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6화.실력 발휘 좀 해 볼까 (226/246)

◈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모처럼 모인 가족들은 수태광의 대저택에서 밤을 보냈다.

자그마치 오 남매인지라 가족 구성원의 수가 많다지만, 대저택은 언젠가 이런 날을 위해 만들어진 듯 그들 모두가 각방을 쓰고도 남은 방들이 굴러다닐 만큼 드넓었다.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가장 먼저 눈을 뜬 팔라딘이 용모를 정돈하고 집을 나섰다.

“……형도 지금 나가는 거야?”

현관을 나서자 민혁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의 스케줄은 뒤로 미뤄졌어도, 오늘은 또 오늘의 스케줄이 있다고 했었더랬지.

“엄청 일찍 나가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 형?”

“오늘은 주일이니까. 예배드리러 가야지.”

“아아! 교회 가는구나. 그럼, 매니저 형한테 말해서 가는 길에 데려다줄까? 차도 놓고 온 것 같던데.”

“근처에 가까운 회당이 있어서 괜찮기는 한데…….”

“바로 요 앞 동네잖아? 어차피 가는 길인데, 그냥 타고 가.”

흐음. 그럴까?

평소 같았으면 굳이 동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거절을 했겠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마침 물어볼 것도 있고 하니.’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새벽의 한산한 도로를 내달렸다.

고요하기만 한 차량 안. 팔라딘은 잠이 부족했는지 안대를 쓰고 몸을 반쯤 누운 채 앉아 있는 민혁이를 힐끗 살폈다.

“자냐?”

“아니. 왜? 무슨 할 얘기 있어?”

“뭐, 엄청 대단한 얘기는 아니고. 너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다들 매제하고 친해 보이길래 혹시 매제랑 가까워질 수 있는 특별한 방법 같은 게 있나 해서.”

“방법? 그런 게 꼭 있어야 되는 거야?”

“응?”

민혁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그러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우린 가족이잖아. 오늘처럼 자주 얼굴 보고 그러면 당연히 자연스레 친해지지 않겠어?”

그…… 그렇지…… 그것도 맞긴 맞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팔라딘의 속은 다급했다.

대회주의 명으로 수린이에게 전도를 해야 하는 와중에, 느긋하게 준우와 친해지기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나한텐 한국에 오래 머무를 여유가 없다. 급한 대로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 차량이 멈춰 섰다.

어느새 회당 앞에 도착한 것이다.

“민혁이 너 시간 좀 돼?”

“으음. 예상보다 차가 덜 막혀서 30분 정도 시간이 날 것 같기는 해. 그런데 왜?”

“온 김에 예배드리고 가라고. 그래도 형인 내가 팔라딘인데, 모처럼 만날 동생의 앞길에 기도라도 해 줘야지.”

“나, 나는 괜찮…….”

“좋네요. 마침 시간이 나기도 했고. 안 그래도 오늘 주일인데 교회 못 가는 게 좀 찜찜했거든요.”

매니저가 반색하며 먼저 차에서 내렸다.

민혁이의 시선이 매니저의 등을 따라 움직였다.

아, 그러고 보니 매니저 형이 신실한 신성회 신자였지.

“뭐 해? 안 내리고.”

팔라딘이 뒤따라 내리며 민혁이에게 손짓했다.

얼떨결이긴 하지만 의도는 좋다. 어쨌거나 형이 자신의 앞날을 위해 기도를 해 주겠다는 의미였으니까.

“어머머?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저기 좀 봐! 저기!”

“허어어억! 아니 저분이 어떻게 여기에……?”

팔라딘이 막 회당 안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예배를 위해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팔라딘 일행에게 집중되었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마치 눈앞에서 신이라도 마주한 듯한 황홀한 얼굴을 하고서 팔라딘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 사람들이 이쪽으로 너무 많이 몰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당황한 민혁이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을 친다.

툭툭-

팔라딘은 괜찮다는 듯 그런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마 나 때문일 거다. 팔라딘이 이런 작은 동네 회당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흔치 않으니까. 신성회 형제자매님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다가오는 건 아니니,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팔라딘이 누구인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신성회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아니던가.

신의 말씀을 아주 가까이서 전할 수 있는 존재.

일반적인 신성회 신도들이라면 가히 얼굴 한번 마주하기가 어려운 자이기도 했다.

팔라딘이 인자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코앞까지 다가온 신자들을 향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형제자매님들. 필라 신께서 인도하신 길을 따라오다 보니,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쌩-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응?”

신자들은 냅다 팔라딘을 지나쳐 갔다.

팔라딘의 인자한 목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는지, 수십 명의 중년 신도들이 민혁이의 주변을 가득 에운 채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맞네, 맞아! 수민혁 씨 맞네!”

“민혁 씨! 저번에 방송 너무 잘 봤어요! 어쩜 노래를 그렇게 잘해?”

“인물은 또 어떻고!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우리 딸보다 피부가 더 좋아!”

“꺄아아아아!”

이게, 뭔…….

팔라딘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민혁이를 돌아본다.

어찌 신성회의 팔라딘이 일반인인 민혁이에게 이목을 뺏길 수 있는 건지.

‘내, 내가 팔라딘이긴 하지만, 어, 얼굴 노출이 적어서 그런 걸 거다. 그래, 형제자매님들이 팔라딘의 얼굴을 몰라서 그냥 지나친 걸 거야.’

팔라딘으로서 이런 마음이 들어선 안 되지만,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긴 자신의 홈 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회당이 아니던가.

“얼굴에서 아주 빛이 나네! 빛이 나!”

“광명을 여기서 찾게 될 줄이야! 호호호홋!”

중년의 신자들 대부분이 여성들이었고, 어느새 회당 안은 흡사 민혁이의 팬 사인회 현장이 된 것처럼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성스럽고 고요해야 할 회당에.

마치 필라 신이 아닌, 민혁이가 저들의 신앙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기도를 해 줄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군.’

팔라딘이 공허함에 헛웃음을 쳤다.

자신이 동생의 앞길을 위해 기도를 해 주기엔, 이미 동생은 너무나도 앞길이 밝아 보였다.

* * *

은퇴식은 다음 주다.

정상대로라면 준우가 그때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지만, 그에 쌓아 둔 연차가 너무나도 많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 사용했던 휴가들이 대부분 협회장의 특별 휴가였기에.

은퇴식 당일만 출근을 하면 직장 생활도 드디어 끝.

새벽부터 일어나 샤워를 하던 준우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선화하고 같이 출근을 한다니. 이게 얼마 만이야?’

콧노래가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휴가 기간 동안 선화의 동물원 일을 돕기로 하지 않았던가.

김강수가 이 사실을 알면 휴가 가서도 일을 하냐며 나무랄 테지만, 정작 당사자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준우가 그리워했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협회 입사 전에는 항상 선화와 함께 출근을 하곤 했다. 보고 싶은 선화 얼굴을 함께 일을 하면서 실컷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협회 일을 하게 되면서 그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었고, 아이작을 체포하게 됨으로써 이제 다시 그리웠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선화랑 계속 같이 있을 수도 있고, 같이 밥도 먹고, 돈도 벌고, 퇴근도 같이하고…… 헤헤헷.’

무엇보다.

선화와 꿈꾸던 미래가 동물원에 있었다.

언젠가 많은 돈을 벌고 여유가 생기면 수백 마리의 반려몬을 키우며 살자고 했었던 선화다.

반려몬 동물원은 선화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었고, 준우 역시 그 꿈을 함께 가꿔 갈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마냥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동물원에서 같이 일하는 거 하나로 그간의 바라 왔던 것들이 싹 다 이뤄지네.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이것도 너무 적은데? 그래, 이것저것 좋은 것들 싹 다 가져다 붙이면 일석백조다, 백조!’

준우가 퇴사를 하고 동물원에 합류를 하게 되더라도, 동물원장은 선화가 맡게 될 거다.

이전 원장이 은퇴를 함에 따라 그가 선화를 추천했고, 선화 역시 그 이전부터 동물원 관련 사업을 도맡아 오고 있었으니 그게 당연하다는 판단이었다.

내심 수재혁은 준우가 원장 자리를 맡아 주기를 바랐으나.

- 매제, 자네 뜻대로 해. 대신 이거 하나만은 약속해 줘. 전 세계 어떤 길드든 간에 자네에게 접촉하려는 의사를 보인다면, 단호하게 거절하겠다고.

수재혁에겐 준우가 동물원 부원장으로나마 엑시스에 남아 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현재로선 엑시스보다 상위 랭크에 있는 각국의 길드에서조차 탐을 내는 인재가 준우였으니까.

다들 이때다 싶은 거다.

준우가 퇴사를 앞둔 지금이 스카우트하기 딱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와아! 오빠가 아침밥까지 차린 거야?”

“에헴!”

뒤늦게 일어난 선화가 식탁에 음식들을 바라보며 화들짝 놀랐다. 대체 몇 시부터 일어나서 이리도 부지런하게 움직인 것인지.

“모처럼 선화 너랑 함께하는 출근인데, 이 정도 기념은 해 줘야지.”

“별게 다 기념이야.”

“기념이지. 앞으로 우리가 계속 함께할 동물원의 첫 출근인데.”

“첫 출근 100일도 기념하겠다?”

“오? 그거 좋은데? 200일, 300일도 챙길까? 1주년도 챙기고, 또…….”

“……그, 그냥 농담으로 해 본 말인데.”

적어도 준우는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기념일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 모든 기념일을 선화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참! 유니폼 입어 봐야 하는데!”

식사를 하던 중 뭔가가 떠올랐는지 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밥은 마저 먹고 입어 봐. 유니폼이 뭐 대단한 거라고.”

“어떻게 대단하지 않을 수가 있지? 선화 네가 직접 만든 유니폼인데.”

기존의 동물원 직원들 유니폼이 선화가 새로 만든 유니폼으로 바뀌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보통의 회사들은 대개 유니폼은 안 입는 경우가 많지만, 동물원 같은 경우는 유니폼이 곧 동물원의 이미지를 연상케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유니폼인 만큼 선화가 얼마나 공들였는지 알기에, 준우도 오늘 그 유니폼을 미리 입고서 출근을 할 생각이었다.

“밥 먹고 입어 보라니까. 하여튼, 애도 아니고…….”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유니폼을 입고 좋아하는 준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웃음이 나는 선화였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이 직접 만든 유니폼을 저렇게나 좋아해 주는데.

동물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지 톤의 색깔로 이뤄진 상하의에 선화가 직접 디자인한 ‘베이비 드래곤’ 동물원 로고가 새겨진 재킷과 모자였다.

“크으!”

유니폼으로 환복을 마친 준우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진짜 완벽하다 완벽해. 확실히 선화 네가 만든 유니폼이라 퀄리티가 차원이 다르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번씩 쳐다보겠는데?”

“그, 그냥, 시중에 파는 원단으로 만든 건데 그렇게까지 칭찬을 해?”

“이 정도 칭찬으로도 모자라지. 역시 대단해. 역시 내 마누라야. 어떻게 이걸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따 가면서 만들었는지…….”

“오빠. 난 디자인만 했어. 유니폼 제작은 업체에 맡긴 거고.”

“크으으! 이것도 정성이지, 정성! 직원들 유니폼이 한두 벌이 아닐 텐데, 이걸 다 한 땀, 한 땀 따서 만들었다는 사실에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온다.”

“아, 아니, 오빠. 제작은 업체에 맡겼다니깐?”

“크으으으! 역시 우리 선화 재주도 좋다니까.”

“……에휴. 저 팔불출.”

리액션이 너무나도 좋다.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번질 정도로.

다만, 어째 요즘 아빠를 닮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선화랄까.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면 어떡하지? 유니폼 너무 예쁘다고 사진 같은 것도 찍을 수 있고.”

“참나. 오빠, 칭찬이 너무 과하면 안 하는 것만 못 한 거야.”

“진짜로 유니폼을 너무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그래도 그렇지 무슨 모르는 사람들이 사진 촬영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

“무슨 소리! 누가 만든 유니폼인데! 이거 입고 카페 가잖아? 커피 주문할 때 돈도 안 받을걸?”

“왜?”

“유니폼이 너무 예뻐서?”

선화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체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칭찬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우리 아빠도 저렇게까지 팔불출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을 띄워 주는 것이 기분은 정말 좋다만, 과장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과장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준우의 말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아메리카노 뜨거운 걸로 두 잔 주세요.”

“어…… 음…….”

“얼마죠?”

“아아! 계산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드릴게요!”

모닝커피를 마실 겸 들른 카페 직원이 준우에게 진짜로 돈을 받지 않은 것이다.

“서, 선화야! 봐, 봤지, 방금?”

“…….”

“저 직원분이 돈 안 받으신 거 분명히 봤지? 거봐! 내가 뭐랬어? 유니폼이 예쁘면 커피도 공짜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 안 했어?”

“…….”

“그만큼 선화 네가 유니폼을 엄청 잘 만든…… 응? 왜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봐?”

“오빠. 나도 오빠랑 모처럼 같이 출근하는 게 좋아서 좀 들 떠 있기는 한데, 오빠는 아무래도 좀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을 것 같어.”

“뭔 소리야?”

“여기 우리 동물원 내에 있는 카페야. 우리 회사가 운영하는 거라구.”

“그게 뭐?”

“동물원 직원들에겐 하루 두 잔은 모든 음료 공짜라는 거지. 그게 회사 복지 중 하나거든.”

“아?”

선화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더군다나 준우가 입고 있는 유니폼 가슴팍에 대놓고 ‘부원장’이라고 명찰이 박혀 있는데…….

“내가 오빠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그, 그래도 살아야지. 우리 함께 평생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야지.”

……곧 새로 부임할 부원장이 엄청난 아내 바라기라는 소문이 동물원 내 금방 퍼지지 않을까. 뭔가 기분은 좋으면서도 살짝 창피할 것 같기도 하고.

“퇴근하고 뭐할까? 옆에 놀이공원 있던데, 가서 자이로드롭 한번 타고 올까?”

“우리 방금 출근했거든, 오빠! 벌써부터 나랑 놀 생각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

“에에? 놀 생각만 하는 거 아냐. 일부터 후다닥 끝내고 퇴근한 다음에 놀려고 하는 거지. 아무리 선화 너랑 노는 게 좋아도 그렇지, 내가 설마 무작정 놀려고만 하겠어?”

“나도 마음 같아서는 일찍 끝내고 오빠랑 놀고는 싶은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칼퇴가 힘들 것 같아. 검토해야 될 서류들이 엄청나게 많은 날이거든. 내가 아무리 빨리 끝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구.”

선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선화가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새로운 사업들에 관한 서류들이 잔뜩 놓여 있었고, 그 밖에도 동물원 시설과 반려몬들의 안전, 나아가 동물원 조경 관련 문제까지 검토해야 할 서류들이 산더미였다.

과장을 좀 섞긴 했지만, 서류가 그만큼 많이 쌓여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원장으로서 선화가 얼마나 깊이 동물원의 일에 관여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 망해 가던 동물원이었고, 그런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눈앞의 서류들은 그 필요한 양의 노력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검토할 서류가 꽤 많은 것 같기는 한데…….”

준우가 수백 장의 서류들을 쓱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씩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야 껌이지!”

그러니까.

이것만 다 끝내면 칼퇴하고 데이트도 가능하다 이거지?

‘완벽하게 서류 검토 끝내고, 거기에 데이트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야. 성공적인 동반 첫 출근이 되는 거지.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또한 해내야 비로소 훌륭한 남편이라고 할 수 있는 법!’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현직 헌터 협회의 에이스.

전직 엑시스의 부마스터.

준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칼퇴를 갈망하는 그의 두 눈이 광기로 물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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