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3화.야구 좋아해? (213/246)

◈ 야구 좋아해?

[ 모든 능력치가 1레벨 상승합니다. ]

[ 모든 능력치가 1레벨 상승합니다. ]

….

던전 안개 감옥 내부.

준우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루이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협회 팀원들이었고, 그들 역시 모두 준우의 가족 구성원인 상태.

단순히 사람이 곁에 모이는 것이 아닌, 준우도 나름대로 최후의 전투를 위한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흡입 포탈 장비 가동 준비는 모두 끝났다. 바로 작동시킬까?”

“아뇨. 좀 더 기다리도록 하죠. 한 번뿐인 기회인데 자칫 그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흐음? 언제까지?”

“아이작의 힘이 더 빠질 때까지요.”

수재혁과 백호가 전력을 다해 놈과 전투 중인 상황이다.

지금껏 막대한 양의 마석을 쏟아부어 만든 흡입 포탈 장비이지만, 그 역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

신중 또 신중해야만 한다.

확실하게 놈을 이곳으로 소환할 수 있도록.

“근데, 흡입 포탈 장치 말인다. 우리끼리 작동시킬 수 있기는 한 거지?”

김강수가 걱정스런 마음에 물었다.

준우가 쓱 뒤를 돌아보자 5층 상가 높이의 탑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해당 던전에 깃든 마력까지 흡수할 수 있도록 일부러 던전 내부에 설치한 그것.

바로 흡입 포탈 장치였다.

우뚝 솟은 탑의 하단에는 톱니바퀴 모양의 마력 구동 장비가 자리하고 있었고, 장비의 끝부분엔 수십 개의 손잡이가 보였다.

저 손잡이를 움직여서 마력을 구동해야만 흡입 포탈 장치의 가동과 지속이 가능한데…….

“내가 잠깐 움직여 봤거든. 꿈쩍도 안 한다.”

“힘이 부족해서 그래요.”

마석이 가진 힘을 응축시켜 만든 장비인 만큼 상당히 묵직하다.

힘 좀 쓴다는 협회 소속 헌터들이 죄다 달려들어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 팀원들에 다른 팀 헌터들까지 저기 붙으면 움직일 수는 있겠지?”

“아마 그걸로도 부족할 겁니다.”

“그럼 어떡해? 저거 작동 못 시키면 작전 말짱 꽝인데.”

“하지만, 저 사람이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준우가 시선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느새 웃통을 깐 한 사내가 우락부락한 자신의 가슴 근육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스 중대장 전직이 보디빌더야?”

“전직은 모르겠고 취미는 비슷한 것 같네요.”

루이스가 눈앞의 구동 장치를 빤히 응시한다.

그리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간만에 운동할 맛 좀 나겠군.”

그거 운동 기구 아냐!

여기가 무슨 헬스장인 줄 아나.

아무튼.

루이스와 함께 온 홀리 나이트의 기사들도 이번 작전에 가담했다. 그들의 역할은 역시 구동 장치를 움직여 지속시키는 것이었다.

“자랑스런 기사들이여! 웃옷을 벗고 너희의 용맹함을 드러내라!”

“와아아아아!”

준우와 김강수가 동시에 헛웃음을 쳤다.

용맹함과 옷 벗는 게 무슨 상관인지.

루이스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으나 홀리 나이트의 기사들도 다들 몸이 좋았다. 어디 가서 근육으로 꿀리지 않을 정도.

“뭐, 포탈 장치 가동 못 하는 일은 없겠네.”

자. 그럼, 흡입 포탈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고…….

[ 모든 능력치가 10레벨 상승합니다. ]

눈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확인한 준우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가족 구성원이 가장 특성 범위 내에 들어왔을 때, 이런 홀로그램이 뜨는 경우는 단 하나였다.

“슬슬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지겹군.”

수태광.

그가 준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수태광이 가족 구성원이 된 것만으로도 준우는 10레벨의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는 거기에 하나 더 얹어져 그가 곁에 있을 때 추가로 10레벨의 능력치가 더 상승되는 효과가 생겼다.

‘아마, 장인어른과의 친밀도에 따라 능력치 상승 효과가 달라지는 모양이지?’

준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마땅한 다른 이유는 없었으니까.

‘지금으로선 가족 구성원 중 S급은 유일하게 장인어른 한 분이야. 그만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이라면, 능력치가 이렇게까지 오르는 것도 딱히 이상할 건 없지.’

어쨌거나 무척이나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었고, 이제는 그 이상을 넘어 거의 부자지간이라고 봐도 무방한 두 사람이다.

“지루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쇼, 장인어른. 곧 장인어른께서 나서실 차례가 올 겁니다.”

“몸이 아주 근질근질하다네. 모처럼 힘을 쓸 일이 생겨서 잔뜩 흥분했건만, 몇 시간 째 대기만 하고 있으니 원…….”

수태광의 입에서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루함을 달랠 존재의 목소리가 인이어에서 연달아 들려왔다.

- 야, 수정혁. 너 어느 정도 준비는 하고 온 거지?

- 준비 말씀이십니까, 형제님?

- 아오! 형이라고 불…… 에휴, 됐다. 계속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아무튼, 저놈 상대하려면 최소 우리 쪽도 성물은 갖고 있어야 할 거 아냐? 신성회 성물 총 세 개라며?

- 성물은 제게 없습니다, 형제님. 하늘의 아버지인 필라 신을 모시는 성직자가 어찌 아버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성물을 감히 손댈 수 있겠습니까.

- 대회주가 그것도 안 주고 널 보낸 거야? 자그마치 성물 훔쳐 간 놈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 앞서 말했듯이 성물은 하늘의 아버지신 필라 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기에…….

- 쯧쯧. 팔라딘이라고 해서 뭐 대단할 줄 알았는데, 너도 뭐 별거 없네. 고작 성물 하나도 못 가져오고.

- ……성물이 무슨 애들 장난감인 줄 아십니까?

- 화내는 거? 저번에 무슨 기사 보니까, 너 신앙심이 깊어서 감정적인 부분엔 거의 해탈 수준이라던데? 그거 다 거짓말이었네.

- 제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러십니까!

- 봐. 지금 또 화내네.

- ……기도합시다.

티격태격하는 형제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수재혁이 인이어를 주머니 속에 넣어 뒀기에 준우의 말을 들을 수는 없겠으나, 반대로 이쪽에서 듣는 것은 가능했다.

빠직-

그리고.

형제들의 작은 다툼이 들려올수록 수태광의 이마에는 깊은 골이 생겼다.

‘으음. 일단, 장인어른 무전기는 잠깐 꺼 둬야겠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괜히 인이어를 통해 나쁜 소리가 오고 가게 되면, 이쪽이나 화물선 쪽이나 좋을 게 없었다.

“비밀 병기라는 놈이 설마 정혁이 녀석이었나?”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이작이 신성회의 성물을 훔치기도 했고, 따지자면 이건 신성회의 일이기도 하니 당연히 도와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빌어먹을. 내가 저놈의 자식 면상을 또 보게 될 줄이야!”

수 씨 집안의 둘째다.

내놓은 자식이랄까.

아니, 정확히는 제 발로 나간 경우다.

뛰어난 능력으로 맨 처음 엑시스의 후계자로 낙점되었지만, 깊어진 신앙심을 품에 안고 성직자가 되겠다며 집안을 뛰쳐나갔다.

수태광과는 그때부터 관계가 틀어졌다.

누가 봐도 세계 최고의 헌터가 될 자질을 갖춘 아들이었는데, 그런 아들이 가업을 나 몰라라 하고 집을 나갔으니 어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해해 주십시오, 장인어른.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팔라딘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끄응!”

“부디 오늘만큼은 노여움을 푸시고…….”

“어찌 노여움을 풀 수가 있겠는가! 저놈 말하는 꼬라지를 좀 보게! 지가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그래도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정도면 얼추 뜻을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나보고도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게 문제지! 망할 놈의 자식!”

“이런.”

“애비를 애비라고 불러야지! 뭐? 형제님? 필라 신인가 뭔가 하는 건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한테는 뭐어어어? 형제니이이임? 이런 미친 녀석 같으니라고!”

“고, 고정하세요, 장인어른.”

성직자가 된 이후부터 한 번도 사적으로 마주친 일이 없었을 부자지간이었다.

수태광 역시 아직도 그날의 분노가 전부 가시질 않은 상태였고…….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시켜 왔는데! 배은망덕한 녀석!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구만!”

이럴 줄 알고 준우도 수태광에게 비밀 병기의 존재를 미리 언급하지 않았다.

괜히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작전을 그르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수재혁을 화물선에 배치한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 역시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최대한 강한 사람이 맡아 줘야 할 포지션이었는데, 수태광이 그곳에 갔다간 아이작이 아닌 팔라딘을 쥐 잡듯이 잡을 게 뻔했으니까.

준우는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단 작전 성공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

“그, 그래도, 큰형님과 둘째 형님 조합이면 아이작 녀석의 힘을 빼는 건 무난하게 성공하지 않겠습니까?”

“조합이 조합다워야 조합이지! 저 녀석들 어렸을 때 나랑 훈련할 때도 합이 하나도 안 맞던 녀석들이야! 서로 경쟁하기 바빴지, 협력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

“아?”

이상하네.

내가 큰형님께 듣기론 엄청 잘 맞는 편이라고 했었는데.

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을 믿고 이번 작전을 짰는데, 뒤통수 맞은 느낌이랄까.

“연년생 형제 아니랄까 봐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질 않나! 훈련 당시에도 녀석들을 가르친 시간보다 혼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네!”

“하?”

“뭐, 그래도…….”

수태광이 옛 기억을 떠올렸다.

한때는 자신의 엑시스를 이을 첫째와 둘째가 둘 다 유능한 녀석들이라 무척이나 뿌듯했던 그 날의 기억을.

“……합이 전혀 안 맞긴 했어도, 또 용케 잘 맞기는 했었지.”

“말이 좀 이상한데요, 장인어른. 합이 안 맞는데, 잘 맞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런 게 있어. 전 서방 자네도 지켜보면 알 걸세.”

* * *

아이작은 기가 찼다.

지금 자신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 두 놈의 꼴을 보라.

“지금이 기도할 때냐! 적이 눈앞에 있는데!”

“필라 신 아래 모든 생명은 평등합니다. 비록 적이라고 한들, 저들이 가진 본연의 심성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작 형제님께서도 한때는 저희 신성회에 성직자이셨고…….”

“정신 나간 놈 아냐, 이거? 결국 저놈이 신성회에 잠입해서 성물 갖고 튄 거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오! 속 터져!”

“기도하십시다, 형제님.”

“아까 했잖아! 왜 또 해 그걸!”

수재혁은 팔라딘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려다가 멈칫했다.

이번엔 단순한 기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팔라딘의 몸에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그것이 수재혁의 몸으로 전이됐다.

“마력이…… 회복됐네?”

“다 필라 신의 은혜이지요.”

“됐고. 서두르자. 백호가 다른 놈들을 맡아 주는 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 둘이 아이작만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야.”

“아이작 형제여. 천국으로 보내 드리지요.”

“인마! 쟤를 천국으로 보내냐? 지옥으로 보내야지!”

아이작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대체 이건 무슨 여유란 말인가?

가늠해 보건대, 두 사람의 능력을 합친대도 아이작 본인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힘이다.

그런데도 여유롭게 어린 남자애들처럼 티격태격하는 꼴이라니.

‘웨어 울프 가문의 가주인 내가 우스워 보이기라도 한단 뜻인가! 감히!’

아이작이 성물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얼어붙었던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상징후를 느낀 형제가 눈빛을 교환했다.

어린 날의 그때처럼 만나기만 하면 소년의 기분으로 돌아가 다투는 그들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한없이 냉정한 눈빛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같은 형제였는데, 그런 아이작 형제님을 이 손으로 처단해야 한다니.”

“야. 수정혁.”

“예, 수재혁 형제님.”

“저 자식 그냥 아버지라고 생각해.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랑 훈련했을 때를 떠올리라고.”

“흐음. 그렇다면 한번 처단해 보도록 하지요.”

“아버지랑 훈련했을 때 기억나지? 작전 A로 간다.”

일렁이던 바다가 높이 치솟는다.

아이작이 지휘하듯 손을 움직이자, 치솟은 바닷물이 해일이 되어 형제를 덮친다.

까드드드득!

먼저 움직인 것은 수재혁이었다.

빙룡의 머리 위에 선 그가 마력을 뿜어낸다.

흩날리는 눈꽃이 몰아치는 해일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촤라라라락!

순식간에 얼어붙는 해일.

빙룡이 얼음의 벽처럼 굳어 버린 해일을 냅다 머리로 들이받았고, 이번엔 수재혁이 바다를 움직였다.

아이작의 사방에서 치솟은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으며 거대한 장벽을 만들었다.

“날 가둘 셈인가? 어림도 없지!”

성물의 힘은 바다를 이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능력치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콰아아앙!

아이작이 숨을 내뱉자 얼음 장벽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수재혁은 재빨리 2차 장벽을 만들어 냈다.

‘원래는 이렇게 마력을 소진하면 금방 동나기 마련이지만…….’

지금 그의 곁엔 팔라딘이 있었다.

신성력으로 마력 회복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란 뜻.

짧은 시간.

장벽이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반복된다.

그 틈에도 빙룡은 거대한 입을 벌려 아이작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팔라딘의 신성력이 느껴지는군. 모습을 숨긴 채 협공을 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래 봐야 너무 뻔한 수다.’

웨어 울프 가문에서도 협공을 가르친다.

혼자서 제압할 수 없는 상대는 어디에도 있기 마련이니까.

‘화려한 기술로 전방에서 이목을 끌고, 후방에서 기습을 노릴 터. 너무 얕은수에 불과하다.’

야수화를 마친 아이작이 날카로운 발톱을 꺼냈다.

그리고는 단숨에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빙룡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쩌어어억!

귀가 찢어질 듯한 괴기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단 일격으로 빙룡이 무너진다.

이어, 도약한 수재혁이 어느새 만들어 낸 얼음의 창으로 아이작의 머리를 노린다.

쐐애애액!

창은 부수고.

수재혁은 마력을 실은 숨으로 밀어낸다.

그렇다면.

이제 후방에서 다른 한 놈이 기습을 해 올 터.

휙-!

아이작이 당연하게 뒤쪽으로 방향을 틀려는 찰나였다.

“음……?”

후방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전방에서, 그것도 무너져 내리는 빙룡의 얼음 파편을 하나하나 밟아 전진하던 팔라딘이 어느새 자신의 코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무, 무슨 협공을 이따위로……!”

콰아아앙!

신성력을 실은 워 해머가 아이작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하지만 살짝 밀려나기만 했을 뿐, 큰 타격은 없었다. 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한 상황.

‘뭐, 뭐지? 이 말도 안 되는 협공은?’

정석을 한참 벗어났다.

협공의 기본도 갖추지 않는 공격법이지 않은가.

‘변칙적인 공격을 구사하는 놈들이라, 이건가?’

아이작은 미처 몰랐다.

수태광과의 훈련을 통해 닳고 닳은 형제가 이미 정석법은 써먹을 때로 써먹어 봤다는 것을.

‘변칙적인 공격도 아버지한텐 소용이 없었지!’

어린 수재혁이 내린 결론은.

세상에 없는 협공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즉흥적으로 합을 맞춘다든가.

아이작도 이제야 그들이 즉흥적으로 합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실전에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실수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 그런 도박을 건다?’

아이작이 얼음 장벽 위에 서서 눈앞을 응시했다.

수재혁과 팔라딘이 얼음 계단을 밟으며 또다시 달려든다.

파지지지지직!

신성력을 품은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아이작을 덮쳤고.

마치 광명과도 같은 눈부심에 그가 잠시 비틀거렸을 때.

휘이이잉!

팔라딘의 방패가 아이작을 향해 날아든다.

신성력을 이용해 거대하게 변화한 방패가 회전을 거듭하며 거리를 좁혀 온다.

‘신성력이든 마력이든, 힘이 많이 실릴수록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

아이작은 가볍게 방패를 옆으로 흘렸다.

날카로운 발톱은 얼음 계단을 딛고 올라서는 팔라딘을 향했다.

한데.

씨익-

옆으로 흘려보낸 방패 안에서 수재혁의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이 아닌가.

‘가, 가지가지 하는군!’

방패 안에 납작 숨어 있던 수재혁이 빠르게 얼음의 창을 소환해 아이작을 찌른다.

샤샥!

수재혁의 공격을 무마시키는 것은 성공.

그러나, 그 틈에 팔라딘이 이미 또 코앞에 닥쳐 있었다.

콰아아아앙!

워 해머로 머리를 강타당한 아이작이 얼음 장벽에 그대로 처박혔다.

“주, 죽었나?”

팔라딘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무리 적이라도 살인은 안 되기에.

“죽었겠냐! 상처 하나 없구만!”

“후우. 다행입니다.”

“다행이긴 무슨! 너 전력으로 공격한 거 맞아?”

“제 온 힘을 실었습니다!”

“필라 신 걸고?”

“그, 그건…… 아무튼 진짜 전력이었습니다!”

들려오는 형제의 대화에 아이작이 눈을 치켜떴다.

지금 이것들이 나를 놀리나?

박혀 있던 장벽에서 몸을 끄집어낸 아이작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여전히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몸이다. 그런데, 저 얄미운 형제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열이 오른다.

더 얄미운 것은 변칙적이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이 공격들이 꽤 그럴듯하다는 것이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야 할 이 중구난방 공격들이 이상하게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이번엔 작전 B다!”

“예, 형제님!”

수재혁이 소리치고 팔라딘이 대답한다.

사실, 의미 없는 작전명이다.

어린 날에도 그랬듯 작전명을 외치는 건 아버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함이었지, 실상은 즉흥적으로 협공을 해 나갔으니까.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상대를 바짝 약 올리면서.

콰아아아앙!

변칙적인 공격이 지속되며 굉음 역시 이어졌다.

아이작은 예측하지 못한 장소에서 공격을 해 오는 형제의 합이 당황스럽긴 했으나, 전혀 유효타가 없다는 것에 결국 승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교란 아닌 교란에 아이작에게 허점이 보였다.

머리 위에서 소환된 빙룡이 하강하는 것은 포착했으나.

미처 발아래서도 벼락이 치솟을 수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밑에서 솟구치는 벼락이라니!’

아이작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가 오늘 들어 가장 크게 당황한 그때였다.

- 바로 지금!

팔라딘 합류 이후 다시금 착용한 수재혁의 인이어에서 준우의 외침이 들려온다.

하필이면 아이작이 얼음 장벽을 박차고 허공에 떠 있는 상황.

비행 능력이 사라진 터라 위아래에서 몰려오는 빙룡과 벼락은 그의 균형을 흩트리기에 충분했다.

아이작이 화물선 위에 비틀거리며 착지한 그 순간.

콰아아아앙!

팔라딘의 워 해머가 아이작의 머리를 강타한다.

이제껏 해 왔던 것과 같은 공격 방식.

“그딴 공격으로는 내 몸에 상처 하나 내질 못한……?”

그러나.

이번엔 단 하나가 달랐다.

우우우웅!

이질적인 기운에 아이작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에는 커다란 흡입 포탈이 열린 채 그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런 젠장!”

협회장 강재호와 이선호의 합작.

이때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레이더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에 흡입 포탈을 열기 위해서.

또한,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루이스와 협회 헌터들이 열심히 구동 장치를 굴리고 있을 터였다.

“이, 이 빌어먹을 놈들이이이!”

아이작이 분노했다.

흡입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좀처럼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이 한 번의 기회를 위해 몇 달 전부터 준비해 왔던 함정이었고, 그 위력은 아이작마저도 버티기가 어려울 만큼 강력했다.

물론, 포탈인지라 위험하지 않다.

문제는 저 안에 과연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지.

“가주님!”

아이작이 위험하다는 걸 눈치챈 것일까.

백호가 상대하고 있던 수하 중 하나가 전장을 이탈해 아이작에게로 내달렸다. 그를 돕기 위해서.

푸욱!

“가, 가주……?”

아이작의 발톱이 수하의 목을 꿰뚫는다.

동시에 그의 피가 아이작의 발톱을 타고 그에게 빨려 들어갔고, 수하의 몸은 점점 메말라 갔다.

“동료를 죽였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수재혁과 팔라딘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아이작의 몸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동족의 피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가능한 모양.

더 큰 문제는 아이작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기운이다.

진득한 피를 머금은 기운은 싸늘한 시체가 된 부하마저 녹여 버리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최대한 가까이 접촉하는 건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변수다. 그간 준비해 온 흡입 포탈의 힘이라면 충분히 놈을 커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수재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단 한 번의 기회였다. 여기서 놈을 포탈 안으로 집어넣지 못한다면, 모든 작전이 물거품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태 저자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만약 여기서 더 강해진다면, 아무리 우리 둘이라도 죽음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팔라딘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의 뜻대로 성물을 회수해야 하거늘, 그것마저 불확실해져 가는 상황이었다.

형제가 협공하며 티격태격하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위급 상황이 벌어진 만큼, 이제 웃음기는 싹 빼야만 한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의 반가움도 잠시 저편으로 밀쳐내야만 했다.

“딱 3분.”

팔라딘이 문득 입을 열었다.

수재혁의 시선이 자연스레 동생을 향한다.

“3분 동안은 저 녀석을 묶어 두는 게 가능할 것 같아. 하지만, 그 이상은 나도 무리야. 모든 신성력을 소모해야 하거든.”

“그래서?”

“그 안에 해결을 해야 한다는 얘기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달라진 말투의 팔라딘.

적어도 지금의 그는 신성회의 팔라딘이 아닌, 수재혁의 동생 수정혁처럼 느껴졌다.

“무슨 수로? 근접전은 위험해. 더 이상 힘을 낭비해서도 안 되고. 최대한 놈을 포탈 안에 집어넣는 쪽에만 집중해서…….”

“형. 아직도 야구 좋아해?”

“뜬금없이 무슨?”

“옛날에 자주 했었잖아.”

“뭐, 어렸을 때 너하고 친구들하고 함께 자주 하곤 했었지. 네가 성직자가 된 이후로는 흥미를 잃긴 했지만.”

친구들끼리 자주 야구를 했었더랬지.

항상 수재혁이 동생인 정혁이를 데리고 다녔었다.

형은 투수, 그리고 동생은 4번 타자.

“간만에 야구나 한번 해 보자고.”

척하면 척.

수재혁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야구라. 그거 좋지.”

그저 그런 유효타가 아닌.

훈련 당시의 수태광에게도 나름의 치명타를 안겨 주었던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과연 지금도 할 수 있을까?

형제는 생각했다.

그때보다 훨씬 더 성장했는데 못 할 게 뭐가 있나.

기회는 단 한 번뿐.

계속해서 몸을 불려 나가는 아이작이 변화를 마치기 전에 승부를 봐야만 했다.

후우우우웅!

장벽이 숱하게 부서지고, 빙룡이 무너지고, 쉬지 않고 내던졌던 얼음의 창이 만들어 낸 파편들이 허공에 떠오른다.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이 얼음의 견고함을 더해, 일제히 아이작을 향해 쇄도한다.

파지지지지직!

동시에.

지금까지의 것보다 더욱 강렬하고 굵은 벼락이 내리친다.

일명, ‘뇌옥’.

팔라딘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술이자, 악을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크큭! 이깟 잔재주쯤이야!”

아이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팔라딘의 말마따나 3분 내에 충분히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뇌옥이다.

그러나.

거기에 수재혁의 견고한 얼음들이 더해진다면?

촤라라라락!

얼음들이 뇌옥 주변을 감싼다.

지금껏 그가 만들어 냈던 모든 얼음의 파편들이 뇌옥에 엉겨 붙어 커다란 구체의 모습을 이뤄냈다.

차가운 뇌옥 안에 갇힌 아이작.

수재혁은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자신의 왼팔에 집중시켰다.

“기억나냐? 그래도 내가 나름 친구들 사이에선 잘 던지는 좌완 투수였던 거.”

“형이? 뭐,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 근데 나도 제법 잘 치는 타자였다고.”

팔에서 뻗어 나온 한기와 함께 마치 괴물의 팔과도 같은 거대한 팔이 만들어졌다.

덥석!

수재혁은 망설임 없이 거대한 팔로 뇌옥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얼음처럼 차가운 손을 서서히 움직인다.

‘와인드업.’

형의 시선이 어느새 저 멀리의 동생을 향한다.

동생의 오른손에는 배트 대신 신성력을 머금어 변화한 초대형 워 해머가 쥐어져 있었다.

“잘 쳐라. 이건 치라고 주는 거다.”

“걱정 붙들어 매. 거저 주는 건데 당연히 홈런이지.”

수정혁의 배트를 꽉 움켜쥔다.

동시에 수재혁이 공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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