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귀신 같은 놈 (220/246)

◈ 귀신 같은 놈

일이 많았는지 피곤했던 선화는 낮잠을 자고 있다가 뒤늦게 잠에서 깼다.

거실로 나오니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식탁 위의 케이크였다.

오늘 점심을 거른 탓인지 자연스레 선화는 케이크에 이끌려 식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깼어?”

“아이쿠. 오빠 왔구나? 남편 밤새워 일하고 왔는데, 퇴근했는지도 모르고 계속 자 버렸네.”

“괜찮아. 피곤하면 그럴 수 있지.”

준우가 식탁 위의 케이크 포장을 뜯었다.

선화가 좋아하는 레드벨벳 케이크와 수린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무스 케이크까지. 그 외 각종 조각 케이크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묶어 내는 선화.

준우는 그 모습을 잠시 넋을 놓고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그냥. 예뻐서.”

“뭐만 하면 예쁘다네. 나중엔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예쁘다고 하겠다?”

“듣기 싫어? 하지 말까?”

“예쁘다는데 듣기 싫어할 사람이 어딨냐! 평생 죽을 때까지 예쁘다고 해 줘야지!”

준우가 히죽 웃었다.

그저 머리카락을 묶는 모습만으로도 예쁠 수 있는 사람이 내 아내라니.

이러니 어찌 집에 빨리 오고 싶지 않겠는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근데, 선화 너 입술이…….”

“응? 입술이 왜?”

막 케이크를 먹으려고 포크를 집었던 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손끝으로 입술을 살짝 만져 본다.

“아아, 입술이 좀 터서? 괜찮아. 립밤 같은 거 좀 바르면 금방 나아지겠지.”

준우가 마음 아픈 표정을 짓는다.

얼마나 일이 힘들었으면 입술까지 다 텄을까.

‘그러게 일 좀 줄여서 하라니까는…….’

일 욕심이 어찌나 많은지 도통 말을 듣지 않는 선화다.

마치 회귀 전의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

그땐 도대체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일을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말이다.

‘……퇴사 처리되는 대로 선화 일을 내가 거들어야겠어.’

둘이 하면 지금보단 쉽겠지.

무엇보다 일하면서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던가.

“케이크 안 먹고, 어디 가?”

“립밤 가지러. 입술 텄다며.”

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선화의 손목을 낚아챘다.

“나 립밤 좀 전에 발랐는데. 완전 많이.”

배시시 웃으며 선화를 바라보는 준우.

선화는 내심 귀엽다는 듯이 남편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치를 살피듯 주변을 살폈다.

“립밤 완전 많이 발라서 뭐?”

“가까이 와 봐. 내가 바른 거 좀 나눠 줄 테니까.”

“미쳤어, 미쳤어! 수린이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런 걱정 말어. 수린이 아까부터 낮잠 자고 있어.”

준우가 슬그머니 선화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반질반질한 자신의 입술을 선화의 입술 위에 천천히 포갰다.

준우의 입술을 감싸고 있던 촉촉한 감촉이 선화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바, 방금 자고 일어나서 입 냄새났을 텐데…….”

선화가 민망한 듯 입술을 떼어 내며 말했다.

하지만 준우는 그런 것따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향기만 나던데? 자기 전에 꽃이라도 먹은 거야?”

“아우, 진짜!”

티격태격하는 것 같아도 오직 애정으로 가득 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식탁 위를 오고갔다.

그리고.

낮잠을 자고 있을 거라는 준우의 말이 무색하게, 아까 전부터 잠에서 깨어 있던 수린이는 문틈으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맛있는 케이크를 앞에 두고 뽀뽀를 할 수가 이찌? 그리고 자다 일어났는데 입 냄새가 안 날 수도 있나?”

문을 기대고 돌아선 수린이가 눈앞의 미심이에게 묻는다.

캬앙-?

미심이가 꼬리를 펄럭이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린이가 입김을 세게 불어본다.

“하아아아…….”

그리고는 입에서 길게 뿜어낸 숨을 손에 담아 코에 가져가 본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던 수린이가 살짝 표정을 찡그린다.

“……이상하다? 나는 조금만 자고 일어났는데도, 입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캬앙-?

“미심아. 너가 한번 맡아 봐. 나 입 냄새나는지, 안 나는지.”

캬앙! 캬아아앙!

미심이가 싫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침대 위로 도망친다.

눈앞의 미심이도 이렇게 진저리를 치는데, 어떻게 아빠는 엄마의 입 냄새조차도 맡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건지.

수린이가 다시금 문틈으로 엄마 아빠를 흘겨본다.

서로 보기 좋게 케이크를 먹여 주고 있다. 케이크 먹는 게 저리도 좋은지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하다.

이쯤 되면 케이크가 맛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그냥 서로 케이크를 먹여 주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은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게 저런 건 가 봐, 미심아.”

캬앙-?

“넌 모르겠지. 아직 한참 어리니깐.”

미심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수린이를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네가 나보다 어려. 그렇게 말하는 눈빛으로.

우우우웅-

거실 쪽에서 진동 소리가 들려온다.

소파 위 준우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선화에게 빠져 있느라 미처 느끼지 못한 모양.

“에휴. 하여튼, 우리 아빤 엄마랑 있으면 정신이 없다니깐.”

수린이가 성큼성큼 거실로 나가 핸드폰을 덥석 쥔다.

“케, 케켁!”

“수, 수린이 언제 깼니?”

낮잠을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수린이가 당당하게 거실로 걸어 나오자,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 선화와 준우가 서로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설마, 아까 그걸 다 본 건 아니겠지?

애써 미소 짓고 있는 준우에게로 수린이가 핸드폰을 건넸다.

“아빠. 큰삼촌한테 전화 왔어.”

“어? 아아! 응, 그래. 고맙다…….”

준우가 전화를 받자 수재혁의 흥분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다.

- 매제! 혹시, 내가 수린이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

“……예?”

‘내 도움이 아니라, 수린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의아한 표정의 준우가 눈앞의 수린이를 넌지시 바라본다.

그러자 수린이가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서 준우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날 그렇게 빤히 봐, 아빠? 나도 입술 텄어?”

“케, 케케켁!”

“크흠!”

케익을 먹고 있던 선화는 사레가 들렸고.

준우는 머쓱한지 계속 헛기침만 해 댔다.

“나도 립밤 발라죠, 아빠아아아!”

머쓱했는지 서로 시선을 교환한 준우와 선화는 괜히 딴청만 피워 댈 뿐이었다.

* * *

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히 신에 가까운 존재.

드래곤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인 수린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준우와 선화의 딸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비범한 수린이었기에, 그런 수린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오직 준우만이 유일했다.

수태광과 그 인맥의 도움으로 수린이를 준우의 가정에 입양하는 것은 절차대로 마무리가 됐지만, 수린이의 정체에 관한 것은 오직 가족들만이 알고 있는 기밀과도 같은 것.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성물 복원을 위해선 수린이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말씀이신 거죠?”

“그렇지, 그렇지. 내가 아무리 다른 방법을 찾아봐도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수린이 뿐이야.”

얼마 전에 통화로도 이야기를 나누긴 했다.

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만나서 하기로 했을 뿐.

핵심만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아이작에게서 되찾은 성물이 부서졌다.

놈이 그걸 막 다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성물 자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물에 이상이 생긴 것만은 확실한 상황이었다.

해서, 결국 성물이 부서진 상태로 복귀하기가 난감해진 팔라딘이 현재 한국에 그대로 머물고 있단다.

“형님은 그런 팔라딘의 도움이 필요하신 거구요?”

“내게도 필요하지만, 이 세상에도 꼭 필요한 녀석이지.”

“차원의 틈이 벌어지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맞아. 그래야 자네도 마음 편히 은퇴할 수 있을 테고. 선화와 우리 가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이작의 체내에서 수거한 수정구. 그 안에는 차원의 틈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설계도과 해석본이 있었다.

준우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해당 건에 대해선 엑시스와 협회에 알려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었고, 앞으로 마련할 대안엔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필요로 했다.

“성물을 복원해 주고 그 대가로 팔라딘과 신성회의 힘을 빌린다면, 차원의 틈을 막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완벽하게 예방을 할 경우 아이작과 같은 놈들이 또다시 이쪽에 발을 딛게 되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을 거고.”

“한국에서만 예방하는 걸로는 부족해요. 아시다시피 아이작은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그 차원의 틈이란 걸 넘어왔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국가의 협회와 길드를 연합해서 새로운 조직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해. 우리 엑시스가 나서서 주도할 거고.”

“흐음.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이지 좋겠지만, 사실상 어려움이 많아요. 각국의 협회야 둘째 치고 길드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란 말이죠. 과연 그들이 뜻대로 움직여줄까요?”

“처음엔 시큰둥하겠지. 하지만 하나둘 연합을 구성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각국의 협회와 길드들이 관심을 갖게 할 만한 뭔가가 있어야 해요. 단순히 국가의 미래, 인류의 안전, 그런 추상적인 목적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길드는 사업체다.

즉, 이득이 되는 일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거다.

멀리 보면 아이작과 같은 놈들의 침범이 없을 테니 당연히 그것만으로 이득이긴 하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것도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막상 이번 작전 때도 여러 길드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수락한 건 고작 홀리 나이트와 신켄이 전부였어.’

차원의 틈을 막기 위해선 인력도 인력이지만, 신성력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범국가적인 일인 만큼 엑시스 역시 그 모든 것을 충당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여러 협회와 길드의 도움이 필요한 거다.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면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협회는 그렇다 치고, 사업체인 길드가 과연 명분만으로 움직일까? 자칫, 평생토록 될지도 모르는 일을?

물론, 대의에 진심인 길드도 있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길드에 중요한 것은 역시나 물질적인 부분이다.

“……돈이 될 만한 걸 내놓는다면, 마냥 무시할 순 없겠지.”

수재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있습니까? 그런 게?”

“설계도 해석본에 따르면 차원의 틈에선 막대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고 하더군. 최소 최하급 마석을 중급 마석 이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력의 양이더라고.”

“그래서요?”

“마침, 엑시스에선 이전부터 마석의 등급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어. 흩어진 마력을 흡수해서 마석에 집중시키는 거지. 만약 이 기술이 성공적으로 완성이 된다면 물질적인 부분이 이유인 길드들도 움직여 주지 않을까?”

“어차피 차원의 틈을 막아 내면 그 안에서 나오는 마력들 역시 사라지는 셈이니, 엑시스로서는 손해 볼 게 없겠네요. 사라질 마력을 마석에 담아 이윤을 남기고, 그걸 위한 장비를 만들어 여러 길드에 납품까지 하는 거면…….”

“자네 무슨 산업 스파이야? 엑시스에서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걸 어찌 알아?”

“그, 그야 조금 전에 형님께서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하셨으니까…….”

“나는 단순히 기술이라고 말했을 뿐, 장비를 만든다고는 말한 적 없는데.”

“……아?”

“자넨 어찌 그걸 당연히 장비라고 생각한 거지?”

“그야 당연히…….”

“당연히?”

“형님처럼 지혜로우신 분이라면, 기술을 공유하는 것보단 장비로 만들어 판매하는 게 훨씬 이윤을 많이 남길 것이라고 판단하셨을…….”

“마석 가공 관련 능력은 대개 헌터 고유의 특성으로 발현되지. 자네도 그걸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장비를 만드는 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니, 해당 헌터들을 공급하는 방안을 먼저 떠올리는 게 보통의 발상인데.”

“저,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엑시스 기술력이 엄청 좋지 않습니까.”

“단지 그뿐?”

“설마 뭐가 더 있겠습니까! 제가 나름 엑시스의 가족인데, 진짜로 산업 스파이 같은 것도 아닐 테구요!”

“난 말이야. 아주 가끔 자네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뭐랄까.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하, 하하핫!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겠습니까, 형님!”

준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행히 수재혁이 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지만, 아차 싶었던 준우였다.

이참에 그냥 진짜 회귀했다고 말해 버릴까.

사실대로 말하면 믿어 줄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회귀 전엔 오랜 시간을 투자했어도, 완전 망했던 기술이었는데. 그게 아이작 놈들 때문에 이렇게 빛을 발하게 될 줄이야.’

기술이 망했다기보단 효율이 매우 극악이었다.

마석 하나의 등급을 상승시키는 데 필요한 마력의 양이 너무 과했는데, 그걸 충당하기 위한 재료 비용이 더 지출되는 셈이랄까.

하지만.

차원의 틈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면 말이 달라진다.

어차피 버리게 될 거, 쓸 수만 있다면 뭐든 좋지 않겠는가.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해당 장비를 파는 거야. 소모품이라 전 세계를 커버하려면 장비 역시 대량으로 필요할 거고.’

수재혁의 큰 그림이었다.

엑시스의 장비가 완벽하게 만들어진다면, 사업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

소모품인지라 계속해서 소비를 하게 될 거고, 길드들은 그걸 엑시스를 통해 구입할 수밖에 없다.

‘길드들은 마석의 성능을 올려 이윤을 챙기고, 엑시스는 그와 동시에 신기술을 장착한 장비를 판매해 더 많은 이윤을 챙긴다라.’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연합을 주도하는 게 엑시스가 된다면, 다소 거창하긴 하나 세계와 인류를 위한 일인 이 모든 것의 명예 역시 당연히 엑시스의 것이 되는 셈이다.

‘회귀 전엔 넘볼 수 없었던 세계 랭킹 1위 길드. 이번엔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거듭하며, 보다 선명한 그림을 그려 가고 있을 뿐.

“아무튼. 당장 중요한 건 성물의 복원이야. 마력으로도 차원의 틈을 닫는 게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신성력이라면 훨씬 더 효율이 좋다고 하니…….”

“단순히 신성회 측에서 신성력만 뽑아 먹겠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수재혁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준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기왕 신성회 측의 환심을 사는 거, 종교의 힘도 빌리면 좋잖아요. 아무리 형님께서 연합을 구상하신다고 해도 단합력이 그리 좋지는 않을 거고. 대의를 위한 명분도 명분이지만, 거기에 결속력이 더해진다면 훨씬 더 빠르고 진득한 연합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자네, 진짜…….”

“헤헤헤. 너무 그렇게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보진 마세요. 조금 부담스럽네요.”

수재혁은 정곡이 찔린 듯 뒷말을 잇지 못했다.

준우의 말대로였다.

단순히 성물을 복원해 주고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신성회가 가진 상징성과 의미를 활용하여 연합을 보다 단단하게 만들고자 했다.

연합은 어찌 보면 엑시스의 커다란 사업이다.

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전 세계의 통합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신성회를 이번 사업에 끌어들여, 사업 초반부엔 그들의 상징성을 사용하려고 했던 거다.

대의라는 명분과 신성회가 가진 힘과 이미지.

그것들을 손에 쥐고 사업을 시작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판단했으니까…….

‘……거기까지 내 생각을 읽었어?’

수재혁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하는 준우를 엑시스 동물원에라도 묶어 둔 게 참 다행이라고.

‘이런 훌륭한 인재를 타 길드에 뺏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겐 천운이다.’

사실상, 수재혁이 지금처럼 커다란 사업을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준우가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정구의 설계도와 해석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엑시스가 유일했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협회와 엑시스를 연계해 준 준우였다.

‘만약 매제가 협회 소속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어쩌면, 다른 길드에 이 정보가 먼저 넘어갔을지도 모르지.’

감탄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는 수재혁의 앞으로.

짝!

준우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단 팔라딘과 거래부터 하러 가야겠네요. 성물 복원에 대한 조건을 내걸어야 할 테니까요.”

“그, 그렇지.”

“하지만, 그전에 앞서 성물 복원이 가능한지 아닌지부터 확인을 해야겠죠? 수린이부터 만나러 갑시다!”

“수린이가 해내지 못한다면 모든 게 말짱 꽝이야.”

“얼떨결에 우리 수린이가 엄청 중요한 역할이 되어 버렸네요. 형님의 사업도, 세계를 위한 대의도 모두 수린이 손에 달린 셈이니까.”

“자네가 잘 좀 설득해 주게. 자그마치 세계를 위한 일 아닌가?”

“에이. 형님께서도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그저 세계를 위한 일만은 아니잖아요.”

“무슨 뜻인가, 그게?”

“팔라딘, 아니, 작은 형님이 결혼식 사회 안 봐 주신다고 한 거죠?”

“그러긴 했지. 성물 건네주는 조건으로 다시 물어보려고 하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애당초 팔라딘이 이번 작전에 투입한 이유가 성물을 돌려받는 조건이었으니, 뭔가 줬다가 뺏는 느낌이라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이번에 거래하면서 결혼식 사회 조건도 내걸려고요?”

“이, 이 사람아! 내가 대의를 도모하는 일에 결혼식 사회 같은 걸 조건으로 내걸겠어?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네. 충분히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

귀신 같은 놈.

어떻게 알았지?

수재혁은 생각했다.

매제가 가끔은 미래를 보는 것은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독심술까지 쓰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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