다.

‘다다익선이라고, 그 이후에 생각난 것들 역시 죄다 선화에게 가져다주면 되는 게야.’

떠올린 것들 중 유일하게 음식은 쭈꾸미 볶음 하나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본인의 ‘정성’ 을 더하여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굳이 수태광 본인이 직접 요리를 배우러 온 것 또한 그 정성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요리를 만들어 가져다준다면, 그것이 부적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요리 수업이 시작됐다.

선화가 꽤 긴 유럽 여행을 통해 느꼈을 느끼한 맛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자극적인 맛이 더해진 쭈꾸미 볶음이 바로 오늘의 수업 메뉴였다.

“먼저 가위로 쭈꾸미 머리 부분을 길게 잘라줄 거예요. 그다음엔 뒤집어서 그 안에 있는 내장을 없애주고…….”

선생님의 시범을 쫓으며 수태광은 투박은 손을 움직였다.

몬스터를 잡는 데만 사용했던 이 손이 난생처음 음식을 만들고 있다.

“다리와 몸통 사이에 있는 눈을 없애주고요, 다리 중앙에 보시면 입 보이시죠? 살짝 밀면서 쏙! 제거해준 뒤에 먹기 좋게 다시 잘라주시면 됩니다. 이렇게요! 잘 안 되시는 분 손들어주세요!”

쭈꾸미 자르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그러나 이게 선화에게 가져다줄 부적이라고 생각하니 수태광은 저도 모르게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시범은 정말이지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려니 이상하게도 손이 떨린달까. 그만큼 신중의 신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성격 같았으면 급한 마음에 온갖 난리를 쳤을 수태광이었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고, 보다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딸을 위한 진중한 마음이 그의 불같은 성격마저 잠재운 것이다.

‘이 정도 크기가 좋으려나? 뭔가 먹기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 요 정도가 적당한가?’

생각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용케 눈치를 살피며 수업을 따라가는 수태광이었다.

썰린 쭈꾸미에 밀가루를 더해 빨판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을 없애고, 물에 세척까지 끝냈다. 데치기 위한 쭈꾸미는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내 소싯적에 칼춤 좀 췄었지.”

이젠 쭈꾸미를 데칠 물이 끓는 동안, 야채들을 썰어줄 차례였다.

‘어, 어째 조금 불안하신데?’

최 비서가 몸을 움찔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는 수태광의 모습이 여간 위태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에 쥔 칼로 몬스터를 썰어보긴 했어도, 이렇게 각 잡고 야채 썰어본 적은 처음인 수태광이다.

몬스터 썰 때의 칼과 야채 썰 때의 칼을 잡는 게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끄응…….”

투박하다.

그저 투박하고 서툴기만 하다.

그러나 움직이는 손에 담긴 정성만은 가득하다.

수태광은 아주 천천히 야채를 썰어나갔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꽉 부여잡으면서 딸이 먹을 음식에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더해갔다.

‘회장님께도 이런 모습이 있으셨구나. 그 정도로 선화 아가씨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겠지.’

최 비서가 새삼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소에 비해 확실히 고요한 느낌이랄까.

잘하고 못하는 걸 떠나, 노력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위대해 보였다. 수태광이 이뤄온 모든 것 역시 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일 터.

양념장을 만듬과 동시에 볶기 전의 모든 과정들이 하나, 둘 끝나갈 무렵.

“음?”

가스버너의 딸깍거리는 소리에 수태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의 쭈꾸미 볶음은 불맛을 강조하기 위해 인덕션이 아닌 가스버너를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이상하네. 가스는 충분한데……제가 금방 다른 걸로 바꿔다 드릴게요! 잠시만요!”

“아닙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네?”

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 순간.

수태광이 눈을 번뜩임과 동시에 고장 난 가스버너에 불길이 치솟았다.

화르르륵!

요리에 과할 정도로 치솟는 불길.

순식간에 장내에 있던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바로 다음 단계 진행하시죠.”

선화를 위한 요리에 정성을 담을 시간도 부족한데, 가스버너를 교체하는 조금의 시간도 낭비할 수도 없다는 수태광의 의지였다.

“죄, 죄송한데, 화, 화력이 지나치게 좋은데요?”

“……좀 줄이겠습니다.”

불맛을 내려다, 불맛밖에 안 날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수태광이 냉큼 불을 줄였다.

취이이이익 -

기름에 볶아낸 양념장 위에 쭈꾸미가 더해지자 먹음직스런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딸아이를 위한 내 인생 첫 요리가…….’

볶으면 볶을수록 그 자태가 더욱 빛을 더해간다.

괜히 모르게 뿌듯해진 수태광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완성되었다!’

첫 요리인지라 비주얼이 어딘가 살짝 모자라 보이긴 했지만, 맛은 나름 훌륭했다.

부디 선화도 이 요리를 썩 마음에 들어 하길.

“아빠가 시간 날 때 집에 오라는데? 직접 요리 해주신다고.”

“뭐? 장인어른께서 직접 요리를?”

한 달 뒤.

여행에서 돌아온 선화와 준우는 놀라운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

여행에서 복귀한 다음 날, 수태광의 대저택.

준우와 선화는 눈앞에 놓아진 음식들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걸 정말 다……?”

“아빠가 했다고?”

칼칼한 된장찌개와 각종 나물을 비롯한 여러 반찬들.

엄청 대단한 요리도 아니고, 그 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수태광이 ‘직접’ 요리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사건이었다.

“믿기지가 않네? 아빠가 진짜로 직접 요리를 했다니…….”

된장찌개에도 바지락이 들어 있었고, 몇몇 나물들을 제외한 다른 음식들은 대개 해산물 위주였다.

음식들을 살피던 선화가 슬쩍 주변을 살펴본다.

먹음직스런 음식이 참 보기 좋기도 한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붉은 부엌의 조명이 살짝 거슬렸다.

게다가.

수태광이 입고 있는 앞치마와 위생모자.

거기에 박힌 바다 속 상어 그림이 굉장히 난해했다.

“아빠, 그새 취향 같은 게 바뀌기라도 했어?”

“껄껄! 그런 건 아니고 오늘 식사를 위해 내가 부엌에 변화를 좀 줘봤다.”

“조명이 너무 눈 아픈데.”

“그래도 선화 네겐 붉은색이 좋지 않겠느냐?”

“응? 붉은색이 나한테 왜 좋아?”

“그, 그런 게 있다. 아무튼! 조명은 내가 때가 되면 다시 바꿀 터이니 오늘만 그냥 이대로 식사를 하자꾸나.”

옆에 있던 최 비서가 수태광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바뀐 조명이 어색하리만치 과하긴 하지만, 이 음식들 역시 회장님께서 여행에서 돌아오실 두 분을 위해 정성을 과하게 실은 요리들입니다. 과할 정도로 쏟은 정성과 노력에 요리 학원에서도 우등생이라고 불리시는 중이시지요.”

“살다, 살다, 우리 아빠가 요리 학원을 다닌다는 소리를 다 들어보네.”

“멋지십니다, 장인어른. 배움엔 끝이 없다는 그 마음가짐. 정말이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수태광의 입가가 씰룩였다.

비록 요리 학원 선생님처럼 비주얼과 맛이 모두 완벽한 요리를 할 수는 없었으나, 한 달 만에 얼추 흉내만 낼 수 있게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였다.

거기에 딸 부부의 칭찬까지 겸해지니 그간 갈고닦은 노력에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껄껄! 아직 그렇게 띄워주긴 이르다. 메인 요리가 남았거든!”

“메인 요리?”

“해외 여행하면서 매운 음식 안 땡기더냐?”

비장의 한 수를 꺼내려는 듯 수태광이 입꼬리를 싹 말아 올리며 물었다.

그리고는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가장 많이 연습하고, 가장 많이 시식해본 수태광 표 ‘최강 불맛 쭈꾸미 볶음’ 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냄새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장인어른!”

“불맛의 깊이를 더하는 데 공 좀 들였지. 나 수태광이 누군가? 불과 관련된 것이라면 날 따라올 자가 없지!”

그야말로 불꽃 요리의 집약체.

풍겨오는 냄새에서도 불의 향이 그득한 것이, 그것을 입에 넣으면 어떤 맛이 나올지 기대가 되는 준우였다.

“선화야, 어때? 너 쭈꾸미 볶음 좋아하잔아? 불 향이 완전 제대로……응?”

그때였다.

선화 역시 불 향을 감상하기 위해 손을 안쪽으로 휘휘 저었는데.

“우욱!”

감탄사 대신 헛구역질이 튀어나왔다.

순간 수태광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음식은 아직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우우욱! 가,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는…….”

선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우우욱!”

부엌에서 멀어지는 선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수태광이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붉은색과 바다. 설마, 진짜 이게 효과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음식은 먹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저, 전 서방. 내가 지금 괜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준우 역시 무언가를 직감한 것일까.

평소와는 달리 표정이 상당히 미묘하다.

“……어쩌면 오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장인어른.”

두 남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마치 불꽃이 튀듯 비장하게 눈빛을 주고받는 두 사람.

“여태 선화가 저렇게 헛구역질을 하는 걸 본 적 있는가?”

“당연히 없죠. 게다가, 냄새만 맡고 헛구역질을 하는 건 결혼 전후로도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만약, 저희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수태광과 준우의 생각이 완벽히 일치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두 남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어른! 아무래도 요리 맛은 다음에 봐야겠습니다! 어서 움직이시죠!”

“그래야지! 지금 요리 따위가 중요한가!”

후다닥 외출 준비를 마친 수태광이 잠시 자리를 비운 최 비서를 찾기 시작했고, 준우가 화장실에서 나온 선화를 품에 안은 채 그 뒤를 쫓았다.

“최 비서! 당장 헬기를 대령시키게!”

“회, 회장님, 갑자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기상 악화로 인해 헬기가 뜰 수 없는 상황…….”

“젠자아앙!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가, 가장 가깝고 좋은 병원이 어디 있더라?”

“병원 말이십니까, 회장님?”

“그래, 병원! 꼭 산부인과가 있어야 하네!”

“장인어른! 선화의 안정을 위해 차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그럼 자네 먼저 출발하게! 내가 뒤에서 엄호할 테니까!”

광기 어린 주문처럼 ‘산부인과! 산부인과!’ 를 외치더니, 미처 최 비서가 뒤따를 틈조차 없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사람들…….

“……설마, 진짜로 선화 아가씨께서?”

그렇다면 이 집이 한바탕 떠들썩해지겠군.

강철이. 자네가 소개해준 그 무당이 확실히 용하긴 용한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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