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화.그저 빛 그 자체 (235/246)

◈ 그저 빛 그 자체

“꺄아아아아아악!”

선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준우에게 안겨 두 눈을 질끈 감은 선화는 그의 옷깃을 꽉 부여잡은 채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사람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응당 ‘풍덩!’ 소리와 함께 그 이후의 결과가 나타나야 하거늘.

“꺄아아아아…… 아악?”

예상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자, 선화가 꽉 감았던 두 눈을 살며시 떴다.

“무, 물에 떴어! 떴다! 떴어!”

준우가 품에 안겨 있는 선화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정감 때문인지 옷깃을 잡고 있던 선화의 손에도 힘이 풀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이내 놀람 가득한 눈으로 아래쪽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다.

준우가 물에 떠 있었다.

“우와아아!”

사람이 물에 뜨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자신을 안은 채로 물 위에 서 있는 이 모습은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 우와아아아아아아!”

선화의 입에서 재차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수린이가 신기한 뭔가를 보고 소리치는 모습과 닮아 있어, 준우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준우가 선화를 안고 물 위를 걷는다.

곧 석양이 지기 시작할 테니, 로맨틱한 밤을 위해서는 빨리 섬으로 향할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응? 어떻게 했어?”

“여긴 항구잖아. 당연히 근처에 해상 안전 관리 센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준우가 자신의 발을 가리켰다.

안전 관리 센터 요원들이 비상시에 사용하는 ‘워터 워킹 슈즈’가 마력을 머금은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센터에서 그걸 빌려줬다고?”

“아니. 센터에서 민간인에게 이걸 그냥 빌려줄 리가 없지. 그래서 주변을 좀 더 뒤져봤는데, 해상 안전용품 판매점이 있더라고.”

“그 짧은 새에 거기까지 다녀온 거야?”

“널 위해서라면 더 먼 곳까지도 금방 다녀올 수 있지.”

선화가 헛웃음을 쳤다.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이긴 하나, 십여 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이 근처를 싹 뒤졌다니…….

“……응?”

갑자기 발이 휑한 느낌에 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새 자신의 신발을 벗긴 준우가 신발 대신 워터 워킹 슈즈를 신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 어?”

“마력 운용할 줄 알지? 신발에 집중시키는 거야.”

“모, 못해! 내가 그걸 어떻게 해!”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그리 말한 준우가 품에 안고 있던 선화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로 모르는 바다였다.

“못해! 나 못해! 오빠 나 죽어어어어!”

양팔을 좌우로 휘적거리며 수린이처럼 앙탈을 부리는 선화였지만, 준우는 그저 짓궂은 표정을 하고서 그 모습을 모른 척했다.

“오빠아아아! 나 죽어어어………어라? 이게 되네?”

선화가 바다 위에 안착했다.

나름 선화도 각성을 하긴 한지라 마력 운용이 가능한 상태였다.

거기에 준우의 마력이 더해지니 발가락이 살짝 물에 잠기긴 했어도 어렴풋이 물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헤헤. 엄청 쉽네?”

“거봐. 내가 뭐랬어? 되잖아.”

바다 위를 함께 걷는 것.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 보겠는가.

의미 있는 여행이었고, 그 여행이 보다 특별해질 수 있기를 바란 준우의 작은 선물이었다.

“내가 손 꼭 잡고 있을게. 천천히 걸음 떼 봐.”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듯 준우가 선화의 손을 잡고서 나란히 걸었다.

찰박찰박. 선화가 물 위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작은 물결이 치며 잔잔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중심 잡기가 어려운지, 선화의 몸이 살짝 비틀거렸다.

“오빠.”

“응, 선화야.”

“내 손 놓지 마.”

“걱정 마. 절대 놓지 않을 테니까.”

한 걸음, 한 걸음.

선화는 걸음을 내디디면서도 자신의 손을 꽉 부여잡고 있는 준우의 손을 연신 살폈다.

불안한 시선과 흔들리는 몸.

또 그 와중에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준우의 손.

선화가 슬쩍 준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온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한 채 보폭을 맞춰 걷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안도감이 잦아든다.

이윽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잡던 선화의 몸이 차츰 균형을 되찾았다.

“오빠, 우리 속도를 좀 높여 볼까?”

“괜찮겠어?”

“으음. 오빠가 지금처럼 내 손만 꼭 잡고 있다면.”

서서히 노을이 진다.

붉게 물든 바다 위, 두 사람의 발자국이 숱한 물결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선화에겐 더없이 완벽한 날이었다.

유람선 문제로 별은커녕 아름다운 석양도 제대로 보지 못할 것만 같던 오늘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바다 위를 걸어 제시간에 섬에 도착했다.

‘히힛. 그렇게 힘이 남아돈다, 이 말이지?’

선화는 조금 전 자신을 안은 채 바다 위를 뛰었던 준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영장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싶다 했더니, 냉큼 또다시 자신을 업고 뛰던 남편의 모습을 말이다.

힘이 차고 넘치는 남편 덕분이었을까.

원래는 유람선을 타고 도착했어야 할 시간보다 빠르게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도 유람선은 선착장에서 대기 중인 상황.

앞서 체크인을 한 관광객들이 있기는 했지만, 석양이 지는 시간대에 체크인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기에 준우와 선화가 묵는 리조트는 상대적으로 한산할 수밖에 없었다.

‘풀 파티가 뒤로 미뤄졌다고 했나? 사람들이 별로 없네.’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수영장.

바다와 맞닿아 있어 가히 장관이라 불릴 만한 풍경이 준우의 눈앞에 펼쳐졌다.

‘꼭 우리가 전세 낸 것 같단 말이지.’

먼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준우는 붉게 물들어 있던 바다가 점차 검게 변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손에 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따뜻한 온도의 물.

그 안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이곳이 여행지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 줄 만큼 완벽한 맛이었다.

“크으.”

순식간에 맥주를 비운 준우가 밤바다를 응시했다.

저 멀리 유람선이 섬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인다.

반짝이는 유람선과 바다, 그리고 모래와 나무들…….

이 풍경이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든다.

분명히 처음 와 본 곳임이 분명한데, 언젠가 꼭 한번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그러고 보니…….”

그 이유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거, 선화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 여기가 플라워 아일랜드래. 요즘 해외 여행지 중에서도 가장 핫한 곳이라는데. 우리 여기 놀러 갈까?

- 미안해, 선화야. 내가 올해는 영 시간이 안 날 것 같아.

준우가 엑시스 부마스터로서 이름을 날릴 때였었을 거다.

당시 선화에겐 올해는 시간이 안 날 것 같다고 했지만, 내년에도, 그 내년에도 선화가 바라는 시간은 절대 나지 않았었다.

“여기 오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출발하기 전부터 설렘 가득한 선화의 얼굴을 보며 여기까지 왔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 표정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인데.

비행기 한번 타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그렇게 바삐 살아왔는지, 원.

‘아까, 선화 웃는 게 참 아이처럼 예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물소리가 들리더니, 낯익은 기척이 느껴졌다.

‘……부, 분명히 아까는 아이 같았는데?’

뒤를 돌아본 순간 다가오는 선화와 눈이 마주쳤다.

물에 살짝 젖은 머리카락과 수영복을 입은 아내의 모습은 차마 ‘아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른의 농도가 깊었다.

‘뭐, 뭔 수영복에 저렇게 구, 구멍이 크게 나 있냐?’

원피스형 비키니 같은데…….

가슴부터 배까지 내려오는 라인이 파여 있다.

그것도 아주 꽤나 깊게.

“어때, 오빠? 내가 아주 고심해서 고른 비키니인데?”

“…….”

“별로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비키니를 여러 벌 챙겨 온 선화다.

그 수가 너무나도 많아 고르는 데 오래 걸려서, 준우보고 먼저 나가 있으라고 한 것이었다.

한데.

이렇게 파격적인 비키니를 입고 나올 줄이야.

어두워진 밤하늘. 주변의 조명에 반사된 선화의 새하얀 비키니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설마, 지금 오빠 부끄러워하는 거?”

“부, 부부 사이에 부끄러움은 무슨!”

“귀 빨개졌는데?”

“추, 추워서 그래!”

두 사람이 수영장에 처음 온 것은 아니지만, 선화가 이 정도로 파격적인 수영복을 입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춥기는 무슨. 해외여행인데 이 정도 과감함은 있어야지! 안 그래, 오빠?”

선화가 씩 웃으며 준우에게 팔짱을 꼈다.

물에 젖은 피부의 촉감 때문인지 묘한 분위기가 준우의 오감을 자극했다. 준우의 팔에 닿은 선화의 가슴에서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준우 역시 이런 분위기가 싫은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놀라서 어색한 것일 뿐.

“우리 처음 워터파크 갔을 때 생각난다. 워터 슬라이드 같이 줄 서고 있다가, 오빠 발가락이 내 발에 닿았던 거 기억나?”

“아…… 그때?”

“발 좀 닿은 거 가지고 어찌나 그리 쭈뼛거리던지.”

“내, 내가 언제 쭈뼛거렸다고!”

“우리 오빠 그때 엄청 귀여웠었는데. 창피해서 내 얼굴도 똑바로 못 쳐다보고, 멀쩡히 잘 잡던 손도 갑자기 못 잡고…….”

연애 초반기였을 거다.

당시엔 지금보다 많이 가려져 있는 수영복을 입은 선화였지만, 스킨십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이인지라 준우가 많이 부끄러워했더랬지.

“……그때는 선화 너랑 처음으로 워터파크 가 본 거였으니까. 나도 막 네 맨살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다고.”

“얼씨구? 그러셨어? 그럼, 지금은 왜 긴장하실까?”

“누가? 내가? 내가 뭔 긴장을 했다고.”

준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휙!

준우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선화가 그의 두 눈을 가까이서 마주 보았다.

선화가 더욱 가까이 얼굴을 가져간다.

서로의 몸이 맞닿으며 숨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온다.

“진짜 긴장 안 했어?”

“안 했다니까.”

“증명해 봐, 그럼.”

어두워진 저녁.

다소 이르게 떠오른 별빛이 두 사람을 비춘다.

별빛 속, 준우는 대답 대신 선화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좀 떨리는 것 같은데?”

“아직은 날이 좀 쌀쌀해서 그런 것 같은데.”

마주 보고 있는 선화의 얼굴 옆으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까 유람선이 섬을 향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다들 야경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드는 모양이다.

다소 한산하던 장소에 소란이 더해진다.

분위기 좋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조용해서 딱 좋았는데.”

미간을 살짝 찌푸린 선화가 준우를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시끄럽지 않아?”

“그렇긴 한데. 여기서 야경 보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오늘 별 많이 뜬다고 기대했었잖아.”

하늘을 한번 쓱 올려다본 선화가 이제 됐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별 충분히 다 봤어.”

그러자 준우도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됐어. 방으로 들어가자.”

준우가 선화를 품에 안아 들어 올렸다.

선화 역시 기다렸다는 듯 준우의 목에 팔을 감았다.

깊어지는 밤.

달빛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둘만의 깊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 * *

준우와 선화가 황홀한 밤을 보내고 런던과 파리, 그 외 유럽 곳곳을 누빈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이탈리아의 최대 관광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신성회의 대회당 ‘바이올렛 스퀘어’에서는 다소 비장한 얼굴의 성기사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대회주님. 이번에도 실패입니다.”

“흐음. 1급 성구를 썼음에도 안 되는가?”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버티기엔 성구의 내구력이 부족한 듯싶습니다.”

“1급 성구로도 안 된다라. 그럼, 결국 ‘성검’만이 해결책이라는 얘기인데…….”

아이작 체포 이후.

엑시스를 필두로 각국의 헌터 협회는 차원의 문이 열리는 틈을 봉쇄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 중에 있는 상황이었다.

작업에 필요한 힘은 마력 혹은 신성력.

같은 양일 경우 신성력이 훨씬 더 우월한 효과를 냈기에, 수재혁은 팔라딘을 통해 신성회의 협조를 얻어 내는 데 온갖 노력을 했었는데…….

문제는 모아둔 그 힘을 폭발적으로 터뜨려야 함에 따라, 그것을 한데 응축시켜 보관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기사 단장의 말에 따르면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양은 신성회 최고의 내구력을 갖춘 1급 성구로도 버텨 내질 못한다고 하니 머리가 아파 올 수밖에.

“성구의 크기를 늘려 다시 제조를 하는 건 어떠한가?”

“한국의 협회에서 균열을 발견하면 영국 측에서 강제로 균열의 틈을 넓혀서 응축된 신성력을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성구의 크기가 클수록 균열의 틈 또한 더욱 넓힐 수밖에 없게 되니…….”

“1급 성구가 피해 없이 주입시킬 수 있는 최대 크기라는 것이군. 거기서 더 넓혔다간 자칫 균열이 폭발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엑시스와 한국 협회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작업이었지만, 신성회 역시 이번 일에 긍정적인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인의 평화라는 것은 신성회의 지침과도 같은 것이며, 엑시스와 그의 가족들이 성물 복원까지 해내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연이 닿은 것 또한 신의 뜻.

악마와도 같은 존재들이 차원의 문을 넘어 필라 신이 주신 이 땅을 침범하는 것은 대회주 역시 원치 않았다.

하지만.

당장 가장 급한 신성력을 모을 방법이 없다.

마력을 대체재로 사용한다고 한들 그것이 더 어려울 터.

‘성검을 꺼낼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텐데.’

신성회 세 개의 성물 중 하나인 성검 바이올렛.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대 팔라딘의 안식처에 봉인된 성검을 뽑아내기엔 지금의 팔라딘은 그 힘이 부족했다.

‘성물을 복원할 정도의 힘이라면 성검을 뽑고도 차고 넘치지 않을까?’

문득 팔라딘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그마치 깨진 성물을 복원한 수린이라는 아이, 아닌, 신의 대리자일지도 모르는 그분의 성스러운 힘에 대한 이야기가.

‘하지만, 수린이라는 아이를 전도하러 간 팔라딘에게선 여태 좋은 소식이 들려오질 않으니…… 끄응!’

잠깐 연락이 오긴 했었다.

수린이를 전도하기 위해 아주 좋은 방법을 찾았으나,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그러나.

팔라딘에게서 연락이 왔던 것도 벌써 한 달이 넘게 흘러버린 지금이다.

그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수린이를 전도하는 데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대회주가 한국으로 날아가 수린이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곧 바이올렛 대회당의 가장 큰 행사인 신성의 날이 다가오기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회주는 믿었다.

신께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시련을 주시진 않는다고.

분명 필라 신께서는 이번 시련 역시 이겨 내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같이 주실 것이라고.

“신이시여. 그늘이 가려진 바이올렛 대회당에 한 줄기 온화한 빛을 내려 주시기를…….”

대회주가 낮게 중얼거리던 그때.

광장 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평일이고, 예배가 없는 날이지만,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대회당을 방문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성구 관련 문제로 광장을 폐쇄한 상태였다.

사람들 또한 그것을 모를 리는 없을 거다.

미리 공지사항을 통해 알렸었고, 현재 모인 이들 또한 굳게 닫힌 바이올렛 스퀘어 광장의 철문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만 마치고 돌아가곤 했었으니까.

“잠깐만! 저, 저분은……?”

그런데.

철문 앞에 모여 있는 이들 중 누군가가 대회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설마! 신께서 이렇게나 빨리 응답을 해 주셨단 말인가!”

“왜 그러십니까, 대회주님?”

“어, 어서, 처, 철문을!”

“문은 걱정 마십시오, 대회주님. 오늘 성구 관련 문제로 인해 철문은 완벽하게 폐쇄해 뒀으니…….”

“그, 그게 아니라, 처, 철문을…….”

“예?”

“다, 당장 철문을 개방하라아아아!”

대회주의 시선이 머무는 곳.

따스한 오후의 한 줄기 햇살 아래, 수린이의 아버지인 준우가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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