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 상담은 전문가에게
“원장님,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사무실 여직원 하나가 선화를 향해 물었다.
가끔 일할 때마다 쓰곤 하는 안경을 쓸어 올린 선화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들 열심히 해주시는데 저도 더 노력해야죠.”
“요즘 계속 야근하시고, 식사도 거르시고 그러면 몸 상하십니다. 일도 좋지만 몸을 생각하셔야…….”
“이번 주만 어떻게 넘기면 다음 주부턴 여유가 좀 날 거예요. 그때까지만 꾹 참아보죠.”
“혹시 말인데요.”
“네?”
“저번에 부원장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에 너무 자극을 받으신 건 아닌지…….”
자극이라.
그래, 어찌 보면 자극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선화가 그때 느낀 것은 그저 자극만이 아니었다.
“제 남편이라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우리 부원장님이, 아니, 곧 부원장님이 되실 분이 엄청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그, 그렇죠. 저희도 그날 부원장님 일하시는 거 보고 엄청 놀랐으니까요.”
“그냥 그런 부원장님의 짐을 조금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뭐랄까.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가려고 하는 그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안쓰럽달까.”
“부원장님께서 일하는 속도가 워낙에 빠르셔서…….”
“그래서 저도 속도를 좀 맞춰주고 싶을 뿐이에요. 나란히 함께 걸어갈 수 있어야, 짐 좀 내려놓으라고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말해봐야 멀리선 들리지도 않을 거고.”
“아…….”
“속도를 좀 늦춰달라고 말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럼 저희가 뒤처지겠죠. 그럼, 쫓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속도를 더 낼 수 있어야 부원장님도 저를 믿고 짐을 맡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선화 앞에서는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준우다.
선화가 원하는 것이라면 항상 자신감에 넘쳐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마냥 행동하는 남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함께 일을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안쓰럽지.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예뻐 죽겠는데, 왜 자신은 나한테 원하는 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까.
‘흥! 내가 못 미덥나?’
그렇다면 믿음직한 아내가 되어주는 수밖에.
조금만 기다려봐라. 내가 오빠가 없이 혼자서도 일 잘하는 멋진 여자라는 것을 보여줄 테니.
‘대단하시네. 결혼생활이라는 게 저런 걸까?’
직원은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선화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연애 5년 차.
올해 들어 결혼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그녀는 새삼 선화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부로서 나란히 함께 나아간다?
그게 말이 쉽지, 어려운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랑 내 남친은 아직도 각자 원하는 게 달라 요즘도 틈만 나면 싸우기 바쁜데…….’
괜히 자신의 연애를 되돌아보게 된다.
연애 초반엔 상대에게 뭐든 맞춰줄 것처럼 불탔던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사그라들기 마련.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는 상대의 보폭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 보폭에 상대가 맞춰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저어, 원장님? 사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원장님은 연애 때랑 결혼 후랑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으음. 달라지긴 했죠. 연애는 연애고 결혼은 결혼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요?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건데.”
“그런데, 왜 저는 원장님을 이렇게 보고 있으니 아직도 신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엄청 고마운 말이네요. 남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만큼 내가 행복해 보인다는 뜻일 테니까요.”
“빈말 아니고 진짜예요. 저번에 처음으로 두 분이 함께 계시는 모습만 봤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헤헤,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에요?”
“띄워드리긴요. 부러워서 하는 말인데.”
선화에겐 있어서 최고의 칭찬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뤄낸 결혼이었던 만큼, 그 결혼생활이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신기하네요. 연애만 오래 해도 그런 분위기가 나기 쉽지 않을 텐데.”
“쉽지 않더라도 또 그렇지 않은 커플들도 있겠죠? 뭐, 저야 남편을 잘 만난 덕분이겠지만.”
“네?”
“저희 남편이 날 항상 신혼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거든요.”
선화가 싱긋 웃었다.
준우와 보폭을 맞추고 싶은 이유?
딱히 대단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두 사람이 힘들게 결혼의 벽을 넘어온 만큼, 앞으로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의 걸음이었을 뿐.
***
- 그렇게 혼자서 꿍해 있지 말고, 나한테 다 털어놔 보라니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자네한테 도움받은 게 많으니 한 번쯤 제대로 갚아줄 때도 됐잖아?
어젯밤 수재혁이 준우에게 했던 말이었다.
갑작스레 집에 들이닥친 수재혁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준우는 굳이 부부간의 일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선화하고 내 문제야. 해결도 우리끼리 하는 게 맞아.’
선화가 나랑 안 놀아주고 일만 한다.
그렇게 징징댈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부부간의 문제 혹은 연애 문제라면 항상 조언을 해주던 쪽은 준우였다.
유부남 선배로서 자존심이 있지, 수재혁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게 좀…….
사실상 속마음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들, 선화가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찌 마음 편히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선화가 많이 바쁜 것 같으니까, 한가해졌을 때 대화를 시도해보면 문제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너무 성급하게 생각지 말자.’
별거 아니겠지.
내일은 일이 금방 끝난다고 했으니까, 그때 얘기를 다시 해보면 될 터였다.
그런데.
분명히 칼퇴를 한다고 했던 선화는 다음날인 오늘 갑작스레 야근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말을 바꿔버렸다.
“하아…….”
준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쯤 되니 일부러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정말로 뭔가 큰 실수를 한 게 틀림없다.
‘분명히 뭔가 잘못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
준우는 이 고민의 해답을 혼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혼자보단 둘이 낫다고.
결국, 준우는 엑시스 본사를 찾아갔다.
수재혁을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 고민을 그에게 털어놔 봐야 딱히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쪽으론 형님께 신뢰가 없어서요.’
준우와 만나기로 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수재혁보다 더 고민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 사람이랄까.
하지만.
마침 1층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재혁과 눈이 마주쳤다.
“어? 매제?”
“하긴. 여긴 엑시스 본사인데 형님하고 마주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 젠장.”
“응? 뭐라고?”
“아, 아닙니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회의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지.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이제야 나한테 고민 털어놓을 마음이 생겼나?”
“그럴 리가요. 그냥 여기서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이 있어서…….”
“호오? 그래?”
수재혁의 눈이 묘하게 휘어진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눈치다.
“점심은?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까?”
“좋죠. 어차피 좀 일찍 와서 시간도 좀 남았거든요.”
“식사하면서 그 고민이 뭔지 얘기도 좀 나눠보도록 하고.”
“에이. 형님께는 말씀 안 드릴 거라니까요.”
“그러지 말고 얘기해 보라니까? 내가 그쪽엔 전문가야.”
“뭔지 알고 그리 말씀하십니까?”
순간, 수재혁이 움찔한다.
그리고는 괜히 어색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어도 괜찮지? 딱히 밖에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니, 그냥 간단하게 구내식당에서…….”
“평소엔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잘 안 하시는 분이 무슨.”
“따, 딱히 밖에서 먹을 만한 게 생각이 안 나서 말이지. 썩 땡기는 음식도 없고. 그냥 간단하게 먹자고, 간단하게.”
“계속 말 돌리지 마시구요. 딱 보니까 이미 무슨 고민인지 전해 들으신 것 같은데.”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매제. 자네가 효정이, 아니, 김 관장한테 얘기를 꺼낸 것 자체가 문제지.”
“형님껜 비밀로 해주신다고 했는데.”
“곧 부부가 될 사이인데 비밀 같은 게 있을 리가.”
“……뭐,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 당연히 형님 귀에도 들어갈 거라는 걸.”
준우의 고민을 상담해줄 상대는 다름 아닌 김 관장이었다.
처음엔 그냥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수재혁에게 고민을 털어놓을까 하다가, 문득 이 문제에 대해선 김 관장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라.
수재혁의 비서로 오랜 기간을 일했던 김 관장이었다.
한 직장에서, 그것도 근무 시간 내내 한 시도 수재혁의 곁을 떠나지 않고 보좌했던 김 관장이라면 사내 연애로 인한 문제점을 싹 꿰고 있지 않겠는가.
준우 역시 선화와 함께 가게 일을 해오곤 했으나, 김 관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아마도 자신의 고충도 그녀가 잘 헤아려주리라.
“근데, 매제. 난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예?”
“사내 연애를 한 건 나랑 김 관장 둘이잖아.”
“그렇죠.”
“그런데 왜 나한테는 고민 상담을 안 하고, 김 관장한테만 하려는 거지? 나도 사내 연애를 경험해본 사람이고 그 문제에 대해선 나름 전문가인데?”
“전문가요? 누가요?”
“내가.”
“전문가가 어디 있다는 말씀이신지?”
“여기! 나!”
“어디……?”
“자, 자네, 진짜 이럴 거야? 내가 성공적으로 사내 연애를 마치고 결혼까지 성사시킨 걸 보면 딱 답이 안 나와? 눈앞에 사내 연애 고수를 두고도, 그런 장난을 쳐?”
“장난 아닌데.”
“……그게 더 열받는군.”
“기억하시죠? 예전에 형님 가방 선물 하나도 제대로 못 고르셔서 쩔쩔매셨던 거. 저 아니었으면 형님은 김 관장님하고 연애 시작도 못 했을걸요?”
“그, 그건 그거고! 아무튼, 내가 사내 연애 경험자인 건 맞잖아?”
“흐음. 그렇긴 합니다만…….”
“매제. 자네가 너무 자만했던 거야. 제 스스로 완벽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 없거든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아무리 자네가 나무를 잘 탄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나무가 흔들리면 변수가 생긴다니까?”
선화와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는 얘기만 들었지, 자세한 내막은 김 관장도 수재혁도 들은 게 없다.
작은 다툼조차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갈 것 같았던 준우네 부부였기에, 수재혁은 과연 두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라니까?”
“…….”
“응? 으으응? 내가 해결책을 내줄 수도 있잖아!”
“…….”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귀찮게 캐묻는 수재혁.
얼마나 성가시게 하는지 준우는 옆에서 잉잉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지칠 지경까지 이르렀다.
“왜 이렇게 남의 연애사, 아니, 가정사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우리가 남이야? 가족이잖아, 가족! 가족이 또 뭐야? 작은 문제라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 관계잖아?”
“그냥 저 놀리고 싶으셔서 그런 것 같은데요.”
“거, 참! 그런 거 아니래도!”
준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까짓거 여기까지 온 거 그냥 털어놓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차피 이따가 김 관장이 오면 다 알게 될 텐데.
길게 늘어선 구내식당 줄을 기다리며 준우는 여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준우에겐 심각한 문제였지만, 정작 수재혁은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도 크게 웃음부터 터뜨리는 걸 보면 말이다.
“하하핫!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져도 아주 제대로 떨어졌구만!”
“모, 목소리 좀 줄이세요. 사람들 다 들어요.”
“사내 연애가 그런 거야, 원래. 아무리 가깝고 서로를 아끼던 사이라도 직장에서조차 계속 붙어 있다가 보면 서운한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지.”
“오? 설마, 문제가 뭔지 알아차리신 겁니까?”
“잠깐만. 일단, 배식부터 좀 받고.”
제 순서가 된 수재혁과 준우가 나란히 식판을 들이밀었다.
엑시스 구내식당답게 식단이 아주 좋다. 최고급 한우로 만든 불고기와 직원들이 영양을 생각한 나물들, 그리고 후식까지.
“오늘 후식은 바나나구만.”
그리 말한 수재혁이 눈앞의 영양사를 향해 물었다.
“혹시 바나나 몇 개만 더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 부 마스터님이시면 얼마든지 내어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오늘 나무에서 아주 제대로 떨어진 원숭이인데, 그게 왜 떨어졌냐면은…….”
“아오! 형님! 그, 그 얘기를 왜 여기서 하고 그러십니까!”
준우가 수재혁을 억지로 끌고 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수재혁이 인심 쓰듯 자신의 바나나를 건넨다.
“많이 먹어. 먹어야 힘쓰지.”
“……맞네. 그냥 나 놀리려고 그런 신 거 맞네.”
“놀리려는 게 아니라 그냥 옛 생각이 나서 그런 거지. 나는 선화가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순간, 수재혁의 눈빛이 진지하게 빛났다.
진심 어린 그의 눈동자에 준우 역시 태도를 바꿨다.
“이해를 한다구요? 선화가 왜 그러는지?”
“선화가 딱 예전의 김 관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 김 관장이 막 내 비서로 들어왔을 때, 거의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있더라도 대부분 서툴렀지.”
“그래서요?”
“엄청 미안해하더군. 정작 본인이 해야 할 일들까지 내가 도맡아서 하고 있으니 미안할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쩔 수가 없는 것이긴 했어. 나야 경영 수업을 받고 실무 경험까지 쌓는 중이었지만, 김 관장은 생초짜였으니까.”
……어? 진짜 상황이 꽤 비슷한데?
어쩌면 고민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아마 김 관장은 본인이 내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야.”
“뭐죠, 그게?”
“그냥 김 관장을 미친 듯이 갈궈야겠다.”
“……뭐, 뭐요?”
조금 전 그 대답은 수재혁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들려온 대답에 준우가 고개를 홱 돌리자, 어느새 그곳엔 김 관장이 서 있었다.
김 관장과 눈이 마주친 수재혁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이내 침착한 척하며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짓는다.
“아, 아니, 기, 김 관장. 내가 언제 그렇게 갈궜다고…….”
“부 마스터님께서 분명히 그러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안 되면 어떻게든 되게 해야지! 악을 쓰며 갈궈서라도 내가 비서 구실하게끔은 만들어 놓든지 해야지! 그런 마음이었으려나?”
“하, 하핫! 아, 아무래도 시간이 꽤 지난 일이라 기억이 좀 흐릿한 것 같은데…….”
“어머? 그랬으면서 안 그런 척하시기는. 원래 때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죠. 맞은 사람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반면에 말이에요.”
“매, 매제가 오해하겠…….”
“오해? 지금 오해라고 하셨어요?”
“아니, 뭐 꼭 오해라는 건 또 아니고…….”
“후훗. 그냥 장난 친거예요! 너무 당황하진 않으셔도 돼요. 그땐 저희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때도 아니었으니, 저도 지금은 다 이해하거든요.”
“정말?”
“그럼요. 이미 다 지난 일인데요, 뭘.”
준우의 눈에 김 관장의 입가가 살짝 비틀리는 게 보였다.
수재혁도 그걸 보았는지, 김 관장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제가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느끼는 바가 있다면 뭐든지 말씀드릴게요. 그동안 아가씨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시겠어요, 시매부님? 저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질 못해서.”
“아아, 넵!”
준우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수재혁을 흘낏 바라본다.
아, 여긴 아주 꽉 잡혀서 사는구나…….
그래도 참 다행인 건 김 관장에게서 진짜 ‘전문가’ 느낌이 물씬 풍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으로 공감을 해주는 김 관장.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더 잘 알겠지. 경청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더없는 신뢰감을 느끼는 준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