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를 푸는 방법
꽃잎의 의미를 가진 화반 마을은 ‘화신(花神)’ 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화신은 괴물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했고.
화신은 질병으로부터 그들을 지켜냈다.
사람들은 화신의 존재를 영웅을 넘어 신으로 추대했으며, 그는 그렇게 일평생을 마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화신이 세상을 떠나던 날.
마을에는 꽃잎이 내렸다.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듯이, 새하얗고 예쁜 꽃잎이 그를 추모하듯 쏟아졌다.
사람들은 말했다.
화신의 은혜를 입은 자신들은 죽은 후에도 꽃잎이 되어 이 마을에 영원히 남으리라고.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화반에는 역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화신을 그리워했다.
- 화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
역병의 원인이 화신의 부재라고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한 제를 지내기로 했다.
화신이 영물이라고 칭했던 거대한 돌을 깎아 그의 동상을 만들었으며,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화신의 기일을 기렸다.
조각과 변검술.
화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제일 잘하는 일로나마 꽃잎이 된 그를 추모했다.
그렇게 질병은 사라졌고, 마을은 어느새 지난날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는 것이 바로 이 화반 마을의 전설입니다. 지루하실까봐 핵심만 간단하게 전달드렸는데, 어떻게 만족이 되셨는지?”
양아치의 아부 섞인 목소리에 준우가 고개를 내젓는다.
물론, 흥미롭고 재미는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전설은 전설일 뿐. 사실은 아닌 거잖아?”
“그렇기는 한데, 증거가 남아 있어요.”
“증거?”
“화반 마을 한가운데에 화신의 동상이 있거든요.”
“흐음. 동상 하나로 모든 전설이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좀…….”
“저희 아버지가 역사학자 출신이세요. 게다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신 분이죠. 아버지께 그대로 전해 들은 얘긴데, 그 정도면 신빙성이 좀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 같은데. 너는 어째 양아치 같은 짓을 하고 다니냐?”
“…….”
“아무튼. 계속해봐.”
“뭘요?”
“저주받은 땅에 대한 이야기는 안 했잖아.”
“아아, 맞다! 저주받은 땅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준우는 다시금 양아치의 말에 경청했다.
이번에도 핵심만 간단히 요악하자면 이렇다.
수년 전쯤.
한 외부인이 마을에 있던 화신의 동상 일부를 파손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거대한 몬스터가 공원을 덮쳐, 당시 그곳에서 변검 공연을 하고 있던 극단 사람들이 다수 사망했던 것이다.
추모의 공원이 바로 그때의 그 공원이었고, 그곳에 잠든 그들도 때 죽은 극단원들었다.
“……묘하게도 장을 치르고 난 뒤부터 서서히 공원 내 모든 식물들이 죽어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비석들마저도 부식되기 시작했다는 거지?”
“맞아요. 꼬맹이가 만든 조각상도 보셨죠? 막 부식돼서 망가지는 거. 그 땅에 머무는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죽어간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부르는 거고.”
모든 것은 외부인으로부터 시작된.
화신의 동상을 파손시킴으로써 일어난 일이라는 거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하나, 둘, 떠났고, 마을의 이름은 사라지고 다른 행정구역으로 흡수가 되었다라.’
“근데, 꼬맹이라는 게 누굴 말하는 거지?”
“왕웨이요. 걔가 그 마을 사람들 출신 중에선 조각상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들어요.”
“공원 안에 보니까, 조각상들이 꽤 많던데. 수년 전에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조각상들인가?”
“아마도요. 왕웨이 어머니도 그때 돌아가셨고, 지금은 추모 공원에 잠들어 계시니까요.”
“아…….”
탄식을 내뱉은 준우.
그러다 문득 눈앞의 양아치들을 힐끗 노려본다.
빠악 - !
순간, 냅다 손을 뻗은 준우가 양아치들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왜, 왜, 왜 때려요!”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뻔히 아는 녀석들이, 거기서 그런 짓을 해?”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화가 나네. 너희들이 나쁜 놈들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
“일어나.”
“가, 갑자기 왜요? 이, 일으켜서 때리시게요?”
“화신의 동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거, 거기 아무나 못 들어가요. 그날 사고 난 뒤로 출입 제한됐어요. 외부인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그냥 들여보내 줄 리가 없잖아요.”
“줄곧 네 얘기 들어보니까 화반 마을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던데. 그럼, 거기 들어갈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지 않겠어?”
“모르는데요.”
“모르면 어떻게든 알아 와야지.”
‘왜요?’ 라고 물으려다가 멈칫했다.
자신들이 지은 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렇게나마 참회를 하라는 뜻이겠지.
“하아…….”
양아치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곤란한 듯하나, 출입제한이 걸린 곳에 들어가는 방법이 마냥 없지는 않은 모양.
준우가 가면을 고쳐 쓴다.
처음엔 불편하던 가면이 하루 새에 익숙해진 느낌이다.
간혹 타국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번거로운 상황이 일어나곤 했는데, 그럴 일이 없으니 활동하기 편하달까.
“근데요. 아저씨 대체 정체가 뭐예요?”
“아저씨 아니고 형. 정체까진 알 필요 없고, 넌 그냥 거기까지만 알고 있으면 돼.”
“아?”
“뭐해? 고민 끝났으면 빨리 움직여야지!”
준우가 화신의 동상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준우는 고민했다.
양아치의 말마따나, 추모의 공원을 포함한 인근 지역이 저주받은 땅이라면, 그 저주로 인해 식물과 비석 같은 것들이 죽는 것이라면, 대체 왜 사람들은 멀쩡한 걸까.
‘이 양아치 녀석들도 그렇지만, 분명히 그 이전에도 공원을 드나든 사람이 있었을 텐데.’
어떠한 요인으로 인해 추모의 공원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었다.
원인은 공원 자체에 있는 것 같은데, 공원에 발을 디딘 사람들에겐 딱히 문제가 없으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양아치의 말에 따르면 공원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에게도 별다른 징후는 없었다고 한다.
‘전설로 속 그 이야기처럼, 정말로 화신이 저주를 내리기라도 한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까, 화신의 동상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고.
쓸데없는 일에는 잘 나서지 않는 준우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어머니를 잃은 왕웨이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왕웨이 그 녀석은 사고로 돌아가신 엄마와 사람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대요. 예전처럼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길 바란다나? 그래서 매번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함께 공원을 청소하거나 가꾸거나 하는 거죠. 뭐, 그래봐야 저주받은 땅엔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만요.
동상을 향해 가는 길에 양아치 녀석이 했던 말이었다.
‘화반 마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꽃잎이 되어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고 믿고 있다고 했었지.’
안타깝게도 망가진 공원에선 꽃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왕웨이는 더욱이 그 공원을 가꾸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조각상이 부식되는 대도 계속 만들어서 가져다 놓는 건, 꽃잎의 부재를 대신할 뭔가를 채워 넣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준우 또한 부모님이 일찍이 돌아가셨기에 공허한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어린 왕웨이이기에 괜히 수린이의 얼굴이 겹쳐져 더욱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마냥 쓸데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왕웨이는 왕친의 아들이니, 멀리 본다면 영입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무엇보다 어린아이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더 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준우가 저만치 앞을 응시했다.
예전 화반 마을이 자리하고 있던 장소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져 있었고, 군인들이 그곳을 지키고 서 있었다.
양아치 녀석은 군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형! 됐어요! 대신 딱 5분 만이에요. 그 안에 다시 나와야 해요.”
“군인을 어떻게 설득한 거야?”
“아아! 저 사람 1년 전부터 제한 구역 경비 서고 있거든요. 근데, 얼마 전에 제가 도박에 빠져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도박장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죠. 큰돈을 빌릴 수 있게 괜찮은 사채업자 형님도 한분 소개시켜주기로 하고.”
“이 자식 이거, 크게 될 놈이네.”
물론, 음지에서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이거 계속 이대로 두면 나중에 말썽 꽤나 부릴 놈이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칭찬 아냐. 너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이대로 나쁜 길로 쭉 빠져서 자칫 사형수라도 되면?
이 나라는 아직 사형 집행을 하는 걸로 아는데…….
준우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더 큰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싹을 잘라줘야 할 것 같았다.
부모님께 따로 연락을 해두던가,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하던가.
‘그나저나, 저게 그 화신의 동상이란 말이지?’
주어진 시간은 딱 5분.
준우는 출입제한 구역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이전에는 이곳이 화반 마을의 중심부였으나, 현재는 폐허가 된 상태다.
몬스터의 공격으로 마을 역시 어마어마한 피해를 받았던 모양이다.
수 많은 사람이 죽은 곳이고, 저주를 받은 곳이라고 믿었기에,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이곳엔 오직 화신의 동상만이 우뚝 서 있었다.
투명한 청색의 암석 같은 것을 조각해 만든 것 같았는데, 영롱한 색깔 때문인지 왜 전설 속에서 이것을 영물이라고 말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동상으로 만들어진 화신은 한 손에 기다란 지팡이를 쥐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천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얼굴에도 천에 그려진 문양만큼이나 기이한 것들이 새겨져 있었으며, 마치 고대의 신을 모시는 제사장 같은 분위기가 풍기기도 했다.
‘외부인이 파손시켰다는 게 바로 이 부분인가.’
준우의 시선이 동상의 왼쪽 손을 향했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저주의 시작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동상이 낯이 익은 기분이 들어.’
처음 보는 동상이다.
그럼에도 불구 낯선 느낌이 덜하다.
“혀, 형님. 1분 남았어요.”
양아치가 재촉했다.
준우는 듣는 둥, 마는 둥, 동상을 세세히 살폈다.
“만지는 건 안 돼요! 군인들이 바로 달려올 거라고요!”
무시한 채 동상에 손을 가져가는 준우.
순간, 양아치의 염려대로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군인들이 냅다 뛰어오기 시작했다.
스스슥 -
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상에 마력을 살짝 불어넣었다.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더니, 역시나였다.
‘이 동상 때문이었군. 저주받은 땅에서 사람들만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이유가.’
삐익 - !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인들이 준우와 양아치를 끌어냈으며, 준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실수라고 둘러댔다.
“가, 갑자기 동상을 만지면 어떡해요! 만지지는 않고 들어가서 보기만 하겠다고 말해뒀는데!”
“아까 못 들었어? 실수라고 했잖아, 실수.”
준우는 다시금 행사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조금 전 동상에서 느꼈던 그 기운을 상기시켰다.
‘이걸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루 스톤 결정체로 동상을 만들었을 줄이야.’
회귀 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 뒤에, 신켄이 보유하고 있는 광산 한 곳의 깊숙한 곳에서 ‘블루 스톤 결정체’ 가 발견된다.
그때부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결정 파편을 블루 스톤, 조금 전 준우가 보았던 동상 정도의 크기는 블루 스톤 결정체라고 칭했다.
‘물론, 아직은 발견되기 전이니까 딱히 명칭을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중요한 건, 결정체가 가진 효능이었다.
일반적인 블루 스톤은 만물의 생명력을 복원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미래 의학 산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이 바로 블루 스톤인 것이다.
하지만.
결정체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생명력을 복원하는 힘은 똑같이 지녔지만, 그것이 오직 인간에게만 국한된다.
블루 스톤 결정체가 마을 인근 지역까지 보호할 만큼 효과 범위가 넓지만, 대상이 국한되어 있고 효율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을 갖고 있는 셈.
‘그래도 공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준은 되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회귀 전에 발견됐던 결정체는 이탈리아의 신성회 대회당 중심부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뒤늦게 광산 독점을 푼 다이스케가 세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기꺼이 결정체를 내놓았더랬지.
아무튼.
저주가 어떤 저주인지, 진짜 저주인지는 모르겠으나, 블루 스톤에 그 저주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가정은 해볼 법했다.
‘블루 스톤 몇 개를 구해서 테스트를 해봐야겠어.’
결정체를 부숴서 파편으로 만든다고 일반 블루 스톤이 되는 게 아니었다.
반대로 블루 스톤을 합성한다고 결정체가 가진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름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개념의 물질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었기에, 일단은 확신을 갖기에 앞서 테스트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 준우사마!
전화를 걸자, 곧장 칸나의 상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런 부탁하기엔 좀 미안한데. 혹시 블루 스톤을 구할 수 있을까? 소량이라도 상관없어.”
- 블루 스톤이라면 지금 나한테도 있어요! 얼마 전에 광산에서 채굴한 거, 이사님한테 품질 점검용으로 몇 개 건네받은 게 있거든요.
“오호? 아주 나이스한데.”
만약 당장 여분이 없었다면 복잡하게 채굴 과정까지 거쳐야 했다.
칸나가 이미 몇 개 가지고 있다니, 준우로서는 더 없는 행운이었다.
“그럼, 그거 공항 특편으로 중국으로 보내줄 수 있을까? 공항 측엔 내가 지금 미리 말해둘 테니까…….”
- 중국이요? 준우사마 지금 중국에 있어요?
“일 때문에 상하이로 출장 왔어.”
- 와아! 나도 중국인데?
“뭐……?”
- 저도 상하이에 있어요! 일 때문에 왔거든요! 잘됐다! 우리 만나서 같이 떡볶이 먹어요! 시간 괜찮으면 바로 만날까요? 마침 지금 브레이크 타임이거든요!
브레이크 타임이라니.
요즘 중국에서 한창 한국식 떡볶이가 유행이라던데.
설마, 칸나가 맛집 도장 깨기하려고 중국에 왔나?
준우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겠지. 일하러 왔다고 했으니까…….
“난 시간 많아. 그럼, 우리 어디서 만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