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화.꽃이 피다 (212/246)

◈ 꽃이 피다

- 10분 지각이야. 아빠가 오늘 늦게 와서 다행이지, 너 또 훈련에 지각한 거 아셨으면 엄청 혼났을 거다.

- 비밀로 해 주세요, 형제님. 오늘 예배가 갑자기 늦어져서요.

- 예배? 너 설마 또 신성회당에 다녀온 거야? 아빠가 알면 어떡하려고 그래? 안 그래도 너 성직자 될까 봐 요즘 불안해하시는데…….

- 형제님. 제 능력은 제가 잘 압니다. 전 신성회당을 다니면 다닐수록 힘이 강해진다구요.

- 에이씨! 몰라, 몰라! 아빠한테 걸리면 네가 알아서 해! 그리고 형제님이라고 하지 마!

- 형제님을 형제님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 형이라고 불러! 그 이상한 말투도 좀 고치고!

- 필라 신 아래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인 것을…….

- 아! 쫌! 이상한 말투 하지 말라고!

티격태격하던 연년생 형제가 침묵했다.

훈련장 저만치 앞에 아버지인 수태광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내가 좀 늦었구나. 늦은 만큼, 너희들도 훈련에 임할 준비는 전보다 더 완벽하게 갖춰 놓았겠지?”

훈련이 시작됐다.

9살, 10살 형제의 훈련이었지만, 훈련 강도는 어지간한 헌터들의 수준보다 훨씬 높았다.

상대가 자그마치 수태광이다.

그에게 작은 유효 공격을 가하면 훈련은 바로 종료된다. 고로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빨리 훈련 끝내고 저녁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데!’

‘매일매일 훈련이라니! 나도 이젠 지겹다! 오늘은 일찍 끝내고 좀 쉬고 싶은데!’

나란히 선 형제가 동시에 눈을 번뜩였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오늘은 꼭 훈련을 빠르게 끝내고 자유 시간을 얻어 내리라는 의지였다.

동생이 ‘워 해머’를 꽉 움켜쥐었다.

길이와 무게를 늘려 마치 창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딱 맞춘 무기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오늘은 정혁이가 아니라, 내가 꼭 이 훈련을 끝낸다!’

항상 동생에게 밀리기만 했던 형.

수재혁이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자신의 비기.

그것을 사용해 아버지에게 유효 공격을 가할 생각인 것이다.

스스슥-

수재혁의 전신이 푸른빛으로 물든다.

마력이 모이는 곳, 소년의 가장 커다랗고 단단한 코어에 작은 꽃봉오리 하나가 느껴진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세상 어느 것보다 날카로운 꽃잎.

설화(雪花).

오늘 그 꽃봉오리를 만개시킬 생각이었다.

‘이것만 피워 내면, 아빠에게 유효 공격을 가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거야!’

얼마 전부터 동생은 아버지에게 유효타를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태 수재혁 본인은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형인데! 맨날 정혁이한테 질 수는 없지!’

소년이 마력을 코어에 집중시킨다.

웅크려 있던 설화가 조금씩 피어난다.

한 겹, 또 한 겹…….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어진 꽃이나, 부드럽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잎들.

샤라락-

맑은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작디작은 눈발이지만, 그것들이 바람과 한데 어울려 소년의 체구와 견주는 어떠한 형상을 이뤄 냈다.

그것은 한 마리의 용이었다.

아직은 너무나도 작은 새끼 용.

까드드득!

얼음으로 만들어진 새끼 용이 커다란 입을 벌려 수태광에게 쇄도한다.

회심의 일격이 아빠에게 닿을 거라고 확신한 그 순간.

“어, 어……?”

소년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겹게 피워 낸 설화가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 이러면 안 되는데……!”

뭔가가 잘못됐다.

마력의 흐름이 잘못된 건지, 제어가 잘못된 건지, 어린 날의 그는 감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용이 아빠가 아닌 다른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까드드득!

용이 방향을 틀었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움직임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촤아아악!

날아간 용이 동생의 앞에서 입을 커다랗게 벌린다.

차갑고 날카로운 이빨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맞부딪친다.

“저, 정혁아아아!”

실수를 깨달은 소년이 울먹이며 동생을 향해 달려갔다.

수태광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가 없었더라면 동생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솨아아아-

수태광의 강렬한 불꽃이 용을 녹여 내는 것엔 성공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용의 이빨은 동생의 어깨를 물어 버린 직후였다.

아빠가 없었더라면.

만약, 아빠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동생은 팔 하나를 그대로 잃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괜찮아. 흉은 남겠으나 상처가 그리 깊진 않으니.”

수태광이 둘째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재혁아. 이것만은 알아 둬야 한다.”

“…….”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네가 제어할 수 없다면, 그 힘은 소중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법이다. 알겠느냐?”

“……흐윽, 흐윽.”

“울지 말고. 사내자식이 눈물은.”

소년은 눈시울을 붉히며 동생을 안고 멀어지는 아빠의 뒷모습을 힘겹게 응시했다.

상대를 이기겠다는 일념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만들었고, 동생보다 앞서야 한다는 성급함이 동생을 다치게 만들었다.

또한 그 죄책감이 소년을 옭아맸다.

주르륵-

멀어지는 동생의 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피로 물들어 축 늘어진 동생의 손이 움찔거리는 게 보인다.

처억-

아픈 와중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동생 녀석.

“제법 강하긴 했는데, 용이 너무 코딱지만 하더라. 그래도 나름 멋있었어…….”

“……?”

“……근데 나 이기려면 나중엔 더 커다란 용을 만들어야 할 거야. 형.”

* * *

‘건방 떨기는. 널 이기려면 더 커다란 용을 만들어야 한다고?’

자신의 능력을 한계에 근접할 때까지 밀어붙인 탓일까.

모처럼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현듯 처음으로 온 힘을 다했던 그 날의 훈련이 떠올랐다.

‘빙룡을 제어할 순 없더라도, 이젠 너 하나쯤 이기는 건 문제도 아니다.’

얼음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바다가 요동치고 화물선이 뒤틀린다.

화물선과 맞닿은 바다 표면이 단단하게 얼어붙으며, 화물선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냈다.

수재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만들어 낸 거대한 소용돌이를 아이작에게 날려 보냈다.

콰아아아아!

마치 바다를 집어삼킬 듯한 광활한 한기가 아이작을 향해 몰아친다.

“덴.”

아이작이 낮게 읊조렸다.

그 순간 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수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큼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스스스슥-

양 손바닥에 응축된 마력.

막대한 양의 마력이 폭발하며 굉음을 내더니, 이내 광풍을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앙!

광풍이 얼음의 소용돌이를 덮친다.

소용돌이의 회전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고, 바다는 격하게 울렁거리다 어느새 고요함을 되찾았다.

‘……최소한 나랑 동급이란 얘기군.’

수재혁이 허공의 덴을 응시했다.

자신의 공격을 단 일격으로 막아 낸 자다.

그렇다면, 저놈의 수장인 아이작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그딴 걸 걱정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겠지.’

준우가 말했던 버텨야 하는 시간.

이제 20분 남짓 남았다.

‘어떻게든 버텨 내야만 한다.’

비장한 표정의 수재혁을 향해 아이작이 비소를 내비쳤다.

“고작 그게 다인가?”

“당연히 아니지. 말했잖아? 쪽수로 밀어붙인다고.”

수재혁이 백호 공격대장과 눈빛을 교환했다.

수많은 전장을 함께 누비며 합을 맞춰 온 이들이다.

백호를 이끄는 것은 수재혁이었고, 백호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그를 따라왔다.

촤아아아악!

바다 위, 화물선 인근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푸르른 바다의 색만 제외하면, 이곳이 해상인지 지상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계획대로 4개 조로 나뉘어 한 놈씩 맡는다.”

“예!”

우두머리인 아이작은 수재혁의 몫.

지상처럼 단단하게 얼어붙은 바다라고 한들 이곳은 땅이 아니었다.

얼어붙어 만들어진 빙하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발이 미끄러워 제대로 된 전투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백호는 달랐다.

수재혁과 합을 맞춰 오며 빙상 전투의 귀재가 된 그들이 아니던가.

‘유성우는 광역 마법이라 타깃 지정이 불가능해. 자칫 아군이 위험할 수도 있다.’

소용돌이야 전방을 향해 방향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나, 유성우 불가하다. 어쩔 수 없이 계획대로 전투를 진행하는 수밖에.

촤라라라락!

얼어붙은 바다 위 허공을 향하는 계단이 만들어진다.

이어, 얼음 위 공격대의 발이 되어 줄 ‘백호’들이 얼음으로 형상화됐다.

익숙하게 백호의 등에 올라탄 공격대.

“돌겨어어어억! 한 놈도 빠짐없이 죄다 물어뜯어 버려라!”

공격대장의 외침에 백호가 얼음 계단을 타고 허공을 향해 도약하기 시작했다.

비행 상태의 아이작을 공격하기 위한, 현재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준우가 수재혁과 백호를 바다 위에 배치한 이유였다.

유일하게 공중전에 능한 놈들과 대응할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아이작과 수하들이 더 높이 비행한다.

수재혁은 계속해서 얼음 계단에 얼음을 더해 높이를 높여 갔다.

그러나 비행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운 놈들에 비해, 백호의 움직임은 다소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놈을 먼저 잡아야 한다. 비행은 아무래도 저 녀석의 능력인 것 같은데…….’

조금 전, 수재혁의 소용돌이를 무마시켰던 자.

아이작이 덴이라는 녀석을 의식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후우우웅!

커다란 얼음의 창이 소환되어 덴을 향해 날아간다.

백호를 상대하고 있던 덴이 뒤늦게 창을 발견했으나, 순식간에 덴의 옆으로 이동한 아이작이 가볍게 창을 잘라냈다.

“눈치가 좋군.”

“역시나. 저놈만 잡으면 비행 능력은 사라지는 거였구나?”

“시간 끄는 건 여기까지. 계속 봐준대도 더 이상 재밌는 건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말끝을 흐린 아이작이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는 눈을 번뜩이며 크게 내뱉는다.

콰아아아앙!

“이, 이런 미친! 무슨 숨 한 번에……?”

공격대의 발이 되었던 백호가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그들을 공중으로 인도해 주었던 계단마저 박살이 나 버렸다.

정말이지 가공할 만한 힘.

그저 마력을 품을 숨 한 번으로 만들어 낸 결과였다.

사자후 같은 거라도 되는 걸까.

“젠장! 진짜 괴물 같은 놈이구만!”

수재혁이 서둘러 마력을 퍼뜨렸다.

다시금 백호를 만들 어내 추락하는 공격대원들을 낚아챘고, 놈들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계단을 재생성하여 공격을 이어갔다.

10분.

이제 딱 10분만 더 버티면 된다.

그런데, 왜 이 10분이 이토록 버겁게 느껴지는지.

‘어떻게든 공중에서 끌어 내려야만 한다. 그래야, 놈들이 화물선 내에 발동될 흡입 포탈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는데…….’

딱 한 번.

그 한 번만 덴이라는 놈에게 공격이 닿으면, 비행 능력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공격 방법으로는 턱도 없다.

이미 놈들과의 능력 차이가 너무나도 크지 않은가.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까?’

수재혁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코어 내 설화(雪花)는 여전히 웅크려져 있다.

과연, 이걸 온전히 피워 낼 수 있을지.

지난날의 죄책감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온다.

제어할 수 없는 이 힘이 또다시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지도 모른다.

수재혁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백호를 응시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아니,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이 죄책감을 떨쳐 내고, 두려움마저 부숴 낸 뒤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흐으으읍!

아이작이 전보다 더 깊이 숨을 들이쉰다.

조금 전의 그것보다 강력한 무언가를 뱉어 내려는 듯, 들이쉬는 숨의 양이 훨씬 많다.

놈이 저걸 뱉기 전에 판단을 해야만 한다.

꽃을 피울 건지, 말 것인지.

- 말이나 돼, 그게? 수린이와 혹한기 훈련이 내 능력에 도움이 될 거라니?

- 지금 형님께서도 못 믿는 것처럼 말씀하셔도, 정작 느끼고 계시지 않습니까? 수린이랑 혹한기 훈련하는 요 며칠 새에 뭔가 달라졌다는 걸요.

- ……그렇긴 한데. 설마, 이 또한 매제 자네의 능력인가?

- 저희 가족의 능력이죠. 앞으로는 더 자주 저희 집에 오셔서 수린이하고 반려몬 아이들하고 놀아 주세요. 아니, 혹한기 훈련을 해 주세요. 분명히 형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

언젠가 준우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가장 특성과 가화만사성의 효과로 준우의 집에선 선화와 준우를 포함해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다.

그 역시 가족끼리의 교감이었으니까.

준우의 가족 구성원이 된 이후로도 계속 그의 집을 드나들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성장을 거듭해 온 그였다.

거기에 혹한기 훈련처럼 보다 깊은 교감이 이뤄질 수 있는 과정이 더해지며 최근에는 성장에 가속이 붙기도 했다.

물론, 수재혁은 준우의 능력에 대한 자세한 내막 같은 건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본인 스스로도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땐 제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나라면…….’

어린 날의 훈련 때.

아버지에게 유효 공격 한번 적중시키고자 했던 그 간절한 마음이 슬그머니 피어난다.

‘……해낼 수 있을지도.’

스스슥-

오랜 시간 웅크려 있던 설화.

꽃봉오리의 꽃잎을 조금씩 벗겨 낸다.

한 겹, 또 한 겹…….

차갑고 투명한 꽃잎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고.

또한, 더욱 날카롭게.

개화한 설화가 녹지 않게 마력을 운용해 한기로 잡아둔다.

이윽고, 한 송이의 설화가 코어 내에서 온전히 개화했을 때.

후아아아압!

아이작이 숨을 내뱉었다.

동시에 머리카락마저 푸른빛으로 얼어붙은 수재혁이 다시금 얼음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아까의 것과는 다르다.

하늘에서 바다 위로 내리는 새하얀 눈꽃들.

눈꽃들이 몰아치는 소용돌이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푸른빛의 소용돌이에 새하얀 옷이 입혀진다.

백색의 소용돌이가 더 높이 솟구치더니, 이내 길고 커다란 무언가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한 마리의 용이었다.

화물선마저 집어삼킬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빙룡(氷龍).

까드드드득!

빙룡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린다.

아이작이 내뱉은 숨을 단숨에 들이 삼킨 녀석이 냅다 방향을 틀어 덴을 향해 쇄도했다.

“……!”

콰지지지직!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덴이 빙룡의 입안으로 삼켜진다.

“……허?”

아이작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친다.

보름달이 떠 있음에도 불구, 덴을 일격에 삼켜 버리다니.

“혼혈의 한계인가. 순혈이었다면 이리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것을.”

순혈이었다면 야수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빙룡에게 당하는 일도 없었겠지.

처억-

아이작이 화물선 컨테이너에 착지했다.

덴의 비행 능력이 사라진 이상, 이제 이전처럼 공중전은 불가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발아래, 컨테이너에서 블루 스톤의 기운이 느껴진다.

성물로 블루 스톤의 힘을 모두 흡수한다면 수월하게 전투를 끝낼 수 있겠지만, 몇 시간 이상 소요가 될 터.

‘방심했군.’

수재혁이 A급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이작이 조금 전에 본 그의 모습은 S급의 경지에 이른 헌터였다.

비축해 둔 본연의 힘을 사용해야 할까.

썩 내키진 않았다. 아주 만약을 위한 대비는 해 둬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엔 블루 스톤 말고도 기묘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을 거란 생각에 일단 야수화만은 남겨 두고 있는 상태였는데…….

‘……괜찮겠지. 바다 위에선 성물의 힘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수재혁이 아이작의 눈치를 살폈다.

약속했던 30분의 시간은 이미 다 지나갔다.

오히려 5분 이상 초과됐음에도 불구, 작전상 비밀 병기는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흡입 포탈이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선 놈들의 힘을 좀 더 빼놔야 한다. 놈들이 여기서 성물이라도 사용하면, 나와 백호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데…….’

입술을 질끈 깨무는 수재혁.

빙룡을 만들어 내며 거의 모든 마력을 소진한 그였다.

“뭔가 계획대로 안 되어 가는 듯한 표정인데?”

“아냐. 잘 되어 가고 있어. 계획에 없던 네 부하 녀석까지 한 놈 없애 버렸으니 뜻하지 않은 성과도 있었고.”

“네 마력이 모두 소진된 건?”

“그래도 뭐, 빙룡이 살아 있으니까.”

“그럼 저것만 사라지면 끝이라는 거군.”

아이작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바다의 틈, 신성회의 성물인 그것을 꺼내든 바로 그때였다.

“야, 너 또 지각인 건 알지? 10분 늦었다.”

“……?”

수재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허공을 향해 묻자.

아이작이 성물을 어루만지다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앙!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과장 하나 없이, 말 그대로 강렬한 은빛 벼락이 냅다 아이작의 정수리에 내리꽂힌 것이다.

밤하늘의 어두운 바다.

그곳에 찬란한 은빛 갑주를 입은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성회 문양이 박힌 커다란 워 해머와 방패를 쥔 채로.

처억-

포탈 속에서 나타난 사내는 차분히 화물선 위에 착지하고는.

수재혁의 등 뒤에 있던 거대한 빙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케 제대로 된 용을 만들어내셨습니다, 형제님. 잘하셨어요. 기특합니다. 드디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공하셨군요.”

“형이라고 불러라.”

“필라 신 아래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인 것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이 자식은 하나도 변한 게 없네? 10분 늦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신성회 최강의 성기사, 팔라딘.

그가 형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눈앞의 적들을 향해 냉큼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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