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9화.같이 걸을까 (229/246)

◈ 같이 걸을까

준우에게서 그간 선화와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김 관장은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아무래도 구내식당엔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 사적인 이야기를 편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가씨께서 그렇게 워라벨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일하시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는데…….”

김 관장의 말에 준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선화는 일과 가정에 대한 균형이 상당히 잘 이뤄지는 편이었다.

하나, 지금은 마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회귀 전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그때의 선화도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서운했겠지. 그리고 섭섭하기도 했겠지.

또한, 자신을 바라봐주길 기다리기도 했겠지.

하지만 쉽게 말을 꺼낼 수는 없었을 거다.

부부 사이에 하지 못 할 말이 어디 있겠냐만 왜 그토록 일에 몰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마, 회귀 전 내가 일에 빠져 살던 이유와 크게 다를 것이 없겠지.’

부부는 닮아간다.

그리고 선화와 준우는 특히나 더욱 닮아있었다.

말이야 꺼낼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때의 선화는 준우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을 믿어주며 한없이 기다려주기만 했었던 세월이 얼만데, 고작 며칠밖에 기다려보지 않은 그가 섣불리 입을 여는 게 너무나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선화를 마냥 기다리게 해놓은 자신은 고작 이 짧은 시간조차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지난날의 회상이 가득하던 그때.

김 관장이 깊이 고민하고 있는 준우의 얼굴을 마주했다.

“아가씨께서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부 마스터님 비서로 막 일하게 됐을 때랑 상황은 얼추 비슷한 것 같네요.”

“김 관장님은 어떠셨어요?”

“흐음. 일 못 한다고 욕을 엄청 먹었죠. 그래서인지 딱히 좋았던 기억은 아닌지라 떠올리고 싶지 않기는 한데…….”

움찔 -

옆자리에 앉아 있던 수재혁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일 못 하는 김 관장을 갈궜다는 소리가 마냥 거짓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뭐, 억울하진 않아요. 일 못 하는 게 사실이긴 했으니까요.”

수재혁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김 관장님 말 한마디에 들쑥날쑥 하는구나 아주…….

“아무튼. 제가 부족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어요. 욕을 먹든, 갈굼을 당하든, 중요한 건 제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죠.”

“내가 그때 김 관장한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 아닐는지…….”

“너무 좋게 포장하시는데요? 이상하네. 부 마스터님은 그때 절 마냥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이었는데.”

“크흐으으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갈 것을.

그러게 왜 굳이 끼어들어선.

준우가 내심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재혁을 흘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내가 하루빨리 성장을 해야겠구나. 부 마스터님께서 나 때문에 저리 고생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그나마 덜 힘드시겠구나, 그런 거요.”

“미안해서일까요?”

“미안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상하게 안쓰럽더라구요. 뭔가 같이 해야 할 일을 혼자 짊어지려 하신다는 게…….”

“아?”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죠. 하지만, 시매부님도 아시다시피 부 마스터님께서 일을 여간 잘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그쵸. 어렸을 때부터 경영 수업을 받으셨을 테니까요.”

“뭐랄까. 단순히 경영 수업을 받은 정도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저도 나름 연수원에서 엘리트 소리 듣던 사람이었는데, 부 마스터님을 처음 뵌 순간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인어른께서 그러시더군요. 형님께선 헌터로서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경영을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곤 하셨다고…….”

순간, 수재혁이 김 관장과 준우를 번갈아 바라본다.

준우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표정으로 묻는다.

‘지금 김 관장이 나 칭찬하는 거 맞지?’

‘그냥 좀 가만히 계세요, 제발.’

‘……응.’

수재혁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김 관장이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어요. 부 마스터님께 부족함이 없는 비서가 되어야겠다. 피나는 노력을 했었죠. 매일 잠을 줄여가면서도 어떻게든 제 역할을 해내자는 마음으로.”

“그리고 결국 해내셨구요.”

“부 마스터님 도움이 컸죠. 많은 걸 배웠으니까요. 비록 당시엔 절 다그친다고 생각만 들었을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느낄 수 있었어요. 부 마스터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겠구나…….”

“……선화도 아마 그때의 김 관장님이랑 비슷한 마음이겠죠? 어쩌면, 제가 일을 도맡아 하는 게 미안한 마음에?”

거기까지는 준우도 충분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지.

“아마도요.”

“흐음.”

“부 마스터님 덕이 가장 크긴 하지만 제 능력이 부 마스터님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닿게 되니, 그땐 마음이 좀 놓이더라구요. 이 정도면 나도 부 마스터님 뒤를 바짝 쫓아갈 수는 있겠다. 거기서 오는 안도감이었달까?”

선화도 그런 안도감을 원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준우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

‘선화가 성장할 수 있게 옆에서 돕는다면…….’

돕는 것이야 얼마든지 할 수야 있다.

회귀까지 겪은 준우라면 수재혁보다 우월한 능력으로 충분히 선화를 성장하게끔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과연 그게 준우의 해결법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뒤를 쫓는 건 해결법이 될 수 없어. 계속 그렇게 뒤를 쫓다 보면 그것에 얽매이기 마련일 테니.’

직접 경험해 본 준우는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얽매이는 순간 소중한 것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앞만 보며 내달렸던 그때의 본인처럼 말이다.

“부 마스터님처럼 절 가르치는 방법도 있겠죠. 그렇게 해서 결과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도 같구요.”

“결과만 좋다면이라.”

“하지만, 여기선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가씨와 시매부님은 부부잖아요. 평생 함께 나아갈.”

이들의 방식이 있듯.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다.

준우는 수재혁이 아니다.

따라서, 꼭 그의 방법으로 해결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때의 수재혁과 김 관장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 그저 상하관계이지 않았던가.

“고맙습니다, 김 관장님.”

“가족끼리 뭐 이런 걸로요. 도움이 되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재혁도 김 관장도 뒤에 스케줄이 있는 상황이었다.

준우 역시 그들을 더 이상 잡아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

“감사는요. 저도 즐거웠는걸요. 모처럼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것 같아서.”

가족끼리 뭔 대단한 인사가 필요하랴.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김 관장은 멀어지는 준우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김 관장의 표정을 살피던 수재혁이 슬쩍 입을 열었다.

“효정아.”

“왜?”

“혹시 말인데. 예전에 나한테 일 배울 때부터 나 좋아했었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 아니, 아까 들어보니까 내가 일 가르쳐주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하길래…….”

그런 말을 했었나?

아닌데. 멋있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오빠를 멋있다고 했다고? 웃겨 아주. 그럴 리가 있겠어? 허구한 날 일 못 한다고 다그치는 사람한테 그런 감정을 가질 여유가 있었겠어?”

“아, 아님, 말고. 어쨌거나 그때의 기억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면 내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그럴 필요 없어. 마냥 나쁘진 않았거든.”

“……?”

“……오빠가 존경스러웠거든. 그만큼 그때의 오빠는 내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지금은?”

“충분히 멋진 사람이지.”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것인지 그제야 수재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준우가 향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준우는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나저나, 매제는 잘 해결하려나?”

“분명히.”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시매부님이잖아. 아가씨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람인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해내지 않겠어?”

“그렇지. 매제는 따뜻한 사람이지.”

“차가운 오빠마저 녹여 버린 사람이잖아. 그 덕에 내가 지금 오빠 옆에 있을 수 있는 거고.”

수재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아무렴 매제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

나른한 오후.

빨려 들어갈 듯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선화에게로 문득 여직원이 다가왔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시나 봐요, 원장님?”

“네? 아닌데,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서…….”

“어라? 가족분들하고 같이 퇴근하려고 하셨던 거 아니었어요? 동물원에 부원장님하고 따님 와 계시던데.”

“에에?”

“모르셨어요? 저는 가족분들이 와 계시기에, 원장님께서 가족분들과 저녁에 약속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분명히 오늘 야근한다고 말했었던 것 같은데…….”

말도 없이 온 사람이 일하러 왔을 리는 없고.

수린이와 함께 온 걸 보면 그냥 놀러 온 건가?

그럴 수도 있다. 수린이가 동물원을 엄청 좋아하니까.

“흠…….”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려던 선화가 멈칫했다.

문득 가족이 곁에 있다는 생각에 그들이 궁금해진 거다.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나갔다가 올까?’

남편과 딸이 뭐 하는지 보고 싶어졌다.

안 그래도 요즘 두 사람에게 도통 신경을 써주지 못하지 않았던가.

“혹시 저희 남편하고 딸 어디서 봤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이미 자리를 뜬 상황.

선화가 멋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찾아보면 될 일이야. 동물원 안에 있다고 했으니까, 뭐.”

호기롭게 사무실을 나섰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동물원이 워낙에 넓은 탓이다.

이 넓은 동물원에서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를 가족들을 찾는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헉……헉…….”

마실 겸 나왔던 게 꽤나 길어진다.

전화를 해볼까 했지만, 그 와중에 또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건 또 싫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재촉해본다.

“휴우, 드디어 찾았네!”

경보하듯 걷고, 또 걸은 결과.

아까 전엔 그곳에 없어서 지나쳐왔던 분수대에 준우와 수린이의 모습이 보였다.

벤치에 앉아 있는 준우.

그리고 낮잠 시간이 되었는지 그의 품에 쏙 안긴 채 잠들어 있는 수린이를 보자, 언제 거친 숨을 몰아쉬었는지도 모를 만큼 힘들었던 게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선화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수린이가 잠에서 깰까, 최대한 인기척을 줄이면서, 살금살금…….

“……밥은?”

눈을 마주친 준우가 먼저 물었다.

나름 서프라이즈라고 준비한 건데.

하여튼, 귀신 같다니까.

“또 일 하느라 밥 못 먹었지?”

“곧 먹으려고 했어.”

“그럼 지금 먹으면 되겠다.”

“응?”

준우가 등 뒤쪽에 숨겨둔 도시락을 꺼냈다.

서툴지만 애정으로 빼곡히 담겨 있는 김밥들이 보인다.

“웬 김밥? 오빠가 만들었어?”

“수린이랑 같이 만들었지. 모양은 영 별로여도 맛은 진짜 최고야.”

“푸흡.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김밥을 다 만들었대?”

“선화 너 요즘 힘들잖아. 이렇게나마 잠시라도 소풍 온 느낌 들게 해주고 싶었거든.”

“미, 미안. 내가 요즘 너무 일만 해서 좀 서운하고 그랬지?”

준우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수린이를 품에 안은 채, 조심스레 도시락을 열었다.

“얼른 먹어. 설마, 잠깐 김밥 먹을 틈도 없는 건 아니지?”

“그 정도 여유는 있지!”

선화가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다.

삐뚤빼뚤 썰린 김밥이지만 맛은 정말이지 좋다.

“엄청 맛있네? 오빠하고 수린이 나중에 김밥집 차려도 되겠다?”

“그래? 한번 해 볼까?”

준우는 옅은 미소를 띤 채로 김밥을 먹는 선화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바쁜 선화가 급히 먹다가 혹시라도 체할까 봐. 그저 묵묵히.

회귀 전의 언젠가.

대뜸 선화가 이렇게 김밥을 싸서 준우의 사무실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바쁜 자신이 끼니도 못 챙기고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런 거겠지.

그때 준우는 선화에게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화의 입장에서 자신이 아닌 선화를 바라보고 있는 입장은 무척이나 달랐다.

서둘러 밥을 먹는 선화의 모습.

일이 바빠 금방 먹고 자리를 뜰 것만 같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준우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금만 더 여기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때 선화도 내가 마냥 안쓰러워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겠구나.’

그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그걸 아주 먼 시간을 돌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냥……그냥…….’

단지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구나.

나와 함께 잠깐이라도 마주 앉아 있고 싶어서.

그래, 그랬던 거였구나.

“선화야.”

“응?”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

“내가 너무 빨라서 그런 거라면, 내가 늦춰줄게.”

준우가 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선화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간 선화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하, 하지만…….”

“조금 느리면 좀 어때. 같이 나아간다는 게 중요한 거지.”

준우와 발을 맞추고 싶었다.

그의 짐을 덜어주려, 그를 쫓으려 했었다.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걷고 싶었으니까.

“둘이 함께 걸어가기만 되는 거야. 그거면 되지 않을까.”

회귀 전의 선화는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

그 말이 준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같이 걸을까.

조금 늦더라도, 뒤처지더라도.

함께 걸어간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서.

“결혼할 때 약속했잖아. 서로의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것이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그것마저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분명히 그리 약속했더랬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서로 환하게 마주 보면서.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내가 맞춰 걸으면 되는 거니까.”

“나 완전 느림보인데. 진짜 그래도 돼?”

“돼. 이렇게…….”

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선화의 손을 살포시 맞잡았다.

지금처럼 손을 꼭 붙잡고 있으면, 결국 나란히 걷게 될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 지금처럼 손만 놓지 않는다면.”

부부란 속도를 맞춰 함께 나아가는 것.

아니, 함께 나아가며 속도를 맞춰가는 것.

선화는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는 준우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나 진짜 결혼 잘했다니까.”

“그걸 이제야 알았어?”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그때.

비록 준우는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수린이가 살짝 움찔거렸다. 아까부터 잠에서 깨있던 터라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 돼. 계속 자는 척 하는 거야!’

아무리 아직 어린 수린이라지만.

지금은 자신이 낄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

소란스런 분위기에 준우는 잠에서 깼다.

밖에서 선화와 수린이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엄마, 먼저 일어나면 어떡해. 아빠랑 같이 일어났어야지!”

“응?”

“아빠랑 맞춰서 걷기로 했잖아!”

“……그, 그랬지.”

“그럼 잠에서 깰 때도 아빠랑 같이 깼어야지!”

“……그, 그것까지 맞춰야 해?”

“당연하지! 부부는 모든 걸 다 함께 하는 거라고!”

며칠 전부터 수린이는 그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었다.

어디서 저 말을 주워들었는지, 그 말이 참 예쁘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있는 중이랄까.

‘이래서 애들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거구나…….’

모녀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준우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거실로 나왔다. 어느새 식탁 위엔 냄새 좋은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빠! 얼른 밥 먹자! 오늘 중요한 날이잖아!”

선화는 식탁 앞에 앉지도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준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움직여선 안 되니까.

“아빠랑 동시에 앉아야 돼. 부부는 함께 속도를 맞추는 거야.”

“…….”

“…….”

준우와 선화가 서로 눈치를 살핀다.

왜인지 모르게 타이밍을 맞춰서 동시에 앉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식사를 끝낸 후도 마찬가지다.

선화가 오늘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수트를 입어 보는 준우에게로 수린이가 쓱 다가왔다.

전신거울 속 수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 준우의 옆으로 수린이가 선화를 밀어 넣는다.

“부부는 이렇게 나란히 서야 하는 거야.”

“…….”

“…….”

“딱 보기 좋다! 아주 좋아! 마음에 들어!”

거울 속 선화와 준우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린이가 씩 웃는다.

왜 수린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모습이 준우에겐 한없이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아빠도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이 수트도 그렇고, 거울 속에 우리 가족의 모습도 그렇고.”

거울 속에 비친 가족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느새 거울 주변으로 반려몬 아이들까지 차츰 모여들었다.

오늘은 준우의 은퇴식이 있는 날.

회귀 전과는 달리,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비록 시간이 좀 걸렸지만 끝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간절히 바라왔던, 그토록 상상해왔던 가족들과의 삶이 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예쁘네. 선화도, 수린이도.”

오늘의 주인공은 준우이지만, 함께 행사에 참여할 선화와 수린이도 한층 멋을 부렸다.

그 모습을 눈에 담고 있자니 괜스레 미소가 번진다.

오늘이 지나면, 눈에 담은 이 모습들을 모든 시간에 담을 수도 있겠지.

“준비 다 했으면, 이제 슬슬 가볼까?”

세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협회로 향하는 준우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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