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주먹은 이렇게 쓰는 거야 (231/246)

◈ 주먹은 이렇게 쓰는 거야

- 본청 특수 본부 1팀 지원 바람.

- 다시 전파합니다. 본청 특수 본부 1팀 지원…….

전투복으로 환복한 이정진은 서둘러 훈련실로 향했다.

본인이 속한 1팀과 함께 지원조로 편성된 김강수가 여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에 위치한 훈련실이라면 방송 소리가 다소 적게 들릴 수도 있다.

훈련 중이었을 테니 핸드폰을 비롯한 각종 통신 장비들도 갖고 있지 않을 거고…….

“……응? 전투복으로 환복까지 다 하셨네요?”

“나 데리러 왔냐?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

“왜 멍하니 서 있어? 빨리 출동해야지.”

“아아, 넵!”

마격 테스터기의 계기판에 잠시 시선을 뺏겼던 이정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강수의 뒤를 따랐다.

‘잘못 봤나? 점수가 1,000점이었던 것 같은데…….’

1,000점이 만점인 마격 테스터기다.

설마, 본부장님이 저 점수를 냈단 말인가?

협회 내에서도 만점에 도달한 사람은 여태 단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준우랑 동급이라고?’

만약, 수치화할 수 있는 점수에 한계가 없다면 준우의 점수는 더 높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천? 삼천?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워낙 괴물인 녀석이니 준우는 없는 셈 치고.’

김강수의 성과만 놓고 보면 가히 협회 내 최강의 마격을 가꿔 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정진이 최근에 봤을 때만 해도 800점대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이게 과연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던가.

“이정진이. 근데, 갑자기 왜 우리 팀에 지원 요청이 들어와?”

“태현호 팀장이 직접 저희 팀에 지원 요청을 했답니다.”

“태현호? 그 인간 또 사람 짜증 나게 하려는 모양이네. 하여튼, 열등감에 찌들어 산다니까 아주. 대체 철은 언제 들려고 그러는지.”

“그러려니 하시죠.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팀원들이 한데 모여 장비 점검을 하고 있는 사이.

현장으로 향하는 포탈 시스템을 향해 달려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그나저나, 저 자식은 여기 왜 와?”

김강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앞의 준우를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애써 험한 말은 참아냈다.

“같이 가야죠.”

“같이 가? 어딜?”

“현장 지원 말이에요. 오늘까진 저도 이 팀 소속이니까…….”

“얘가 별 미친 소리를 다 하네? 인마! 네가 오늘 행사 주인공인데, 행사 내팽개치고 현장을 뛰겠다고?”

“그야 같이 가면 훨씬 빠르게 끝낼 수 있을…….”

“시끄럽고. 저기 구석탱이 가서 은퇴 소감이나 끄적거리고 있어.”

“진짜 저 빼고 가는 겁니까?”

“너 없어도 우리끼리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인마.”

“괜히 서운해지네…….”

김강수가 매정하게 돌아섰다.

항상 녀석에게 의지했었는데, 오늘까지도 그럴 수는 없지.

준우도 더 이상 그를 붙잡지 않았다. 확고한 의지가 담긴 김강수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같이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눈빛을 보기 위해 억지를 부려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금방 다녀오마. 그래도 마지막 회식은 해야지?”

“설마, 회식 때까지 못 돌아오시면요?”

“내가 회식 빠지는 것 봤냐?”

“그것도 그렇네. 회의는 빠져도 회식은 못 참으시는 분이니까.”

김강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선두에 서서 포탈 안으로 몸을 던졌다.

하나둘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팀원들이 준우의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은퇴식에 팀원들이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에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니.

‘원래 저런 팀이었지. 처음부터 내 자리는 없었던…….’

시원섭섭한 느낌이 드는 준우였다.

간절히 바랐던 이 순간이 오면 마냥 기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보기 좋네.’

한편으론 다행이지 싶었다.

저들에게서 자신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아서.

정말이지 그게 참 다행이었다.

* * *

본청에서 관리하는 C+급 던전.

해당 던전을 이탈한 몬스터들이 대거 차단선 쪽을 향해 질주한다.

간혹 이런 현상이 벌어지긴 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모르게 그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가히 던전 내 몬스터들의 절반 이상이 쏟아져 나온 것만 같은 숫자랄까.

“방어 진형을 펼쳐라! 한 놈도 차단선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동대 총괄팀장인 태현호가 1팀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지시를 따라 진형을 바꾼 이들이 눈앞에서 내달려오는 ‘거인’들을 마주하며 방어벽을 구축했다.

콰앙! 콰앙! 콰앙!

기동대가 만들어낸 방어벽과 거인들의 몸이 충돌하며 폭음이 울렸다.

벽에 가로막힌 거인들은 자신들의 머리에 달린 뿔로 방어벽을 들이받는 데 여념이 없었고.

“2팀 공격 개시! 기습 진형으로 놈들의 약점인 정수리를 노려라!”

이어진 태현호의 명령에 은신 상태로 숨어 있던 2팀 대원들이 쏜살같이 거인들의 머리를 노렸다.

크어어어!

포효하듯 비명을 내지른 거인들이 쓰러져갔다.

보통 사람의 열 배는 거뜬히 뛰어넘는 체구를 가진 놈들이 쓰러질 때마다, 땅이 움푹 패며 먼지가 일었다.

제아무리 신체 조건이 우월한 거인들이라고 한들, 본청 기동대가 가진 능력의 격차를 좁히기엔 무리처럼 보였다.

‘후후, 계획대로 흘러가는군.’

전투가 지속되어도 사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태현호는 내심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흘낏 뒤를 돌아보았다.

물자 조달을 맡은 특수 본부 1팀 인원들이 후방에서 뭐 씹은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는 게 보인다.

지금으로선 딱히 해야 일이 없었다.

굳이 지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동대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었으며, 특수 본부 인원들은 고작 주변에 흩어진 몬스터의 부산물을 챙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꿈에도 모르겠지. 이곳에 암행 평가단이 와 있을 거라는 건.’

태현호의 기고만장한 시선이 특수 본부를 쓱 훑는다.

그만큼 여유가 있는 전투 상황이었고, 그의 시선을 느낀 김강수는 노골적으로 태현호를 쏘아보고 있었다.

뭐랄까.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랄까.

“저 개새끼가! 너희들도 태현호 저 인간 눈깔 봤지? 이야, 사람을 저렇게 깔보듯이 쳐다보네?”

“차, 참으십쇼, 본부장님.”

“참긴 뭘 참아? 우릴 등신처럼 쳐다보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저희 모두를 그렇게 보는 것 같지는 않고, 본부장님을 유독 그렇게 보는 것 같긴 합…….”

“오냐, 공현철이. 너도 오늘 준우 따라 은퇴를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 그게 아니라, 태현호 팀장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죠! 굳이 욕까지 해 가면서 열받아야 할 일이 뭐 있습니까? 저희 입만 아프지.”

“아니, 너희들은 화도 안 나냐? 냅다 우리가 앞에 나서서 활약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얌전해들?”

그러자 이정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저희는 원래 얌전합니다. 날뛰는 건 항상 본부장님이셨지. 그리고 명령이잖아요, 명령. 애당초 기동대의 임무였고 우리는 지원조로 편성된 것뿐이구요. 저희의 주 임무가 아닌 만큼 지휘관의 명령 없이 멋대로 움직일 순 없단 말입니다.”

“저 여우 같은 곰이 잔꾀를 부리고 있는데도?”

“잔꾀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공현철이 두 눈을 뻐끔거리며 되물었다.

던전에서 이탈한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까.

“인사과 내 동기 알지? 그 녀석이 그러는데, 조만간 암행 평가가 나올 거랬거든.”

“암행 평가? 진짜 암행 평가가 진행 중이라면……?”

“정진이 너도 어느 정돈 알고 있을 거다. 우리 동기들 사이에선 암행 평가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고위직들이 은밀하게 임무에 가담해서 우리를 평가하는 거지. 공식적인 승진 시험만으로는 그 됨됨이를 완벽하게 평가할 수 없으니, 이렇게 몰래몰래 하는 거랄까.”

“그럼 이 근처 어딘가에 평가단이 숨어 있다는 뜻이잖아요?”

“확실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높지. 괜한 소문이 돌 리가 없으니까.”

“보, 본부장님 말씀은 지금 태현호 팀장이 우리를 일부러 이렇게 병풍으로 세워 놨다는 거죠?”

“선호 네가 확실히 머리 회전이 빠르네.”

“그럼, 태현호 팀장이 비상 터질 거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쟤네 관할 던전이잖아. 밥 먹듯이 드나드는데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

일부러 특수 본부 인원들에게 전투 명령을 내리지 않는 거다. 기동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부각되게끔.

물론, 평가단도 바보가 아닌 이상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는 없다.

하지만 준우의 영향력이 컸던 팀인 만큼, 준우의 부재 이후 특수 본부의 모습을 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준우가 있고, 없고의 변화가 크다면, 이들은 여태 준우에게만 모든 것을 의지했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테니까.

그야말로 전준우와 떨거지들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셈이었다. 준우가 없는 특수 본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막내가 너무 잘나가니 이런 게 또 문제가 되네.”

“그냥 잘나간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나갔으니까요.”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정진이 슬쩍 김강수의 표정을 살핀다.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다.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아하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산과도 같다.

괜히 여기서 안 좋은 이야기만 해 봐야 계속 안 좋게만 흘러갈 것 같고…….

“뭐, 암행 평가라고 해 봐야, 상황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공식 승진 시험 때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처럼 지휘관이 악감정을 갖고 우리를 일부러 후방에 박아 놓는 경우도 있을 테고.”

“그래서?”

“타 지부의 기동대보다 본청 기동대가 인원이 더 많은 이유는 하나지 않습니까? 다른 기동대와는 달리 던전 임무를 겸하기 때문에…….”

“그래서!”

“아, 아까 말했듯이, 이건 태현호 팀장의 임무이고 명령이라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명령을 거역하고 나댄다? 그럼 저희가 되려 징계를 받을 수도 있…….”

이정진의 말은 암행 평가는 둘째 치고, 자칫 하극상으로 징계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태현호가 특수 본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선은 지켜야만 한다는 거다.

“이정진 팀장님 말씀이 맞기는 해요. 본부장님 일전에도 한 번 하극상 비슷한 문제로 징계 먹은 적 있잖아요? 이번에 또 그러면 아무리 협회장님이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시진 않을 겁니다.”

“그때 최 팀장한테 죽빵을 날렸었지, 아마?”

“그러게 왜 저번에 그런 짓을 해서는. 쯧쯧.”

“최 팀장 그 새끼가 막내를 조지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지!”

쓴웃음을 지은 김강수가 저 멀리 태현호를 응시했다.

왜 그가 이토록 자신을 짓밟으려는 것인지 알 것도 같다.

‘구름 때문이겠지! 예나 지금이나 욕심은 많아서는!’

구름이 무엇인가.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가진 능력의 배를 뛰어넘는 위력을 낼 수 있는 명검이다.

게다가.

협회 최고의 에이스인 준우가 지녔던 검이었고, 그 검을 쥔다는 것은 차후 협회 내 모든 고위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과도 같은 뜻이기도 했다.

유치한 발상이다.

암행 평가에서 김강수보다 활약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모든 실적에서 우위를 점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 간절하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구름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자그마치 명검인 구름인데.

“나는 구름이고 자시고 간에 태현호 저 인간한테 죽빵 한 대 꽂았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거참! 좀 참으시라니까요! 재수 없으면 오늘이 준우 은퇴식이 아니라, 본부장님 은퇴식이 될 수도 있다고요!”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

티격태격하던 팀원들이 전진하는 기동대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이정진이 대뜸 팀원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멈춰 섰다.

“저, 저……!”

기동대가 전진하던 선두 쪽에서 무언가 이쪽을 향해 날아드는 게 보여서다.

후우우우웅-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든 무언가는 바람에 휘날리는 이정진의 머리카락을 빠르게 지나쳤고.

쿠우우우웅!

휘날리던 머리카락이 제 자리를 찾았을 때, 등 뒤의 벽에 박혀 버린 기동대원 하나가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지, 지금 저 앞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거야?”

“날아온 게 아니라 누가 내던진 것 같은…….”

당황한 팀원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까와도 같은 공기를 찢는 소리가 선두에서 연달아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패기 좋게 전진하던 기동대원들이 죄다 특수 본부 인원들이 자리하고 있는 후방 쪽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던전 게이트가 위치한 곳쯤에 피어오른 짙은 먼지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 보이는 거대한 실루엣이 아마도 원인인 듯했다.

쿠웅! 쿠웅! 쿠웅…….

순식간에 열이 넘는 기동대원들이 벽에 처박혔다.

평범한 벽이 아니다. 차단선을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 둔 마석으로 강화된 벽인데…….

“이, 일단, 포탈 쪽으로 옮겨. 당장 본부로 이송해야 돼.”

“예!”

추재진과 공현철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치명상을 입은 듯했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들이다.

빠르게 회복실로 이동만 시킬 수 있다면…….

크워어어어어!

“……저, 저건, 또 뭐야? 왜 저런 게 여기서 나와?”

울음소리만으로도 전장을 압도하는 기운.

먼지가 걷힌 자리에 우뚝 솟은 붉은 눈의 거인이 눈앞의 기동대원들을 장난감 집듯이 잡아선 이쪽을 향해 내던지고 있었다.

“어, 업턴입니다! 던전 난이도가 격상됐어요!”

몬스터들이 던전을 이탈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김강수가 지금까지 봐 왔던 놈들과는 달리 1.5배가량은 더 큰 붉은 눈의 거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까 날아온 자들도 그렇고, 계속해서 날아든 자들도 그렇고, 전부 기동대 3팀 인원들이다.

그 말은 즉, 기동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능력치가 떨어지는 자들이라는 뜻.

‘격상한 난이도의 보스급 몬스터라…….’

하지만 그보다 윗선인 1팀과 2팀 인원들 역시 정작 가장 중요한 유효 공격이 먹히질 않고 있다.

까앙! 까앙! 까앙!

날카롭고 단단한 무기로 거인의 살을 찌르고 베는데,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나 허탈하지 않은가.

“흐아아아압!”

태현호가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신체 강화 계열인 그의 주먹이라면, 놈에게 유효 공격을 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까아아앙!

거뜬히 주먹을 막아 낸 거인이 커다란 손으로 태현호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다.

콰아아앙!

뺨을 맞았다지만 손이 워낙 커서 몸 전체가 타격점이다.

순식간에 저만치 앞에서 자신의 등에 있는 벽까지 처박힌 태현호를 김강수가 짠하게 바라보았다.

“……죽었습니까?”

“주, 죽기는. 하나도 안 아프다.”

“강냉이 두 개 털리셨는데요?”

“이, 이깟 이 몇 개 부러진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 우에에에엑!”

부러진 두 개의 앞니 사이로 피가 쏟아졌다.

아무래도 내상이 상당한 모양이다.

하긴, 저 멀리서 여기까지 날아왔으니 멀쩡한 게 이상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거인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지 않았던가.

“예나 지금이나 무턱대고 주먹부터 날리는 습관은 여전하시네. 기왕 주먹을 날릴 거면 제대로 좀 날리시든지.”

“우에에엑!”

“운 좋은 줄 아십쇼. 신체 강화 계열 아니었으면 즉사했을 거요.”

“쿠, 쿨럭! 뭐, 뭐야? 너 지금 어딜 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 태현호가 김강수를 붙잡았다.

“어디 가긴 어딜 갑니까. 기동대가 밀리는데 저희라도 도와야죠.”

“아, 아가리 털지 말고 너흰 그냥 뒤에 빠져 있어!”

“지금 이 상황에 실적 따집니까?”

“쿨럭! 우리 기동대 임무다! 넌 신경 끄고 하던 대로 후방에서 던전 부산물이나 주워 담…….”

“아니, 시팔! 부하 직원들이 다치게 생겼는데, 지금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명령을 내린다고?”

“누, 누가 욕심에 눈이 멀어? 너희 도움 없어도 거인 하나쯤은 곧 잡을 수 있다! 설마 우리 기동대가 저깟 거인 하나 못 잡을 줄 알고?”

“암행 평가 때문에 이러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압니까? 인간이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적당히 해야지! 한 방에 나가떨어진 주제에 입만 살아 가지고.”

“보, 본부장님, 차, 참으십…….”

“참긴 뭘 참아! 여태 참았으면 됐지! 안 그래도 누구 때문에 우리 준우 은퇴식도 못 보고 여기 와 있는 거 열 뻗쳐 죽겠는데!”

“그, 그래도, 지휘관이잖습…….”

“지휘관은 염병. 우리가 나서서 돕겠다는데도 병풍 세워 놓으려 하는 게 뭔 지휘관이야.”

“기, 김 팀장! 지금 하극상이라도 벌이려는 건가!”

“하극상은 썅! 내가 본부장이고 너보다 계급도 높은데 뭔 하극상!”

“전준우 덕분에 실적 좀 쌓았다고 기고만장해서는!”

김강수가 으르렁거리며 태현호를 죽일 듯 노려본다.

불길함을 감지한 이정진이 팀원들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야, 말려라. 이러다 오늘 일 친다.”

팀원들이 일제히 김강수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한 명은 팔을 잡고 또 한 명은 다리를 잡고, 또 다른 이들은 그의 배와 목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본부장이 징계를 받는 일만은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놈 한때 업어 키워 줬더만, 뭐? 이게 감히 어디서 선배 무서운 줄도 모르고!”

“누가 날 업어 키워? 나 혼자서 컸는데!”

“보, 본부장님, 제발요. 진정 좀 하세요!”

“암행 평가단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제바아알!”

팀원들이 김강수에게 달라붙어 그를 말리고 있다.

김강수가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진 태현호가 실소를 머금으며 일갈했다.

“전준우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

“뭐……?”

김강수의 눈깔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

팀원들의 불안한 시선이 이번엔 태현호를 향했다.

“태, 태 팀장님! 부탁입니다! 제발 도발을 멈춰주십쇼!”

“저희 본부장님이 걱정돼서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태 팀장님이 걱정돼서 그래요!”

“그러다 태 팀장님께서 죽을 수도 있……?”

팀원들이 말을 채 잇기도 전이었다.

태현호가 그들의 말을 잘라 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전준우와 떨거지들. 아니지. 이제 전준우가 없으니, 그냥 떨거지들인가?”

“오호? 완벽한 도발 보소.”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라, 떨거지들. 내가 멀쩡히 서 있는 한 너희들은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하…….”

“그럼, 멀쩡히 서 있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 거네?”

“……뭐?”

퍼어어어억-!

팀원들을 힘으로 뿌리친 김강수가 허공을 가르더니, 냅다 태현호의 죽빵을 갈겨 버렸다.

“꾸에에엑!”

태현호가 조금 전 박혔던 벽의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처박혔다. 아까보다 좀 더 깊이 박힌 탓에 도로 꺼내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결국, 이렇게 됐군…….”

“암행 평가단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체 어쩌시려고.”

“나도 이젠 모르겠다. 나만 징계 안 받으면 돼.”

“하아, 오늘 두 명이 은퇴하겠구나.”

너무나도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팀원들이 멍하니 김강수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아까 전에 현장에서 사람 패면 안 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주먹은 이렇게 쓰는 거야, 이 양반아.”

김강수가 태현호를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쌓였던 감정들이 소화되며 속이 편안해진다.

“그, 근데, 태현호 팀장이 눈을 안 뜨는데요?”

“진짜로 죽은 거 아닙니까?”

“내비둬. 숨 붙어 있는 거 보니까 기절했겠지, 뭐.”

우드드득-

냉정하게 돌아선 김강수가 몸을 풀었다.

저만치 앞에 붉은 눈의 거인이 보인다.

‘1,000점짜리 마격, 저놈한테 효과가 있을까?’

으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죽빵부터 갈겨 보면 알겠지.

지면을 박찬 김강수가 거인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저 멀리, 두 명의 암행 평가단이 그 모습을 호기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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