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취한 것 같아
큰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중요한 건 사람이다.
수재혁은 그 말에 극히 동감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아버지가 지금의 엑시스를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저 유능하기만 한 걸로는 부족하다.
수재혁에게는 유능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가족이 최고의 선택지인데…….’
해서, 준우에게 엑시스 부 마스터 직을 제안했다.
회장이 될 자신을 대신해 공석인 그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신뢰는 물론 능력은 이미 오랜 시간을 통해 검증된 훌륭한 헌터였다.
하지만.
준우는 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 제겐 과분한 자리입니다. 제겐 꼭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구요. 죄송합니다, 형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당연히 수락할 줄 알았다.
남들은 입사하고 싶어도 못하는 엑시스다.
그런 엑시스의 부 마스터 직을 거절하다니.
‘역시, 매제. 보통 내기가 아니야.’
준우와 대화를 끝내고 본사로 복귀하는 길.
수재혁은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나의 엑시스엔 매제가 있어야만 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수재혁이 아니지.
‘아무래도 김 관장과 박 비서하고 의논을 좀 해봐야겠어.’
준우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기에 안일하게 생각해왔으나, 이번엔 보다 적극적으로 준우의 영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
며칠 전.
기사 하나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 전준우 헌터, 10억대 페라리 차량 논란 >
- 이게 왜 논란임? 전준우는 페라리 타면 안 됨?
- 내 말이ㅋㅋㅋㅋ 능력되니까 타겠지
- 공무원이라서 그런 거 아님? 길드원도 아니고 협회 소속 공무원 치고는 너무 비싼 차는 맞는 것 같음.
- 공무원도 급이 다르지. 전준우 정도면 연봉 어마어마할 걸.
- ㅂㅅ들아 와이프 차라잖아!!!
- 와이프는 무슨 일 하는데?
- 엑시스 수태광 회장의 하나뿐인 딸.
- ㅇㅈ
- 기자 하기 존나 쉽네. X발. 별게 다 논란이다.
- 기자 양반. 좋은 말로 할 때 글 내려.
얼마 전에 신차 뽑은 기념으로 선화와 동해 바다에 놀러 갔었는데, 그때 누군가 몰래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여론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다.
탈만 한 능력이 되니까 탔겠지, 라는 분위기.
사실상 논란거리도 되지 않았다.
다만, 준우가 워낙 유명 인사가 됐다 보니 준우의 사생활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을 뿐이다.
준우가 협회 소속 헌터로서 세운 공과 국위선양 한 일들이 많기에 여론과 언론은 그에게 관대한 편이었다.
극호감의 이미지였으나, 인기가 많은 만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종종 있기는 했다.
셀럽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그런 것이랄까.
“흐음. 10억대 차량이라.”
해당 기사는 헌터 협회장 강재호의 눈에 들기도 했다.
여론 반응은 나쁠 게 없었고, 법적으로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신경이 협회장으로써 신경이 좀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준우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협회장님.”
“아아! 어서 오게 전준우 헌터.”
협회장실에 준우가 방문했다.
얼마 전에 준우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면담을 요청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때마침, 강재호 역시 준우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기에 적절한 타이밍인 셈이었다.
“차 한 잔 하겠나? 얼그레이? 카모마일?”
“카모마일로 하겠습니다.”
강재호는 저도 모르게 준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꼰대 같은 느낌이 들진 않을까, 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셔도 됩니다, 협회장님.”
“흠, 흠!”
눈치 빠른 준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본인 또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오긴 했으나, 강재호의 표정 역시 꽤나 진중해 보였다.
“그……페라리 말인데…….”
“아아.”
“오, 오해는 하지 말고 듣게. 나는 그저 자네가 걱정이 돼서 말이야.”
“협회장님께서도 그 기사를 보셨군요.”
강재호에게 있어서 준우는 복덩이나 다름없다.
국가에 없어선 안 될 능력자이며, 그가 입사한 뒤 협회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좋아졌다.
오죽하면 요즘엔 중소형 길드보다 협회 입사 경쟁률이 더 높아지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강재호는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간혹 질 나쁜 인간들이 준우에게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씌워 이상한 루머를 만들어낼까 봐.
예를 들면, 뇌물을 받았다거나.
“혹시 그 차량이 규정상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형님께 대가 없이 받은 선물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대비해 일단 아내 명의로 두긴 했는데…….”
“문제가 되다니! 그럴 리가 있나! 가족에게 받은 선물이고 아무런 대가도 없었으니, 자네 말대로라면 헌터 특별법과 새로 개정된 김영란법을 살펴보더라도 딱히 걸리는 건 없네. 다만, 나는 그저 자네가 걱정이 돼서 말이야.”
“걱정이라면……?”
“사람들은 자네의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테니,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은 거지.”
길드에 비해 박봉인 협회 공무원이라지만, 준우의 연봉은 꽤 높은 편이었다. 10억대 차량을 구매할 정도는 된달까.
야구 선수들의 몸값이 천차만별이듯 협회와 길드 내에서도 유능한 인재들은 최대한 대우를 해주는 편이었다.
빈부격차가 있긴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붙잡지 못하는 것을.
“규정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었지, 제가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은 못 했던 것 같군요. 협회장님께 피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피, 피해가 되다니! 그런 거 아닐세! 오해는 말고…….”
“앞으로 각별히 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끙, 그런 거 아니라니까…….”
괜한 이야기를 했나.
준우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 것을.
강재호가 멋쩍음에 볼을 긁적였다.
이럴 땐 역시 그냥 화제를 빨리 전환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 자네가 내게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긴히 할 말이 있다면서.”
“본부장과 팀원들과는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마 보고 역시 본부장이 할 테지만, 협회장님과의 인연이 있으니 따로 뵙고 미리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
준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조건 해낼 수 있다는 의지가 담긴 표정과 함께.
“특수 본부에서 맡고 있는 아이작 사건이 마무리되면, 저는 이만 퇴사를 하려고 합니다.”
“……!”
아뿔싸!
강재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부족한 저임에도 협회장님께서 그간 절 얼마나 아껴주시고, 배려해주셨는지 잘 알기에 이렇게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떠나는 것보단 이게 더 예의라고 생각하여…….”
“부족하다니! 자네가? 자네가 뭐가 부족해? 오히려 우리 협회엔 차고 넘치는데!”
“하핫! 과찬이십니다.”
“과찬 아닐세! 가,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거지?”
“갑자기는 아닙니다. 협회에 입사한 목표가 아이작이었고, 그 목표가 해결되면 제 역할도 끝날 것이라는 판단이지요.”
“그 일이 아니어도 협회는 아직 자네를 필요로 하네만.”
“저 말고도 이 나라를 수호할 훌륭한 헌터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제 가정에 남편과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여생을 온전히 보내기 위해 퇴사를 하겠다?”
“그렇습니다.”
준우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다.
여느 때보다 진심이라는 뜻이다.
“후우.”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생각을 굳힌 준우였고, 강재호에겐 당장 그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아이작을 체포할 엑시스와 협회의 합동 작전이 개시되려면, 보름 정도는 더 필요할 테니까.
‘내가 노파심에 괜한 말을 했구나. 기분이 매우 상했던 것 같은데…….’
그깟 차 얘기는 뭐하러 꺼내 가지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차 얘기를 꺼낸 게 신경이 쓰였을 거다.
‘……내가 요즘 흔히 말하는 꼰대처럼 보였겠지. 나는 그저 전준우 헌터를 걱정돼서 했던 말인데,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을 가능성이 커. 좀 더 진중하게 생각하고 입을 열었어야 했거늘!’
인생 최대 실수다.
준우가 좋은 차 타는 게 무슨 문제 삼을 깜냥이나 된다고, 고작 기사 댓글에 휘둘려서는.
‘전준우 헌터의 퇴사까진 시간이 남아있다. 어떻게든 내 실수를 만회하고, 마음을 돌려야 내야만 해!’
강재호의 오해는 더욱 깊어졌지만.
정작 당사자는 차 얘기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은퇴 후 선화와 뭘 하면서 놀까, 오직 그 생각뿐.
***
어차피 결혼하는 거 빠를수록 좋다.
굳이 질질 끌 필요 있겠느냐?
양가 부모님들의 말씀에 빠르게 상견례를 마친 수재혁의 결혼식 날짜는 김 관장이 말했던 길일로 정해졌다.
결혼식까지 시간이 촉박하긴 하나, 엑시스 호텔의 초호화 패키지를 이용한 덕분에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역시나 준우의 영입이었다.
국내에선 정보력으로 엑시스를 따라올 곳이 없다.
‘매제가 협회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는 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엑시스 부 마스터 직을 거절한 건 사실이라는 얘기고…….’
헌터 협회장 강재호도 요즘 준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협회도 아니고, 엑시스도 아니고. 그럼 해야 할 일이 대체 뭐지? 어디서 뭘 하려는 것이길래? 서, 설마?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나가려는 건가?’
그러고 보니.
상하이에서 루이스와 준우의 관계가 상당히 가까워 보였다.
세계 랭킹 3위의 길드인 홀리 나이트.
영국 왕실의 후원까지 받고 있는 준우였으며, 충분히 홀리 나이트 측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돌지 않았던가.
‘그땐 그저 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마냥 소문일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준우는 가족이다.
엑시스 일가의 한 사람인데, 설마 아무리 홀리 나이트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길드라고 한들, 진짜 그곳에 새 둥지를 틀까?
달리는 차량 안,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재혁.
옆자리에 있던 김 관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오빠 표정이 영 별로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결혼식 때 입을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짠! 나타났을 때, 환호성을 내지르는 수재혁의 모습을 상상했건만.
‘계속 이 상태면 나한테 집중 못 하겠는데?’
예비 신부인 그녀에게 있어서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오늘은 생애 한 번뿐인 순간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예비 신랑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주기만을 바랐다.
‘고민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사람도 아니고.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줘야겠어.’
김 관장이 살포시 수재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미안. 내가 나도 모르게 너무 일 생각에 빠져 있었나 보다.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이런 실수를…….”
“괜찮으니까, 말해 봐. 내가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래.”
김 관장은 현명했다.
본인에겐 중요한 날이지만, 다그치지 않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재혁은 고민을 털어놨다.
준우의 영입 건에 대한 모든 것을 핵심만 딱 짚어서.
“어머! 의외다. 나는 준우 씨가, 아니, 이제 시매부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당연히 협회 퇴사하면 엑시스로 올 줄 알았는데.”
“내 말이 그 말이야.”
김 관장도 매우 놀란 눈치였다.
예상치도 못한 난관에 김 관장 역시 당장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오늘 하루 오직 자신에게 집중해야 할 예비 신랑을 위해!
“오빠가 저번에 선물로 차 사줬잖아. 그걸로 막 생색내는 건 좀 치사한가?”
“좀이 아니라 많이 치사해 보이지 않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차 말고 다른 선물을 해줄걸.”
“시매부님이 스포츠카 엄청 좋아한다며? 차라리 차를 한 대 더 사주는 건?”
“예를 들면 어떤 차를? 이번에도 꽤 고급 차량을 선물해줘서, 어지간한 걸로는 눈길도 안 줄 것 같은데.”
“내가 저번에 무슨 기사에서 봤거든. 아랍 왕자들은 금칠한 람보르기니? 뭐 그런 거 타고 다닌다더라. 엑시스를 위한 일인데, 금칠한 차 한번 통 크게 선물해줘 봐.”
“매제가 또 눈에 튀는 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금칠한 차 선물해줘도 주차장에 박아놓고 건들지도 않을 거야.”
“음…….”
김 관장은 좀 더 깊이 고민했다.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남편이 될 사람의 문제였다.
더군다나 앞으로 남편이 이끌 엑시스에 꼭 있어야 할 인재가 준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꼭 준우를 영입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유능한 인재가 옆에 있으면, 수재혁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임엔 분명한 일이었으니까.
남편을 위한 일이야.
또한, 가업을 위한 일이고.
엑시스의 첫째 며느리가 될 김 관장이다.
그녀는 의지를 불태우며 생각나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막 던져보기 시작했다.
“집은 어때? 아버님께서 증여해주신 저택 하나 있잖아. 시매부님 댁에 반려몬이 많으니까, 넓은 집이면 엄청 좋아하시지 않을까? 워낙에 반려몬을 사랑하시기도 하고.”
“그 집을 주자고? 거기 우리 신혼집인데? 그럼, 우린 어디서 살아?”
“아무 데서나 살면 되지. 나는 잠만 잘 수 있으면 돼. 설마 우리가 그런 집 하나 못 구하겠어? 나 모아둔 돈도 꽤 많은데?”
“흐음. 매제가 별로 반응할 것 같진 않아. 예전부터 강화 쪽에 집 짓고 있는 게 있는데, 그 집도 엄청 넓고 고급지거든.”
“아버님께 설득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머님께 설득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아버진 당연히 매제가 엑시스로 올 거라고 확신하고 계셔. 아버지가 알게 되시면 괜히 일이 커질지도 몰라. 매제도 곤란해질 수 있고.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해야 돼.”
“일을 좀 키우더라도 확실한 방법이지 않나?”
“아버지께서 요새 부쩍 갱년기가 심해지셨는지 많이 감성적이시더라고.”
“아……? 이 사실을 알게 되시면, 상심이 크셔서 갑자기 막 눈물 흘리실 수도 있으시겠네?”
“그렇지.”
“우리 아버님 생각보다 많이 여리신 분이셨구나. 내가 갱년기에 좋은 것들 좀 챙겨드려야겠어.”
수재혁이 흐뭇하게 웃었다.
벌써부터 시아버지를 챙기려는 모습이라니.
하여튼, 보면 볼수록 예쁜 사람이다.
‘나도 장인 장모님 선물 거하게 준비해야겠군.’
기뻐할 두 분의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짙어지는 수재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의 답에 대한 고민이 다시 이어졌다.
“오빠, 아버님 말고 어머님께 설득을 부탁하는 건 어때?”
“우리 어머니는 매제 편을 들 거야. 무조건 매제 뜻을 따르라고 하겠지.”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님……그럼, 막내 도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시매부님이랑 막내 도련님 사이가 엄청 가깝잖아?”
“수동혁?”
수재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걔는 어머니보다 더할걸. 제 형보다 매제를 더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저번엔 무슨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다던데.”
“둘째 도련님은?”
“수민혁 걔도 마찬가지야. 가수 데뷔하기 전에 매제랑 무슨 깊은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매제 편인 건 확실해. 뭐라더라? 요즘 매제를 위한 헌정곡을 작곡 중이라나 뭐라나.”
“오빠 편은 하나도 없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오빠가 엑시스의 장남인데.”
“나한텐 너밖에 없어.”
“그러게 내가 평소에 도련님들께 잘하라고 했잖아.”
“나는 잘해. 매제가 더 잘할 뿐이지.”
“차라리 엑시스 회장직을 내어주는 게 마음 편하겠다.”
“그, 그건 좀…….”
“난 오빠가 엑시스 회장 아니어도 돼. 오빠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나는 오빠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거니까.”
“……그래도 회장직을 주는 건 좀 그렇다.”
좋은 수가 없을까.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준우를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약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매제가 워낙 완벽한 인간인지라 그런 것도 없단 말이지.”
“약점? 사람이 어떻게 약점이 없어?”
“내가 생각했을 땐 없는데. 있어, 약점이?”
김 관장의 머릿속에 준우의 모습이 그려진다.
‘약점’ 이라는 단어에 어쩐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느낌이 든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김 관장이 뭔가 떠올랐는지, 한껏 신난 얼굴로 수재혁의 몸을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있다! 약점!”
“이, 있다고?”
“수린이!”
옳거니!
수재혁이 씩 미소를 지었다.
느낌이 빡 왔다.
그래, 딸바보에겐 딸을 공략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을 테지.
“역시 엑시스 사모님이 될 사람 답네. 미모며, 지성이며 모두 완벽해!”
“내가 힌트 줬으니까, 나머지는 금방 해결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 수린이만 잘 공략하면, 매제를 설득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
환희에 찬 수재혁이 냅다 김 관장을 끌어안았고.
운전석의 박 비서는 멋쩍음에 괜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청을 피워댔다.
첫 번째 난관을 헤쳐 나간 순간.
타이밍 좋게도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드레스샵 앞에 도착했다.
“고민은 얼추 해결됐으니까, 내가 웨딩드레스 갈아입고 나오면 온전히 나한테 집중할 수 있겠지?”
“물론이지. 후우…….”
“왜 그렇게 긴장해?”
“떨려서. 혹시라도 웨딩드레스 입고 나온 네 모습이 너무 예뻐서 기절할까 봐.”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네.”
“빈말 아니고 진짜야. 나 지금 떨고 있는 것 봐.”
“그래? 그럼 혹시라도 떨다가 진짜로 기절하면 어떡해?”
“……이럴 줄 알고 청심환 챙겨왔어.”
청심환을 먹은 뒤 드레스를 갈아입고 있을 예비 신부를 기다리는 수재혁.
이윽고.
기다림이 끝이 나는 그 순간.
“신부님 나오십니다!”
화사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김 관장이 나타났다.
수재혁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냅다 박수부터 치기 시작했다.
“어때, 오빠? 어울려?”
“그 미모에 안 어울리는 드레스가 없을 리가 없잖아!”
“진짜로?”
“누구 신부가 될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뻐도 너무 예쁘잖아? 아, 맞다! 내 신부가 될 사람이지? 후후.”
김 관장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꿈에 그려왔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 형님. 드레스 보러 가실 때 말인데요. 신부가 딱 등장하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일단 엉덩이부터 자리에서 떼고 일어난 뒤에 곧장 반응하셔야 합니다. 한 박자라도 늦으면 큰일 나요.
- 반 박자 늦으면?
- 제가 반의 반박 늦었는데 그래도 선화가 조금 섭섭해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만큼 신부들에겐 가장 기대하는 순간일 테니까요. 칭찬은 최대한 격하게. 대신, 칭찬의 담긴 마음은 전부 진심일 것. 선배 유부남의 조언입니다. 명심하세요.
문득.
상견례가 끝난 뒤 준우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매제, 나 충분히 잘한 거겠지?’
아직 수재혁의 칭찬 세례는 끝나지 않았다.
칭찬을 너머 찬양 수준까지 이르러고 있는 상황이다.
잠시 후.
김 관장이 다른 드레스로 갈아입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수재혁이 바보 같이 히죽거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어우, 어지러워. 하마터면 미모에 너무 놀라서 진짜로 기절할 뻔했네.’
드레스를 입은 김 관장의 아름다움에 완벽하게 취한 탓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강림한 것 같았달까.
그가 예비 신부에게 했던 모든 찬양의 말들은 전부 가감 없는 사실이자, 영혼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