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제의 밤
왕친에 대해서는 준우도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다만, 회귀 전 세계 유명 잡지인 헌트에서 왕친 부자를 인터뷰를 했던 내용이 문득 떠올랐을 뿐.
- 세계의 각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영입 요청이 있는 걸로 아는데, 계속해서 거절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
왕친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하나뿐인 아들 때문이라고.
해서, 준우가 아는 것도 거기까지다.
당사자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찌 타인이 그 내막을 알겠는가.
‘끽해야 나도 아는 거라곤, 잡지에서 본 왕친과 그 아들 얼굴뿐인데…….’
수재혁에게도 사실대로 말을 했다.
저도 모르게 왕친을 언급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긴 했지만, 본인이 함께 가 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씁. 말을 좀 섭섭하게 하네. 그래도 내가 아버지께 부탁해서 전용기까지 빌려왔는데…….”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이 있다구요. 게다가, 저와 동행하셔도 딱히 도움 안 된다니까요.”
“그건 가봐야 아는 거지. 자넨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재주가 있잖아? 헌터 서바이벌 때 팀워크가 좋아서 그랬는지, 이상하게 매제가 옆에 있으면 든든하기도 하고.”
“하…….”
누군가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나, 가끔은 오늘 같은 상황 때문에 곤란할 때도 있었다.
“삐친 거 풀지 그래? 이것도 어찌 보면 다 가족을 위한 일인데, 좋은 게 좋은 거잖나?”
“제 느낌엔 가족을 위한 일이라기보단, 형님의 결혼식을 앞당기기 위한 일이지 않나 싶은데요.”
“말 계속 그렇게 서운하게 할래?”
“저도 서운해서 그렇죠, 저도! 정말 중요한 일이 있었단 말입니다!”
“에에? 이제 내 앞에서 언성도 높이네?”
“무작정 끌려왔는데, 목소리 정돈 높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수재혁이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간 함께 해 온 일들도 있고, 특히나 헌터 서바이벌 때 진득하게 친해진 탓인지, 이제는 형제처럼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이었다.
티격태격하는 게 어딘가 모르게 친구 사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재혁이 준우를 대하는 태도나 말투에서 가족 관계 그 이상의 느낌이 전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자네가 도와준다면 금방 끝날 일이야. 그리고 내가 언제 자넬 공으로 부려 먹은 적 있나? 다녀와서 내가 거하게 선물 하나 할 테니까…….”
“선물 필요 없습니다.”
“선화가 그러던데. 요즘 매제가 스포츠카에 눈독 들이고 있다고.”
“……!”
차는 남자의 로망.
준우는 최근 고가의 스포츠카를 살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사고는 싶지만, 억대 지출이 마음에 조금 걸렸기 때문이다.
“차종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10억 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내가 한 대 뽑아 주지.”
“저, 저도 돈 있습니다.”
“돈은 있어도 선화 눈치는 보이잖아?”
“…….”
선화가 사지 말라고 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없는데, 묘하게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원래 좋은 선물이라는 게, 내가 사긴 아까울 때 남이 사 주는 거 아닌가?”
“괜찮으시겠어요, 형님? 결혼 앞두고 있는 상황에 돈 그렇게 펑펑 쓰시면 김 관장님이 싫어하실 텐데.”
“하하핫! 나는 자네하고 급이 다르지 않나? 내가 고작 10억 가지고 김 관장에게 잔소리 들을 처지는 아니지!”
“……예, 예. 부자라서 아주 좋으시겠습니다.”
일단, 거절은 하지 않은 준우다.
갖고 싶은 걸 흔쾌히 사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게 바보지.
‘보통 선물이 아니잖아? 엑시스의 후계자가 되실 분인데, 뭐 스포츠카 한 대 정도는 적절한 것 같기도 하고…….’
대신, 스포츠카는 왕친을 영입을 성공한 후에 그 대가로 받을 생각이었다.
영입에 실패하고 뻔뻔하게 선물을 받아 낼 수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중요한 일이라는 건 뭐야? 내가 이번에 자네 도움을 받고자 했으니, 나도 도울 수 있는 거면 돕고 싶은데.”
“안 그래도 형님께 좀 도와 달라 하려고 했습니다.”
준우가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의 제목을 바라보던 수재혁의 표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일그러졌다.
< 귤 예쁘게 까는 법 >
이어, 준우가 가방에서 비닐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수십 개의 귤이 담겨 있었다.
“주, 중요한 일이라는 게 귤 까는 일이야? 지금 장난해?”
“장난 아니고 엄청 진지합니다. 수린이가 유치원에 갔는데, 친한 친구가 귤을 토끼 모양으로 까서 자랑을 했다는군요.”
“……그런데?”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친구네 아빠가 그렇게 귤 까는 법을 알려 줬던 모양입니다. 수린이는 그게 부러웠는지, 저보고 귤을 호랑이 모양으로 까는 법을 알려 달라고 했구요.”
“……그래서?”
“지금부터 우린 이 책을 보고 호랑이 모양으로 귤 까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수린이를 위해서요.”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제가 못하면, 형님이라도 하셔야죠. 그래야 수린이가 유치원에 가서 아빠 대신 삼촌이 해 줬다고 자랑이라도 하지.”
“기가 차는구만. 이런 책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중요한 일이 고작 귤 예쁘게 까는 거라니…….”
“형님.”
“왜?”
“아빠의 마음이라는 게 다 그런 겁니다. 형님께서도 결혼하시고 자식 생기시면 그때 느끼게 되시겠죠. 제가 왜 그리 귤 까는 일에 집착했는지를요.”
“……그래.”
준우가 책을 펼쳤다.
두 사람이 각각 귤을 하나씩 손에 쥔 채 머리를 맞댔다.
“끄응. 엄청 어렵네, 이거.”
“형님, 대충대충 하지 마시고 집중해 주세요. 그러다 귤 터지겠습니다.”
“대충하다니! 난 지금 최대한 열심히 하고 있…….”
“이것 봐요! 지금 귤 터지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게 제가 뭐랬어요? 귤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나 잘해! 그리고 자네 건 이미 터졌어!”
귤 까기에 집중한 덕분일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두 사람을 태운 비행기는 상하이에 도착해 있었다.
* * *
“형님, 상하이에도 귤 팔겠죠?”
“걱정 마. 찾아보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테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귤 박스채로 가져올걸.”
“미안하네. 내가 너무 의욕이 과했어…….”
열정이 앞선 수재혁이 다급하게 귤을 깠고, 수십 개의 귤 중 2/3가량을 터뜨렸다.
호랑이 눈이 될 부분의 껍질을 파내는 건 성공했으나, 힘 조절이 어려웠던 바람에 눈 안쪽의 귤이 계속해서 터져 버린 것이다.
“호랑이가 계속 눈물을 흘리더군요.”
“……면목이 없군.”
출장 다녀와서 꼭 호랑이 모양으로 귤 까기 성공시키겠다고 수린이한테 약속했는데.
“뭐, 형님보다 덜 터뜨리긴 했어도 저도 실패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어떻게든 귤을 구해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선 성공시키는 수밖에요. 우린 할 수 있을 겁니다, 형님.”
“할 수 있다는 의지만 있다면, 세상엔 못할 게 없지.”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야.”
일단, 귤 까기는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중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으니까.
수재혁이 왕친과의 미팅을 잡은 건 이틀 뒤였다.
준우가 협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약속 시간을 배려해 준 것이랄까.
다행히 왕친의 집이 축제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덕분에 준우도 협회 업무를 여유롭게 보면서 미팅을 준비할 수 있었다.
‘화반(花瓣) 축제라. 아직은 회귀 전과 비교해서 규모가 상당히 작을 때겠지.’
행사장이 가까워질수록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졌다.
상하이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도심에서 제법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 오색찬란한 불빛들과 수많은 인파가 준우와 수재혁을 반겼다.
“이번이 처음 개최하는 행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군.”
“대부분 중국 사람들일 겁니다. 각국에서 축제에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길드들이 대부분일 거구요.”
약 10년 정도 지나면, 화반 축제는 ‘화반 국제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세계 각국의 대형 길드와 협회까지 참여하는 대행사로 자리하게 되며, 그때의 이곳에선 세계 각 분야에서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제품들이 가장 먼저 전시를 하게 되는 곳이 될 터.
“응?”
“뭐지?”
행사장에 들어서자 안내원이 뭔가를 건넸다.
두 사람에게 각각 건넨 그것은 다름 아닌 가면이었다.
“축제다 보니 기념품 같은 의미로 주는 것 같은데요. 행사장 안쪽 보니까, 사람들도 다 가면을 쓰고 있구요.”
“나쁘진 않네. 이걸 쓰면 괜히 알아보는 사람이 생겨서 귀찮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 형님 가면은 호랑이 가면이네요.”
“호랑이가 아니라 사자야! 나 무안 주는 게 그리 즐겁나?”
“앗!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준우는 노란색 나비가 그려진 가면을 착용했다.
수재혁 역시 내키진 않지만, 축제 분위기상 호랑이 가면을 착용한 채로 행사장 관람을 시작했다.
“유럽 쪽 길드가 꽤 많이 보이는데.”
“그 외 다른 국가들도 상당수 참여했어요.”
수재혁은 생각했다.
축제에 참여한 길드들이 대부분 중소형 길드라고는 하지만, 세계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길드들이 속한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쪽이었다.
‘유럽의 중소형 길드면, 국내에선 중대형급에 미치는 수준이야.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지.’
첫 개최에 중소형 길드들이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연차가 쌓였을 땐 상위권 길드들도 전시에 참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이 축제 어디서 개최한 거지?”
“화반 길드요. 이 지역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화반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길드 마스터라네요.”
“화반? 처음 듣는 길드 이름인데.”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길드니, 규모가 크진 않을 테니까요.”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규모는 작아도, 처음 개최하는 이 행사를 유럽 쪽 중소 길드까지 끌어들인 능력이 중요한 거지.
‘세계 각국의 대형 길드들이 이곳에서 합동 전시를 하고 교류를 하게 된다면…….’
화반의 길드 마스터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왕 중국에 온 김에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는 수재혁이었다.
‘……엑시스의 새로운 방어구 사업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겠어.’
멀리 보고 멀리 생각하기로 했다.
타국에서 참여하지 않는 대도, 중국이 워낙 인구가 많기에 대놓고 중국을 겨냥한 사업을 한다 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엑시스도 마찬가지지만 대형급 길드는 이번 축제에 참여를 하지 않은 상태니까.
‘그래도 가능성은 최대한 열어 두자.’
그때였다.
우연히도 수재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한 남자가 준우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어째 느낌이 낯이 익은데…….’
소매 사이로 드러난 단단하고 새하얀 피부.
입고 있는 옷으로도 채 가릴 수가 없는 두꺼운 팔뚝과 허벅지는 물론이요, 그에 버금가는 거구의 체격으로 준우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은 남자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m가 넘는 키와 근육이 터져나갈 듯한 다부진 몸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루이스?”
준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거구의 남자를 붙잡았다.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칭 엑스칼리버라고 말했던 그의 커다란 대검이 떡하니 그의 등에 매여 있었으니까.
* * *
축제의 밤이 무르익었다.
행사장 중심에선 변검술 공연이 한창인 이때, 바깥쪽에 위치한 어느 한 가게에선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곳에서 전준우 헌터님을 만나게 되다니요! 게다가, 한국 최고의 길드라는 엑시스의 부 마스터님까지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런 걸 보고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루이스 대위님. 홀리 나이트의 후계자를 타국에서 뵐 줄이야.”
“알고 계셨습니까? 제가 홀리 나이트의 후계자라는 건 가까운 지인들을 제외하곤 모르는 사실인데…….”
루이스가 슬쩍 준우를 바라본다.
그러자 준우가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은 루이스의 비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준우 헌터님이 거짓말을 하실 리는 없고.’
그렇다면, 루이스의 정체를 알아낸 건 온전히 엑시스의 정보력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엑시스로군요.”
“과찬이십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술잔을 들어 올렸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루이스는 수재혁의 강함을 느끼며, 수재혁은 루이스의 잠재력을 느끼며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운이 좋았어. 안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홀리 나이트와 엑시스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었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에서 공중형 몬스터로 인해 난항을 겪게 된다.
공중 전투에 앞서 대비를 하고 있던 홀리 나이트라면, 필히 엑시스에 도움이 될 터였다.
홀리 나이트 역시 엑시스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블루 스톤 광산을 통해, 홀리 나이트의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힐러의 부재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홀리 나이트 쪽에 엑시스 웨펀의 기술력과 아다만티움으로 최고의 검을 지원해 줄 수도 있겠지.’
두 길드가 협력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홀리 나이트는 세계 랭킹 3위에서 보다 빠르게 위로 향할 수 있을 거고, 엑시스는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친해지는 데는 술이 최고지.’
세 사람은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즐겼다.
대형급 길드들의 후계자들이 소박하게 이런 자리에서 술자리를 갖는 것도 나름 이례적인 일이었다.
“홀리 나이트에서도 이번 화반 축제에 관심을 두고 있던 겁니까?”
“사실 저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선 생각이 다르셨던 모양입니다. 화반 길드의 마스터의 영업력을 높이 사시더군요. 그래서 그를 만나 보라고 절 보내셨구요. 마침 휴가 중이라 곧장 넘어왔습니다.”
“그렇군요.”
“수재혁 부마스터님께서는 이번 축제에 참여하시기 위해 중국에 오신 겁니까?”
“아닙니다. 저도 다른 일로 잠시 들렀습니다. 화반 축제의 여러 가능성은 이곳에 온 이후에 보게 되었죠.”
루이스는 수재혁이 언급한 다른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타 기업의 일을 캐묻는 건 실례되는 일이니까.
신사의 나라인 영국이지 않은가.
루이스 또한 신사였다.
‘수재혁 부마스터. 명성은 익히 들어 봤지만, 얼마나 강한 자인지 실제로 겪어 보고 싶은데…….’
‘루이스 대위. 홀리 나이트의 후계자라면, 차후 내가 엑시스의 회장 직을 맡게 됐을 때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야.’
두 사람이 재차 술잔을 나눴다.
나누는 술잔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준우는 적당히 두 사람 사이에서 호응을 해 주다가, 슬쩍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려면, 내가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낫겠지.’
후계자들의 대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이 더 들어가면 사업적인 이야기나, 앞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될 수도 있다.
술이란 깊이 숨겨진 속마음까지도 끌어낼 수 있는 묘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은가.
‘홀리 나이트와 엑시스가 부디 좋은 관계로 시작할 수 있기를.’
준우는 눈치껏 빠져 주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그들의 세상을 논할 수 있도록.
와아아아아-
가게에서 나온 준우가 조금 걸음을 옮겼을 때.
행사장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났나?’
아까부터 진행 중이었던 변검술 공연이었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극단원들에게 쏟아지는 함성의 크기를 보아하니, 꽤 성공적인 공연이었던 모양이다.
행사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인파 속.
공연이 끝난 뒤, 하나둘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준우가 문득 걸음을 멈춰 세웠다.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앳된 남자아이.
극단원 중 한 명이었는지, 가면을 벗은 채로 관객들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아이였다.
“저 아이는……?”
당시보다 더욱 앳된 얼굴이긴 하지만.
회귀 전, 준우의 기억이 맞다면 그가 왕친의 하나뿐인 아들임이 틀림없었다.